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
5· 던전 실습⑴
“마법의 기원은 다들 알고 있겠지 만 시조 마법사라 불리는 ‘백색의 마법사’가 세상에 마법을 널리 퍼뜨 림으로써 비로소 인간과 이종족들이 마법을 다루게 되었다·”
현실에서처럼 마법도 그 수업이 엄 청나게 세분화되어 있었다·
마나 궤도학 고등과정 기초 마법 학개론 실리와 연출의 연관성에 대 한 고찰 등등····
진짜 별게 다 있다·
그리고 어느 세계에서나 그렇듯 강의는 굉장히 지루하다· 특히 신월 학 교수 레이딘은 특유의 딱딱한 어 조와 날카롭고 공격적인 말투 때문 에 듣는 이로 하여금 스트레스를 유 발하여서 인기가 굉장히 없었다·
“엘프에게는 자연 마법을 드워프 에게는 물질 마법을 그리고 인간에 게는 원소 마법을 전파한 뒤 시조 마법사는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지·
그렇다면 이다음으로 시조 마법사 가 어디로 향했는지 아는 사람 있 나?”
“저요!”
“말하라·”
“천상으로 향하여 천사에게 광휘 마법을 가르치고 지하로 향하여 악 마에게 심연 마법을 가르쳤습니다·”
“정답이다·”
졸리다· 아는 내용이 나오든 모르 는 내용이 나오든 아무튼 수업은 굉장히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이걸 어떻게 3년 동안 듣냐···
하지만 이 수업은 꽤 중요하다· 어 쩌면 ‘진 엔딩’에 가장 가까울 수도 있는 수업 내용이 들어 있었으니까·
레이딘 교수는 그 특유의 잠 오는 목소리로 칠판에 매직펜으로 무언가 를 쭉 나열하였다·
“그러나 시조 마법사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지· 인간의 호기심 은 결코 원소 마법에 그치지 않았다 는 것이다· 인간 마법사들은 세계를 여행하며 이종족들의 마법을 훔치 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현대의 마법 이 완성된 것이지·”
소리 없이 하품하며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 아 있는 에이젤이 유난히 눈에 띈 다· 원래 이 수업을 들었던가? 내가 알기로 신월학을 듣는 메인 등장인 물은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
“인간들은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못 했다· 더 많은 지식과 더 많은 마법 을 원했지· 하지만 인간은 그 이상 마법을 배울 수 없었다· 시조 마법 사는 세상에 ‘십이신월(十二神月)’을 남겨두고서 모습을 감추었기 때문이 다· 이 십이신월에 대해 아는 사람 은 있나?”
드디어 본론이 나와서 귀를 쫑긋 세웠다· 십이신월 저게 바로 내 가
장 큰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어떤 학생이 손을 들자 레이딘 교 수가 지목했다·
“대답하라·”
“십이신월은 대륙의 균형을 수호하 기 위한 수호자로서 불과 천 년 전 까지만 해도 세상 곳곳에 퍼져서 대 륙을 살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맞았다· 그들은 제각각 지닌 특별 한 힘으로 대륙을 수호하였지·”
교수는 칠판에 네 개의 글자를 적 었다·
“예를 들어 여름을 상징하는 신월 적하유월(赭夏六月)’은 적색의 불꽃
을 다루었는데 그 불꽃은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지금도 ‘알라만카의 심해’로 들어가면 그 적색의 불꽃을 구경할 수 있다고 하 니 관심 있는 사람은 들어가 보도 록·”
목소리에는 농담조가 하나도 깃들 어 있지 않았으나 학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알라만카의 심해는 해왕 알라만카가 지배하는 ‘절대금역’으로 서 지상 생명체가 감히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으니까·
아마도 오늘은 1년에 단 한 번 레 이딘 교수가 개그를 하는 날인가 보 다·
번쩍!
“집중·”
허공에 빛이 반짝이며 레이딘이 말 하자 웃음이 뚝 그쳤다· 학생들은 허공에 떠오른 이미지 몇 장에 시선 을 집중하였다·
알라만카의 심해·
빛줄기 하나 들지 않는 깊은 심해 속 세상을 밝히는 새빨간 불꽃이 어떤 거대한 문어의 몸에 둘러져 있 다· 문어는 사슬에 묶인 채 잠들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불꽃이 몸에 붙어 있음에도 타오르지 않았다·
다음의 사진은 ‘레비앙의 해안’이
라는 장소가 찍혀있었다·
바다 한가운데에 발생한 거대한 소용돌이· 직경 500m에 달할 것 같 은 재앙과도 같은 소용돌이가 ‘청동 십이월(靑冬十二月)’이라는 존재의 힘에 의해 통째로 얼어붙어 있었다·
마법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신비로 운 현상· 졸음이 싹 달아날 정도로 놀랍긴 했다·
“이렇듯 신월들은 제각각 고유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모든 신월 이 모이면 아주 특별한 일이 발생한 다고 한다·”
“그게 무슨 현상인가요?”
어떤 학생의 질문에 레이딘 교수의 말문이 처음으로 막혔다·
“그건··· 아무도 모른다· 역사상 단 한 번도 신월들이 모두 모인 적 이 없기 때문이지·”
맞는 말이었다· 신월들은 천 년 전 흘연히 잠든 이후로 결코 깨어 난 적이 없었기 때문·
나는 그나마 게임을 플레이하던 시 절에는 플레이어로서 십이신월의 일 부와 조우한 적이 있기는 하다·
그들의 이벤트를 거친 이들은 신월 에게서 특별한 스킬을 부여받거나 아이템을 받기도 했는데 그것들이
굉장히 사기인지라 자연히 나도 관 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내가 찾아낸 신월은 총 다섯 개·
그마저도 다른 플레이어들의 정보 를 조합하여 아주 고된 고생길의 끝에 간신히 만난 것이며 나보다 더 많이 모은 플레이어는 없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 ‘십이신월이 라는 존재가 어쩌면 ‘진 엔딩’과 직 접적인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 다·
10년이다· 무려 10년이나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수많은 선택지로 게임
을 플레이하며 수많은 엔딩을 보았 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진 엔딩을 보지 못했다면···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콘텐츠에 해답이 있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십이신월·
비록 게임에서조차 극악의 난이도 때문에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겨 가면서 간신히 다섯 개의 신월을 모 았지만····
진 엔딩을 보려면 어쩔 수 없다· 다시 노력해 보는 수밖에·
신월학 강의가 끝난 뒤 다음 강의 를 위해 복도를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저기요·”
“어?“
에이젤이었다· 그녀는 조금 불만스 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와서 말 했다·
“당신 이거 왜 들어요?”
왜 듣냐니· 되게 뜬금없네·”
“대답해요·”
“응 음····”
사실 지금 내가 듣던 이 ‘신월학’ 수업은 그다지 인기가 많은 수업이 아니 었다·
마법이란 마나의 흐름을 수학적으 로 펼쳐서 계산하여 정리하여 제어 하는 것이 기초인데 신월학은 그런 게 전혀 없었기 때문·
굳이 비유하자면 도술이나 주술에 가까웠다· 어딘가에 살아계실지도 모르는 십이신월님께 기도를 올리고 그 힘을 빌어 그들의 특별한 능력을 사용하는 것·
뭐 레이딘 교수도 그렇고 실제로 신월을 숭배하며 신월마법을 사용하 는 자들은 꽤 많다· 다만 이 신월마 법이 보통의 마법보다 장점이 두드 러지게 드러나지 않아서 인기가 없 을 뿐·
어느 지역에서는 신월교회의 신도 들을 이단 취급까지 해가며 내쫓는 다고 할 정도니 세간에서의 이미지 는 별로 좋지 않다고 봐도 됐다·
“그냥 관심 있어서 듣는 건데·”
“···그게 끝?”
“어·,,
그녀는 잠시 입술을 닫고서 고민하 더니 시선을 돌린 다음 내 눈치를 살살 살피며 말했다·
“그럼 그··· 흠흠· 성적과 별로 관 련은 없는 건가요?”
“신월학은 취미인데·”
그나저나 뭔가 이상하다·
“신월학 오리엔테이션 때는 너 없 던 거 같은데· 언제 신청했냐?”
“그 그건·」
그러고 보니 아직 수강정정기간이 던가·
“혹시 신월학 추가로 신청한 거야? 너도 신월학의 매력을 알다니·”
“아니요? 무슨 소리래·”
에이젤은 그리 말한 뒤 몸을 홱 돌려서 사라졌다·
“아니면 아닌 거지 왜 저래?”
의문을 뒤로하고 다음 강의를 듣 기 위해 이동했다· 오늘은 오후까지 강의가 빡빡하게 잡혀 있다·
화르르륵! 쾅! 쾅! 콰아앙!!
거대한 허수아비에 불꽃이 붙더니 어마어마한 폭음을 내었다· ’마법 공격의 실전 활용’ 강의의 실습 시 간· 학생들은 각자의 속성에 맞는 마법을 표적에 난사하고 있는 것·
“무조건 강하게 발사한다고 전부가
아닙니다· 중요한 건 ‘정확도’· 제아 무리 강한 마법을 뽐낸다고 해도 적에게 명중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 도 없겠지요?”
화염 속성계 교수 홍이엘의 말이 떨어スI자 갑작스레 허수아비가 작 아지더니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시작 했다·
학생들의 마법이 허공에 작렬하였 고 그건 홍비연의 마법 또한 마찬 가지였다·
화르륵! 쿵!
허공에 불꽃 덩어리가 쏟아지スト 그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서 신
경질적으로 스태프를 거뒀다·
화력은 막강했으나 전혀 명중하지 못했던 탓이다·
홍이엘은 홍비연을 슬쩍 지나치며 속삭이듯 말했다·
“···아주 형편없구나 비연아·”
움찔 그 말에 안색이 창백해진 홍 비연이었으나 최대한 티를 내지 않 고자 눈을 질끈 감았다· 파르르 떨 리는 입술을 꽈악 깨물고서 다시금 스태프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 아서 스태프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 었다·
“흐 〇
가슴을 콱 조여오는 것 같은 압박 감·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것으로 버텨내고 있자니 식은땀이 줄줄 흘 렀다·
‘티를 내서는 안 돼· 약해진 모습 을 보여서는 안 돼·’
당장에라도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 었지만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텨 내고 또 버텨냈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자 어떤 소녀가 다가왔다·
”와아···· 공주님 대단하세요·”
“•••뭐가?”
“저랑 똑같은 마법을 사용하셨는 데 위력이 세 배나 더 강하시잖아 요·”
저 속 편한 아이는 자신이 무슨 심정인 줄은 알고 저렇게 말하는 걸 까·
“그러면 뭐 해· 쓸데없잖아· 맞히지 도 못하는데· 너는 부럽네· 명중률이 높으니까·”
“···그래도 공주님께서 조금만 더 연습하시면 저 같은 건 비교도 안 될걸요?”
뭐래니· 홍비연은 자신에게 말을 건 소녀의 말을 무시하고서 자리에
서 일어나 스태프를 들었다· 말을 걸어준 덕분에 압박되던 가슴이 어 느 정도 진정되었다·
그러고 보니··· 저 애도 화염계 마법사였던가?’
들어본 적이 있긴 한 것 같다·
‘이름이 아르슈앙이던가·’
바깥에서는 화염계 속성의 역대급 인재가 나타났다며 난리법석이었다 고 들었던 것 같은데 막상 입학하 고 보니 홍비연의 마법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그녀의 마법은 초라했다·
그건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홍비
연은 역대급 인재 수준이 아니라 세계급 천재였으니까· 그저 이길 만 한 상대를 이겼을 뿐이기에 홍비연 은 크게 으스대지 않았다·
“후우····”
그 뒤로도 한참이나 발발발 뛰어다 니는 허수아비를 맞히기 위해 아등 바등하던 홍비연은 강의가 끝남과 동시에 도망치듯 강의실을 빠져나왔 다·
도저히 어머니의 얼굴을 단 1초라 도 더 보고 있기가 힘들었던 탓이다·
“후우····”
휴게실에 찾아온 그녀는 맥없이 자
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 같기도 하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훈련량이 두세 배 이상 많은 탓도 있을 것이고 심 리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한 탓도 있 을 것이다·
“공주님·”
“예테린 왔구나· 음료수 좀 하나 가져다줘· ···덤으로 홍삼 캔디도·”
“여기 있습니다·”
홍비연 공주의 전속 호위 예테린은 여자치고 키가 170cm를 훌쩍 넘길 정도로 상당히 컸는데 덕분에 160 후반대의 홍비연조차 그녀와 시선을
맞추려면 살짝 위쪽을 바라봐야만 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인데?”
“예· 일전에 부탁하셨던 지팡이 개 조 의뢰와 관련된 건입니다·”
“아 그거·”
홍비연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 다· 지팡이 개조라· 간혹 연금술사들 이 지팡이를 개조해서 들고 다니는 경우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마법 전 사가 그러는 건 또 처음 봤다·
‘여러모로 특이한 놈이었지·’
전교 꼴찌인 주제에 중상급의 지팡 이와 공명하고 s반에 올라선 소년·
“마법검은 가능하대?”
“지팡이가 워낙 좋은지라 무난하 게 상등품이 나올 것 같다는군요· 그런데 조금 의문스러운 점이 하나 있답니다·”
“의문?”
“그게···· 지팡이가 계속 소유자의 마나를 빨아들이려고 한답니다·”
“뭐라고? 그거 흑마무구 아니야?”
“그것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자연 의 에너지와 지속적으로 공명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었습니다·”
“뭐 그런 이상한 지팡이를 갖다 놨
대· 스텔라도 이상하네·”
사용자의 마나를 지속적으로 빨아 들이면서 동시에 자연의 마나와 공 명한다? 듣기만 해도 이상하다·
“···그딴 쓰레기 같은 지팡이가 대체 왜 중상급이나 되는 거야?”
“그래서 중상급밖에 안 되는 거랍 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단 표정으로 에테린이 말을 이었다·
“본래의 성능은 사용자의 마력을 폭발적으로 강화시켜 마법의 위력
을 어마어마하게 증폭시키는 효과를 갖추고 있어서 상급 이상으로 배정 되었습니다만 들고 있기만 해도 사 용자의 마나를 빼앗아 가버린다고 하여 중상급으로 하향된 것이었습 니다·”
“사 상급? 그런 걸 학생이 어떻게 쥐어?”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
애초에 공명하라고 갖다 놓은 게 아니란 것 정도는 잘 안다· 그런데 그런 지팡이와 공명을 해버렸다니·
‘그 이상한 평민은 뭐 하는 놈이 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지팡이가 탐나는 건 아니었다·
마법의 위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한 다는 건 신기했으나 사용자의 마나 를 지속적으로 빼앗아 간다는 페널 티가 커도 너무 컸다·
“그딴 지팡이 줘도 안 쓸 거 같은 데· 마나가 태산만큼 많거나 아예 없으면 또 모를까·”
그건 꽤 이상한 말이었다· 마나가 아예 없으면 마법사가 아닌데 지팡 이를 왜 쓸까
“···난 모르겠다· 그 평민이 알아서 하겠지· 나는 원하는 부탁만 들어줄
뿐이니까·”
그 주인도 특이한데 지팡이도 특 이하다·
평민을 기억에 담아둔 적은 딱히 없었지만 백유설은 여러모로 머릿속 에서 오랫동안 떠나가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