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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괴담⑴
홍비연과 에이젤·
타오르는 붉은 불꽃과 차디찬 푸른 얼음을 상징하는 둘은 완전히 상극 인 것 같지만 은근히 공통점을 찾고 자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로 자기 보호를 위해 일부 러 자존심을 높이 내세운다는 점·
두 번째로 궁금한 점이 생기면 무 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그것을 파헤 치고 본다는 점·
세 번째로 어떤 한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들의 공통점은 묘하게 겹쳐서 상극의 속성과 마찰력 짙은 분위기 를 지워 버릴 정도로 상당히 어울리 게 되었는데 그런 둘이 도서관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무언가를 공 부한다는 건 다른 학생들에게 상당 히 신기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야야 저기 봐·”
“공주님이랑 그 배신자의····”
“쉿· 요새 누가 그렇게 부르냐? 눈 치 없어?”
“어 으응··· 맞다 참·”
최근 들어 에이젤로 인하여 모르프 가문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 다· 배신자의 자식이라는 낙인이 찍 혀 혐오와 조롱 어린 시선을 받으 며 극악의 환경에서 자라왔음에도 끊임없이 노력하여 스텔라에 최상위 권 성적으로 입학·
거기에 모자라 속성 마법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기하였으며 열일곱이라 는 어린 나이에 4클래스에 도달하였 고 그 어떤 사건 사고가 발생하더
라도 정의감을 가지고서 끝까지 임 하는 모습을 많은 마법 전사 지망생 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실제로 ‘흑마 배신자어】 대해 별생 각을 가지지 않는 평민이나 낮은 계 층의 학생들 사이에서 그녀는 상당 히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10대의 청소년들은 ‘극악의 조건에 서도 굴하지 않고 떠오른 별’이라는 청춘 소년만화 같은 인생역전 스토 리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 탓에·
에이젤과 홍비연이 앉아 있는 테이 블은 8인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근처에 누구도 다가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하는 게 좋으리라·
심지어 둘이 머리를 맞대고서 평범 한 과제 따위가 아니라 무언가 두꺼 운 서적을 쌓아두고서 열심히 메모 를 해가며 조용한 어조로 의논을 나 누고 있으니 감히 누가 그 영역을 침범할까?
하교 숙제가 아니라 뭔가 대단한 마법을 연구하고 계시는 거야·’
‘맞아· 저분들은 우리 같은 평범한 학생들과는 다르니까·’
‘쉿· 조용히 지나가자·’
···그래서 결국 학생들의 경외와
존경 어린 시선까지 한 몸에 사로잡 으며 두 소녀가 연구하는 과목이 무 엇이 느냐·
[고결한 영혼이란 무엇인가]
정말 마법의 발전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도 없는··· 아직 제대로 증명 도 되지 않은 영혼에 대한 연구였 다·
영혼의 실체에 대해 밝혀낸 마법사 는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령술이 흑마법사들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해당 분야가 발전하 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이 사령술은 단순히 마법의
연구로 해결되는 분야가 아니라 철 학이 끼어드는 요소가 상당히 많았 음으로 ‘마법 발전 기여도 제로’라 는 치욕적인 타이틀까지 박혀 있어 그 누구도 손대지 않는 학문이었다·
그나마 학점에 굶주린 몇몇 학생들 이 슬쩍 발을 담갔다가 수업시간 내 내 조는 바람에 평균 학점이 오히려 떨어졌다는 눈물겨운 사연도 있다·
[인간의 결코 영혼은 고결해질 수 없다·]
[탄생의 순간 어미에게 고통을 주 는 불효(不孝)를 범하기 때문이다·]
[탁해진 영혼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그에 곱절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데 인간은 자아를 가지기도 전부터 수 많은 업을 쌓기 때문에 평생을 노력 하더라도 그것을 지울 수는 없다·]
[탁해진 영혼을 되돌리는 것조차도 힘든데 하물며 고결한 영혼을 가진 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고결한 영혼에 대한 연구는 첫 번 째 페이지부터 부정적인 내용이 가 득했으나 다음부터는 역사 속 무수 한 사례가 나열되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역사 속에서 고 결한 영혼에 근접했던 위인들이 몇 존재한다·]
[그들의 위대하고 숭고한 업적이 살아오면서 저지른 무수히 많은 업 보를 깨끗하게 정화해 버린 것이다·]
즉 결론을 말하자면·
‘인간은 고결할 수 없으나 세상을 위해 공헌하거나 희생했을 경우 고 결에 근접한 혼을 지니게 된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이해가 잘 가지 않네·”
이런 분야를 공부하는 건 처음이었 기에 홍비연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건 에이젤도 마찬가지였기에 앓 는 소리를 끙끙 냈지만 그럭저럭 알 아먹은 부분을 이야기했다·
“역사 속 고결했던 사람들의 목록 을 보면 대부분이 ‘성자’나 ‘성녀’라 고 불리던 사람들이에요·”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베풀며 타 인을 위해 희생하고 스스로가 피를 흘리는 한이 있어도 다른 이의 눈물 을 닦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위 대한 위인들·
그들 중 대부분은 신성마법을 사용 하지도 못했다· 당시 증언에 따르면 천한 것들은 신성 마법을 배울 자격 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신성 마법 없이도 남을 치유하기 위해 의학을 발전시 켰고 혹은 나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연 금술을 연구하여 포션을 개발한 이 도 있었고 훗날 위대한 마법사가 된 이들도 있었다·
성자와 성녀들은···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에 자신의 정의를 구 현해 내고야 만 것이다·
현재의 신성국에서 임의로 정해주 는 성녀 및 성자와는 완전히 다른 정말 사람들이 절로 우러러 이름을 부르게 만드는 위인들·
그런 자들이 바로 고결한 영혼에 가장 근접했던 사람들이다·
여기서 문제가 있다·
“이런 사람들조차 고결한 영혼에 근접했을 뿐 완전히 고결한 영혼을 지니지는 못했다는 거죠·”
“···그렇지·”
인간은 고결한 영혼을 지닐 수 없 다· 그 완전한 명제는 지금껏 그 누 구도 깨지 못했다·
그런데··· 그것을 백유설이 깨뜨 렸다· 이는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으 나 안타깝게도 사령술에 관심이 없 는 탓에 누구도 저게 얼마나 대단하 고 위대한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텁!
홍비연은 책을 덮었다·
길게 연구할 필요도 고민도 없다·
결론이 곧바로 내려졌기 때문이다·
“···대충 알겠네·”
“그러게요···
백유설은 지금껏 정말 정말로 무 수히 많은 회귀를 거치며··· 얼마
나 수많은 생명을 해쳤을까·
그때 ‘별의 서고’에서 잠깐 보았던 것만 해도 백유설의 인생은 피로 얼룩진 채 도저히 씻을 수 없는 죄 를 덮어가고 있었다·
그 무수히 많은 업보들은 영혼을 가장 진한 흑색으로 물들이는 것으 로도 부족할 정도였으나 그는 어째 서인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영혼 을 지니고 있었다·
서적에 따르면 결론은 간단했다·
백유설은 자신이 저지른 죄보다도 더욱 세상을 구하기 위해 무수히 많 은 희생을 치렀고 그 결과 마침내
고결한 영혼마저 지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소녀들 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자신들이 어리다는 사실만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을 뿐·
뭐가 천재 마법사고 뭐가 마법의 축복을 받은 재능이란 말인가·
아돌레비트 왕가? 모르프 가문?
그딴 허울뿐인 껍데기를 칭송하는 놈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머저리 들이다·
진짜는 따로 있는데·
정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을
가진 이가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데·
문득 홍비연은 여태 살아왔던 자 신의 인생이 부끄러워졌다·
아돌레비트 왕가의 공주랍시고 떵 떵거리며 살아왔던 나날들·
내 아래로는 모두 평등하다며 무시 해왔던 그 행실들 모두 지울 수 있 다면 모조리 지워 버리고 싶을 정도 로 창피했다·
책을 정리한 홍비연은 말없이 의 자조차 끌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 자 리를 떴다· 인사 따위는 없다· 어차 피 잠시 같은 책을 읽기 위해 앉아
있었을 뿐 에이젤과 사이가 꺼림칙 한 것은 여전했으니까·
에이젤도 마찬가지로 그녀가 떠다 나가는 것을 붙잡지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남아 나머 지 페이지를 유심히 완독할 뿐·
“이건···
더 이상은 읽는 게 무의미했지만 소녀의 호기심은 왕성했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영역에 대한 궁금증·
그것을 깊게 파고들던 에이젤은 상 당히 흥미로운 무언가를 하나 발견 할 수 있었다·
[···가장 최근 고결한 영혼에 근 접했던 위인을 일컫자면 ‘아벨라인 슈타베르크’가 있겠다·]
[비록 현재는 이면 세계에 영혼을 바치고 스스로 흑마인이 되기를 택 했지만 그는 스텔라 아카데미 출신 으로서 그 명성을 떨쳤는데····]
스텔라 출신의 대마법사이자 흑마 인 아벨라인 슈타베르크·
에이젤은 저 이름에 대해 잘 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저자에 관하여 이야기해 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아주 괴짜였지· 오죽하 면 스텔라에 재학하던 시절 본탑 하 나를 통째로 세상의 반대편으로 보 내버렸을 정도였으니 말이야·’
‘대단하네요····’
‘대단하다면 대단하지· 그 사라진 탑은 교장 선생님조차 되찾지 못해 서 지금은 아예 없어진 상태라고 하 더구나· 이 아비가 재학하던 시절에 도 제7본탑은 없었으니까·’
그때가 대략 반세기도 더 전의 이 야기라고 했던가· 지금은 혹마인이 되어버린 탓에 스텔라 내에서 아벨
라인 슈타베르크에 관한 역사는 모 조리 지워진 채였다·
흑마인이라면 지독히도 싫어하는 엘트먼 엘트윈이 모두 비밀 속으로 묻어버렸기 때문·
그렇기에 현재에 이르러 저]7본탑’ 이라는 존재가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저 괴담으로만 떠도는 것이다·
,흐음····
에이젤은 그 괴담에 대한 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당시 스텔라 에서 큰 사건을 겪었던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제7본탑이라···
공부는 거기까지·
그녀는 곧 책을 덮었다·
궁금증이 모두 해결되었다·
* * *
스텔라 아카데미에는 무수히 많은 괴담이 존재했다·
100년이 넘는 역사에 더불어 역사 에 남을 만한 다양하고 특이한 마법 사들이 발을 거쳤고 심지어 학교부 지가 어지간한 소도시만큼이나 넓으 니 괴담이 생기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구조였다·
그중 몇몇 괴담은 너무나도 현실성 없고 헛소리로 치부될 만한 것들이 지만 학생들이 정말 사실이라고 믿 는 몇 안 되는 괴담을 손으로 꼽자 면 대표적으로 ‘제7본탑 괴담’이라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교에는 일곱 번째 본탑이 존재 하지 않습니다·
※만약 본탑과 본탑 사이의 복도를 지나치다가 구이라는 숫자가 적힌 본탑에 우연히 들어섰다면 그 즉시 발걸음을 뒤로 돌려 평상시와 똑같
은 보폭으로 자리를 뜨십시오·
[이 경우 뒤에서 어떤 여학생이 당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더라도 무시하십시오·
※제4본탑의 복도에서 흰색 교복을 입은 학생이 앞장서서 걸어간다면 따라가지 마십시오· 본교에 흰색 교 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정에 제6본탑에서 제3본탑을 가로지르지 마십시오·
L만약 이때 제3본탑을 지나치다 가 얼룩진 거울을 발견하셨다면 시 선을 피하십시오·
「실수로 거울 속 자신과 눈을 마
주쳤다면 그 즉시 눈을 감고 100까 지 센 뒤 통과하십시오·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흐〒·
제7본탑과 관련된 나폴리탄 괴담만 해도 열 개가 넘어갈 정도였으니 이 와 관련된 괴담에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졌는지는 뻔했다·
당연하지만 진실로 밝혀진 것은 아 무것도 없었다· 아카데미에 재학하 며 제7본탑의 괴담을 들으며 자라왔 던 어떤 학생이 수십 년이 지나 교 수가 될 때까지도 제7본탑을 본 적
도 없다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몇 년에 한 번 자신이 제7 본탑에 들어섰다며 이유 모를 헛소 리를 하다 자퇴하는 학생들이 존재 해서 괴담은 사라질 기미도 없이 매 년 새롭게 불이 지펴지고는 했다·
‘정말 존재하는 거 아냐?’
‘그럴 리가· 교장쌤이 없다고 공표 까지 했는걸?’
‘맞아· 근데 교수님들이 자꾸 언급 하지 말라니까 더 수상하지 않아?’
그치·’
괴담이 으레 그렇듯 진실이 밝혀 지는 일 없이 주제가 빠르게 전환되
어 금세 잊히고는 했다·
하지만 풀레임은 최근 다시 들썩이 기 시작한 이 제7본탑 괴담에 주목 하였다· 그녀는 저 괴담에 대한 진 실을 ‘원작 로판을 통해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그냥 소문일 뿐이잖아····”
아넬라는 제7본탑에 대해 조사하는 풀레임을 상당히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처음의 그 무서운 분위 기는 온데간데없고 이런 괴담이나 헛소문 쫓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영 락없는 소녀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가끔 그녀가 광휘 마법을 발현
할 때면 오금이 저리기는 했지만 아 무튼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응· 소문일 뿐이 ス]· 근데 갑자기 최근에 왜 이렇게 소문이 돌겠어?”
학교 대항전이 끝난 뒤 일주일이 흐르고 교내에는 여름이랍시고 남량 특집 무서운 이야기가 유행하였다·
그러니 거기에 나폴리탄 괴담이 하 나쯤 더 유행한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제7본탑 괴담은 유독 그 주체가 선명하였고 이상하리만치 유 행이 번졌다·
마치 학생들이 제7본탑에 대해 관
심 갖기를 원하는 것처럼·
풀레임은 그 이유를 알았으나 굳 이 아넬라에게 설명하진 않았다· 벌 써부터 진실을 밝혀내는 건 사건이 전개되는 ‘기승전결’의 ‘기’가 시작 되기도 전에 ‘결’을 말해버리는 것 이었으니까·
‘그래도 틀림없이 있어·’
원작 로판에서는 제7본탑의 소문을 메이젠 티렌 교수가 일부러 낸다·
하지만 그녀가 없는 지금 소문이 날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까지 제7본탑의 이야기가 왕성하다 는 건··· 메이젠 티렌을 대체할 누
군가가 100%의 확률로 존재한다는 의미가 되었다·
그러니 그자를 찾아내면 된다·
다행스럽게도 같은 흑마인을 구분 할 수 있는 아넬라가 동행하였으니 원작 로판에서 등장하지 않는 흑마 인이라고 구분하는 건 가능할 터·
소문을 낸 이들을 추리고 추려서 아넬라에게 흑마인이 맞느냐고 확인 만 시키면 그것으로 게임 종료·
최악의 사건 증 하나인 ‘제7본탑 흑마 침식 사태’가 발생하기도 전에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너는 정말 교수님 중
누군가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거 야?”
“잘은 모르겠어· 하지만 일단은 조 사해 보고 아니면 패스해야지·”
학생이 교수님을 찾아가는 건 문제 될 게 없는 평범한 일이다·
풀레임은 우등생이었고 다양한 분 야에서 지식을 갖추고 있었기에 굳 이 듣지 않는 수업의 교수님을 찾아 가서 과목에 대해 질문하더라도 이 상한 것은 없으리라·
의심 가는 용의자는 많다·
그래서 풀레임은 그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만나는 것으로 용의자를
추려낼 생각이었다·
대단히 원시적이지만 학생의 신분 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그럼 가 볼까!”
풀레임이 당당히 어느 교수님의 연 구실을 향해 출발하자 아넬라는 죽 어가는 표정으로 뒤따랐다·
그리고·
복도의 건너편에서 풀레임의 뒷모 습을 몰래 지켜보던 누군가가 슬그 머니 움직였다·
그는 풀레임이 들어간 연구실을 한 참이나 바라보더니 미련 가득한 발 걸음을 돌렸다·
누군가가 서 있던 자리에는 아무런 흔적조차 남지 않은 채 고요한 적 막만이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