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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어쩐지 평소보다 어렵더라(1)
홍비연의 매직 애널라이즈 및 발표 가 완전히 끝난 뒤 자리를 빠져나 온 홍시화는 사람이 드문 여자 화장 실을 찾아왔다·
세면대에 물을 틀어놓고 거칠지만 섬세하게 세수를 한 뒤 거울을 바라 보았다·
웃고 있었다·
거울 속 홍시화는 질리지도 않는 것인ス 1 얼굴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 도록 웃음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홍시화는 일부러 얼굴을 찡그려보았 다· 그럼에도 올라가 있는 입꼬리 때 문에 장난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이번 아슬란 세미나에서 흥 비연에게 철저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참으로 대견하기 그지없다·
그 철부지 꼬맹이가 드디어 언니 를 이겨먹을 줄이야·
오늘을 위해 몇 년이나 계획을 진 행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대 단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메이지 홍시화· 당신은 앞으로 1 년간 그 어떤 학술 발표회나 세미나 에 참여할 수 없으며 3년간 매직 애널라이즈를 요구할 수 없다· 또한 앞으로····’
매직 애널라이즈는 마법사에 대한 명예 훼손이라고 하였던가· 상대방 이 만약 성공적으로 스스로의 마법 을 입증하면 매직 애널라이즈를 요
구한 이는 마법계에서 잠시 퇴출당 하는 페널티를 받게 된다·
그뿐이랴·
홍시화는 마법사이기 이전에 왕족 이다· 홍비연과 왕위를 걸고 싸우는 공주란 말이다·
아마도 오늘의 세미나가 끝난 이 후 대문짝만하게 언론에 실리겠지·
[홍시화! 동생에게 패배하다!]
[홍비연에게 매직 애널라이즈를 요 구하였으나 결국 오리지널 마법인 것으로 드러나····]
[부당한 매직 애널라이즈? 트집을 잡아야만 했던 것일까?]
[아슬란 세미나에서마저 정치적으 로 싸움을 거는 첫째 공주의 행보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어쩌고저쩌고·
머릿속으로 벌써 훤히 그려진다· 그만큼 언론은 꿰고 있는 편이었으 니까· 아마 지금도 기사가 양산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면 안 되는 싸움을 져버렸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카운터를 받아
버렸다·
전혀 몰랐다·
동생이 그만큼이나 성장했을 줄은·
그런데 어째서인ス】 기분이 딱히 나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거울 속 홍시화는 여전히 웃고 있 었다·
‘홍시화· 넌 좀 웃으면 예쁠 것 같 아· 왜 항상 찡그리고 다니는 거야?’
문득 이미 죽어버린 큰 언니 흥에 린이 떠오르는 건 어째서일까·
그녀는 줄곧 말하곤 했었다·
‘나는 먼저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이 라고 생각해· 사랑하는 동생들과 목 숨 걸고 싸우지 않아도 되잖아·’
‘나는 너희가··· 너무 안타까워· 차라리 왕족이 아니라 평민이었다 면 평범하게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 런 생각이 들거든·’
당시의 홍시화는 웃음의 가면을 쓰 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언제부터 가면을 썼더라·
···아마도 홍에린의 온몸이 불타 오르며 죽어버린 그날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홍시화는 큰 언니가 죽어가고 있을 때 그 자리에 없었다· 딱히 보고 싶은 광경이 아니었던 것 같다·
만날 때마다 제깟 게 뭐라고 조언 이나 충고를 던져대는데 같잖아서 무시를 했다·
‘동생을 아끼고 보살피렴 홍시화·’
‘방법이 있을 거야· 너희 들 모두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아돌레비트의 이 저주받은 숙명 을··· 너희 대에서 벗어나는 거야·’
‘너는··· 너희는 할 수 있어·’
웃기고 있네·
그런 방법이 있을 리가 없다·
아돌레비트의 혈족은 ‘멸화의 저 주’를 타고나는 바람에 서른을 채 넘기기 전에 온몸이 불꽃으로 화하 며 죽어버린다·
죽는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
불꽃의 재능을 더욱 타고나면 타고 날수록 죽는 시기는 더 빠르게 다
가온다·
큰 언니 홍에린은 불꽃 마법에 천 부적인 재능을 타고나는 바람에···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죽고 말았다·
자신은 별 재능이 없는 덕분에 서 른 살 가까이 버티고 있었지만 불 꽃과 너무 친해져 버린 홍비연은 아 마도··· 스무 살을 간신히 넘기는 게 고작이겠지·
홍시화는 이러한 모든 사실을 열 일곱이 되는 해에 깨달았다·
나도 동생도·
그녀처럼 죽게 될 운명이라는 것
멸화의 저주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왕위를 계승 받으며 ‘불꽃 의 왕관’을 인계받는 것·
시조 마법사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자 우리의 선조 아돌레비트가 직접 제작한 바로 그 왕관만이 우리 의 삶을 연명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그 왕관은 하나뿐·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죽을 수밖 에 없는 운명이다·
‘홍비연··· 너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겠지?’
자신의 가슴 속에 언제 터질지 모 르는 불꽃이 이글거리며 서서히 심
장을 좀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 면 홍비연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절망할까?
아니 지금은 확신할 수 있다·
동생은 더 이상 자신이 알던 어린 애가 아니다· 그 아이는 아마도··· 그 운명을 이겨내려 맞서 싸우겠지·
‘그래· 조금 더 발버둥 치는 거야 동생아·’
그렇게라도 흐]]야 우리 모두 살아 남을 수 있을 테니까
* * *
짝짝짝짝!!
격한 환호성과 박수갈채에 꾸벅꾸 벅 졸던 백유설은 게슴츠레 눈을 떴 다·
“어으···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졸음을 버티는 것조차 힘들다·
차라리 100분 토론이 더 재미있다·
아니· 그건 원래 재미있던가·
“졸려 죽겠네····”
휴식 시간에 카페인 진한 커피를
타와서 세 잔이나 마셨는데도 졸리 다· 강력한 카페인조차 이기게 만드 는 마법 이론의 수면 유도· 이게 진 짜 마법이지 뭐가 마법일까·
아슬란 세미나는 강한 집중력을 요 한다· 백유설의 심력은 상당한 보정 을 받아서 뛰어난 집중력을 갖게 되 었지만 마법을 알아들을 수 없는 탓에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모두가 지루한 외계어로 소통하는 와중에 아예 엎드려서 잠들지 않은 것만 해도 진짜 노력 많이 했다고 그는 감히 자부하고 있었다·
“대단하군· 역시 소문대로야·”
“와··· 벌써 세 번째야·”
“올해는 진짜 어떻게 되는 거지?”
“젠장 하필 올해 참가하게 되다니· 젠장· 어린 새끼들이 왜 나보다 더 뛰어난 논문을····”
“진정해· 올해는 운이 없었다고 생 각해 그냥·”
마법사들이 요란을 떨고 있으니 자연스레 강단으로 시선이 갔다·
그곳에는 단발머리를 한 자그마한 소녀 한 명이 허공에 빛의 구체를 둥실 띄운 채 미소 짓고 있었다·
누구보다 주인공다운 품격·
풀레임의 화려한 빛무리 쇼가 펼쳐 지고 있던 것이다·
‘아 벌써 풀레임 차례였나·’
그녀는 이 세계관의 주인공답게 아 슬란 세미나에서도 그 누구의 방해 도 받지 않은 채 가장 아름다운 이 론을 발표한다·
에이젤과 홍비연의 이론이 백유설 의 영향으로 업그레이드되는 바람에 풀레임급으로 뛰어난 행보를 보였지 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논문이 빛을 바래는 일은 없었다·
‘광휘 계열 마법의 정리’
그녀는 기본적으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다· 인간 마법사들에게는 아직 신비와 미지의 영역인 천사들의 광휘 마법을 완벽 하게 정리해 왔으니까·
그녀의 발표를 보려고 이 자리에 ‘신성 교단의 신도들이 몰래 잠입 해 있는 것만 봐도 풀레임의 수준 이 지금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 는 대목이었다·
“대단하군· 아주 훌륭해·”
총괄학회장 아류문은 웃음이 만개 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극찬하 는 일이 거의 없는 그가 만족할 정 도로 풀레임의 논문은 완벽 그 자체 라고 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풀레임이 강단에서 내려간 뒤에도 소란은 멈추지 않았다·
에이젤과 홍비연의 발표도 대단했 지만 풀레임은 아예 철저하게 21세 기 지구의 분위기와 지식을 가져와 하나의 쇼를 준비했기 때문에 볼거 리가 상당하여 여운이 가시질 않는 것이다·
‘풀레임답다고 해야 할까····’
대단하긴 대단한데····
하필이면 다음 차례가 백유설이라 는 게 문제였다·
‘에휴·’
별로 준비해 온 것도 없다· 그냥 평범하게 시험 기간에 작성했던 논 문을 가져왔을 뿐이니까·
애초에 아슬란 세미나의 주인공은 주인공 삼인방이었으므로 눈에 띌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논문 자체도 풀레임에게 검토받았 을 때 ‘이 정도면 무난한데?’라는 평을 미리 받아두었다·
딱 아슬란 세미나에 참석하는 천 재들이 할 만한 발표 정도· 어딜 가 서도 무시 받지 않을 정도로 대단하 지만 주인공 삼인방에 비하면 빈약
하기 그지없는··· 그런 수준·
‘뭐 원래 이어려고 했으니까·’ 백유설은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잠깐의 휴식 시간이 끝난 뒤 곧바 로 강단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복도를 걷는 와중 풀레임과 마주 쳤다·
“오 다음이 아저씨였어? 화이팅하 고·”
“화이팅할 것도 없어· 그냥 대충하 다 나올 거야·”
“남들은 참석하고 싶어서 안달인 아슬란 세미나인데 대충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아?”
“몰라· 귀찮아····”
“암튼 잘해보라구!”
발표를 굉장히 성공적으로 끝마쳐 서 그런 걸까 풀레임은 신나는 걸 음으로 복도 저 멀리 총총 걸어갔 다· 그 걸음걸이마저도 어린애같다 는 생각을 문득 해버린 백유설이었 지만 애써 떨쳐냈다·
강단의 정문으로 향하니 관계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백유설이 의욕 없는 얼굴로 다가오 니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잠시 대기해 주십시오·”
,,예·,,
안쪽에서 사회자가 무어라 주저리 주저리 다음 발표자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스텔라 아카데미의 초신성! 점멸 마법을 최초로 제어하는 데에 성공 한 마법사” 백유설의 발표가 있겠습 니다·’
,,이제 들어가시면 됩니다·”
백유설은 저절로 열리는 정문을 지 나쳐 강단으로 향했다· 모두가 저 위쪽에서 이곳을 내려보고 있으니 콜로세움의 검투사가 된 느낌이다·
마법사들의 반짝이는 눈빛이 쏟아
진다· 여태껏 뛰어난 발표가 몇 번 이나 있었지만 ‘생도 백유설’의 발 표 역시 기대되는 건 어쩔 수 없었 다·
‘최초로 점멸의 제어를 성공한 마 법사·’
수백 년 동안 수많은 마법사가 도 전했으나 모두가 포기했던 바로 그 마법을 제어하는 생도가 아슬란 세 미나에 참석했다·
그러니 백유설이 ‘점멸 마법과 관 련된 논문을 발표하겠구나’라고 생 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점멸 마법이 어 떻게 제어되는지 그 원리를 아예 모 른다· 그냥 되니까 사용할 뿐
그런 이유로 오늘 발표할 논문은 퍽 실망스러울 수도 있었다·
“오늘 발표할 주제는··· ‘프로키텍 스의 중첩회로 설계’입니다·”
백유설이 운을 떼자 마법사들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잘못 들었나 싶은 생각에 귀를 후비는 마 법사도 있었다·
‘아니 그럼 점멸은?’이라는 표정으 로 사람들이 노려보기 시작했으나 어쩔 수 있겠나·
‘나도 모른다고···
역시나 실망할 줄은 알았지만 이 자리까지 나왔으니 백유설은 꿋꿋하 게 발표를 진행했다·
분명·
그의 마법은 대단한 축에 속했다·
열일곱의 마법사가 이 정도의 논문 을 작성하는 건 쉽지 않았으니·
하지만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천재 들은 모두 평균적으로 저 정도의 수 준을 갖추고 있었기에 발표는 참으 로 평범하다고밖엔 표현할 수 없었 다·
아니 오히려 기대했던 탓일까·
다른 발표보다 더욱 실망스러웠다·
‘흐응 이건 기회야·’
그 와중에 셀리엔은 눈을 반짝였 다· 설마 백유설이 저 정도로 허술 한 논문을 가져올 줄이야·
정말 지적할 만한 부분이 한두 가 지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의 마법은 과거 ‘불가 능하다’라고 판명된 전제를 그대로 무시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그녀 뿐만이 아니었는지 발표를 지켜보던 몇몇
마법사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애당초 불가능한 전제를 들고 와서 당연히 그게 가능하다는 듯 설명하 고 있는 게 어이가 없던 것이다·
근데 또 본인은 그게 너무나도 당 연하다는 듯 발표하고 있어서 ‘뭐 야 저게 사실 가능한 거였어?’라고 순간 착각할 뻔했다·
‘이미 백유설이 설계한 마법은 완 벽하게 간파했어·’
불가능한 전제를 예시로 드는 것을 시작으로 대답하기 곤란하고 어려 운 질문을 한가득 준비했다·
만약 준비해 온 게 정말로 저게
끝이라면··· 마법사로서 백유설의 자 존감이 완전히 무너져내릴지도 모른 다·
에이젤은 비록 너무나도 뛰어난 마 법을 가져온 탓에 건드릴 수 없었으 나 백유설은 다르다·
그의 마법은 허술한 모래성과도 같 았으니·
백유설의 발표가 막바지에 이르자 불만 가득한 마법사들이 버튼에 손 을 가져다 대었다· 슬슬 그를 공격 할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갈 기회는 없 다·
‘이번에 남은 4개의 지적 기회를 모두 사용해야겠어·’
다른 이들이 손대기도 전에··· 자신 이 백유설을 무너뜨릴 예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