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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여름방학(1)
아슬란 세미나에 참석한 스텔라의 생도들은 돌아오는 길에 스텔라 전용 기를 탑승할 수 있었다·
본래는 자가용이나 열차 등의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게 맞았으나 이번 세미나 이후로 워낙에 많은 인파가 몰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언제 한번 사고 단단히 칠 줄 알았 어 내가·”
“내 잘못이냐?”
“어· 완전 아저씨 잘못이야·”
스텔라 비행정의 기내 식당·
풀레임은 넘어가지도 않는 밥을 꾸역 꾸역 넘기는 백유설에게 핀잔을 주었 다
“···이거 갖고 세상이 멸망하진 않 겠지?”
“세상은 그렇게 쉽게 멸망하지 않아· 너무 쓸데없는 걱정하는 거 아니。口”
“에휴·”
그래도 원작의 미래를 아는 풀레임 이 저렇게 안심할 정도면 우려했던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 듯싶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다가 듣는 귀 가 있는지 주변을 슬쩍 살핀 뒤 물었 다·
“이거··· 원래 언제쯤 나오는 마법이 야?”
“한 5년 뒤쯤 만월의 거탑에서 발 표될 예정이었을 거야·”
“그래도 5년밖에 안 당겨서 다행이 네····”
“덕분에 만월탑은 세기의 업적 하나 를 일개 학생한테 빼앗긴 셈이 되었
지만· 지금쯤 병렬 배열성을 비밀리 에 연구하던 만월탑의 연구원들은 피 눈물을 흘리고 있을걸?”
“아 그러고 보니···
비행정에 탑승하기 직전까지도 바짓 가랑이를 붙잡고서 끝까지 매달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들을 ‘만월탑의 학사 연구회라 고 소개했던가·
‘•••그 사람들이 병렬 배열성의 연구 원들이었나 보네·’
새삼 미안한 감정이 들었으나 어쩔 수 있나· 이미 저질러버렸는데·
풀레임은 국물을 떠먹다가 백유설
을 바라보며 은근히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근데 그렇게까지 기억이 헷갈리는 거야?”
“어? 뭐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병렬 배열 성 정도로 큰 마법이면 발표되는 시기 정도는 기억하지 않을까 싶어서· 아 말 못 할 人卜정이면 얘기하지 않아도 좋아·”
우리는 서로 50%까지만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으니까·
풀레임은 뒷말을 생략하였다·
그녀의 질문은 꽤 정곡을 찌르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이 지 구 출신이라는 것을 저번의 알테리샤 아이템 프레젠테이션 이후로 알아차 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당연히도 ‘원작 로판을 읽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백유설 은 원작 로판을 읽지 않았고 세세한 스토리 전개를 모르기에 이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 사실을 털어놓고 싶었으나 아직 은 서사력 때문에 그럴 수 없다·
그저 그녀가 저런 사소한 의문점을 하나 갖게 되었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스스로 답을 도출해내기는 어렵겠 지···
그 누가 원작 로판을 기반으로 만든 ‘게임어] 빙의했다고 생각이나 하겠는 가· 심지어 그 게임 속 주인공이 풀 레임 본인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 하지 못할 것이다·
새삼 눈앞에서 미역국을 야무지게 떠먹고 있는 단발 머리칼의 귀여운 소녀가 하나의 세상을 구원할 뻔한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 졌다·
‘음? 그러고 보니 게임의 마지막
에··· 풀레임이 어디에 있더라?’
이 세계에 빙의하기 직전 백유설은 ,흑야십삼월,이라는 이름의 흑색의 용을 사냥하였다·
하지만 그 흑색의 용과 조우하기 직전 백유설은 어떤 특수 돌발 퀘스 트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종된 풀레임을 찾아라··· 였던가·’
그거 참으로 이상한 퀘스트다·
애당초 ‘캐릭터 풀레임은 주인공이 라는 설정이다· 그리고 백유설이 풀레 이하던 ‘캐릭터 백유설’은 그저 서브 엑스트라에 불과했고·
그런데 난데없이 주인공이 실종되
고 서브 캐릭터에게 주인공을 찾으 라는 퀘스트가 주어진다니·
그때는 스토리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신경조차 쓰지 않았거늘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하다·
···뭐지?’
분명히 흑야십삼월을 사냥한 이후 백유설에게는 빙의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틀림없이 최종보스를 사냥했 음에도 풀레임이 돌아온다거나 하는 연출은 전혀 없던 것으로 기억한다·
즉 최종보스를 처치하는 게 풀레임 을 되찾는 방법의 정답이 아니었다는
건데····
‘모르겠네·’
지금 와서 생각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이 퀘스트 는 오로지 백유설 혼자 겪은 것이기 에 직박구리 안경에도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풀레임을 바라보았다· 입안 한가득 상추에 김 치를 싸서 구겨 넣던 그녀는 눈을 동 그랗게 치켜떴다·
‘뭐? 왜 쳐다보는데’라는 듯한 눈빛 의 신호를 받고서 백유설은 고개를 저었다·
“됐다· 너는 나중에 어디로 사라지 지 마라·”
“엉? 으엉·”
백유설이 쟁반을 먼저 들고 일어나 자 풀레임은 입안 한가득 음식을 우 물거리며 그의 뒷모습을 쫓았다·
‘흐음···· 뭔가가 더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백유설에게는 회귀라는 키워드 말고 도 비밀이 더 있다· 그건 틀림없는 데 뭔지 알아낼 길이 없었다·
이 이상 그에게 물어볼 수는 없다· 서로의 비밀에 대해 50%만을 알려주 기로 했으니까·
즉 회귀 자체는 비밀이 아니다·
50%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또 다 른 비밀이 중요하다는 건데····
그 비밀 속에 회귀 전 자신과의 관 계 및 에이젤과의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으나 더 이상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아니 スL 그러고 보니 그런 조 언을 듣기는 했는데·’
카멜론의 도시를 헤매다 우연히 들 어간 어느 수상쩍은 점집· 그곳에서 만난 신비로운 분위기의 할머니가 해 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얼음의 축복을 타고난 아이와 함 께 별자리를 점쳐 보거라· 네가 나 아갈 길을 어렴풋이 알게 될 수도 있 을 게야·
이 세상에 얼음의 축복을 타고난 아이는 단 한 명뿐이다·
‘에이젤과 뭔가를 하라고 하셨는 데····’
그 점쟁이는 분명히 뭔가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다·
아이테르 월드에는 예지의 능력을 지닌 존재들이 상당했기에 카멜론의 점쟁이가 예언을 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심지어 백유설 또한 그 점쟁이를 찾아가지 않았던가? 거기서 뭘 하고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흐음···
잠시 고민해 봤지만 역시 속는 셈 치고 에이젤과 대화해보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어차피 손해 볼 것도 없으니까 말 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풀레임은 곧장 에 이젤을 찾아가 볼 요령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한편 비행정의 뒤편 하늘 테라스·
“공주님! 역시 대단하세요!”
“멋지게 발표하실 줄 알았다니까요?”
홍비연은 기어이 비행정까지 쫓아온 추종자들과 파벌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우월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녀는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자연스레 홑날리도록 놔 두었다·
다리를 꼬고서 맛도 더럽게 없는 홍 차를 홀짝이고 있자면 양옆에서 추종
자들이 찬사를 지저귀고 있으니 천국 이 따로 있으랴·
“공주님 여기 이것 좀 보세요!”
파벌원 중 한 명이 타이밍 딱 맞춰 서 신문 하나를 가져온다·
[첫째 공주 홍시화의 굴욕?]
[불의 축복을 받은 홍비연 공주에게 는 홍시화도 어쩔 수 없는가?]
[완벽한 논파 철저한 패배]
아돌레비트의 정계 싸움은 꽤 뜨거 운 화젯거리가 되기엔 충분했다·
심지어 그 화제가 온통 자신의 승리 로 도배되어있다면 그 누구라도 기 분이 좋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후우 하도 봐서 지겨운 걸 왜 자 꾸 가져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기 분 좋은 티를 감추지 못했다·
추종자들 또한 그럴 때마다 ‘아휴 앞으로도 이렇게 지겨우실 텐데 벌써 그러시면 어떡하시려구요〜‘ 등등의 입에 발린 소리를 잘도 해댄다·
팔락!
기분 좋은 미소를 만개한 채 신문 지의 페이지를 넘기던 홍비연의 표정
이 살짝 풀어졌다·
[백유설 그의 행보는 대체 어디까 지인가?]
[연공난수 교차 술식에 이어 마나 병렬 배열성까지····]
[불과 반년 사이에 마법계의 기술력 을 몇십 년이나 앞당겼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기사의 한 면이 홍비연의 이야기라 면 다른 한 면은 백유설의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었다·
“앗 그 평민이네요·”
“대단하드라· 그치·”
‘야야! 눈치 챙겨。
“아 맞다·”
주변에서 파벌원들이 무어라 떠들었 으나 사실 홍비연의 귀에는 들어오 지 않았다·
‘이게 평범한 열일곱 살이 할 수 있 는 업적인가?’
이제는 감탄사도 나오지 않는다· 그 저 순수한 의문이 들 뿐·
아마 그에 대해 궁금한 사람은 자 신뿐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돌레비트의 정보력으로도 캘 수 없는 백유설의 과거를 과연 그 누가 알아냈겠는가·
···아니지·’
그녀는 문득 에이젤과 일전에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백유설 씨의 베일에 감춰진 과거 와 비밀에 대해 알아낼 방법을 찾았 어요· 그리고 어쩌면 그 사람을 살 리는 방법까지···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당시의 에이젤은 ‘별의 서고를 운 운하며 그렇게 말했다· 당연히 처음 에는 코웃음을 쳤다· 애당초 별의 서 고 콘스텔라티오 프로젝트는 그저 전 설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에이젤은 그녀에게 진심으 로 호소했고 어느 순간 홍비연은 저 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녀가 가진 묘한 힘에 저도 모르게 이끌려 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이해가 안 간 단 말이지····’
내가 어쩌다 수긍한 걸까·
그야말로 마법보다도 더 마법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나쁜 제 안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 솔깃하 기도 했다· 백유설을 살릴 방법에 대 해서는 안 그래도 상당히 고민하고 있던 부분이기도 했으니까·
과거를 몰래 캐내는 건 매너없는 짓이지만 최소한 시한부를 극복할 방법을 알아내는 정도라면··· 괜찮 지 않겠는가·
거기까지 생각하고서 홍비연은 자리 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라? 공주님?”
“잠시 갔다올 곳이 있어· 너희끼리
놀고 있어·”
“넵!,,
“물론이죠!”
추종자 및 파벌원들을 내버려 둔 채 홍비연은 테라스의 테두리를 천천 히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 끝에 홀로 서서 고독을 만끽하는 에이젤이 눈에 띄었다·
하늘을 닮은 저 푸른빛깔의 머리카 락은 하늘과 겹쳐 있어도 눈에 띄는 구나 싶은 생각이 순간 들었으나 이 내 고개를 흔들어 떨쳐냈다·
“이봐 모르프·”
“···아· 무슨 일이시죠?”
홍비연이 먼저 찾아온 적은 거의 없었기에 에이젤은 조금 의아한 표정 을 지었다·
“저번에 했던 이야기 자세히 설명 해 줄 수 있어?”
“···콘스텔라티오 프로젝트 말씀이 신가요?”
“그래· 우리가 정말로 별의 서고를 열람할 수는 있는 거야?”
“당연하죠 제가··· 직접 했으니까요·”
에이젤은 말을 꺼내면서도 묘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건 흡사 하늘의 눈치를 보는 것
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에 홍비연은 조금 의아했다·
“그때도 직접 했다고 했었지? 그게 사실이면 그냥 뭘 봤는지 털어놔 봐·”
“···그건 안 돼요· 함부로 그곳에서 본 내용을 누설했다가는 아무리 당 신이라도 죽을 수도 있어요·”
“뭐···?”
홍비연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 자 에이젤은 빠르게 이어서 말했다·
“게다가 사실 많은 것을 보지도 못 했어요· 저 혼자의 힘으로는··· 터무 니 없이 부족했거든요·”
“흐응 그래서 내 힘이 필요하다?”
너1• 당신도 백유설 씨에 대해 궁 금한 점이 많은 게 아니던가요?”
움찔 괜히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서 홍비연의 입꼬리가 살짝 씰룩였 다·
“···누가 그딴 평민이 궁금하대? 나는 그냥 별의 서고 전설에 흥미를 느낄 뿐이야·”
“어느 쪽이든 도와주신다니 저는 고마울 따름이에요· 저와 당신 둘이 라면 전보다는 더 많은 것을 볼 수도 있을 거예요·”
당차게도 말하는 에이젤의 표정에는 자신감과 사명감이 어려있었다· 반드
시 누군가를 살리겠다는 그 목적의식 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어쩐지 그런 에이젤의 기백에 살짝 기가 눌린 홍비연이었지만 애써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럼 뭐 나도···
“···좋은 걸 들었네?”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소 름이 끼친 홍비연과 에이젤은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별의 서고와 관련된 이야기를 ‘십이 제자의 후손’이 아닌 자가 듣는다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기에
”너희 둘이 묘하게 친한 것 같더라
니 몰래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거야?”
“푸 풀레임 씨?”
“뭐야 너는···?”
뒤에서 대화를 엿듣던 사람은 다름 아닌 풀레임·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녀는 이 대화 를 전부 알아들은 것처럼 보였다·
“별의 서고라고? 나도 그건 좀 홍 미로운데 껴주면 안 되냐?”
“···제 말이 제대로 들리시나요?”
“응? 당연하지·”
그녀의 답에 에이젤은 의아한 표정
을 지었다·
스텔라의 기사단장 아레인과 교장 엘트먼 엘트윈이 남겨놓은 말이 있었 기 때문이다·
– 별의 서고와 관련된 이야기는 십 이제자의 후손이 아닌 이상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 혹여나 알아듣는다 해도··· 아마 기절해 버리겠지·
– 그러니 어지간하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이야기하지 마라·
즉 십이제자의 후손이 아닌 이들은 이 대화를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으 며 혹시나 알아듣는다고 해도 기절해 버리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이 대화를 듣고도 멀쩡하다 는 건····
‘저 평민도 설마···
‘십이제자의 후손···?,
하지만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십이제자의 후손은 모두 적법한 계 승 과정을 거쳐서 그 힘을 물려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풀레임은 어떻던가· 부모님
도 제대로 모르는 고아 출신의 평민 이지 않던가?
‘도대체 정체가 뭐야···?
“웅? 왜 그런 눈빛으로 쳐다봐? 반 했냐?”
태연자약하게 말하는 풀레임을 보 며 에이젤과 홍비연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묘하게··· 흑색 머리칼을 가진 평 민들에게 특이하고 신비로운 비밀이 많은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