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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아슬란 세미나⑸
에이젤이 발표를 끝낸 뒤 강단에서 내려가자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특이형태의 마법진이라니···
“이건 마법의 혁신이야!”
“속성 고유의 문양에 형태를 맞춰 서 마법진을 본격적으로 개편한다
면 틀림없이 마법의 수준이 몇 단 계 이상 발전할 걸세·”
아슬란 세미나에는 뛰어난 천재들 의 마법을 직접 분석하기 위해 참관 한 마법학자들이나 마법 전사들이 많은 만큼 방금 에이젤이 보여주었 던 논문이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지 니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에이젤에게 괜히 지적질 을 해댔던 참석자들만 얼굴을 붉힐 뿐이었다·
한동안 소란은 가라앉지 않았고 사회자와 학회장 아류문도 그것을 말리지 않았다·
이만큼이나 대단한 마법이 발표되 었으니 저들이 흥분하여 떠들 시간 정도는 주는 게 도리였으니까·
홍비연은 이런 분위기가 퍽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리를 빠져나왔다·
어차피 아슬란 세미나는 따로 휴식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발표자 가 바뀌는 그 짧은 틈을 휴식 시간 으로 이용하는 편이다·
한 30분 정도는 이러고 있을 분위 기였으니 나가서 간단하게 커피나 한잔하고 올 생각이었다·
“야 너 오늘 상태 많이 안 좋더 라? 왜 그래?”
“···고마워요·”
“아니 고마운 게 문제가 아니 라···
복도를 조용히 걷고 있는데 멀리 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복도의 코너를 돌아서 확인하니 벽 에 기대고서 주저앉아 있는 에이젤 과 그녀를 달래는 백유설이 있었다·
‘뭐지?’
홍비연은 코너 뒤에 모습을 감추고 서 은근슬쩍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 다·
“그냥 좀··· 이전번에 마나와 심 력을 어마어마하게 소모할 일이 있
었거든요·”
“무슨 일인데?”
에이젤은 머뭇거리며 백유설의 눈 치를 살폈다· ‘별의 서고’를 열람했 다는 이야기는··· 당분간 비밀로 해야겠지· 어쨌든 허락도 없이 남의 과거를 들춰본 것이기도 하고·
게다가 엘트먼 교장 선생님이 말씀 하시기를 평범한 사람은 ‘별의 서 고’라는 단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십이제자의 가문이거나 별의 서고 와 관련된 능력을 지니지 않는 한은 알아들을 수 없을 테니 어지간해서
는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조 언해주었다·
“···그건 말 못 해요· 아무튼 마 나는 하룻밤 입원한 덕분에 곧바로 회복됐는데 이 심력이라는 건 그렇 지 않은 것 같더라구요·”
마나는 하룻밤 개운하게 자고 일어 나니까 멀쩡하게 돌아왔다·
하지만 심력이 문제였다·
이 ‘심력’이라는 부분은 마법 전사 에게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 하게 다음의 수를 생각하여 마법을 연산해야만 하는데 이는 심력이 낮
으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에이젤은 심력이 나름대로 높은 편 이라고 자부했고 이번에도 문제없 이 발표와 논파를 해낼 수 있을 것 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그때의 후유증이 아직도 남 아 있을 줄이야·
“허 참· 아무튼 괜찮다니 다행이 네·”
“네· 오늘은 정말로 고마웠어요·”
“어 그래· 나중에 한턱 쏴라·”
“이만 가 볼게요·”
에이젤이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나
총총걸음으로 사라지자 백유설 또 한 반대 방향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흐응··· 마나와 심력을 소모할 일 이라면··· 그게 설마 그때의···?
에이젤이 내뱉었던 말을 토대로 무 언가를 추측하고 있는 와중 뒤쪽에 서 익숙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 다·
“어머나 동생〜! 이런 데서 뭐 하 는 거야? 응? 좋은 구경? 어디어 디·”
아돌레비트의 첫 번째 공주이スト 홍비연의 숙적·
공주 홍시화였다·
그녀는 일부러 크게 발랄한 목소리 를 내며 복도의 코너를 돌았다· 몰 래 훔쳐보고 있던 홍비연을 골려줄 생각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당사자 들은 이미 자리를 뜬 뒤였다·
“에이 뭐야 시시해〜”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서 홍비연이 뒤돌아 돌아가려고 흐]-자 홍시화가 불쑥 튀어나와 앞을 가로막았다·
“동생! 왜 그렇게 매정해〜”
“본론이나 말하세요·”
“구냥~ 궁금해서 말이야〜”
홍시화는 살랑살랑 흔들리는 나비 처럼 거닐며 가만히 서 있는 흥비연 을 약올리듯 말했다·
“울 동생의 첫 아슬란인데 논문 준비는 잘~ 되고 있나 싶어서!”
“혹시 아직 논문을 완성하지 못한 건 아니지? 세상에 설마! 아돌레비 트의 공주가 그럴 리는 없지!”
“할 말은 그게 끝인가요?”
“아니?”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홍시화는 살짝 건조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첫 아슬란에서 창피를 당하기는 싫지 않아 동생? 정 급하면··· 언니한테 조금의 도 움을 받는 건 어때? 그래도 울 동 생인데 내가 논문 하나쯤은 떼어줄 수도 있잖아? 응?”
그게 목적이었나·
홍비연은 어쩐지 허탈해져서 헛웃 음이 나왔다·
논문을 의도적으로 폐사시킨 이유 가 아슬란 세미나에서 자신을 완전 히 무너뜨린 뒤 라이벌로서의 가치 를 떨어뜨리려는 게 목적이라고 생 각했거늘····
‘아예 나를 장난감으로 만들려고 하는군·’
흐]■기야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왕위 계승까지는 3년이나 남 았는데 그전에 라이벌이 미리 리타 이어 해버리면 ‘극적인 왕위 계승’ 을 할 수 없을 테니까
홍비연이라는 두 번째 공주를 남들 몰래 종속시켜 놓은 뒤 라이벌 구 도를 유지하다가··· 모두의 관심사 가 집중되는 그때!
‘짜잔 결국 첫째 공주가 왕위 계 승을 받게 되었답니다!’
그야말로 쇼맨십까지 갖춘 완벽한
광대놀음을 계획 중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악질 중의 악질이로다·
홍비연은 한쪽 입꼬리를 슬며시 치 켜 올리고서 말했다·
“저는 저보다 부족한 마법 논문 따 위를 받을 생각은 없으니 그런 쓸 데없는 친절은 사양하죠·”
그러자 흥시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응···? 저번부터 자꾸 그렇게 막 말해도 되는 거야? 괜히 자존심 세 웠다가 나중에 후회한다?”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쿨하게 자
리를 떴다·
“흐응···r
홍시화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 다는 표정이었다·
* * *
차례는 빠르게 지나 수많은 마법 생도와 마법 전사들의 논문 발표가 이루어졌다·
발표된 논문들은 고작 1〇〜20대의 수준으로는 보여주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것들이었으나 첫 번째 순서
로 발표한 에이젤의 마법이 워낙 획 기적이었던 탓인지 상대적으로 비루 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괜히 모르프 가문의 장녀를 잡아보 겠답시고 첫 타자로 내보냈다가 모 두 다 같이 피해를 보게 된 셈이다·
“으흐흑··· 망했어····”
오늘을 위해 몇 년을 준비해왔으 나 앞 순서 때문에 망했다며 질질 짜는 어떤 20대 청년 마법사가 강 단 뒤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홍비 연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드디어 그녀의 차례가 돌아왔다·
강단 앞에 서는 것 따위는 두렵지
않다· 다만··· 홍비연 역시 살면서 처음으로 자신이 직접 탄생시킨 마 법을 공개하는 것이기에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음 순서는 스텔라 아카데 미 1학년 생도 흥비연 아돌레비트입 니다·
마법사로서 이 자리에 섰기에 공 주라는 수식어는 붙지 않았다· 그래 서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지금도 저 멀찍이서 빙긋빙긋 웃으 며 자신을 째려보고 있는 홍시화를 순수하게 자신의 힘만으로 엿먹일 수 있었으니까·
-그럼 발표를 시작해 주시기 바랍 니다·
사회자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홍비연은 가 장 먼저 마법을 선보였다·
화륵!
허공에 붉은색의 불꽃 두 개가 생 겨나자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졌으 나 이내 그것이 평범한 불꽃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 다·
“저건 그냥 1클래스 마법 ‘파이어 라이터’잖아?”
“기초 마법을 왜····”
“흐음?”
이제부터 어떤 기나긴 설명이 있겠 거니 싶은 마음에 마법사들은 팔짱 을 끼고서 중립의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홍비연은 길게 늘어뜨려서 자신의 마법을 설명할 생각이 없었 다·
그녀는 허공에 떠 있는 두 개의 불꽃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기존의 파이어 라이터·”
화르륵! 팡!
강단의 중앙에 설치되어 있는 안티 매직 배리어에 불꽃을 날리 スト 자그
마한 불똥이 튀며 그대로 사그라들 었다·
¹¹그리고 이건 새로운 파이어 라이 터입니다·”
그녀는 방금처럼 불꽃을 가뿐히 날 렸고·
···슉!
투쿵-!!
육중하게 울리는 폭발음·
“뭐 뭐지?”
“저게 파이어 라이터라고···?”
그 즉시 몇몇 마법사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으며 돋보기 안경을 고
쳐 쓰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모두가 이해한 것은 아니다· 정말 극히 일부의 화염계 마법 전문 가나 마나 분석학자들만이 간신히 이해했을 정도였으니까·
“뭔데 저렇게 놀라시는 거지?”
“그냥 마나를 조금 더 많이 넣으면 저렇게 되는 거 아냐?”
“···아니야·”
홍비연의 마법을 가만히 지켜보던 청파람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 다·
“똑같은 마나어1 똑같은 수식어를 사용했어· 즉··· 완전히 같은 마법
에 무언가 특별한 요소 하나를 추가 했을 뿐인데 폭발력이 저토록 높아 졌다는 거지·”
“뭐어···?”
“뭐 하나 바뀌었다고 파괴력이 저 렇게 달라져?”
첫 번째 마법과 두 번째 마법의 마나 사용량은 동등했다·
하지만 첫 번째 마법은 실험용 안 티 매직 배리어에 부딪히는 순간 폭 풍 앞의 촛불처럼 사그라들었고 두 번째 마법은 2클래스에서 3클래스 수준의 폭발력을 선보였다·
“그게··· 말이 되는 거야?”
어떤 학생이 읆조린 혼잣말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가진 의문이기 도 했다·
그리고 이 분위기는 홍비연이 원 하던 것이기도 했다·
에이젤이 처음으로 발표한 뒤 고 조된 분위기는 이후의 그 어떤 누구 도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하지만 내 마법은 달라·’
마법진 자체에 속성의 형태를 부여 한 에이젤의 놀라운 논문과도 비견 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그녀는 감 히 자부하였다·
모두가 마법에 대한 의문점을 피어
올릴 무렵 홍비연은 아주 천천히 이 마법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였다·
“인간들은 이전부터 불을 제어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결국 자신들의 방 식대로 불꽃을 깎고 다듬어 형태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형태는 참으로 다양하다· 불꽃 의 화살 창 십자 방패 망치 등 등··· 정말 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 모든 형태는 가짜입니 다· 오늘··· 저는 불꽃의 진정한 형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 * *
“오··丁
홍비연이 무언가 획기적인 마법을 발표하기 시작하자 홍시화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저게 뭐람···r
본래 홍비연이 준비했던 논문에 대 해서는 익히 알고있다·
십이제자의 가문을 포함하여 아슬 란 세미나에 고정 참석하는 가문이 으레 그렇듯 홍비연의 논문 또한 여 기저기 뛰어난 박사들을 데려와 짜 깁기한 것에 불과했다·
그것은 일종의 관행이었다·
‘너도 하고 나도 하고 그러니까 서로 모른 체하자·’
하지만 흥시화는 그 부분을 예민하 게 건드려볼 생각이었다· 어차피 자 신은 10년 동안이나 아슬란 세미나 에 개근하였고 훌륭한 모습을 보여 준 뒤 은퇴하였으니 더 이상 거리낄 것도 없지 않는가?
거기에다가 만약 홍비연이 미끼에 걸려서 넘어오면 굳이 시끄럽게 굴 필요도 없이 그녀를 완전히 자신의 발밑에 둘 수도 있는 노릇이고 말이
그러나····
동생 홍비연은 미끼를 물지 않았 다· 오히려 당당하게 나서는 모습에 는 자신감마저 충만해 보였다·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다·
‘흐응 대단하긴 대단하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그녀조차도 홍비연이 펼치는 불꽃 쇼에는 묘하 게 빠져들게 되었다·
에이젤의 마법이 시리도록 냉정하 고 예술적으로 아름다웠다면 홍비연 의 마법은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폭 발적인 매력이 있었다·
존경할 만했다·
저 정도의 논문을 준비해서 나왔다 면 홍시화라도 당장 자리에서 일어 나 박수갈채를 칠 자신이 있었다·
···다만 그게 정말로 네 마법이 라면 말이야·’
홍시화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동생이 가진 최악의 단점이 바로 창의력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 다·
그 때문에 최근 창의력에 대한 훈 련과 공부를 병행하는 듯싶었지 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런 단기간 에 저런 마법을 준비할 수 있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하여 불꽃의 형태를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유지하면서···
홍비연의 발표는 거의 막바지에 이 흐렀고 참관인들의 표정은 흥분으 로 물들었다·
심지어 더 놀라운 점은 이전과는 달리 그 누구도 ‘지적 기회를 사 용하지 않은 채 그저 흘린 듯 경 청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벌써 두 번째 아슬란 세미나에 등장한 혁명적인 마법·
이 기세는 가히 홍시화의 첫 발 표 그 이상의 분위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괜찮다· 이런 분위기는 홍 시화에게 있어서 아주 좋은 무대 이기도 했다·
저 기세가 최고점을 찍었을 때·
그때가 바로 홍비연을 한 번에 무 너뜨리기 좋은 타이밍이었으니까·
“이상으로 발표 마치겠습···
이윽고 홍비연이 성황리에 발표 를 끝마치려는 순간
삐빅!
홍시화는 버튼을 눌러 ‘지적 기 회를 사용하였다·
**···궁금한 점이 하나 있군요·”
그녀가 입을 열자 장내가 고요해 졌다·
아무래도 지적을 사용한 이가 홍 비연과 왕위를 두고 싸우는 숙적 홍시화였으니 말이다·
분위기가 묘해졌다·
“훙비연 생도?”
**···예·”
평상시의 명랑하고 발랄한 모습은 지워 버린 채 그녀는 가볍게 미소
를 띤 채로 우아하게 입을 열었다·
“당신의 이전번 논문이 누락되었다 는 소식을 미리 들어서 알고 있어 요· 아마도··· 다른 박사님들의 논 문을 누더기처럼 얼기설기 엮어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이유였던가요? 그 렇죠?”
논문 감평 및 심사 위원회를 향해 질문을 던ス1자 몇몇 인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홍시화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의문이네요
그녀는 물었다·
“그 마법은··· 정말로 당신의 것
이 맞나요?”
빌드업은 끝났다·
이제부터는 가만히 홍비연이 허둥 지둥거리다 망가지는 모습을 구경하 기만 하면 그만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거니? 동생아·’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홍비연과 눈을 마주하였고·
•···응?’
어째서인ス 1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 게 입꼬리에 미소를 띠고 있는 홍비 연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