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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아이템 프레젠테이션(2)
아이테르 월드를 플레이하던 시절 나도 나름대로 고인물이었기에 신수 와 계약을 맺었던 적은 몇 번 있었 다· 까다롭기는 해도 조건만 충족하 면 무조건 계약을 해주는 신수가 존 재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든 친화도 관리를 하지
못하면 계약이 해지된다는 페널티가 있었고 나는 자주 계약을 강제로 해지당하고는 했다·
왜냐·
신수들은 마법사들의 마나를 받아 서 성장해야만 하는데 마력누설지 체는 마나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게임 내에서 패밀리어 와 계약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였 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어떻게든 얻을 수 있는 기연을 하나라도 아득 바득 필사적으로 끌어모아도 모자랄
판에 ‘아 매번 실패했으니까 나는 안 될 거야·’라는 어쭙잖은 마인드 로 시작하기도 전부터 포기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패밀리어 계약식을 하기 전 에 신수 친화도를 조금이라도 높이 기 위해 아이템으로 ‘잎하넬의 열 쇠’를 받았던 것인데····
[신수 잎하넬과 영혼의 계약을 맺 었습니다!]
[친화도에 따라 잎하넬의 능력치와 특성을 계승받을 수 있습니다!]
설마 한때 신령이었던 가장 위대 한 신수와 계약을 맺게 될 줄은 꿈 에도 몰랐다·
심지어 계약 해지를 걱정하지 않아 도 좋다· 내 마력누설지체가 오히려 좋다며 잎하넬이 먼저 계약을 제안 하지 않았던가?
‘이게 꿈이야 뭐야···
게임에서조차 상상조차 할 수 없었 던 기연들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다 니·
아직도 잘 실감 나지 않았다·
[5등성 신수 잎하넬]
* 속성 : 자연
* 친화도 : 내 심장을 걸어도 좋아
* 특성 계승
・ ド성작용 (Lv·3)
[바람의 속삭임 (Lv·4)
し꽃무리에게 추억을(L2)
과연 신령은 신령이라는 건가· 모 든 능력치를 잃어버렸다고는 해도
특성을 몇 개씩이나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 무려 3개나 계승받을 수 있 던 건 내가 그녀와 친화도가 상당 히 높았던 덕분이겠지·
아이테르 월드의 ‘친화도 시스템’ 은 플레이어에게 그다지 우호적으로 표기되지 않았다·
여타의 게임은 호감도를 숫자 단위 로 쉽게 알려주고는 했는데 여기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끔 해두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사이가 어느 정도인지 짐 작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내가 심장을 건네주어 다시 한번
생명을 얻은 덕분일까 친화도는 거 의 최고를 찍은 것 같다·
나한테 마나만 있었어도 ‘신수 소 환,이나 ‘신수합일’ 등의 기술을 노 려봐도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마 력누설지체인 이상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일단은 계승받은 특성들을 확인해 보았다· 능력치를 엄청나게 상승시 켜 주는 건 아니었지만 특이한 효 과가 상당히 많았다·
가장 먼저 [자정작용]은 ‘오염된 신 체를 자연으로 정화한다’라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추 측해보자면 독극물을 정화한다는 뜻
이 아닐까·
두 번째로 [바람의 속삭임]은 공기 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해주는 능 력이었는데····
‘이건 좀 괜찮은데?’
적과 교전을 벌일 때 나는 오로지 [육감]에 의존하여 상대방의 공격을 방어하거나 회피하고는 했다·
바람의 속삭임은 육감과의 시너지 가 좋았고 덕분에 감각이 더욱 또 렷해졌다· 여기에 태령신공까지 발 동하면 그 시너지가 열 배 이상으로 뛸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꽃무리에게 추억을]의
효과를 확인해 보았다·
“···뭐여 이건?”
[A꽃의 향기를 맡으면 꽃말에 해 당하는 특성을 적용받는다·]
특성의 효과가 너무 두루뭉술해서 이해가 가질 않았다· 계약해서 기분 이 좋은 건지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잎하넬에게 물었다·
“야· 이거 뭔 뜻이냐?”
-꽃향기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져!
“그거 말고· 다른 효과는 뭐 없어?”
-응? 으음~ 행복해져!
“어 그래···· 고맙다·”
잘은 모르겠지만 별로 쓸모 있는 특성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실용적인 특성을 두 개나 챙겼으니까·
그러다 문득 특성 [자정작용]에 한 번 더 눈길이 갔다·
“···잠깐· 자정작용이라고?”
이와 관련된 문구를 하태령의 비급 서에서 본 것 같다는 생각에 서둘러 꺼내 확인해 보았다·
···하여 본인은 몸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건강할수록 오래 산다는 이유 때문 이 아니다· 마력누설지체는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일수록 더욱 오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체는 성장하면서 자연스 레 노폐물과 오염물질이 들어차게 되어 있고 그런 신체는 자연을 받 아들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자연과 말 그대로 ‘일체(一體)’가 되기 위해서는 자연이 물려준 신체 를 유지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역시·”
하태령의 비급서에는 몸을 깨끗하 게 정화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했다·
무슨 수를 써도 오염된 신체를 되 돌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본인은 아주 운이 좋게도 기연을 얻을 수 있었다·
‘그녀가 선물해 준 능력은 본인의 신체를 자연처럼 깨끗하게 정화해 주었고····
(중략)
···마침내 나는 ‘세맥(細脈)’을 타동하는 데에 성공했다·
내용은 여기까지였다·
어떻게 했는지 무슨 수를 썼는지 는 전혀 나와 있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하태령이 얻은 기연은 다름 아닌
잎하넬이며 특성 [자정작용]을 전승 받은 덕분에 신체를 정화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세맥 타동이 라·
괜히 쓸데없이 단어는 어렵지만 쉽게 말해서 혈관의 노폐물을 제거 했다고 보면 좋았다·
그리고··· 이 과정을 거치면·
나 또한 과거의 하태령처럼 어쩌 면 그보다 더욱 빠르게 강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쩐ス] 하태령이라는 위대한 스승 을 소개해주고 그에 걸맞는 기연까 지 선물해준 잎하넬에게 고마운 감
정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야··· 진짜 고맙다· 나중에 성공해 서 갚을게·”
-응? 내가 더 고맙지〜
내가 심장을 구해준 덕분에 잎하넬 이 살아났다·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 면 그녀가 나에게 고마워하는 게 맞 다·
하지만····
정말 따지고 따지면 지금의 내가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이유도 전부 잎하넬을 만났기에 가능한 일이다·
‘메이젠 티렌의 갑작스러운 흑마화·’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그 절망적 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던 이유는 오로지 잎하넬의 선물이 있었기 때 문이었다·
결국 잎하넬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없었을 테 고··· 나는 틀림없이 모든 것을 잃 고서 절망했을 것이다·
새삼스러】 잎하넬이 나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기연이었는지를 깨닫 게 되었다·
“크흠흠 근데 있잖아·”
一 응?
아무튼·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저번에 들어보니까 네 친구분이 검술까지 다뤘다고 들었는데····”
-맞아! 엄청 대단했어!
“그것도 좀 알려줄 수 있냐?”
받을 수 있는 건 다 받아야지·
우리는 무려 심장을 주고받았을 정 도로 완전 친한 사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다·
* * *
아슬란 세미나에는 전 세계에서 온 갖 마법명가가 참석할 예정이다· 당연 흐] 아돌레비트 가문 또한 빠지지 않 는다·
작년까지는 홍비연의 언니 홍시화 아돌레비트가 아슬란 세미나에 참석 하였다·
그녀는 매년 훌륭한 논문을 제출하 였고 항상 크나큰 파장을 불러일으 킬 만한 발언을 하여 이목을 집중받 고는 했다·
,전부 정치적 수단이지·,
천재들만이 모인다는 아슬란에서 그런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는 것
자체가 왕이 되기 위한 쇼맨십이었 다·
‘나는 이 정도로 똑똑하다·’
‘그리고 세계를 상대로 이 정도로 시원하게 발언할 수 있다·’
홍시화는 무려 10년 동안이나 아 슬란에 개근하여 그 능력을 충분히 증명하였고 이제는 그 바톤을 홍비 연이 물려받았다·
이제부터 그녀의 모든 행보는 하나 하나 홍시화에게 비교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못나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부족해서는 안 된다·
“후우····”
아슬란 세미나까지 남은 시간은 고 작흐야 2주·
긴장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만 그날을 위해 몇 년 동안이나 무 수히 많은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으 며 준비해온 논문이 그녀의 마음을 든든하게 만들어주었다·
‘이 정도 논문이라면···
적어도 홍시화 아돌레비트가 아슬 란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내놓은 그 충격적일 정도로 어마어마했던 마법 에 비견할 정도는 될 것이다·
똑똑!
논문을 마지막으로 정리할 겸 천천 히 그것을 검토해보려는데 누군가 가 기숙사의 문을 노크했다·
,,들어와,,
주말이기도 해서 당연히 파벌원 중 한 명이 찾아왔겠거니 싶어서 그렇 게 말했으나·
-홍비연 학생· 용무가 있어서 찾아 왔습니다·
웬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문 을 열자 조교수로 추정되는 이름 모를 사내가 살짝 고개를 까딱여 인 사했다·
“무슨 일이죠?”
“밀케넌 이사님이 홍비연 학생을 만나고자 하십니다·”
“···밀케넌 이사?”
“그렇습니다· 시간 되신다면 곧바 로 가시겠습니까?”
조교수는 홍비연에게 깍듯이 예의 를 차리고는 있었으나 그 눈빛에는 호의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밀케넌이 나를 왜···
스텔라에서까지 정치 싸움을 하지 는 않는다지만 그래도 최소한 ‘내 사람’과 ‘내 사람이 아닌 사람’의 구
분 정도는 명확하다·
스텔라 이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입 김을 가진 밀케넌 이사는 최소한 ‘내 사람이 아닌 사람’인 것은 틀림 없다·
그녀는 홍시화가 스텔라에 재학하 던 시절 그쪽에 시절에 붙어먹던 사람이니까·
홍비연의 입장에서는 굳이 고생해 서 밀케넌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 려고 고생하던 홍시화의 행보가 이 해되질 않았다·
밀케넌은 어차피 아돌레비트 국가 의 사람도 아닌데 굳이 그녀를 회
유할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네· 지금 바로 가죠·”
그리고 그 이유는 밀케넌 이사와 마주한 직후 깨닫고 말았다·
···안 좋은 의미로 말이다·
“홍비연 생도·”
“···네·”
달칵!
우아하게 찻잔을 내려놓으며 밀케 넌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홍비연 의 논문을 가리켰다·
“이번 아슬란 세미나에 이 논문으 로 참석한다고 들었어요· 맞나요?”
“맞습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제발·
내가 생각하는 그런 상황이 아니기 를····
그렇게 필사적으로 기도했으나·
“안타깝게도 이 논문은 아슬란 세 미나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됐어요·”
질끈 결국 그 말이 떨어지자 홍비 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째서 인가요?”
마지막 발악 삼아 이유를 물어보자 밀케넌은 순순히 응했다·
“기존에 발표되었던 다른 논문들과 의 ‘유사성’이 상당히 발견되었거든 요·”
“자 여기 이 ‘파르타늄의 다각진 법칙^ ‘랑그라 뉴 포인트 수식’을 대입하지 않았나요? 이건 콜라니안 박사가 37년 전 ‘마지막 모의고사’ 에 출제했던 문제에 남들 몰래 담
밀케넌은 홍비연의 논문을 하나하 나 뜯어보았다· 그리고··· 대부분 은 맞는 말이었다·
그래 솔직히 홍비연은 이 논문의
대부분을 다른 마법사들의 힘으로 작성하였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잘못한 게 아 니었다· 아슬란에 참석하는 마법명 가 ‘고정 참석자’들은 모두 이렇게 한단 말이다·
그들이 어떻게 수십 년 동안이나 참석 자격을 지켜낼 수 있었겠는가· 전부 다 이런 편법을 동원했으니 가 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트집을 잡는다 고?
이유는 고민하지 않아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
지도 금세 머리에 그려졌다·
‘홍시화···!)
어느 정도 견제받을 것을 예상하 기는 했다·
홍비연 아돌레비트 공주가 세상에 자신의 능력을 처음으로 피력하는 타이밍에 그 능구렁이가 아무런 견 제를 하지 않을 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설마 10년 전 스텔라에 재 학하던 그 시절부터 이 상황을 생각 하고서 밀케넌을 회유했을 줄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홍비연 학생· 납득가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어요· 마법회에서 크게
반발할 우려가 있거든요·”
논문의 지적을 끝낸 밀케넌이 그리 말하자 홍비연은 대꾸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물론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서 얼마 든지 아슬란 세미나에 논문을 제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더욱 최악의 사 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밀케넌이 마법계에 미치는 영향력 을 생각하면··· 틀림없이 아슬란 세미나를 진행하는 와중 ‘표절 논 란’을 폭탄처럼 터뜨려버릴 테니까·
아마도 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승승장구하던 흥시화의 업적과 비교 되며 홍비연의 위상은 저 나락까지 철저하게 추락할 것이다·
“그렇게 됐으니··· 아슬란 세미나 전까지 다른 논문을 준비하도록 하 세요·”
달칵!
밀케넌의 집무실에서 빠져나온 홍 비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슬란 세미나까지 남은 시간은 고 작해야 보름 남짓·
정말로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홍비 연에게는 그런 대단한 논문을 쓸 만
한 능력이 전혀 없었다·
자꾸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절 망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달리 방법이 없다·
홍시화의 간단한 수작질조차 버텨 내지 못한 채 시작부터 주저앉아야 만 하는가·
나는 그녀에게 항상 당할 수밖에 없는가·
아니 아니야!’
홍비연은 입술을 있는 힘껏 짓씹었 다· 피가 주륵 흘러나왔지만 고통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래 분명 예전이었다면·
스텔라에 입학하기 이전 주변인에 게 의지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하 지 못하던 홍비연이었다면····
이대로 포기했을 것이다·
아니 현실이 그녀를 포기하게 만 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야·’
이제는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생 겼다· 그러니 첫 단추부터 모든 것 을 망칠 수는 없다·
굳이 이 세미나가 시작되기 2주
전에 이 사실을 알려온 것도 우습 다· 홍비연은 결코 혼자의 힘으로 2 주 안에 다른 논문을 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랬겠지·
그녀는 주먹을 움켜쥐고서 발걸음 을 돌렸다· 기숙사 방향이 아닌 독 서실을 향하여·
‘내가··· 못할 줄 알고?’
오후 11시 창백한 달빛이 세상 끝 을 비추는 시간·
그녀의 하루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