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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아이템(4)
간혹 풀레임은 꿈을 꾸곤 했다·
새하얀 날개를 달고 오색빛깔 꽃 으로 가득한 화원을 날아다니는 꿈·
그녀는 아기 천사들과 손을 맞잡고 몽롱한 기분 속에서 여기저기 돌아 다니곤 했다·
무지개를 미끄럼틀 삼아 타고 놀기 도 했으며 구름 위를 뛰놀기도 했 고 보석으로 가득한 호수에서 헤엄 을 치기도 했다·
– 풀레임! 너도 이거 가질래?
– 으응····
그녀는 멍한 눈으로 누군가가 준 선물을 건네받았다· 그것은 황금색 의 고리였는데 마치 태양을 머금은 듯 자체적으로 빛을 띠고 있었다·
– 이걸 머리에 쓰는 거야·
어떤 남자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옆에 있는 또 다른 남자 는 풀레임의 머리 위에 황금색의 고
리를 천천히 가져갔다· 풀레임은 아 직까지 멍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 다가·
“···이 새끼들이 진짜 뒈질라고 환장했나!”
퍼뜩 정신을 차리고서 그것을 바 닥에 내팽개쳤다·
“야! 한 번 더 이 지랄 하면 내가 늬들 날개 깃털 다 뽑아서 오리털 패딩으로 만든다고 했어 안 했어!”
“우 우리 날개는 오리털이 아닌 데····”
“이 새끼가 꼴받게 토를 다네? 너 진짜 일로 와 봐 좀 처맞자·”
“히익! 미 미안!”
그러자 아기천사···가 아니라 성 인 천사들이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대부분이 남성이었으며 그들은 등 에 세 쌍의 날개와 머리에 황금색의 고리를 달고 있었다·
천사·
언제나 천상에서 지상을 굽어보는 가장 고귀한 종족인 그들은 풀레임 의 고함에 고개를 푹 숙였다·
“아오 하마터면 당할 뻔했네····”
풀레임은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혹시라도 천사의 고리가 있는지 확 인하기 위해서였다·
아주 가끔·
정확히는 한 달마다·
마법의 날에 걸려 신체와 정신력 이 허약해지는 때에 이런 일이 발생 하고는 했다·
천사들이 그녀에게 고리를 씌워 천 상의 종족으로 만들어 데려가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꿈속에서 발생하는 일이라 방심했 다가는 그대로 당해버린다·
“푸 풀레임··· 그러지 말고 우리 랑 같이 하늘에서 살면 안 될까?”
“맞아· 지상은 재미없잖아·”
“···늬들이 더 재미없거든?”
허구한 날 악기나 연주하고 과일이 나 따먹는 지루한 삶이 대체 뭐가 재미있단 말인가·
,,내가 죽기 전에는 꿈도 꾸지 마”
그러자 사내들이 시무룩한 표정으 로 고개를 숙였다· 하나하나가 어지 간한 아이돌 그룹 뺨치는 외모였기 에 살짝 마음이 약해질 뻔했지만 풀레임은 고작 외모에 현혹될 정도 로 나약하지 않았다·
“야 내가 졸업하면 가끔 놀러 간 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그때까지 기다려· 괜히 개짓거리 하면 절대로 안 갈 거니 까·”
“그 그건 안 돼!”
“미안해!”
“잘못했어!”
왜들 저렇게 집착하는지는 모르겠 다· 원작 로판에서도 천사가 등장하 긴 하지만 그 자세한 내막이 묘사 되지는 않았다·
대충 눈칫밥으로 생각해 보자면····
아무래도 여성형 천사가 없어서 그 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는 했다·
이곳에 와서 단 한 번도 여성 천 사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풀레임의 핏줄에서는 천사 의 피가 선명하게 흐른다고 한다·
이유는 그들도 모르겠다고 했지만 저 천사의 고리를 쓰기만 하면 그녀 는 완전히 천사로 탈태하여 하늘에 서 살아갈 수 있단다·
‘너희들이 여자친구가 고픈 건 알 겠는데 나는 그래도 인간이 좋단 말이지·’
딱히 연애 생각이 없기도 하고·
인간계에서 죽을죄를 짓는다면 또
모를까 자처해서 이런 지루한 곳으 로 오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빨리 돌려보내 줘· 등교해 야 돼·”
“알았어····”
천사들은 풀레임에게 슬그머니 다 가와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러자 다 시금 정신이 몽롱해지며 세상이 멀 어 졌다·
그때까지도 그들은 그녀를 향해 밝 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명심해 풀레임·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반드시 널 지킬 거야·
* * *
오전 수업 시간·
풀레임은 퀭한 눈으로 칠판을 바라 보았다· 꿈자리가 사나운 탓에 수업 이 집중되질 않았다·
“괜찮아?”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조심스레 물 어왔다· 그럴 만도 했다·
어젯밤 성대하게도 치러진 장례식 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생각
할 테니·
마법 전사를 육성하는 학교에서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죽은 생도의 장 례식을 아주 성대하게 치러준다·
제키가 죽었을 때 역시도 마찬가지 였다·
그 아이는 애초부터 학생들과 사이 가 좋지 않았고 상당히 많은 이들 이 그녀를 혐오하는 수준에 이르렀 었지만 그럼에도 동급생이 죽었다 고 하자 눈물이 새어 나오는 건 어 쩔 수 없나 보다·
많은 학생들이 장례식 때 울었고 그녀를 진심으로 애도하였다·
···풀레임은 울지 않았다·
제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페르소나 게이트에 대한 일은 비밀로 부쳐졌다· 그래서 그에 대한 진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
때문에 사람들은 풀레임이 지치고 힘들어하는 것을 게이트에서 함께 생사를 오가던 동료의 죽음을 잊지 못해서라고 알고 있었다·
전혀 아닌데 말이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교내의 분위기 가 크게 침체되지는 않았다·
2차 시험 기간이 다가왔기 때문이 다·
당장 사는 게 힘들어 죽겠는데 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이 시기가 되면 스텔라의 학생들은 좀비로 돌변한다· 퀭한 눈에 초췌해 진 몰골은 진짜 좀비를 데려와도 구 분되지 않을 정도였다·
“자 다음 문제를 풀어보자·”
교수의 말에 학생들은 다 죽어가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배운 것만 으로도 머리가 과부하된 것 같은데 시험 범위의 진도를 더 나가다니·
‘나는 사용하지도 않는 속성을 대
체 왜 배우란 거야···
대지 계열 속성으로 일정 속도 이 상으로 비행하는 몬스터를 잡을 때 의 궤적을 풀이하던 풀레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원작을 알고는 있지만 수학 적인 지식까지 모두 미리 알 수는 없기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공부해야만 했다·
다행인 점은 ‘고향’의 수학 공식과 유사한 점이 많아서 다른 학생들보 다 훨씬 더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다는 점일까·
풀레임은 고향의 수학 방정식을 섞
은 마법 공식을 사용했는데 발표하 는 순간 학계가 발칵 뒤집힐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들 이 작게 속삭였다·
“망했어· 이번에 못 푸는 문제 하 나 생겼는데 이거 어떻게 하냐·”
“교수님한테 질문하든가·”
풀레임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소 녀들이 굉장히 열 받은 표정을 지었 다·
“으으··· 그 개 같은 마전학 교수 놈 질문하면 어찌나 유세 부리는지· 그렇게 자기 지식 자랑하고 싶을까?
우린 학생인데·”
“맞아· 게다가 그 눈빛도 막 은근 히 무시하는 것 같고· 마음에 안 들 어·”
“후우 풀레임 너는 부럽다· 똑똑하 잖아·”
“뭐래냐· 나도 막히는 문제 많거 드 ”
“그래도 너는 맘 편히 물어볼 사람 있잖아?”
“뭐?”
누구? 감도 안 잡히는 말에 풀레 임이 벙찌자 소녀들이 말했다·
“백유설 있잖아 백유설· 걔 완전 똑똑하던데? 그 머리로 어떻게 꼴찌 했는지 몰라·”
“일부러 꼴찌 한 거 아냐? 〇점 받 는 게 100점 받는 거보다 어렵다고 들었어·”
“그럴 수도 있겠다· 아 나도 걔랑 좀 더 친하게 지낼걸·”
“아서라· 걔는 에이젤 짝사랑한다 는 소문 자자하던데·”
“흐음··· 역시 그렇지? 근데 난 솔직히 백유설이 좀 더 아까운 듯· 에이젤 걔는····”
째릿· 에이젤의 욕이 나오려고 하
자 풀레임이 눈치를 줬다· 그러자 말이 쏙 들어간다·
어쨌든 여학생들의 여론은 학교 전체의 여론과 똑같았기에 대화를 몇 마디 나누면 학교 내에 무슨 소 문이 도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백유설이 에이젤을 짝사랑한다·’
‘그런데 에이젤은 교내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으며 백유설은 은근히 인 기가 많다·’
‘결론 백유설이 아깝다·’
조금만 신경 써도 금세 알 수 있 는 부분이기는 했다· 백유설은 유독 에이젤을 과하게 챙겨주는 편이었으
니까
당장 풀레임만 아는 ‘원작’의 전개 를 떠올려도 그렇지 않던가·
지금껏 에이젤이 겪었어야 할 그 모든 수난과 역경을 백유설이 나서 서 고생함으로써 대부분 차단되었으 며 알게 모르게 그가 뒤에서 도와 주는 것으로 에이젤은 굉장히 안락 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는 지금쯤 아르바이트 구한다 고 또 고생하고 있을 시기였지·’
백유설은 또 어떻게 머리를 굴렸는 지 에이젤의 지갑에 돈이 쌓이도록 계획을 다 해뒀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에이젤이 도움받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도 못 하도록 그녀의 금전적인 문제를 원 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었으니까· 덕 분에 에이젤은 가난에 시달리지 않 고서 무난하게 학창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백유설은 공부 어디서 한대?”
소녀들은 슬그머니 구석에서 졸고 있는 백유설을 바라보았다· 그는 대 체 밤에 뭘 하고 다니는 건지 수업 시간만 되면 꾸벅꾸벅 졸고는 했다·
“S반 자습실에서 조용히 하는 걸
까?”
”맞아· 가끔 A반이나 S반에 그러는 애들 있더라· 우월주의에 빠져서 등 급 낮은 애들이랑 같이 공부 안 하 는 애들·”
“에이 근데 백유설은 별로 그런 거 없던데?”
“맞아· 친구가 좀 없을 뿐이지 딱 히 차별하는 분위기는 없지 않아?”
“그러게· 성격도 시원하고 재미있 던데· 교수님들 털어버릴 때는 속도 시원하고·”
“솔직히 친구가 없는 것도 본인이 자발적으로 아웃사이더가 돼서 그런
거 아냐?”
“근데 왜 사람들이랑 거리를 두는 걸까?”
왜 그러겠어·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모두의 기 억 속에서 잊힐 운명이니까·
그래서 그렇겠지·
풀레임은 쓰게 웃었다·
“자 다음 문제다·”
속성계 이론 수업은 지루함의 연속 이었다· 꾸벅꾸벅 졸면서도 어떻게 든 수업을 듣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
들의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울 정도 였다·
“316mf만큼의 마나를 투자한 ‘아 크 스톤 볼 마법이 북서 방향을 향 해 질주하고 있다· 아크 스톤 볼은 완전한 ‘구’를 이루고 있으며 반지 름은 3·2m 이고 5700rpm 의 분당 회전수를 보여준다·”
또 이상한 개 같은 문제가 나왔다· 학생들이 한숨을 내쉬든 말든 교수 는 아랑곳하지 않고 문제를 제시했 다·
“마법사는 마법에 109mf의 마나를 추가로 투자하여 ‘가속화’를 87mf 의 마나를 추가로 사용하여 ‘중량
화’ 마법을 인챈트하였다· 이때 715 km 거리의 표적에 도달하기 위해서 는 과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가?”
언뜻 보기에는 참 쉬운 문제 같지 만 316mf의 마나가 변수로 작용해 서 머리가 아팠다·
316mf의 마나를 투자한 대지 계열 마법에 가속화를 사용했으니 속력이 올라갈 텐데 중량화를 추가로 사용 해서 파괴력이 높아진 대신 다시 속 도가 느려지는데····
무슨 뜻이냐고?
계산하기가 굉장히 엿같다는 뜻이
다· 머리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올 정도로·
“으어어···
“끄에에····”
“꾸르륵····”
학생들이 앓는 소리를 낼 때쯤 교 수가 아까부터 꾸벅꾸벅 졸던 누군 가를 지목했다·
“자 나와서 풀어볼 사람? 그래 백유설이 풀어보거라·”
“백유설! 졸지 말고 일어나라·”
“에··· 예?”
맨 뒷자리에서 꾸벅꾸벅 졸던 백유 설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일어나 칠 판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하품을 쩍 쩍 내뱉었다·
교수의 눈가에 주름이 잡힐 무렵 주섬주섬 일어난 그가 물었다·
“저··· 근데····”
“왜· 못 풀겠느냐?”
교수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치자 백유설이 멍하니 물 었다·
“계산 환경 조건이 어떻게 되 죠···?”
“조건?”
“증력가속도는요?”
“···뭐?”
제1마력압과 1기압의 상태에서 진행되는 건가요? 공기저항과 마찰 력은 어떡할까요?”
그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교수가 이 를 뿌득 갈더니 소리쳤다·
“다 무시해라· 마찰력도 없고 공기 저항도 없고 중력가속도도 없다는 전제하에 풀어라!”
그러자 백유설은 한참을 고민하더 니 반쯤 졸린 눈으로 조심스레 말
했다·
“저···
“또 뭐가 문제냐?”
“마찰력이 0이면 아크 스톤 볼이 제자리에서 공회전하기 때문에 앞으 로 나갈 수 없는데요····”
교수가 뒷목을 잡았다·
* * *
강의가 끝난 뒤 백유설이 교실을 나가려고 하자 몇몇 학생들의 눈빛 이 변했다·
때는 점심·
그에게 슬쩍 접근해서 밥이나 한 끼 먹자고 할 속셈인 것이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는 밥을 먹으 면서 공부하는 스터디그룹이 성행하 고 있었고 백유설에게 은근히 권해 서 뭐라도 좀 얻어보려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그의 수업 태도가 어떻든 필기 성 적은 최상위권이었으니까·
그들이 선수를 치기 전에 에이젤 은 서둘러 그에게 향했다·
‘나도 요새 막히는 게 너무 많아서 고생이라고!’
다른 학생들에게는 미안하게 됐지 만 그래도 더 가까운 사이인 자신 과 같이 공부를 해주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여 그의 어깨를 잡으 려고 했는데·
“평민 점심 약속은 있나?”
강의실 바깥에서 미리 대기 중이던 홍비연에 선수를 쳤다·
우뚝·
백유설에게 다가가던 모든 학생들 이 마치 시간이 멈춘 둣 정지하였 다· 에이젤 역시 마찬가지로 팔을 뻗은 그 자세로 멈췄다·
“···개인적인 이유는 아니고 다른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중요한 이야기?”
“그래· 나와의 식사가 껄끄럽다면 돌아가도록 할게·”
“아니 뭐 껄끄럽기까지야·”
중요한··· 이야기?
에이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서 백유설의 뒤통수를 한참이 나 바라보았고 그는 홍비연과 눈을 마주한 채로 서 있다가 마침내 입술 을 떼었다·
“흑돼지 점심 특선 스페셜 세트·”
···그건 평소에 자신을 대할 때 와 별 다를 버1 없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였다·
“사줄게·”
“가자·”
그렇게 둘의 약속이 순식간에 성사 되었고 학생들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에이젤은 쉽사리 발을 뗄 수 없었다·
뭔가 이상하고··· 묘한 감정이 들 었다·
그건 참으로 부끄럽고도 기이한 감
정이었다·
‘상실감·’
여태껏 그의 존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서슴없이 먼저 다가왔고 두 껍게 쳐두었던 철벽을 가볍게 무너 뜨리고서 자신의 안에 깊게 비집고 들어왔다·
그러고선··· 내 안에 아주 큰 자 리를 차지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녀는 백유설이 자신과 함 께하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당연하 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를 따라가는 것처럼 그는
나를 인도해 준다·
그런데··· 그건 사실 일방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지 않던가?
백유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만큼 내가 그것을 받아주었던가?
···내가 무슨 생각을·’
퍼뜩 이런 생각 따위나 하는 게 부끄러워진 에이젤은 정신을 차리고 서 발을 돌렸다·
‘오늘 점심은··· 간만에 학식이나 먹어야겠어·’
주섬주섬 전공서를 챙기고서 나가 려는데 누군가가 그녀의 앞을 가로 막았다·
,,안녕?,,
“··•네?”
라면처럼 뽀글뽀글 웨이브 진 갈색 머리칼을 예쁘게 늘어뜨린 소녀· 이 름은 하릴렌· 에이젤도 오가며 들어 본 적이 있는 아이였다·
그렇다고 유명한 학생이냐면 그건 아니다· 그녀는 유난히 문어발일 뿐 특출난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니었다·
정치판이나 다름없는 A〜S반의 삭 막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B반 아래 로는 평범한 여타의 학교와 별반 다 를 게 없다·
하릴렌은 B반이었고 신분도 변방
의 귀족 출신인지라 크게 신경 쓰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하릴렌은 위아래 신분 상관없이 두루두루 어울리는 이른 바 ‘인싸’로 유명했던지라 에이젤 또한 가끔 그녀를 부러운 눈으로 쳐 다보고는 했다·
평범한 여고생·
평범하게 친구가 굉장히 많으며·
아무것도 신경 쓸 것 없이 공부와 친구만이 인생의 전부인 하릴렌·
“너 요즘 얘기 많더라·”
“그···런가요?”
“응응· 내 친구들이 너랑 친해지고 싶다는데 혹시 같이 밥 먹지 않을 래?”
“치 친해지고 싶다구요? 그런····”
“진짜라니까? 그 흠흠· 사실 흑심 이 없는 건 아니거든· 네 얘기를 직 접 듣고 싶은 애들도 많고··· 또 너 공부 졸라 잘하잖아· 그치?”
“그거야 뭐··· 그렇죠?”
“밥 먹고 스터디그룹 할 건데 교 수들한테 물어보는 것보다는 솔직히 동급생끼리 공부하는 게 편하잖아? 그래서 너한테 배워보려고·”
“아····”
에이젤이 고민흐]■자 하릴렌이 표정 을 무섭게 구기고서 말했다·
“너 욕하거나 지랄하는 미친년들 있으면 내가 모가지를 꺾어버릴 테 니까 한 번만 믿어주면 안 돼?”
“너 너무 과격한 단어는 좋지 않 아요!”
“으응? 아하핫! 너 소문과는 다르 게 귀여운 면이 있구나? 어쨌든 같 이 먹는 거지?”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 거절하기 힘들었다· 에이젤은 멍하니 홍비연 과 백유설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 았다·
그 둘은 과연 무슨 이야기를 나누 고 있을까· 대체 ‘중요한 이야기’라 는 게 뭘까· 백유설이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자신이 가장 증오하는 여 자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초조해서 미칠 것 같았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서 하릴렌에게 말했다·
“그···럼 한 번만···· 같이 가요·”
“역시! 자자 가자! 얘들이 기다리 고 있으니까!”
그렇게 에이젤은 하릴렌의 아주 평범한(?) 친구들과 같이 식사를 하 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