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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아슬란 세미나⑶
강단에 오르기 직전 에이젤이 드 로미안 가문의 마법사에게 견제를 당하는 동안 백유설 또한 위쪽에서 온갖 관심을 받고 있었다·
“쟤가 그 애야?”
“응· 그렇다는데·”
“최근 온갖 언론 잡지에 얼굴을 도 배하더라고·”
*1그깟 혹마인 몇 번 잡은 게 뭐라 고···「
백유설은 이제 막 1학년이 되었을 뿐이지만 이곳에는 정식 마법 전사 의 자격증까지 가진 20대의 젊은 엘리트 마법사들이 즐비하였다·
그들은 실전 경험이 상당하였고 흑마인쯤은 몇 번이나 살해한 경력 이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눈에는 고작 흑마인 한두 번 사냥한 걸로 세간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백유설이 영 마음에 들
지 않았으리라·
“놔둬· 너희들 열일곱에 흑마인 사 냥해 봤어? 6리스크의 흑마인과 마 주해 본 적도 없는 주제에 말만 번 지르르하군·”
대부분의 참석자가 백유설을 마음 에 들어 하지 않는 와중에도 그를 옹호하는 사람이 있기는 있었다·
모든 이들이 자신보다 어리고 잘나 가는 천재를 질투하지는 않는 법·
“안녕? 네가 백유설이구나·”
“예· 안녕하십니까·”
주변 사람들을 말린 웬 20대 초반 의 청년이 다가와 악수를 청하자 백
유설은 떨떠름하게 그것을 받아들였 다·
“나는 청파람 아이둔이야· 우리가 자주 만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통성명은 해두고 싶어서·”
“백유설 입니다·”
“다들 네가 부러워서 그러는 거니 까 부담스러워하지는 말고·”
“별로 그렇진 않습니다·”
제아무리 세계 최고의 명문 스텔라 아카데미라지만 이곳을 제외하고서 도 명문 학교는 아이테르 월드에 얼 마든지 존재하였다·
당장 아르카니움에만 명문 학교가
스텔라를 포함해서 다섯 개나 있었 으니까
각자의 학교와 가문 마법 실력에 최고의 자부심을 가진 천재들이 모 여 있으니 평민 출신의 스텔라 1학 년 재학생쯤이야 얼마든지 짓누를 수 있다는 생각을 모두가 하고 있었 다·
“뭐 정말로 부담은 없어 보이네···· 너는 진짜 특이하다· 아무리 똑똑하 고 잘나가는 마법사라도 이렇게까 지 이목이 집중되면 조금의 부담을 느끼는 게 정상이거든· 그런데 너는 그런 게 전혀 없어 보이네·”
실제로 백유설의 표정은 잔잔한 호
숫가처럼 평온했다· 사실 그 이유는 [연홍춘삼월의 가히 덕분이었지만 청파람이 알 길은 없었다·
“아무튼··· 무운을 빌게· 너는 공공 의 표적이 될 테니까· 아마도 대다 수의 마법사들이 너에게 ‘지적 기 회,를 사용하지 않을까 싶거든·”
“예· 조심해야죠·”
“그럼 이만 가볼게·”
청파람이 돌아가자 백유설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적 기회라···
총 200여 명의 마법사가 서로의 논문에 대해 토론하는 아슬란 세미
나인 만큼 시도 때도 없이 상대방 의 논문을 지적해 대면 끝이 나질 않는다·
하여 아슬란 세미나에 참석한 마 법사들에게는 각자 5번의 지적 기회 가 주어진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마법사들은 상 대방의 논문을 지적할 수 있었고 대답하지 못한 자는····
뭐 페널티는 없다·
다만 마법사로서의 커리어에 좋지 않은 줄이 그어져 버릴 뿐·
5번밖에 없는 기회·
마법사들은 그 기회를 허투루 사용
하지 않고 반드시 중요한 순간에 지적을 던진다·
‘상대방의 정곡을 찌를 수 있을 때·’
‘상대방의 논문에서 완벽한 허점을 발견했을 때·’
‘상대방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 을 때·’
그리고·
···상대방을 반드시 망가뜨리고 싶을 때·’
이 지적 기회 때문에 원작 게임에 서의 풀레임도 상당한 고생을 했었 다· 당시의 그녀는 그 어떤 마법사 도 해내지 못한 다양한 속성 마법의
보유자였던 탓에 세간의 주목을 모 조리 독차지하고 있었는데 스텔라 의 엑스트라 악역 셀리엔을 포함하 여 무수히 많은 마법사들이 그녀에 게 지적 기회를 사용한다·
거기서 플레이어는 ‘안경’을 참고 하여 그때그때 올바른 선택지를 골 라서 대응해야만 했는데 만약 잘못 된 대답을 했다가는 ‘세이브 포인 트’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야만 해서 짜증 나는 콘텐츠로 악명 이 높았다·
이곳은 현실이기에 세이브 포인트 따위는 없다· 처음부터 잘해야만 한 다·
‘풀레임이 할 수 있을까···
살짝은 걱정이다· 플레이어블 풀레 임은 안경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현 실의 풀레임은 그렇지 못했으니까·
아니 그보다 더 걱정해야 될 사람 은 풀레임이 아니라 에이젤일까·
그녀는 배신자 모르프의 자식으로 서 이미 풀레임이나 자신보다도 더 많은 마법사들에게 단단히 찍혀 있 는 상태일 테니까
게다가 에이젤은 아직 자신의 논 문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했다·
원작 게임의 전개대로라면 에이젤 은 끝내 논문을 완성하지 못하여
아슬란 세미나 도중에 온갖 다굴을 처맞다가 멘탈이 터져버리는 결과가 발생하고는 했다·
그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논문 의 완성을 도와주기는 했다만····
그런다고 해서 저 무수히 많은 천 재들의 공격을 버텨낼지는 미지수였 다·
어차피 도와주고 싶어도 그러지도 못한다· 이제부터는 정말 스스로 알 아서 해내길 기도하는 수밖에·
“스텔라 아카데미 에이젤 모르프 양의 발표가 있겠습니다·”
소란스럽던 청중들이 한꺼번에 입
을 다물고서 침묵하였다·
마침내 그 이름이 나왔다·
‘배신자 모르프·’
참으로 악의적인 배치가 아닐 수 없다· 하필이면 모르프 가문의 장녀 를 가장 처음으로 내세우다니·
그야말로 총알받이로 사용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지 않는가·
아슬란 세미나가 개최된 시조의 홀 은 U자 형태로서 가운데가 강단이 었다· 청중들은 계단식의 좌석에 앉 아서 중앙의 발표자를 내려다보는 형식이었는데 그곳에 선 에이젤은 사뭇 긴장한 모습이었으나 최대한
그것을 숨기려 애쓰는 듯했다·
“···에이젤 모르프입니다·”
“그래 에이젤 양· 논문은 잘 읽어 보았네· 얼음 마법에 대해 아주 독 특한 이해 방식을 보여주더군· 흥미 로웠어·”
남들이 적대 어린 시선으로 에이젤 을 보든 말든 총괄학회장 아류문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 감사합니다!”
아류문이 비록 병세를 앓고 있다지 만 그 경지는 무려 9클래스· 전 세 계에서 단 10명밖에 없다는 최고의 마법사 중 한 명이 칭찬을 입에 담
았으니 시작부터 느낌은 좋다·
몇몇 마법사들은 모르프 가문의 마 법 따위를 칭찬한 게 못마땅한 듯싶 었으나 감히 대마법사의 앞에서 입 을 놀릴 만큼 간이 큰 자는 없었다·
“그럼 발표를 기대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에이젤은 힘차게 대답한 뒤 곧장 발표를 시작하였다·
그녀가 연구해온 마법은 아주 독특 했다·
“모든 얼음에는 ‘결정’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장구 모양이기도 하고 때 로는 기둥 때로는 나뭇가지의 모양
이지만··· 때로는 별이나 꽃의 모 양을 띄기도 하죠·”
빙계 마법이란 본디 대상의 온도를 빙점 (氷點)까지 급속히 냉각하여 얼 리는 것이 주된 목적인 마법이었다· 하지만 에이젤은 급속냉각의 과정이 아닌 얼린 뒤에 발생하는 현상에 대하여 파고들었다·
‘얼음의 결정’·
그것에 대해 모르는 마법사는 없 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연구하고 따져서 마법으로 구현하려고 시도한 마법사 역시도 없다·
“저는 얼음 결정의 문양에 따라서
빙계 마법은 조금 더 다양한 형태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사실 을 알아냈습니다·”
에이젤의 지팡이 끝에 마법진 하나 가 맺혔다· 그것은 통상적으로 보던 동그란 원형의 마법진이 아니었다·
육각형의 마법진·
백유설은 알고 있다· 미래의 모든 빙계 마법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에이젤이 개발한 저 육각형의 마법 진을 채용하게 된다·
그것이 빙계 마법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형태였으니까·
하지만 오늘날의 마법사들은 아직
그러한 사실을 모른다·
그들의 눈에 에이젤의 마법진은 그 저··· 조금 예쁘장하고 특이할 뿐 인데 비효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 을 테니까·
마법진은 반드시 ‘원형’이어야 한 다는 고정관념이 벌써 천 년째 머 릿속에 단단히 틀어박혀 있었으니 까·
그 고정관념을 증명하려는 듯 에 이젤이 이제 막 논문의 발표를 시작 하려는 찰나 누군가가 먼저 ‘지적 기회’를 사용하였다·
스텔라 아카데미의 셀리엔·
계단식의 좌석 중에서도 꽤 높은 자리에 앉아 있던 그녀가 버튼을 누 르자 앞에서 마이크가 솟아올랐다· 셀리엔은 그것을 쥐고서 물었다·
“마법진이 원의 형태가 아니라 육 각형의 형태로도 마법이 발현된다는 건 충분히 흥미로워요· 하지만 선조 마법사들이 그걸 하지 못해서 ‘예쁜 마법진’을 그리지 않았던 걸까요?”
“그건···
시작부터 공격이 거칠게 들어올 줄 은 몰랐는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에이젤도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
“’리그렘의 마법에 잠드는 기록’의 문헌에 의하면 실제로 육각형을 비 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마법진의 발 현을 성공했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하지만 결국 리그렘은 다른 마법진 을 택하지 않았죠· 왜 그랬을까요?”
“···마나의 순환이 비효율적이기 때 문이죠·”
“맞아요· 마나는 곡선의 길을 지나 칠 때 가장 효율적이고 빠르게 효 과를 전달할 수 있어요· 각진 마법 진? 예쁘네요· 솔직히 그림으로 그 려서 저희 집에 소장하고 싶을 정도 로· 하지만 딱 그 정도의 가치로밖 에는 안 보이네요·”
푸하하!
에이젤의 논문을 비하하는 농담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실제로 셀리엔의 말에는 틀린 부분 이 없었다· 그녀는 벌써부터 에이젤 의 마법을 완벽하게 분석하여 분해 한 뒤 어떻게 지적할지까지 준비를 끝마친 것이다·
대부분의 마법사는 마나를 머리로 순환하여 어마어마한 연산 능력을 갖추게 되지만 셀리엔은 특히나 [정보처리능력]이라는 컴퓨터와 비 슷한 능력을 특성으로서 갖고 있었 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건···
분명히 머릿속에 상정하던 내용이 었다· 조금만 생각하면 충분히 반박 이 가능한 질문이란 말이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이론을 떠올리 려고 하는 순간 어딘가에서 콱 막 혔다·
머리가 마비된 것처럼 생각이 멈춰 버린 것이다·
에이젤이 대답하지 못하자 셀리엔 의 공격이 성공적으로 먹혔다고 생 각한 다음 타자가 곧바로 ‘지적 기 회’를 사용하였다·
처음 지적 기회를 사용한 뒤 5분
이 지나면 발표자가 대답하든 하지 않든 사용할 수 있었기어L
“에이젤 모르프· 당신의 마법에는 아주 크나큰 결점이 있더군요·”
한때 모르프의 라이벌이었으나 모 르프가 멸문한 뒤 영원한 2위에 남 게 된 드로미안 가문의 케이카·
그가 입을 열었다·
“빙계 마법에는 반드시 프리징 포 인트를 지정하는 구축식이 필요합니 다· 모든 물질의 어는 점은 제각각 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당신의 마법 에는 빙점의 연결고리가 없습니다· 다짜고짜 마나를 들이부어서 냉각시
킬 생각입니까?”
“그 빙점은···
에이젤은 무어라 변명하려는 듯 입 을 열었고 드로미안은 잠시 기다리 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에이젤이 혼란스러워하며 몇 초 동안 입을 열 지 못하자 재빠르게 치고 나갔다·
여기서 단순히 상대의 마법을 깎는 것도 좋지만 거기서 ‘비교할 대상’ 이 있다면 더더욱 부각되리라·
“예시로 드로미안 가문의 마법진 을 들어보도록 하죠·”
그래서 그는 일부러 가문의 자랑스 러운 빙계 마법을 들먹였다·
논문 토론 도중 마법진을 선보이는 행위는 얼마든지 가능했기에 케이 카가 지팡이를 흔들어 푸른색의 빙 계 마법진을 만드는 행위에 대해서 는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다·
“이 마법진이 보이십니까? 드로미 안 가문은 빙결 포인트를 효율적으 로 지정하기 위해 하나의 마법 설 계식에 무려 열여덟 개나 되는 빙점 을 삽입하였습니다·”
“오오···!”
“대단한데···
대상을 얼리는 마법이기에 그 복 잡한 마법진에 빙점을 얼마나 많이
삽입하느냐가 바로 빙계 마법의 주 된 과제이자 누가 더 뛰어난가를 가 르는 표본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10년 만에 다시 모습 을 드러낸 모르프 가문의 마법진에 는 단 하나의 빙점조차 존재하지 않 는다니·
‘어떠냐·’
케이카가 승리를 확인한 미소를 띠 고서 어깨를 으쓱 올리니 에이젤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만 갔다·
그 기세에 가하여 하나둘 마법사 들이 그녀를 향해 지적 기회를 사용 하기 시작하였다·
“이 육각형 마법진을 채용하면서 옛날에 사장된 ‘오르돈의 온도 변화 점’의 이론을 다시 가져다 썼다고 표기했는데 도대체 이 마법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빙결의 순간에 마나의 계산식에 대해 의문이 있습니다· 어째서 마나 의 소모량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지 제대로 검산이···
”빙점을 지우고 육각형의 마법진을 만들었다고 그 효율이···
그 무수한 질문의 세례에도 에이젤 은 얼어붙은 듯 대답하지 못했고·
···백유설은 곧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의 그녀는 단순히 이론을 떠올 리지 못해서 말문이 막힌 게 아니 다· 그저 이제 막 발표를 시작했을 뿐인데도··· 무차별적으로 치고 들 어오는 비난과 조롱에 머리가 새하 얗게 변해버린 것이다·
평생 욕을 먹으며 살아온 그녀였 다· 하지만 이 자리는 노골적으로 상대방의 근본과 다름없는 마법을 발가벗겨 낸 뒤 모두가 비웃는 자 리였기에 에이젤의 정신력조차도 크 게 흔들리고 말았다·
‘모두가 날 싫어하는구나·’
내가 무슨 마법을 사용하든 내가 무슨 논리를 펼치든 저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나를 짓누르고 쓰레기로 격 하하여 비웃는 게 즐거울 뿐이다·
에이젤은 노골적인 비난 속에서 그러한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만 다·
거기서 백유설은 생각했다·
이미 아슬란 세미나가 시작된 마당 에 에이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거 나 조언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녀가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는·
‘어떻게?’
에이젤의 마법과 논리는 완벽하다· 더 이상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도울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렇다면····
그 부분을 일깨워주는 수밖에·
“에이젤· 당신의 논문에서 맹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백유설은 그녀를 향해 ‘지 적 기회’를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