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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여름의 끝⑴
[Episode· 10]
[모르프의 진실]
[완벽한 이야기를 완성하여 ‘콘스 텔라티오 프로젝트’에서 추가 보상 을 약속합니다·]
···시작된 줄도 몰랐던 메인 에피 소드 하나가 완료되었다· 의식이 몽 롱한 와중에 들려오는 콘스텔라티오 프로젝트의 시스템 메시지는 멀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모르프의 진실이라·
저게 뭘 하는 에피소드였더라·
기억도 잘 안 난다·
“후우····”
[스킬 ‘신령의 숨결’이 해제되어 신 수 침식도가 상당히 상승합니다·]
[아이템 ‘새벽의 수레바퀴’를 과도
하게 사용하여 신체가 과부하됩니 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는 말 을 들어본 적이 있다· 예전에는 몰 랐는데 지금은 알 것 같다·
이건 단순히 비명을 지르는 수준이 아니라 살려달라고 애원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황급히 포션을 종류별로 닥치는 대 로 마셨지만 고통은 가시지 않는다·
‘진짜 죽겠네···
숨을 천천히 들이쉬며 등을 기대었 다· 격전지에서 정말로 한참이나 멀
찍이 떨어진 우거진 나무의 드높은 나뭇가지 사이로 숨었기에 내 모습 이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 여 가면까지도 벗어 던졌다·
두두두두!!
저 멀리서 요란스레 들려오는 말발 굽 소리· 마법 전사단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상황이 끝났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로·
이미 도착하여 사태를 파악한 마법 전사들이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쓰러 진 백요호 화령과 아이작 모르프를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 상황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만 하는 것일까·
9리스크의 마수가 등장했다는 사실 조차 믿을 수가 없는데 대륙을 수 호하던 아이작 모르프 대공이 마법 계를 배신하여 흑마인이 되었다니·
그러나 이내·
마법사들은 합심하여 모두 입을 모 아 이렇게 외치기 시작하였다·
“아이작 모르프 대공께서 흑마화를 하였소!”
“허나 홍시화 공주께서 성공적으 로 격퇴하였군!”
“오오! 그의 시체를 보시오! 가히 영웅스러운 업적이로군!”
“믿을 수가 없어· 그 아이작 모르 프 대공이 마법계를 배신하다니····”
홍시화를 둘러싼 마법사들이 그녀 의 업적을 칭송한다·
사실 그들 모두 알고는 있다·
아이작 모르프가 왜 흑마화를 하였 는가· 상황의 정황을 보는 것만으로 도 충분히 파악 가능하지 않겠는가·
백요호 화령의 봉인해제·
그것을 쓰러뜨리기 위하여··· 그 는 스스로 숭고한 희생을 택하였다·
그러나 그런 ‘진실’ 따위 무엇이 중하겠는가?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러니 양대산맥 중 하나인 모르프 대공가의 가주가 죽어버린 지금 아 돌레비트에게 붙는 게 현명한 판단 이리라·
나는 그 광경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흥시화 아돌레비트는 마법 사들의 칭송을 긍정하며 백요호 화 령의 존재를 은폐할 것이다·
그것이 세간에 드러나봐야 진실을 추측하는 사람만이 늘어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백요호 화령을 쓰러뜨린 업적 역시 도 대단하나 뒷말을 깔끔하게 없애
기 위해 포기하였다·
현명하고 지독한 여자다·
“0으···”
-—ロ »
맞지 않는 부품을 넣은 기계를 억 지로 가동한 것처럼 온몸이 삐걱거 린다· 아무래도 한동안 이곳에서 요 양을 해야 될 것 같은데····
그것보다도 문제가 하나 있다·
’···이제 어떻게 돌아가지?’
10년 전의 과거로 돌아온 그 날·
은세십일월이 내 머릿속에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가는 길을 각인해 주 었다· 사실 ‘길’이라고 해봐야 내가
할 일은 없고··· 기다리는 게 전부다·
‘때가 되면 네가 돌아올 길을 터 주도록 하겠다· 그때까지는 결코 과 거의 시간선에 간섭하지 말고 얌전 히 기다리도록!’
결과적으로 과거의 시간선에 어마 어마한 간섭을 해버리기는 했다만··· 그래도 내 예상대로라면 미래는 전 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뭔가 잘못됐나?’
이제 슬슬 은세십일월이 구원의 동 아줄을 내려보내 줄 때가 되었는데 어째서 소식이 없는가·
벌써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은데 아무런 입질이 없으니 불안한 생각 이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했다·
만약 내 행동에 의해 정말로 뭔가 가 잘못되어서 현대의 은세십일월과 연결이 끊어져 버린 거라면?
그래서 미래의 은세십일월은 나라 는 존재를 아예 기억하지 못한다면?
“···나 어떻게 돌아가지?”
갑자기 앞날이 깜깜해졌다·
* * *
쏴아아-!!
하월평원의 장마는 여름 내내 계속 된다· 올해는 유난히 그 정도가 심하 다고는 하지만 아예 무역로•가 막혀 버릴 지경이라 지갑에는 상인들의 걱 정만 가득 쌓여만 갈 뿐이었다·
별구름 상회 역시도 마찬가지로 올 여름은 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 다· 상단주 멜리안이 장기간 실종된 와중 젤리엘 역시 그를 찾기 위해 모든 업무를 내려놓고 있었으니 어
디 상단이 제대로 돌아갔겠는가·
올해 상반기는 스텔라의 학생들이 연달아 신개념 마법을 연달아 발표 하는 바람에 안 그래도 빠르게 돌아 가는 경제 시장에 제대로 뛰어들지 못하여 별구름은 난데없는 큰 혼란 을 겪는 중이었다·
투둑! 툭!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젤 리엘은 멍하니 사념에 잠겨 있었다·
“요즘 도통 집중을 못 하는구나·”
멜리안이 무사히 구출된 지도 어느 덧 일주일이 흘렀고 다행스럽게도 그의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어서 곧
바로 본업에 복귀하였다·
그간 밀린 일을 처리한답시고 어찌 나 발 빠르게 뛰어다녔는지 항상 말 끔한 인상을 관리하던 그의 눈가에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았을 정도다·
“···죄송해요 아버지·”
“아니다· 그럴 수 있지·”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멜리안은 자 신의 딸을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자신이 돌아온 이후에도 아이는 기 뻐하는 기색을 거의 보여준 적이 없 었다· 언제나 항상 활기차게 미소 지으며 살던 아이라고는 말하지 못 하겠지만 그래도 저렇게까지 우울
한 기색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최근 만월탑주 해성 월에게 연락이 왔었던가·
자신의 안부를 묻는 게 목적인 줄 알았으나 그는 유난히도 젤리엘의 상태를 궁금해하였다·
“젤리엘·”
“···네· 말씀하세요 아버지·”
그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지금껏 세계 정상급의 인사를 상대 하면서도 긴장해 본 적이 없거늘 딸 을 상대하는 아버지의 입장이 되니 한마디의 말이 조심스럽다·
“혹여 그 소년 때문에 그러는 것 이냐·”
사건의 전말은 해성월에게 전해 들 었다· 자신의 실종이 젤리엘의 실수 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으며 그녀는 그것을 스스로 바로잡기 위해 전력 으로 애를 썼으나 불가능하였다·
그런데 그때 기적처럼 나타나 자 신을 되돌려놓은 소년이 바로 백유 설이라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년은 자 신을 살리는 대가로 시공간의 틈새 로 모습을 감춰 버렸고 해성월조차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라며 고개
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버ス]· 그런 거 아니니 까 걱정하지 마세요·”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으나 젤리엘 은 억지라는 게 티가 나도록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다·
“···그래· 알았구나·”
멜리안은 씁쓸한 표정을 애써 감추 고서 사무실을 빠져갔다· 당장에 딸 이 걱정되기는 하나 업무가 워낙에 밀려 있는 탓에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달칵!
쏴아아! 툭 투둑!
젤리엘 홀로 남은 적막한 사무실에 는 이제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만이 요란하다·
사각사각-
연금술로 만들어져 먹물이 자연스 레 새어 나오는 깃털펜으로 서류철 을 한참이나 끄적이던 젤리엘은 마 침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
가슴에 구멍이 뚫려 심장이 사라진 것처럼 공허해서·
뚝
“아···
작성하던 글자의 얼룩이 번지는 바 람에 젤리엘은 황급히 종이를 갈아 치웠다·
“하아····”
이제는 자기 자신이 왜 이러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이렇게 까지 삶에 의욕이 없던 적이 있던 가· 사람이라는 존재는 왜 살아가는 가· 그녀는 하이엘프로서 앞으로 수 백 년 이상을 더 살아갈 텐데 이렇 게 무의미한 인생에 의미가 있을까·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발코니로
나갔다·
천장이 소나기를 막아주고는 있었 으나 비바람의 차가운 물방울이 얼 굴에 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차라리 이렇게라도 정신을 차릴 수 있어서 다행인 걸까·
그녀는 멍하니 발코니의 난간에 기 대어 하월평원 저 멀리 펼쳐진 녹색 의 지평선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정말로 아름다운 장소였다·
···이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 서 말하는 이 ‘아름다운 풍경’이라 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인ス] 지금의 그녀는 다른 사람들처럼 아름다운 풍경이라 는 것을 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 시 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추하며 신나고 슬프며 즐겁고 지루한 것·
이것이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삶 속의 감정·
이제야 그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는데··· 왜 정작 무력감과 절망감밖에 느껴지지 않는 걸까·
···이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젤리엘 은 뒤돌아 사무실로 돌아가려고 했 다· 그런데 뭔가··· 뭔가가 어색했다·
‘아?’
시원하게 불어와 머리카락을 찰랑 흔들던 비바람이 멎었다·
‘이게 무슨···
호기심보다도 먼저 두려움이 닥쳐 온다는 이 특이한 감정의 변화가 상 당히 어색했으나 젤리엘은 애써 힘 겹게 고개를 돌려 다시금 발코니를 바라보았다·
**···뭐야·”
허공에 매달려 있는 물방울·
···수억 개·
하월평월을 적시던 소나기가 정 지해있다· 내리치던 벼락이 한 폭 의 그림처럼 배경을 장식한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젤리엘이 스스로의 눈을 믿을 수가 없어서 눈을 세게 감았다가 다시 뜨 자 지평선 끝에·
어떤 노인이 매달려 있었다·
세상을 반으로 갈라놓은 새하얀 벼락을 등진 채 그는 젤리엘을 조 용히 응시하였다·
찰팍!
노인은 소나기를 밟고서 젤리엘을 향해 다가왔다·
한 걸음 한 걸음·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아이러니 하게도 젤리엘은 두려움 이전에 무 언가 가슴 속에서 벅차오르는 어떠 한 감정을 느꼈다·
알 수 있다·
이건 희망이다·
마침내 발코니에까지 다가온 노인
은 젤리엘을 내려보았다· 그 신비로 운 노인은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수 염을 휘날리며 그녀의 눈을 뚫어져 라 쳐다보더니 대뜸 말하였다·
“이 근방에서··· 백유설과 가장 끈끈한 인연으로 묶여 있는 아이는 너뿐이로구나·”
“···그렇습니까?”
그 이름이 나오자 젤리엘의 심장이 더욱 격렬하게 진동하였다·
“그를 되찾아오고 싶으냐?”
“네·,,
“실패하면 네 심장을 대가로 바쳐 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나?”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젤리엘이 고개를 위아래로 흔드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과장이다·”
“···네?”
“목숨을 걸 필요 따위는 없다· 다 만 네 간절함을 알고 싶었다·”
그는 뒤돌아 저 멀리 지평선을 바 라보았다· 언제 보아도 참으로 아름 다운 풍경이라고 생각하며 입술을 떼어 젤리엘에게 고한다·
“네가 할 일은 간단하다· 그저 간 절히··· 그를 바라면 된다· 나는
그 아이와 인연으로 엮여 있지 않아 그것이 불가능하여 너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구나· 할 수 있겠나?”
그런 거라면 전혀 문제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도 계속 해왔던 것이니까·
“···할 수 있어요·”
굳게 결심한 젤리엘이 고개를 끄덕 이자 노인은 흡족하게 웃었다·
···쏴아아!!
이윽고·
마치 노인의 존재가 꿈이었다는 듯 허공으로 흩어지며 소나기가 다시금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가만히 노인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 보던 젤리엘은 무언가에 홀린 듯 짐 을 챙겨서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펄럭····
이제 아무도 남지 않은 적막한 사 무실에는 종이 몇 장만이 흔들거리 며 비바람과 춤출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