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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태령신공(3)
하태령은 글을 썩 잘 쓰는 편은 아니었다· 자신의 연구를 방대하고 길게 늘여서 써놓았고 도중도중 새 로운 깨달음이 추가되면 뒤늦게 글 을 지웠다가 수정하기도 해서 이해 하기가 어려운 부분도 상당히 많았 다·
누군가가 읽기를 바라고 썼다고 보 기 힘들 정도로·
‘그래도 이건··· 꽤 좋은데·’
하태령의 연구서에는 직박구리 안 경에조차 기록되지 않았던 내가 모 르는 역사에 대해 꽤 많이 기록되어 있었다·
하태령은 원작 게임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발자취는 생각보다 꽤 굵직하고 강렬했는데 무려 시조 마 법사의 열두 제자와 대척점에 서 있 던 존재였다고 한다·
괴물과 흑마인이 도래하던 그 시절
당시 마법사는 인류의 구원자였다·
천둥벼락을 내리치고 땅을 뒤집는 힘을 소유한 인간들이 도저히 상대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불가해의 존재들을 말살하는데 가히 신처럼 보이지 않았겠는가?
하태령이 태어난 시기는 그런 혼돈 의 전쟁이 전부 끝난 뒤 평화가 찾 아온 시대였다·
용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으며 괴물은 자신들의 영역으로 숨어들었 고 흑마인들은 버려진 땅으로 도망 쳤다·
인류가 승리했으니 꿈과 희망과 웃
음만이 넘쳐나는 세상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아이테르 월드’의 프롤로 그 스토리에서도 그렇게 묘사되기도 했고·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전쟁이 끝난 후 안정을 되찾은 인 간들의 사회는 어떻게 되는가·
아주 자연스럽게 마법사가 지배하 는 세상이 도래하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신적인 힘을 가진 그들을 감히 누 가 거스를 수 있겠는가·
혈통과 권력은 마법 앞에서 무의미 했다· 조금 더 똑똑하고 잘난 마법 사가 높은 신분을 얻는 세상이었다·
그런 와중 시조 마법사가 자취를 감추고 제자라 불리는 열두 마법사 가 세상에 남으니 그들이 세상의 최 고 지배계층이 되는 건 당연지사”·
이건 나도 아는 이야기다·
열두 마법사들의 영향력은 현대까 지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니 까·
메인 에피소드에도 그 이름들은 굉 장히 자주 등장한다·
“6)■마의 마법사 아돌레비트’
‘빙염의 마법사 모르프’
‘공허의 마법사 할로우’
‘물질의 마법사 활석’
‘자연의 마법사 별꽃’
등등····
지금에 와서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 한 열두 가문이 되어 그 위명을 널 리 떨치고 있었다·
“흐음···
하태령의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철 저하게 마법사회를 계급사회로 만들 었다고 했다·
즉 이 문서는 거의 21세기 지구와
비슷한 현대문명을 구축한 이 세상 에 어째서 아직 귀족제가 무너지지 않았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거지 같은 신분제가 죄다 이 새끼 들 때문이었고만?”
먼 미래에 후손들이 신분제에 고통 받는 것을 두려워한 하태령은 시조 마법사의 열두 제자와 싸워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안다· 일전에 잎하넬이 이야기해 주 었기 때문이다·
‘시조 마법사의 열두 제자에게 죽 임당했어·’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잎하넬이라 는 존재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체 감되 었다·
거의 모든 역사와 함께해왔던 거잖 아? 물론 많은 시간을 숨어서 잠자 며 지내느라 대부분의 역사를 기억 하지는 못하겠지만·
“흐음···
아무튼 이런저런 역사 이야기를 포 함하여 연구서는 정말 착실하게 적 혀 있었다·
현대의 연구서와는 달리 중구난방 복잡하고 제멋대로 적혀 있는 감이
있었으나 그런 부분은 직박구리 안 경이 있었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 다·
체내에 마나가 오래 머물수록 생명 은 장수한다· 마나는 곧 생명의 근 원이기 때문·
높은 경지에 다다른 마법사가 젊음 을 유지하며 장수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 마력누설지체는 체내에 마나 가 티끌만큼도 존재하지 않기에 단 명한다·
하지만 자연의 마나를 끊임없이 순환하여 받아들인다· 그렇게 받아 들이는 마나의 양이 지나치게 적어 서 단명하는 것일 뿐·
거기서 본인은 떠올렸다·
만약····
체내에 잠깐 스쳐 지나갈 뿐인 그 쥐꼬리만 한 마나를 최대한 더 많이 오랫동안 붙잡을 방법이 있다면?
그렇다면 본인은 장수를 넘어····
영생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개발해 낸 것이 바 로 마나를 전신으로 호흡하여 받아
들이는 방법이다·
드디어 나왔다·
마법사들에게도 호흡법은 존재하지 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머리와 심 장 하단전에 마나를 쌓는 호흡법일 뿐 마력누설지체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호흡법의 중요성을 일 찍이 깨닫고는 있었고 어떻게든 마 나를 최대한 많이 들이마시기 위해 폐활량을 높이는 유산소 운동을 꾸 준히 해왔었다·
심법 (心法)
본인이 만들어낸 호흡법의 이름이 다· 단어에서 눈치챘겠지만 이는 단 순무식하게 유산소 운동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마음을 다스려 나 자신을 자연과 동화하여 세상의 만유(萬有)를 자 연스레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이 호흡법의 기초·
‘심법이라···
무협 소설이나 사이비의 성경을 읽 는 기분마저 들었으나 막연하게 믿 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애당초 마법조차 내게는 초현실적 인 일이다· 그런 와중 심법이네 어 쩌네 해도 더 이상할 것도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영생은 조금 허무맹 랑한 이야기겠지만 어쨌든 중 마나 순환율’을 높여서 수명을 연장 한다는 건 곧 나의 능력이 강해진다 는 의미
*···시작해 볼까·’
연구서 아니 ‘비급서’에 적힌 대 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자리에 앉은 뒤 눈을 감았다·
아주 가끔 주말이 되면 홍비연은 외출을 하고는 했다· 마음 편히 피 서를 즐기거나 피크닉을 가려는 건 아니다·
[아돌레비트 왕실묘]
이곳은 오로지 아돌레비트의 왕족 만이 묻힐 수 있는 묘지· 무수히 많 은 묘비가 있었지만 정작 홍비연과 직접적으로 연이 닿는 이들은 거의 없다· 혈연을 따지고 따지면 먼 조 상쯤 되시는 분들이 묻혀 있겠으나 그런 건 그녀에게 아무래도 좋은 일 이었다·
[홍에린 아돌레비트]
[바람에 흩날리는 꽃처럼 떠나가 다]
그녀의 큰 언니 홍에린은 줄곧 ‘내
가 죽으면 이 말을 꼭 묘비에 적어 줘라고 밝게 웃으며 농담처럼 던지 고는 했다·
그 말은 결국 진짜 묘비명이 되어 버렸으나 홍비연은 웃을 수 없었다·
애초에 그런 농담을 들으면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기나 할 까·
홍에린은 언제나 홍비연에게 다정 다감한 언니였다· 누구보다 어른스 러웠고 따스했으며 고요했고 자애 로웠다·
그녀에 대한 추억은 온갖 좋은 것 들로 가득 차 있다·
지금도 홍에린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꽃으로 가득한 들판이 떠올랐 다·
바람에 휘날리는 은색의 그 찬란한 머리카락을 부여잡으며 뒤돌아 자신 을 바라보는 홍에린의 모습은 꿈처 럼 몽환적이고 멀게만 느껴졌다·
당시의 홍비연은 왕성 내의 그 누 구와도 친해질 수 없었다·
불의 친화도를 높이기 위한 수련 때문에 온몸은 화상 자국으로 가득 했으며 머리카락은 꼴사납게 타버려 항상 모자를 쓰고 다녀야만 했고 피부는 거의 썩은 것처럼 흉측했기
때문이다·
역겹고 혐오스러운 자신의 외모에 비관적이었던 홍비연은 자연스레 소 극적인 성격으로 변했고 자존감은 심하게 낮아졌다·
그런 그녀에게 큰 언니 홍에린은 항상 먼저 다가오고는 했다·
이른 아침 울적한 마음에 인적이 드문 호숫가로 도망쳐 갔을 때면 홍에린은 그곳까지 귀신같이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오늘도 우리 힘내보자!’
늦은 저녁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 한 독방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식사 하고 있을 때면 또 어떻게 찾아와 서는 이렇게 묻고는 했다·
‘오늘 하루는 어땠니?’
그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어떻게 잊을까·
매일매일 그녀는 항상 그렇게 나 에게 다가와 주었는데·
하지만 홍비연은 그녀를 멀리하려 고만 했다· 그 누구도 자신을 이해
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나처럼 고통받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 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올해를 넘기기 힘들 것 같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홍에린에게 불치병이 있다는 사실 을 알게 되었다·
원인도 모르고 정체도 알 수 없지 만 서서히 육신이 자연발화 하는 끔찍한 병이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큰 언니를 사랑하게 되었 다·
자신과 똑같은 고통··· 아니 그 이상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자신에게 다가왔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언니 또한 알고 있던 것이다·
몸과 영혼이 불탄다는 게 얼마나 끔찍하고 괴로운 일인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은 삶을 살아서 모두를 멀리해야만 하 는 운명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지·
큰 언니 홍에린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비연아 왔니?’
그녀는 이미 혈색이 창백하게 야위 어 있었고 시시때때로 몸에서 불이 번지는 바람에 외출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홍비연은 누 군가를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최소한 자신은 자연발화라는 현상 을 겪지 않으니 끔찍하고 혐오스러 운 외모를 가지고 있을지언정 마음 만 다잡으면 외출은 할 수 있었다·
필사적으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홍에린에게 이야기해 주었 다· 그녀가 이야기할 때면 큰 언니 는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경청하였 다·
‘그랬니?’
그런 일이 있었구나····’
‘많이 힘들었겠네 내 동생·’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도 적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애쓰고 발버둥 쳤 다·
행복했다·
그녀와 함께한 그 모든 순간들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다만 그 행복한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다·
홍비연은 묘비 위에 분홍바늘꽃을 올려놓았다· 그녀는 그때의 일을 아 직도 잊지 못했다·
마지막 순간 온몸에 불이 붙은 와 중에도··· 자신을 향해 웃어주었던 그녀의 미소를·
‘너는 꼭 행복하길 바랄게·’
홍비연은 한 번 사랑하는 이를 떠 나보았기에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 러운지를 잘 알게 되었다·
불에 타는 것보다도 훨씬 더 아프 고 뜨겁고 괴로운 고통이었다·
불치병·
정말 치가 떨리는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나 마법이 발전했는데 왜 아직도 인류는 병을 완전히 정복 하지 못했는가·
그녀는 얼마 전 마력누설지체라는 체질에 대해 알게 되었다· 태어나면 서부터 선천적으로 마나를 체내에 쌓을 수 없어 단명할 수밖에 없는 이들·
불과 1년 전만 해도 홍비연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단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정말 많은 게··· 달라졌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늘 또다시 누군가가 그녀 의 인생에 비집고 들어와 큰 비증을 차지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또한··· 자신이 처음으 로 사랑했던 언니처럼 불치병을 앓 고 있다·
아마도 정확히 스무 살이 되는 스 텔라의 졸업식 날··· 그는 죽는다·
*···두 번 다시 그런 고통을 겪 고 싶지는 않아·’
역사 속 그 누구도 마력누설지체를 치료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에 위대한 마법 사 가문은 포함되지 않았다·
시조 마법사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으로부터 비롯된 아돌레비트 왕가 에는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가보 가 하나 있다·
‘화령꽃·’
향기를 맡는 즉시 ‘불의 화신’이 신체에 강림한다는 전설 속 보물·
대가로 모든 마법을 잃게 되며 화 신의 불꽃을 제어하지 못하면 나라 하나가 통째로 불타버릴 정도로 폭 주하게 된다는 리스크가 있어 사용 이 철저하게 금지되었으나·
’···어쨌든 살아남는 건 가능하 겠지·’
화신이 강림한다는 건 곧 체내에 신적 존재감이 표류하여 어마어마한 마나를 자연히 소유하게 된다는 의 미·
즉 화령꽃은 마력누설지체를 치료 할 가능성이 있었다·
비록 지금은 왕궁 깊숙한 곳에 봉 인되어 오로지 국왕만이 접근할 수 있지만····
‘왕이 되는 거야·’
여태까지도 그녀는 왕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왔다· 그건 큰 언니가 바라던 일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부터는 더욱 필사적으
로 달려나갈 것이다·
목표는 그의 수명이 다하기 전 스 텔라의 졸업식 날 즉위하는 것·
홍비연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하 였다·
‘나는··· 반드시 왕이 되어야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