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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제7본탑(1)
‘홍비연 공주가 실종되었다·’
교직원들이 아무리 쉬쉬하려고 해 도 워낙에 거물급 생도가 실종되어 버린지라 소문은 아주 조용히 스텔 라 내부에 푹 퍼져 버렸다·
안 그래도 괴담 때문에 학생들 사 이에서 공포감이 조성되고 있는데
하필이면 괴담과 똑같은 상황이 계 속해서 발생하다니·
풀레임은 흥비연의 실종을 살짝 다 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실종’이라는 건 곧 제7본탑에 끌려가는 것을 의 미하는데 원작 로판에서는 ‘주인공 에이젤’을 제외하고서 그 누구도 끌 려간 이가 없었다·
‘너는 자격이 없다’
잠시 사라질지언정 피해자들은 저 런 새빨간 문장과 함께 복도 어딘가
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는 게 고작이 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주인공 에이젤 은 제7본탑으로 끌려가고 말았고 사 건의 전말을 파헤친 해원량의 도움 을 받아 함께 이겨낸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해당 에피소드에서 홍비연은 코빼 기도 비추지 않는다· 당시에는 그냥 딱 주인공을 괴롭힐 때만 등장하는 포지 션이 었으니 까·
그런데 난데없이 홍비연이 제7본 탑으로 끌려갔다고?
‘잠깐· 그러고 보니 자격이 뭐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부분이었다·
소설을 읽을 당시에는 ‘그냥 주인 공이니까’라는 마음으로 ‘자격’이라 는 부분도 나중에 떡밥으로 풀리겠 거니 싶어서 넘겼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자 격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결국 끝까 지 밝혀지지 않은 채 소설이 완결 났다·
만약 그 ‘자격’이라는 것을 에이젤 뿐만이 아니라 홍비연 또한 충족한 다면? 원작과는 다른 전개로 흘러가 는 바람에 그녀가 끌려갔다면?
‘돌겠네 진짜····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한 일주일 정 도 뒤에 제대로 된 사건이 발생하였 을 텐데 벌써부터 이 사달이 날 줄 은 몰랐다·
이번 스토리의 주체가 메이젠 티렌 이 아닌 다른 존재로 바뀌어 전개가 훨씬 앞당겨진 느낌이었다·
“···안 되겠어·”
풀레임은 불안한 표정을 짓고서 안 절부절못하는 에이젤을 바라보았다·
본디 앙숙 사이였던 모르프와 아돌 레비트의 두 소녀는 지난날 사건을 함께 겪으며 성장해 이제는 당당히 라이벌이라고 해도 좋은 관계였다·
“우리가 들어가서 구하자·”
그러니 풀레임이 그렇게 말해도·
“그렇게 해요·”
망설임 없이 저런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이겠지·
“자 잠깐· 들어가는 방법은 알고? 교수님들도 못 들어가는 걸 너희들 이 어떻게 가려고···T
아넬라가 경악한 표정으로 물어왔 으나 이미 방법은 에이젤과 풀레임 둘 모두 알고 있다·
홍비연처럼 끌려 들어가지 않고서 직접 두 발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그 아저씨가 올 때까지는 최대한 조심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다·
백유설이 언제 돌아올지도 기약이 없는데 계속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그가 없더라도 자신들만 의 힘으로 직접 나서서 움직일 줄도 알아야 한다·
“가자· 그 싸가지 구하러·”
“네·”
풀레임과 에이젤은 굳게 다짐하고 서 발걸음을 돌렸다·
“으아아··· 유설이가 가만히 있으랬 는데···
그 사이에 끼어버린 아넬라만 괜히 울상이었다·
뚝 뚜욱-!
“〇 으··”
—ロ ・
뺨에 와 닿는 차가운 감촉에 홍비 연은 부스스 눈을 떴다· 팔을 움직 이려고 했으나 무언가에 묶인 듯 꼼 짝도 하지 않았다·
“뭐···!”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시야 가 어둡다· 눈을 밝히는 마법은 나 이트 계열 중에서도 상위권이었고 불빛을 만들려 해도 지팡이가 없었 으므로 불가능·
입술을 깨물고서 몸을 움츠러뜨리 려는데 갑작스레 허공에 불꽃이 생 성되 었다·
화르륵!
“읏···!”
갑작스레 시야가 밝아지자 그 눈부 심을 견디지 못하고서 홍비연은 눈 을 질끈 감았다·
“하하하! 불꽃의 축복을 받았어도 눈부신 건 어쩔 수 없나 보지? 소 문으로 듣자 하니 불에 완전한 내 성을 지녔다고 하던데···
기분 나쁜 어조의 목소리가 들려왔 음에도 홍비연은 한동안 눈을 뜨지 못했다· 그리고 서서히 고통을 이겨 내어 간신히 눈꺼풀을 올리니·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체키렌 교수님?”
“그래! 우리의 우등생 공주님을 이 렇게 보게 돼서 참으로 안타깝군·”
툭 튀어나온 뱃살에 번질거리는 피 부 항상 기분 나쁘게 웃는 표정 때
문에 평소에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 았던 체키렌 교수가 그곳에 서 있었 다·
“자네 가문의 마법은 참으로 예술 이란 말이 ス〕· 가장 고결하고 순수한 불꽃이라···· 어차피 산소와 마나 가 화합하여 연소하는 현상에 불과 한 것을 뭣 하러 순수를 따지나 했 더니 과연! 이런 느낌이었어· 역시 아돌레비트라는 말이 이해가 가·”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체키렌이 손끝에 피우고 있는 불꽃을 보고서 홍비연 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내 불꽃?’
오로지 아돌레비트의 순수 혈통만 이 피워낼 수 있는 가장 맑고 순수 한 불꽃·
여타의 불꽃과 위력 면에서 큰 차 이는 없지만 그것은 시조 마법사의 열두 제자 ‘아돌레비트’의 마법을 상징하는 심볼이었기에 결코 아무나 피워낼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을··· 완전한 외부인의 손끝에서 발현되다니·
‘설마 아돌레비트라고?’
그럴 리가 없다·
아돌레비트의 순수 혈통은 반드시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붉은 눈동
자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체키렌 교수는 짙은 보라색 의 눈동자였고 애당초 전공과목이 불꽃 계열도 아니었다·
“···당신 대체 뭔가요?”
“어허· 홍비연 학생· 교수님한테 말 버릇이 그게 뭔가?”
“대답이나 하세요·”
“쯧 시조 가문 놈들은 하나같이 싸가지가 없다니까····”
체키렌은 혀를 차면서도 이내 다시 기분이 좋아졌는지 헤벌쭉 웃었다·
“현 흑마도왕께서 남기고 간 ‘마
지막 프로젝트’다·”
“마지막 프로젝트···?”
”그래· 어째서 시조 마법사가 남기 고 간 마법을 너희 열두 가문만이 사용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의문 을 최초로 품으신 위대한 흑마도왕 께서 계획한 일이란 말이지·”
그는 신나는 듯 경쾌한 발걸음으로 걸어서 어딘가로 향했다· 그를 바라 보고 있던 홍비연은 자연스레 그곳 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거울?”
그곳에는 웬 커다란 전신거울이 홍 비연을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하다·
거울 속 세상의 색깔이 완전히 반 전되어 있는 것이다·
거울 속 홍비연은 흑색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를 하고 있었는데 어째 서인지 표정 또한 완전히 음울하여 생긴 것만 비슷할 뿐 자신이라는 생 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너희 열두 가문은 ‘콘스텔라티오’ 에게 선택받았다· 그게 무얼 의미하 는지는 알고 있나?”
**···알게 뭐야·”
“푸하핫! 우습구나 우스워· 우리 흑마인보다도 더 ‘완벽한 세계’에
가까운 곳에 서 있는 주제에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니· 그 무한한 세상을 단 한 번이라도 맛보았다 면··· 너도 헤어나올 수 없을걸?”
“흑마인··· 이라고···T
“그래! 아 정체를 밝히면 안 됐 나? 뭐··· 흠· 아냐· 괜찮아· 그렇 지? 그렇군· 뭐 교주께서도 허락 해 주셨으니 괜찮지 않을까?”
“잠깐·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 야?”
“그래그래· 괜찮아· 어차피 내가 이 학교에 잠입한 건 오로지 흑마도왕 께서 남기고 가신 이 프로젝트 때문
이었으니 말이야! 후우 그 싸가지 없는 개자식에게 빼앗길 뻔했을 때 는 얼마나 식은땀이 흐르던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이 해할 수 없을 정도로 체키렌은 횡설 수설하기 시작하였다·
‘미친놈···
단단히 돌아버렸다·
하지만 그 돌아버린 놈에게 목숨 이 저당 잡혔다는 생각 때문에 공포 감이 스멀스멀 가슴을 잠식하였다·
···정신 차려야 돼·’
그녀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제 보니 이곳은 참으로 기이한 공간이었다·
탁 트인 홀의 창문 바깥으로 보이 는 하늘은 붉은색을 띠고 있었는데 마치 색상이 반전된 것만 같았다·
게다가 사방에 느껴지는 이 수상한 마나의 향기는 틀림없는 이면 세계·
즉 ‘페르소나 게이트’였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뭔가 이상하다·
페르소나 게이트는 일종의 설계된 세계로서 현실과는 달리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구조적 결함이 있었다·
그런데 이 장소는 완벽했다·
단순히 거대한 홀을 봤을 때의 느 낌이었지만 흐르는 마나의 향기만 맡더라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여타의 페르소나 게이트와는 다르 게 ‘수수께끼조차도 존재하지 않았 으니까·
”운이 좋아· 운이 아주 좋아·”
체키렌은 피식피식 웃으며 홍비연 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역겹고 끔찍하여 당장에 라도 달려가 지팡이로 귓구멍을 후 벼버리고 싶었으나 묶여 있다는 게 천추의 한이었다·
*’반세기 전 그분이 이것을 완성하
지 못한 덕분에 내가 물려받았으니 말이야· 흐흐··· 게다가 열두 제자 의 후손이 두 명이나 입학하다 니····”
중얼중얼 횡설수설·
허공에 대고 이야기하며 저 혼자 웃고 저 혼자 화내던 체키렌·
그러다 갑작스레 말을 뚝 멈추더 니 얼굴을 삐걱 돌려 홍비연을 바라 보았다·
고개를 기이하게 꺾은 채 바라보는 그 눈빛에서는 이미 자아라는 게 존 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홍비연조차도 가슴
이 철렁 내려앉았다·
“음? 음음〜 으음!”
하지만 애당초 체키렌은 지금 홍 비연에게 관심이 없었다· 다른 ‘누 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기 에·
-···체 키렌·
뇌를 긁어서 뜯어낼 것만 같은 서 늘하고 거친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 려 퍼졌다· 하나 홍비연은 듣지 못 한다·
이 목소리는 오로지 이면 세계에 자신의 혼을 바친 흑마인만이 들을 수 있었다·
“예~ 접니다! 부탁하신 대로 ‘별의 축복,을 받은 아이를 바쳤습니다·”
열두 제자의 후손을 제물로 바치면 힘을 얻는다·
제7본탑에 잠들어 있는 ‘누군가’와 체키렌이 맺은 계약의 조건· 하지만 그 계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로··· 만족하는가?
,,예?,,
그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체키렌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말했다·
-지금 나의 또 다른 심부름꾼
이··· 진정한 별의 아이를 이곳으 로 인도하고 있다····
“진정한··· 별의 아이?”
-너는 그 아이를 내게 제물로 바 치도록 해라····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게다가 또 다른 심부름꾼이라니·
그의 심부름꾼은 영광스럽게도 자 신 혼자가 아니었던가?
’···설마 레이딘 그 개자식이?’
그럼 그럴 줄 알았다· 뻔뻔한 낯짝 뒤에 이기적인 심보를 숨기고 있을 게 틀림없으니 숟가락 하나 얹어보
려고 애를 쓰고 있겠지·
하지만 뭐 어쨌든 상관없다·
진정한 별의 아이가 누군지는 모르 겠지만 어쨌든 제물로 바치면 또다 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흐흐 기대되는군·’
체키렌은 진심으로 본 적도 없는 흑마도왕이 고마워졌다·
이 대단한 프로젝트를 거의 완성시 켜놓고 제대로 실행하지도 않은 채 스텔라를 떠나다니·
덕분에 자신만 득을 보게 되었으니 좋은 게 좋은 거지만·
‘다음은 누굴까〜‘
그는 기대 어린 신나는 발걸음으로 그렇게 자리를 떠나갔고 자리에 혼 자 남게 된 홍비연은 입을 꾹 다물 고서 벽에 몸을 기대었다·
“하아···
심장의 써클에서 서서히 마나가 빠 져나가고 심력이 점점 소진되었다·
마치 영혼이 몸에서 벗어나는 것처 럼·
버텨내야 한다·
버텨내야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어서 그녀는 눈을 감았다·
‘졸···려···
한숨만 자고 일어나자·
여태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잠깐 정도는 내게 허락해 줘도··· 괜찮 지 않을까·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