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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여름방학(2)
스텔라 아카데미에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으리으리한 규모에 압도될 수밖에 없다·
어지간한 국가의 왕성을 세 개 이 상 합친 크기라는 평균치까지 나왔 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와아우····”
그건 흑마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 다·
“아넬라 디 폴란체· 세베룬 왕국에 서 하날레야 마법 학교를 재학 중이 라고 되어있군요· 맞나요?”
“앗 넵!”
스텔라의 교직원이 물어오자 아넬 라는 서둘러 답했다·
오늘 스텔라에 잠입하기 위해 예전에 버렸던 이름과 가짜 성씨 및 신분까지 조작해왔다· 실수할 수는 없다·
“좋아요· 여름방학 계절학기 동안 잘해보도록 해요· 비록 아넬라 양의 신분은 교환학생이지만 계절학기 동
안은 재학생들과 동등한 신분이니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어요·”
“예···
교직원의 조언과 함께 아넬라는 자신의 몸뚱이만큼이나 무거운 짐가 방을 들고서 스텔라 내부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쉽게 잠입하다니·’
제아무리 스텔라조차 속일 수 있는 완벽한 신분 위장 업체와 계약을 맺 었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들어올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물론 그 대가로 흑마력을 모조리 봉인해야만 했지만 그녀의 진정한
능력은 그대로였기에 걱정은 없다·
“후우우우·”
스텔라 톨 게이트에서 본관의 정문 이 있는 곳까지는 걸어서 갈 수 없 다· 정 걷고 싶다면 걸을 수야 있겠 다만 반나절은 고생해야 할 것이다·
교내 순환 버스에 탑승한 아넬라는 아카데미 지부 곳곳의 다양한 건축 물과 정원 예술적인 조각상 등을 구경하였다·
정말 없는 게 없다·
굳이 외출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 상가를 비롯하여 음식점이나 오락거 리까지 모든 게 갖춰져 있었다·
스텔라 아카데미에는 주요 전력을 이루는 ‘마법전투학과’의 재학생이 대략 삼천여 명 정도가 된다고 했으 며 그 외에 연금학 외교학 법학 마법연구학 등의 학생까지 포함하면 최소 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이곳을 사용한다·
그 학생들을 모두 품고도 남을 정 도로 스텔라는 화려하고 풍요로웠으 며 반짝이면서도 휘황찬란했다·
세상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게 믿 기지 않을 정도로 그야말로 압도적 인 세계였다·
‘나랑 같은 아이테르 대륙이 맞나
싶네···
아넬라가 머무는 보금자리는 구멍 송송 뚫리고 다 쓰러져가는 버려진 빌딩에 대충 텐트 쳐놓고 하루하루 연명하는 게 고작이었기에 이런 세 상은 정말이지 별천지처럼 느껴졌 다·
’···나도 귀족으로 태어났으면 이 런 학교에 올 수 있었으려나·’
인간이던 시절은 잊었다·
억지로 잊었다·
좋은 추억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이 쓰라리고 아픈 기억밖에는 남지 않 았기에·
하지만 이런 장소를 보니 그런 생 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만약 내가 인간이던 시절에··· 조금 더 나은 재능과 나은 환경에서 태어 났다면 혹시나 이런 예쁘고 꿈만 같은 곳에서 살 수 있었을까 하고·
‘에휴〜 내가 또 뭔 생각을·’
그녀는 교복 치맛자락을 움켜쥐었 다· 교복을 입었다고 감성까지 정말 학생이 되어버릴 수는 없다·
슬슬 스텔라의 본관 정문에 도착할 즈음이 되スト 저 멀리 어마어마한 인파가 우글거리는 게 보였다·
‘뭐야 저게·’
아넬라가 멍하니 그 인파를 바라보 고 있자니 같은 버스에 탑승한 다른 교환학생들이 수군거렸다·
“저게 다 뭐람···T
“그 이번에 발표한 학생들 만나러 온 사람들일걸?”
“아아· 그러게· 맞나 보다·”
저 중에는 마법사도 있었고 기자로 추정되는 사람도 있었는데 죄다 이 번 아슬란 세미나에서 뛰어난 발표 를 보여주었던 그 네 명의 학생을 만나러 온 것이라고 한다·
고작해야 20년도 살지 못한 학생 몇 명을 만나기 위해 저만한 인파가
여기까지 몰려온 건 퍽 신기했으나 아넬라의 눈에는 하찮게만 보일 뿐 이었다·
언론과 화젯거리에 휘둘리며 살아 가는 인간의 사회는 인간이던 시절 에도 이해하지 못하는 미스테리 중 하나였기에·
“여기가 학생 여러분들이 한 달간 사용할 기숙사입니다·”
버스에서 내린 아넬라는 안내를 따 라서 곧장 배정받은 기숙사로 향했 다·
스텔라 재학생만큼 호화스러운 기 숙사는 아니었지만 원체 무너져가
는 쓰레기 더미에서 살던 아넬라였 기에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흐어어···
아니 감지덕지는 무슨·
이 말캉거리는 침대 피부를 부드 럽게 감싸는 구름 같은 이불 어머 니의 품을 떠올리게 만드는 따스한 온도 유지 장치까지·
천국이 따로 없었다·
“헛·”
그러다 정신을 퍼뜩 차린 아넬라는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현재 막대한 임무를 부여받
고 무려 ‘스텔라 아카데미’에 잠입 해 있는 상태이지 않던가?
지금껏 수많은 흑마인이 스텔라에 몰래 숨어들어 왔다지만 그건 어디 까지나 ‘월영교’의 세력이었을 뿐·
자신과 같은 경우는 없었다·
‘정신차려! 이건 출세의 기회야!’
무려 흑마도왕의 오른팔 블랙킹던 님께서 나를 믿고 막중한 임무를 맡 겨주셨다·
기필코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 하여 더 좋은 근무지로 나아가리라·
비록 스텔라에 오는 것은 처음이라 지만 잠입 임무 자체에는 상당한
일가견이 있는 아넬라였다·
잠입의 첫 번째 요소!
현장의 인간들 사이에 자연스레 녹 아들 것·
그녀의 현재 신분은 고등학생·
누구보다 더 고등학생답게 행동하 며 학생들에게 다가가 친해져 정보 를 캐내는 게 처음의 목표였다·
기숙사의 복도를 어슬렁거리던 아 넬라는 여학생 세 명이 걸어오는 것 을 포착하고서 잽싸게 다가갔다·
학생들과 친해지는 법은 간단하다·
바로 신조어를 사용하는 것!
10 대의 아이들은 신조어를 통해 친근감을 느끼며 빠르게 가까워진다 고 한다·
‘신조어 하면 또 내가 잘 알지!’
그녀는 아주 능숙하게 신조어를 사 용하여 여학생들에게 인사했다·
“얘들아 하이루! 방가방가!”
그러자·
여학생 세 명은 눈을 동그랗게 뜨 더니 서로를 마주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무하핫! 뭐야 그게!”
“그거 완전 30년 전 유행어 아냐?”
“너 뭐니? 꼬마야? 아 우리랑 같 은 1학년 교환학생이구나?”
“방가방가래 진짜 웃겨 죽겠어·”
‘어 어라?’
이게 아닌가? 뭐가 잘못된 건가?
아넬라가 주춤거리며 뒤로 슬그머 니 물러나려고 하자 여학생들이 그 녀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너 어디서 왔어? 1학년 맞지?”
“어 어응·”
”반응 봐· 완전 귀엽다·”
“진짜 1학년이야? 양갈래 좀 봐· 어떡흐H· 여동생 같아·”
“우리랑 에브랑제뜨 쇼콜라 빙수 먹으러 갈래? 에브랑제뜨는 스텔라 에서밖에 못 먹는 거래·”
“에 에부랑?”
“몰라? 요즘 유행인데·”
에부랑인지 꼬부랑인지 알게 뭐란 말인가· 하지만 ‘유행’이라는 단어에 민감했던 아넬라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아앙연히 알지! 완전 좋아해!”
“가자가자·”
“우리가 사줄게!”
그렇게 아넬라는 신조어를 아주
능숙하게⑵ 사용하여 성공적으로 학생들 사이에 숨어들 수 있었다·
* * *
“에브랑제뜨 쇼콜라 빙수 나왔습니 다·”
스텔라 스카이 카페 테라스·
다분히 귀족적이면서도 학생다운 풍경의 이 카페는 무려 VIP룸이 존 재했는데 허공에 둥실 떠 있는 테 라스라고 하여 하늘 테라스라는 이 름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는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조 합의 소녀 세 명이 모여 있었다·
풀레임 홍비연 에이젤·
크으 이거 진짜 먹고 싶었는데·”
디저트 잡지를 가리키며 눈을 반짝 이는 풀레임은 이 어색한 두 소녀와 함께하고 있음에도 전혀 거리낌 없 는 손동작으로 포크를 쥐었다·
반면에 에이젤은 불편하다는 티를 팍팍 내며 눈치를 살폈고 홍비연은 아무래도 좋다는 표정으로 다리를 꼰 채 포크조차 들지 않았다·
혼자 냠냠거리며 빙수를 맛있게 퍼 먹던 풀레임은 슬쩍 그녀들을 번갈
아 바라보았다·
“안 먹어? 혼자 다 먹는다?”
에이젤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홍비연은 딱 잘라 말했다·
1•그런 거 먹을 기분 아니야·”
“아따 성격 딱딱하긴·”
하는 수 없이 풀레임이 포크를 내 려놓자 그제야 이야기할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생각했는지 홍비연이 에이젤에게 물었다·
“이제 말해봐· 우리가 필요한 이유 르 ”
에이젤은 그녀들을 번갈아 보다가
조심스레 입술을 떼었다·
“지금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 만··· 저는 ‘별의 서고’에서 세상 의 끝을 봤어요·”
그 말에 홍비연은 인상을 찌푸렸고 풀레임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원작 로판을 통해 이 세계의 결말을 알고 있는 풀레임은 에이젤 이 본 광경을 어렴풋이 예측할 수 있었다·
‘이면 세계로 물들어가는 세상의 끝에서 마유성이 홀로 맞서 싸우는 장면을 봤으려나···
흑마인들의 최종 목표 아이테르 월드를 모두 ‘이면 세계’로 물들이 는 것· 원작에서의 흑마인들은 그것 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였고 끝끝내 세상은 멸망하고 만다·
독자들에게 욕을 트럭으로 처먹었 던 쓰레기 중의 쓰레기 결말·
하지만 그건 이제 단순한 이야기의 결말이 아니라 풀레임 자신의 운명 이기도 했기에 꽤 심각하게 받아들 여야만 하는 문제였다·
“세상의 끝이라· 우리 선조들이 ‘별의 서고’를 금기하는 이유가 다 있을 텐데 그걸 굳이 본 이유는 뭐
지?”
“백유설 씨를“ 살리고 싶었거든요·”
“뭐? 그 아저씨를 살린다는 건 또 무슨 소리야?”
“아 그게····”
그제야 풀레임이 백유설의 시한부 에 대해서 모르고 있단 사실을 깨달 은 에이젤이 머뭇거리スト 흥비연이 딱 말했다·
“그 평민 얼마 안 가서 죽는다· 길어야 스무 살이라고 했어·”
”···뭐라고? 그건 말이 안 되는데·”
풀레임의 예상대로라면 백유설은
최소한 10년 이상은 더 살아남을 것이다· 원작 로판에서는 없던 일이 지만 아마도 백유설 또한 ‘세상의 끝’을 겪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시 간을 되돌렸을 테니까·
“하지만 사실이야· ’마력누설지체’ 라고 들어본 적은 있겠지?”
“설마··· 아저씨가 마력누설지체 라는 거야?”
“그래· 너라면 이미 알 거라고 생 각했는데 의외네·”
“전혀 몰랐어····”
워낙 갑작스러운 이야기였기에 풀 레임의 눈동자가 혼란스럽게 흔들렸
다·
“그럴 리가 없는데···· 스무 살 전에 죽을 리가····”
“현실을 부정해도 소용없어· 사실 이니까·”
“하지만···「
분명 미래에도 백유설은 살아 있 을 거란 말이다·
그런 풀레임의 생각에 뒷받침해 주 는 사람은 에이젤이었다·
“맞아요· 백유설 씨는 틀림없이 마 력누설지체이고 길어 봐야 3년도 살 지 못할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 도 별의 서고를 확인했던 거죠·”
하지만·
“별의 서고에서 봤어요· 아마도 10 년 뒤쯤 세상의 끝에 서 있는 사람 은··· 결국 백유설· 그분 혼자였다 는 것을·”
“뭐어?”
“뭐라고···?”
에이젤의 말에 둘 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유성이 아니라 백유설이라고···?’
’10년 뒤까지 살아남았다고···?
그 순간·
삐이이이- 하는 이명음이 머릿속
에 울려 퍼지는 바람에 홍비연은 눈 을 질끈 감고서 고통을 인내하였다·
“으읏···
“괘 괜찮으신가요?”
“···괜찮아·”
“죄송해요· 별의 서고에 대해 이야 기하는 바람에····”
천기누설이라고 했다·
결코 별의 서고에서 겪은 일을 이 야기하지 말라고 경고까지 받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내용을 아주 일 부나마 이야기한 바람에 홍비연과 풀레임이 고통받는····
어?’
그러나 어째서인지 홍비연과는 다 르게 풀레임은 전혀 고통스럽지 않 은 듯 멀쩡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 였다·
“당신은··· 괜찮으신가요?”
“어? 어···· 뭐 나는 이런 쪽에 약 간 면역이 있거든·”
에이젤이 걱정하는 부분을 알고 있 는 풀레임이었기에 서둘러 둘러댔 다· 아마도 ‘원작 로판’을 알고 있는 탓에 별의 서고를 유출받아도 고통 을 느끼지 않는 모양이다·
“후우···· 아무튼 다시 본론을 이
야기하자면 그렇다고 해서 그분을 가만히 둬도 된다는 건 아니에요· 미래는 언제나 유동적이라고 교장 선생님이 그러셨거든요·”
그의 말에 깊이 동감하는 풀레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미래에 그분이 스스로 시 한부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내거나··· 혹은 누군가가 그 방법을 찾아내 준 덕분에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 었겠죠·”
에이젤은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목표는 두 개· 하나는 세상의 끝 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떻게 멸망했는지 알아내는 것· 또 하나는 백유설 씨를 살리는 법을 알 아내는 것·”
간단하지만 어렵다·
“애당초··· 저 혼자의 힘으로 별의 서고를 열람했을 땐 정말로 아주 극 히 일부의 정보밖에 볼 수 없었어요· 그래서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한 거예 요· 힘을 모은다면 분명 더 많은 정 보를 볼 수 있을 테니까·”
확실하지는 않다·
정말로 고작 4클래스 수준의 애송 이 마법사가 두 명 더 늘어난다고 해서 그만큼이나 많은 정보를 볼
수 있을까?
하지만 해야만 한다·
“기회는 이번 여름방학밖에 없어 요· 세 번째 보름달 ‘샬리에문’이 떠 올라 칼란사르 협곡 달빛의 신전이 가장 많은 달빛을 머금은 그날이 바 로 ‘콘스텔라티오 프로젝트’에게 닿 을 수 있는 최적기거든요·”
그녀들은 착 가라앉은 눈으로 서로 를 마주보았다·
비록 출신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 며 신분도 다르고 성향도 신념도 마법도 생각도 모른 것이 달랐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모두가 같았다·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멸망하는 세상의 끝에서 백유설이 무엇을 보았는지·
···그가 어째서 시간을 되돌리기 로 결심하였는지·
반드시 알아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