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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학교 대항전(2)
일전에 아넬라를 통해 내 심상 세 계 속 트라우마가 진짜 ‘나’라는 존 재의 트라우마라는 것을 알게 되었 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조금 더 깊 이 생각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 누구인가·’
참으로 철학적인 질문이다·
인간이 ‘나’라는 존재를 인지하고 생각하게 된 이래로 지금까지 끊이 지 않고 계속 던져진 질문이었으니 까·
하지만 그에 대한 답은 누구도 모 른다·
나 또한 당연히 모른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조금 더 세세 한 부분을 따져야만 했다·
‘현실의 백유설과 아이테르의 백유 설·’
21세기의 지구를 살아가던 나 백
유설은 ‘아이테르 월드 온라인이라 는 게임에서 ‘캐릭터 백유설’을 플 레이 했다·
이름도 똑같고 심지어 생긴 외모 조차 비슷한 특이한 캐릭터·
어쩌면 ‘점멸 원툴’이라는 특이성 보다는 나와 닮았다는 점에서 동질 감을 느껴 그 캐릭터에 하염없이 빠 져들었던 것 같다·
나는 밤새 게임을 했다·
일이 없는 날에는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점멸을 연습하였고 정신 없이 PVP를 즐기며 마법사를 상대 하는 법을 연구하였다·
스토리? 당연히 끝까지 밀기는 밀 었다· 대부분의 스토리를 스킵하며 제대로 읽지 않은 바람에 기억에 남 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렇게 게임 속 캐릭터 백 유설이 엔딩의 끝에 도달하는 순간·
현실의 백유설 즉 내가 게임 속으 로 떨어졌다·
이곳은 게임인가 아닌가·
게임이 아니라면 무슨 근거로 당 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모르겠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너무나도 현실감 넘쳐서 아무리 생 각해도 현실 같은데····
‘···왜 게임 속에서 벌어졌던 일들 이 나의 과거로 구현이 되느냔 말이 지·’
기숙사의 벽에 걸어둔 칠판에 ‘나, 라는 존재의 인과관계에 대해 정리 해 보았다·
[현실의 백유설은 캐릭터 백유설에 게 빙의하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현실 백유 설의 과거를 엿보니 캐릭터 백유설 의 과거가 나타난다·]
[나는 현실의 백유설인가?]
[아니면 캐릭터 백유설인가?]
현실의 기억은 온전하다·
하지만 아주 간혹····
캐릭터 백유설의 옛 기억이 스멀 스멀 떠오를 때가 있다·
이를테면 엘트먼 엘트윈처럼 과거 의 캐릭터 백유설이 마주했던 인연 을 지금의 내가 다시금 마주했을 때 라던가····
캐릭터 백유설과 내가 겪는 경험이 비슷하게 겹칠 때 그때의 기억이 떠
오른다는 건 내 무의식 속 어딘가에 과거의 기억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 기도 했다·
[두 명의 백유설이 합쳐졌는가?]
일단은 이 가설이 가장 확실하다·
캐릭터 백유설의 의식은 어디론가 잠들어 버렸고 그 위에 현실 백유설 의 의식이 덮어 씌워졌다는 것·
그리하여 현실의 기억은 온전한데 캐릭터 시절의 기억은 온전치 못하 다는 것·
거기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곳은 정말로 게임이었을까?]
만약 이 세상이 정말로 게임이었다 면··· 캐릭터 백유설에게 ‘기억,따 위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아야 정상이 다·
〇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로서 내 가 조작하는 키보드와 마우스로 움 직일 뿐인 캐릭터에게 기억이라는 게 존재할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틀림없이 캐릭터 백유설의
기억은 내 머릿속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
내가 빙의하기 이전에도 게임을 플레이하기 이전에도··· ‘캐릭터 백유설’은 스스로 살아 움직였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거기서·
나는 단호하게 결정을 내렸다·
[이곳은 게임이 아니다·]
이곳은 게임이 아니었으나 현실의 나는 이곳을 게임처럼 즐겼다·
하나의 현실을 게임처럼 만들어내 시뮬레이션을 돌릴 수 있는 존재·
‘콘스텔라티오 프로젝트’
아이테르 월드 온라인의 제작사이 기도 했으며 이곳에서도 ‘에피소드’ 를 완료할 때마다 내게 보상을 쥐여 주는 바로 저 존재가 나를 이곳으로 보냈다·
콘스텔라티오 프로젝트가 나를 캐 릭터 백유설에게 빙의시킨 이유는 ‘진 엔딩에 가장 가까운 자가 나였 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래에 세상은 멸망한다·
나는 진작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
었고 그것을 막기 위해 지금까지 움직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아이테르 월드 온 라인’에서 플레이했던 ‘캐릭터 백유 설‘은 정말로 〇과 1의 데이터인가?
아니면·
내가 플레이했던 그 캐릭터마저도 사실은 살아 숨 쉬는 사람이었을까?
“하아····”
며칠째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게임 속에서 겪었던 일들은 그저 게임에서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게임에서 겪었던 과거가 현 실의 과거가 되어 나타나 버렸다·
그 무수히 많은 실패와 도전과 죽 음들· 그리고 세상의 끝에서 마주한 흑룡까지·
만약 그 모든 게 현실이었다면····
‘나는 도대체 백유설을··· 아니 나 를 몇 번이나 죽인 거지?’
문득 기숙사 벽에 걸린 거울을 보 니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 다·
이 고민은 답을 맺지 못한 채 몇 번이나 되돌아온다·
그렇다고 질문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야· 듣고 있으면 대답 좀 해줘· 에피소드 끝낼 때는 잘만 말 걸더 만·”
묵묵부답·
그것은 그저 시스템인 것인ス] 아 니면 아무 때나 나와 대화를 해주지 않는 것인지··· 대답을 들려주지 않아서 답답하기만 하다·
결국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이렇게 고민하는 건 무의미했으니 까· 스스로 생각해서 답을 낼 수 없 다는 걸 알았음에도 계속 붙잡고 있
는 건 시간 낭비일 뿐
언젠가·
먼 미래에는·
내가 이 세계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이야기해 주겠지?”
[····]
이번에도 답은 없었다·
그런데 어째인スI 대답이 없었음에 도 그것이 내게 긍정해 준 것만 같 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 * *
아넬라는 꽤 쓸만하고 유능한 빵셔 틀···이 아니라 부하였다·
“최근에 월영교에서 마유성에 대해 신경 쓰는 것 같다고 했지?”
“그렇슴다·”
점심시간 식당·
본디 교환학생과 스텔라 재학생은 다른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게 맞았 으나 내가 일부러 교환학생의 식당 까지 찾아왔다·
아넬라와 단둘이서 이야기할 만한 장소가 이곳밖에 없어서 그랬다· 사 적으로 만다는 건 조금 그랬으니까·
“그런데···· 너 언제까지 그렇게 먹 을래?”
보통 성인의 세 배쯤 되는 양의 밥을 깨작깨작 입에 넣는 아넬라를 보고 있자니 내가 더 불편했다·
“여 열심히 먹겠슴다!”
내 말 한마디에 밥을 주걱째로 입 에 쑤셔 박기 시작하는 아넬라·
저러다 체할까 싶었으나 생각해 보니 흑마인이라 그럴 일도 없겠다·
“뭐 월영교에서 마유성에 대해 신 경쓰는 건 그렇다 치는데···· 블랙 킹던이 나를 배제하라고 한 이유는 뭐야?”
알테리샤에게서 받아온 ‘음소거, 아이템 덕분에 우리의 대화가 새어 나갈 염려는 없어서 마음 편히 묻 자 아넬라는 우물쭈물 답했다·
“그게··· 말씀드리고는 싶어도 저도 아는 게 없어요· 이렇게 임무 도중 붙잡혀서 내부의 일을 발설할 까 봐 기밀로 유지하는 사안이 더 많구요···
“하긴· 나 같아도 너 같은 놈한테
는 안 말할 거 같아·”
“너무해요···
그녀는 눈치를 힐끗힐끗 보더니 조심스레 물어왔다·
“그런데··· 유설 님은 평범한 학 생 신분이신 것 같은데 어떻게 저희 내부 사정에 대해 잘 아세요···r
은근슬쩍 정보 캐기를 하려는 걸까 싶었지만 아넬라가 그 정도로 똑똑 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얘기해 줄 생각은 없다·
“내가 그거까지 말해줘야 하나?”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밥이나 먹어·”
참 안타깝게도 아넬라는 내부 사정 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렇다고 가서 정보 좀 더 캐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당장 여기서는 내게 빌빌대지만 스텔라를 떠나 블랙킹던의 품으로 돌아간다면 배신할 가능성이 높았으 니까
‘아넬라를 붙잡아 둘 무언가가 필 요한데···
원작 게임에서는 풀레임이 아넬라 의 심금을 울리는 한마디로 그녀를 자극하여 마음을 완전히 돌려 자신
의 편으로 만들었다··· 라는 전개 였더라고 한다·
나도 잘은 모른다·
애당초 아넬라라는 인물을 이번에 처음 봤으니까·
나는 입담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닌 지라 그녀의 심금을 울릴 자신이 없 었으므로 남은 방법이라고는 ‘거 래’밖에 없었다·
그녀가 나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거래·
“아넬라· 너 지금 흑마력이 완전히 봉쇄된 상태라고 했지?”
“네엡····”
아마도·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마치지 못한 채 돌아가면 영영 혹마력의 봉인이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
확실하지 않은 것에 걸 수는 없다·
‘아넬라의 과거·,
직박구리 안경을 천천히 살펴보았 다· 그녀에 대한 많은 기록은 없다· 애초에 엑스트라 NPC까지 전부 기 록해 둘 정도로 내가 성실한 편은 아니 었으니까·
그러나····
[인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함]
나는 성실하지는 않되 가장 중요 한 핵심 요소만큼은 확실하게 기록 해 두는 버릇이 있었다·
“아넬라· 내가 너한테 좋은 제안 하나 할까?”
“···네?”
이건 그녀를 단단히 붙잡아둘 수 있는 아주 좋은 미끼가 될 것이다·
* * *
스칼벤 동아리 부실·
반짝이는 샹들리에의 아래에서 제 레미는 반짝이는 금색 눈동자로 천 천히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
[스칼벤 동아리 출전 명단]
[2 학년····]
[3 학년····]
스칼벤 제국 귀족의 대부분이 이 동아리에 소속된 만큼 학교 대항전 의 참가자들 역시 상당히 많은 편이
었다·
하나의 동아리에서 학교 대항전 참 가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그날 축 하 파티를 열어줄 정도로 대단한 일 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스칼벤 동아 리에서까지 그런 것을 바라기는 무 리인 듯싶다·
제레미는 그저 무미건조한 눈으로 출전 명단을 살펴보았다· 동아리 부 원들은 그가 왜 또 갑자기 이런 데 에 관심을 가지나 의문이었다·
“참가자들·”
“넵!”
“예!”
빙그레 미소 짓는 그의 얼굴에서는 황금색의 빛무리가 새어 나오는 듯 하다·
정말 신이 내린 외모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번 매직 서바이벌에는··· 조금 독특한 참가자가 한 명 있어· 알 지?”
“···예· 알고 있습니다·”
1학년 s반 백유설·
선배들을 상대로도 높은 승률을 기 록하여 당당히 학교 대항전의 참가 자로서 이름을 올린 건방진 후배·
학교 대항전에는 전 세계 명문 학 교의 엘리트들이 참가하는 데다가 대부분이 최소 18세 이상이라는 점 을 생각하면 백유설의 경우는 상당 한 특이 케이스였다·
스텔라 아카데미 입장에서는 퍽 자 랑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으나 선 배로서는 영 고깝지 않게만 보였다·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요?”
“말씀만 하십시오 황태자님·”
“백유설을 탈락시키세요·”
예상했던 부탁이 나왔다·
제레미가 백유설을 싫어한다는 사 실은 교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다름 아닌··· 그의 짝사랑 풀레 임을 낚아챈 평민이었으니까·
지금은 헤어졌으나 아직까지도 풀 레임이 백유설을 마음에 두고 있다 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어서 제레 미를 상당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어려울까요?”
제레미가 이런 같잖은 부탁을 하는 데에도 이유는 있다·
요 며칠 전부터 백유설이 매직 서 바이벌에 참가한다는 것을 풀레임이
자꾸만 신경 쓰고 있어서 그렇다·
학급 게시판을 기웃거리고 백유설 의 서바이벌 참가 여부나 심사 때 어땠는지를 주변 친구들에게 캐묻고 다니고·
그게 퍽···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닙니다· 아주 쉽습니다!”
그런 제레미의 마음을 잘 아는 동 아리 부원들은 힘차게 답했다·
매직 서바이벌·
100인의 마법사들이 제각각 랜덤 한 위치에 떨어져서 생존하는 게임 으로서 서로 간에 협동하는 ‘티밍’ 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이 인원으로 백유설을 완벽하게 탈 락시키려면 티밍은 필수불가결·
‘···이번 학교 대항전은 망했군·’
우승을 통해 이름을 널리 떨치려는 장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던 학생 들은 피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스칼벤의 황태자에게 찍히는 게 더 욱 두려운 것을·
“그럼··· 힘내주세요 여러분·”
제레미는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그 리 부탁했고 동아리 부원들은 힘차
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아무래도 이번 매직 서바이벌은 순 탄치 않게 흘러갈 예정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