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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페르소나 게이트 실습(2)
제9별탑 별구름 카페 테라스·
교칙상 스텔라의 학생이라면 누구 라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비싼 디저트 가격과 귀족들의 텃세 로 인해 이곳은 대부분 귀족이 사용 하는 장소였다·
특히나 테라스는 파벌을 가진 귀족
들이 자신의 파벌원들과 모임을 가 질 때 주로 애용하였는데 굳이 동 아리 부실이 있음에도 이곳을 사용 하는 건 힘을 과시하기 위함이리라·
그건 홍비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능력을 주기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다른 머저리들에게 우습게 보일 수가 있으므로 절대로 빈틈을 내어주어서는 안 되었다·
‘맛없어·’
입에도 안 맞는 홍차를 억지로 마 시며 소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 정말요?”
“그렇다니까요? 코든 남작가의 자
제분이 저한테 글쎄 꽃다발을···
“로맨틱하네요!”
“그런가요? 저는 부담스럽던데·”
“여자로서 너무 부러운걸요· 저도 그런 남자 어디 없나 모르겠어요·”
평범한 귀족 소녀들의 대화였다· 대화 주제도 매일 비슷했다·
요즘엔 어떤 옷이 유행이냐· 어떤 보석이 유행이냐· 어떤 음식이 유행 이냐·
누구누구가 연애질을 하더라네·
누구누구가 뭔 사고를 쳤더라네·
누구누구가 고백했는데 차였다네·
지루하고 영양가 하나 없는 소모 적인 대화의 향연· 이 자리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홍비연은 꼿 꼿하게 자리를 지켰다·
이곳에 모인 한 명 한 명이 모두 내로라하는 권력가들의 자제들이다· 그런 그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건 다 이유가 있어서였다·
“공주님은 아까부터 신수 사전을 읽고 계시네요?”
“아 그러고 보니 2차 시험이 끝나 고 패밀리어 계약식이 있었죠?”
“아하! 벌써부터 미리 준비하시는 군요· 대단하시네요· 저는 신수 사전
을 반도 이해 못 하겠던데요·”
“그러니까요· 공주님은 역시 뭔가 가 남다르다니까요?”
주제의 노선이 갑자기 뒤틀려서 자 신을 향한 아부가 되었지만 나쁘진 않다· 꽤 자주 있는 일이기도 하고· 그러나 지루한 건 똑같았기에 홍비 연은 대충 대답하였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소녀들의 주제 가 또다시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
“아참 그거 들으셨어요? 이거 아 버지가 비밀로 하라고 했는데···
“어떤 거요?”
“이번에 ‘연공난수 교차 술식’을
스텔라의 조수분께서 풀어서 난리였 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공동저자가 있다는 건 다들 아시죠?”
“당연하죠·”
“그 공동저자가 사실··· 스텔라의 학생 중 한 명이라던데요?”
“네에? 그게 정말인가요?”
우뚝· 무료하게 홍차나 홀짝이던 홍비연의 손이 처음으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간만에 홍미로운 대화 주 제가 나온 것이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300년 미흐!] 결 문제인데 학생이 공동저자일까 요?”
“하지만 저희 아버지가 확신했는걸 요·”
“아··· 리첼 양의 아버지는 정보 국장이 시니까 확실하겠네요·”
“그런데 누굴까요? 학생의 신분으 로 미해결 난제를 해결할 정도라니· 분명 연금술 학부의 사람이겠죠?”
역시·
정보국장이고 뭐고 자세히 파헤치 지 않은 사람들은 저 ‘공동저スト‘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 듯싶다·
하지만 흥비연은 누군가의 뒤를 조사하다가 우연찮게도 알아낼 수 있었다·
백유설·
그가 연금마공학의 공동저자라는 사실을·
“그런데 왜 신원을 비공개로 한 걸 까요?”
“그러게요· 사실 이름만 올려뒀을 뿐 도와준 건 아무것도 없는 게 아 닐까요?”
“어머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긴 그런 거라면 저라도 창피하고 미안 해서 신원 비공개로 하겠어요·”
“호호호·”
소녀들이 갖는 의문은 홍비연도 마
찬가지로 갖고 있었다·
왜일까· 목적이 뭘까· 무슨 이유로 그랬던 걸까·
“공주님?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시 나요?”
그러다 퍼뜩 소녀 중 한 명이 자 신에게 관심을 갖자 홍비연은 간신 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 곧 있을 예정인 페르소나 게 이트 실습 때문에 그러신 거죠?”
“그러네요· 공주님은 이번에도 자 신 있으시겠죠?”
그녀들의 말에 홍비연은 살짝 고개 를 까딱였다·
‘페르소나 게이트 실습이라···
페르소나 게이트는 현실의 상식과 완전히 동떨어진 공간이다·
보스를 처치하거나 코어를 파괴하 면 클리어가 되는 심플한 구조의 던 전과는 달리 페르소나 게이트는 ,패턴,과,기믹,을 파악한 뒤 파훼해 야만 그곳을 무사히 클리어할 수 있 었기에 엄청난 사전 준비와 공부가 필요하다·
페르소나 게이트의 농도 분석부터 시작해서 공간 변형률 위상기하학
영혼 격리술 등 수학적인 지식이 어 마어마하게 필요했으며 페르소나 게이트의 수천 가지 패턴과 가능성 에 대한 이해와 암기 등 미리 알아 야 할 것도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나 전투력·
제대로 전투할 수 없으면 제아무 리 똑똑해도 페르소나 게이트를 결 코 클리어할 수 없다·
사실상 마법 전사를 육성하는 이유 가 흑마인들의 페르소나 게이트를 저지하는 것인 만큼 가장 중요한 과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에 진행할 페르소나 게이트 실
습은 4〜18인으로 조를 이루게 되 며 서로 협동하여 어떻게 공략하느 냐가 관건이었다·
스텔라의 1학년 생도는 평균 2클 래스의 수준인 데다가 실전은 처음 이라서 제아무리 엘리트가 모였다고 는 해도 3리스크로 준비될 예정인 페르소나 게이트를 공략하기란 쉽지 않다·
아마도 대다수가 실패할 것이다·
다만 점수를 매기는 부분은 페르소 나 게이트의 기믹을 파악했느냐 팀 원과 어떻게 협력하고 호흡을 맞췄 느냐 적의 공격이나 유사시에 어떻 게 대응을 했느냐이기에 굳이 공략
에 성공하지 않아도 좋다·
물론 대다수가 실패할 수밖에 없 는 페르소나 게이트 실습이었지만 홍비연은 반드시 공략에 성공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자신이 우월하다는 사실 을 증명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야만··· 어머니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테니까·
‘쓸 만한 놈들이랑 매칭됐으면 좋 겠는데····’
카페에서의 모임이 끝난 뒤 기숙 사로 돌아가는 길·
혼자 기숙사로 향하던 홍비연을 누
군가가 불러 세웠다·
“비연아!”
우뚝·
익숙하다 못해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은 목소리· 그러나 이 세상에 서 가장 두려워하고 또 혐오하는 목 소리·
천천히 고개를 돌리スト·
그곳에는 자신과 전혀 닮지 않은 붉은색의 머리칼을 뒤로 질끈 묶은 여인 한 명이 여유로운 미소를 만개 한 채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홍시화 공주님·”
“어머나 언니라고 부르라니까·”
적법자와 사생아로서 운명에 의해 강제로 대적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 던 배다른 언니 홍시화 아돌레비트·
그녀가 이곳까지 찾아와 있었다·
“여기까지는 뭐하러 오셨습니까?”
“글쎄에· 그냥 동생 얼굴 보러 오 는데 이유가 필요할까? 마침 최근 재미있는 일도 있었잖아·”
거짓말이다· 그녀는 결코 이유 없 이 움직이지 않으니까·
“흐응··· 그렇게 노려보지 말고· 맞 아 사실 이유가 따로 있긴 있어·
최근 이 학교에 아주 흥미로운 평 민 한 명이 있더라고· •••그것도 이 제는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기사 도’를 이행하는 평민이 말이야·”
그걸 어떻게 아느냐· 그런 질문 따 위는 무의미하다· 흥시화는 뭐든지 다 알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홍비연이 표정을 굳히자 홍 시화가 입을 한 손으로 가리고서 요 조숙녀 흉내를 내며 웃었다·
“어머나 우리 동생도 그 기사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네? 그럴 만도 하지〜 비숍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 을 바치는 기사라··· 정말이 ス] 그 야말로 모든 ‘공주’들의 로망 아니
겠어?”
공주들의 로망· 언뜻 듣기에는 어 린 시절의 동심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저건 확실히 밑밥을 까는 행위였다·
어쨌건 홍시화나 홍비연이나 둘 모 두 공주였고 ‘여왕’이 되기 위해서 는 백유설처럼 독보적인 인재를 확 보할 필요가 있었다·
하물며 국가도 고향도 없으며 부 모님도 없고 소속도 없는 평민이 그 런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인재라 면····
망설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무튼 그 평민한테 내가 아주 쪼금 정말 쪼금 관심이 있어서 그 러는데 소개 좀 부탁해도 될까?”
“보고 싶으시면 직접 찾아가 보시 든지요·”
“에이 벌써 쟁쟁한 마탑 관계자들 이 몰려갔다가 팽~ 차였다는데? 그 애는 뭔가 하나도 관심 없어 보이더 라구〜”
그녀의 말대로 백유설은 어딘가 이상했다·
일전에 네크로맨서 사건을 해결한 뒤를 떠올려본다·
무수히 많은 마탑과 기업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그 모든 러브콜을 거절하였다·
그때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 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비슷하다·
창피하든 어쨌든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기만 하면 출셋길은 짱짱하게 열리게 될 텐데 어째서 스스로가 그 것을 걷어찬단 말인가?
백유설은 틀림없는 평민이다·
그 황금 동아줄을 어떻게든 전부 휘어잡으려고 노력해도 모자랄 망정 에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건 너 무나도 수상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에 대해 뒷조사 를 해보아도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서 철저하게 지우려는 것처럼 그의 과거는 베일 에 감춰져 있었다·
“대뜸 갔다가 차이는 건 역시 무섭 단 말이지〜 너는 혹시 뭐 아는 거 있니?”
홍비연이 대답하지 않고서 고개를 돌리자 홍시화는 총총 걸어서 그녀
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불쑥 고개 를 내밀었다·
“그러니까 네가 그 애한테 나를 좀 소개해 달라 이거지! 응? 동급생인 데 완전 친하겠지?”
“됐습니다· 알아서 해보시죠·”
“동생이 매정하네에〜”
장난스레 투정 부려봤지만 홍비연 은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홍시화는 은근슬쩍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
“홍비연 옹주님 왜 그렇게 까탈스 러우실까?”
그러자 홍비연의 표정이 와락 구겨
졌다·
“···저는 옹주가 아니라 왕위 계 승에 적법한 자격을 가진 공주입니 다·”
“그렇겠지〜 ‘큰 언니’가 죽어 버렸 으니까 말이야〜!”
우뚝 홍시화의 명백한 도발에 홍 비연의 눈가에 실핏줄이 돋아났으 나 금세 가라앉았다·
익숙하다·
저 피도 눈물도 감정도 없는 싸이 코 같은 년은 자신들에게 부모님처 럼 대해주었던 그 친절하고 아름다 웠던 큰 언니의 죽음마저도 그저 도
발의 소재로 사용하는 미친년일 뿐 이다·
‘···침착해· 나중에 내가 여왕이 되 면 해결될 일이야·’
그리 마음먹고서 자리를 뜨자 홍 시화는 쫓아오지 않았다· 그저 멀리 서 방긋방긋 어딘가 모자라지만 발 랄한 아이처럼 웃으며 서 있을 뿐·
한참을 걸어서 홍시화에게서 완전 히 벗어난 홍비연은 근처의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우····”
“공주님· 괜찮으십니까?”
“린·”
거무죽죽한 정장을 입은 예테린이 다가와 차가운 음료를 내밀자 그제 야 홍비연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 다· 그녀는 하메릴 선생님 다음으로 유일하게 흥비연이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존재였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해왔기에·
“···조금 짜증 나긴 했는데· 그래도 괜찮아· 원래 미친개는 상대하는 게 아니잖아·”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 다·”
“됐다· 네가 무슨 도움을 준다고·”
그리 말하며 홍비연이 일어나려고
하자 예테린이 깜빡했다는 둣 품에 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말씀하셨던 평민에 대해 조사하다가··· 우연히 이런 걸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r
예테린이 넘긴 봉투에는 백유설의 이름이 떡하니 적혀 있었다·
“어떤 과목의 과제물로 백유설 생 도가 제출한 것이랍니다· 거기에 그 의 과거사에 대해 적혀 있다는 이야 기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스텔라의 과제물인지라 원본을 가져오진 못했 고 복사본입니다·”
“그래?”
과제물이라· 하긴 그런 내용을 적 으라는 수업 시간도 있었다·
흐응····”
조금은 기대가 되긴 했다· 아무리 조사하고 탈탈 털어보아도 그 어떤 정보조차 나오지 않던 완벽한 백지 의 백유설·
과연 그의 과거는 어땠을까·
그녀는 호기심을 담아 봉투를 뜯 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