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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S반의 낙제생(1)
짹짹· 이른 아침부터 새들의 지저 귐이 싸늘한 겨울의 아르카니움을 가득 채웠다·
스텔라 아카데미의 부지는 아르카 니움에서도 굉장히 넓은 편이었고 내부에 필수적인 요소가 죄다 갖춰 진 터라 학기 내내 학생들은 굳이
외출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리고 부지가 넓은 만큼·
학교 내에는 귀족들의 개인 공간이 상당히 많았다·
어두컴컴한 독방·
홍비연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 다· 그의 앞에는 ‘은가시’라는 별명 을 가진 자연계 화염 원소 전공 교 수 홍이엘이 서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세 문제나 틀렸다고?”
그 싸늘한 표정을 받으며 흥비연은
모든 여학생들이 부러워하는 그 찬 란한 은색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리 고서 고개를 숙였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말씀하시고는 했다· 문제가 틀렸다면 그건 곧 문제를 제대로 읽지 않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짜악!
뺨을 맞았다·
짜악! 짜악!
연달아 세 대·
“고개 들어·”
어머니는 홍비연의 얼굴에 시험지
를 팔락! 흩날렸다· 일부는 그녀의 얼굴에 맞아서 퍽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날아갔지만 둘 모두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다시 풀어· 제대로 이해할 때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이번 배치고사는 기이하게도 어렵 게 출시되었다·
심지어 자신이 틀린 세 문항은 정 답률이 10%도 안 되는 수준이었으 니 이런 어려운 문제를 틀렸다고 해서 수치스러워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수치스러워야만 했다·
그녀의 경쟁 상대라고 할 수 있는 다른 S반의 학생들조차 이 문제를 한 개에서 두 개 정도는 맞혔으며 세 문제를 전부 다 맞힌 학생이 세 명이나 있지 않던가?
심지어 그 세 명은 모두 선행학습 이나 마탑 마법학원 등에서 예습을 받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학생들 이었다·
“심지어 몰락한 모르프 공국의 에 이젤 공녀조차 두 문제를 맞혔다는 군· 그런 벌레들조차 맞히는 문제를 네가 못 맞혔다는 건 너는 벌레만 도 못하다는 뜻이다· 알겠니? 너는 너 스스로를 벌레라고 인지하고서
다시 문제를 풀도록 해·”
“네· 어머니·”
그녀는 멍한 눈동자로 시험지를 다 시 살펴보았다·
창의력 추론 사고력 등을 테스트 하는 이 문제는 홍비연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의문으로 가 득했다·
‘배우지 않은 술식 배우지 않은 주문 배우지 않은 공식으로 이루어 진 문제들·’
대체 이것들을 무슨 수로 풀이하란 말인가? 자신은 그저 배운 대로 살 아왔고 배운 대로 풀이했을 뿐인데·
“가혹하니? 이게 전부 너 잘되라고 하는 거란다· 너는 너는 나처럼 되 지 말아야 흐H· 왕국에서 쫓겨나 이 따위 교수직이나 하는 나처럼 왕국 의 수치로 자라면 절대 안 된다 고!”
왕국의 수치라기에 스텔라 아카데 미의 교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장 뛰어난 마법사들이 모 여 있는 학교였으니까·
하지만 어머니는 스텔라의 교수를 하는 것보다도 더 높은 곳을 원했 다·
이를테면 아돌레비트 왕국을 갖는
다든가·
홍비연의 어머니 홍이엘에게는 불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재능이 부 족하였기에·
그래서 자신의 딸을 보챘다·
딸에게는 자신이 갖지 못한 아름다 운 재능이 원석처럼 반짝반짝 빛나 고 있었으니까·
“널 위해서 이렇게 하는 거란다· 너는··· ‘언니’보다 더 나은 존재 가 되어야 하니까· 응? 엄마 마음 알지?”
잘 모르겠다·
“그럼요 어머니·”
그럼에도 그녀는 이해하였노라고 대답했다·
어머니가 나간 뒤에도 홍비연은 그 문제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의문이 들었다·
대체 이 문제를 푼 학생들은 정체 가 뭘까· 어떻게 왕국에서 가장 뛰 어난 마법사들을 초빙하여 세 살 때 부터 마법을 공부해온 자신이 풀지 못한 문제를 풀어낸 것인가·
그리하여 왜 자신을 괴롭게 한단 말인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원한을 가슴 깊 이 파묻고서 홍비연은 그 가냘픈 손으로 시험지를 쥐었다·
오늘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옅은 조명밖에는 없는 이 어두컴컴 한 독실에서 나갈 수 없을 테니까
* * *
자랑은 아니지만 이전 생의 나는 그럭저럭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스텔라 아카데미에 입학하
게 되면 동급생들과 적당히 친분 좀 쌓아보려고 했다· 이전 생이 어쨌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고 혹 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니 최대 한 알차게 살아보려고·
그런데 S반이라니·
사교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특이 한 놈들만 가득한 S반이라니·
시작부터 망했다·
“에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나의 등급에도 여러 개의 반이 있는 F〜A반과는 달리 S반은 단 하 나의 반밖에 없다· 천백사십일 명
중에서 41명만이 S반이니 그럴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반의 교실을 열고 들어서スト 절반 이상의 학생이 자습을 하고 있었다· 미치겠다· 분위기부터 다르다·
너네 그렇게 공부 열심히 하지 말 라고· 공부 못하는 놈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놀고 있을 텐데· 예를 들 면 나 같은 놈이라든가·
조용히 뒷자리로 가서 착석한 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는 얼굴이 많았다· 2D 혹은 3D 화면에서 애니메이션 연출로만 봤던 캐릭터들이 실제 인물이 되어 이렇
듯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었 다·
게다가 대부분이 네임드인지라 하 나같이 5년에서 10년 정도만 지나 도 이름 날리는 유명인이 될 예정이 었다·
스칼벤 제국의 황태자와 만월탑주 후계자 등등 이번 기수에는 하나같 이 거물들밖에 없었다·
물론 전부 긍정적인 의미의 ‘거물’ 은 아니었다·
마유성을 포함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다섯 명 정도의 마법사가 미래 에는 마법계를 배신하고 돌아설 가
능성이 있었으니까·
‘그걸 여주가 좀 막아주면 좋을 것 같긴 한데···
과연 어떻게 될까·
오른쪽 뒤쪽 구석 자리에 앉아서 자습을 하고 있는 흑단발의 소녀를 힐끗 쳐다본다· 내가 아는 풀레임은 잊어야 한다· 저기 저 풀레임은 그 어떤 플레이어도 경험해보지 못한 오리지널의 풀레임이다·
그녀가 만들어갈 미래는 나조차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건 그저 미 래의 단편적인 사건에 대한 정보들 ー叩ー
‘아직 이 세계를 평범한 로판이라 고 생각하는 풀레임의 눈에 띄는 건 별로 좋지 않아·’
원작 소설과 다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하면 내 존재를 견제할 수도 있으니까·
‘그나저나 되게 눈치 보이네·’
내가 그들을 관찰하듯 S반의 몇몇 학생들 역시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백유설이라는 열등생이 왜 s반이 되었는가· 그에 대한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자신들은 뼈 빠지게 노력해 서 이 자리에 있는데 나 같은 게 섞여 있으니 짜증이 날 법도 하다·
그런데·
“···쟤가 걔라고?”
“그렇다기엔 조금 얼빵하게 생겼는 데····”
“아니· 아버지가 교수진에게 연락 해서 직접 물어보셨다더군· 쟤랑 저 기 구석에 저 여자애가 틀림없어·”
“흐음···· 조금 하는 애들인가?”
짜증 난다는 표정보단 뭔가 뭐랄 까·
‘견제하는 듯한···?’
그럴 리가 없는데· S반에 올라온 게 문제인 건가?
생각보다도 태평한 S반 학생들의 모습에 나는 조금 긴장할 수밖에 없 었다·
진작에 난리가 나서 교무실에 찾아 가 문의 넣은 A반 학생의 숫자가 벌 써 수십 명을 넘어간다고 한다· 그만 큼 자신조차 S반에 들어가지 못했는 데 나 같은 낙제생이 S반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운 사람 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들이 받은 대 답이 모두 똑같았다는 것·
‘백유설은 S반에 갈 자격이 있다·’
그렇단다·
그래서 나는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 다· 솔직히 F반은 개찐따 같잖아· 이왕 다시 사는 거 S반에 눌러 앉 으련다·
‘물론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될지도 의문이긴 한데···:
모든 반은 매번 시험 때마다 성적 에 따라서 반이 바뀐다· F가 A로 올라가는 역주행에 성공할 때도 있 고 반대로 A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S반에도 예외는 없다· 다만 한 번 S반에 올라올 경우 다시 내려가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 뿐·
아 그러고 보니 게임에서도 A반 에 내내 머물다가 훗날에야 S반으로 간신히 올라오던 남학생이 한 명 있 던가·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딱히 인상이 좋은 놈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서로가 서로를 관찰하면서 침묵이 흐르는 와중 나는 주머니에 서 자그마한 박스를 꺼내서 열었다·
[스텔라 회중시계]
최고의 명문 마법 학교 스텔라의 생도임을 증명하는 시계로서 어지
간한 마법 전사 자격증보다도 훨씬 더 높은 취급을 받는 아주 특별한 물건이다·
이걸 가지고 있으면 어마어마한 대 우를 받는다고 했던가· 뭔가 내가 직접 시험 쳐서 들어온 건 아니었지 만 그래도 뿌듯함이 들었다·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니 강의실에 마흔 명의 학생이 모였다· 이백 명은 거뜬히 수용할 만한 강당 에 40명밖에 없으니 어쩐지 허전하 다·
정확히 8시가 되자 강의실 앞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섰다·
S반 담당 교수 이한월이었다·
그의 등장 하나만으로 공기가 사하 게 가라앉았다· 그 압도적인 분위기 에 어떤 학생은 침을 꿀꺽 삼킨다·
거무죽죽한 피부 얼굴 여기저기 새겨진 무수히 많은 흉터 근육질로 가득한 덩치에 사람 하나 죽일 듯한 눈빛을 하고 다니니 제대로 눈을 마 주치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반갑다· 이한월이다·”
별다른 설명은 필요치 않았다·
7클래스의 마법 전사 이한월·
그의 명성은 유명하다· 숱한 전장
과 던전을 거치며 수많은 전장을 승 리로 이끌었고 사냥에 성공한 흑마 인이 네자릿수에 달한다는 소문까지 퍼져 있을 정도였다·
싸우는 마법사라고 하면 500년 전 까지만 해도 천대를 받았다· 마법은 학문이었고 책상에 앉아 고상하게 연구를 하는 학자라는 이미지였으니 까·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다르다· 전투 마법사가 학자 마법사를 천대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 세상에는 지금도 끊임없이 흑마 인들이 현실에 구멍을 뚫어 게이트 를 열고 있으며 마법사들은 그것들
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S반의 담당 교수가 이한 월이 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 다·
이곳 스텔라 아카데미에 모이는 마법사들은 싸우는 법을 배우기 위 해 모인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학생들은 천천히 둘러보던 이한월 은 마지막으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뛰어난 학생들이 많이 모였군· 그리고 아주 특이한 학생도·”
전자는 나를 제외한 다른 학생들을 말하는 것일 테고 후자는 나를 뜻 하는 거다· 병신이 아닌 이상 알 수
밖에 없다·
그러든 말든 나는 이한월의 시선을 덤덤히 받아주었다· 알아서들 생각 하라ス 1·
“너희도 알다시피 이곳은 싸우는 마법사를 양성하는 아카데미다· 일 명 ‘마법 전사’로서 앞으로 너희들 은 3년 동안 고등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이한월이 말을 시작하자 모든 학 생들이 집중하였다· 그의 목소리는 교실 전체를 감싸는 기백이 있었다·
“수도 없이 많은 선배들이 포기했 다· 우리가 상대해야만 하는 적들은
강력하고 아카데미의 수업 또한 혹 독하기 때문이ス1· 너희가 모두 따라 와 줄 거란 기대는 전혀 하지 않는 다· 다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 한의 의지를 보여주었으면 좋겠군·”
이 세계는 모든 것들이 마법으로 돌아간다· 일상생활에 쓰이는 모든 물건에 포함된 기술은 물론 던전 게이트 또한 모두 마법으로 이루어 져 있고 심지어 괴수조차 마법 생명 체다·
생명의 근원도 마법이며 구름이 떠다니는 이유와 우리가 발붙일 수 있는 중력조차 마법으로 해석이 된 다·
그런 우리 세계를 이면 세계’로 물들이려는 마법사 집단 흑마인을 저지하는 것이 우리 마법 전사들의 의무이다·
‘내 의무는 아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이 학교에 앉아 있을 뿐 솔직히 훈련을 내가 버틸 수 있을지 어떨지조차 모르겠다·
“흑마인을 퇴치하겠다는 의무로 이 곳에 입소한 학생도 있을 것이고 그저 돈이 된다는 이유로 입소한 학 생도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이유라 도 상관없다· 그저 단단한 의지로 그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만
갖추고 있다면···
이한월이 나름대로 멋진 연설을 펼 쳐가려는 그때·
드르륵!
뒷문이 열리며 어떤 학생이 들어 왔다·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뒷문에 는 은색의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 린 여인 아니 소녀가 당당한 걸음 걸이로 걸어 들어왔다·
홍비 연이었다·
,지각···?
그 누구보다 원리원칙을 중요시여 기는 그녀가 지각이라니· 이제 보니 그녀의 뺨이 불그스름하다·
‘벌써 뭔 일 있었나·’
대충 그녀의 집안 사정은 파악하고 있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에 직박구리 안경으로 정 보를 확인해 보았다·
[홍비연 아돌레비트]
악녀
불법(불쓰는 법사라는 뜻흐)
홍삼캔디 챙겨 먹음
가끔 지 혼자 불탐
커피는 ‘아칼리아 식’으로 드립한 에스프레소만 마심
엄마가 나쁜 년
무조건 죽음
그것을 확인하고서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걸 본다고 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게 거의 없었기 때문· 애초 에 홍비연은 유명한 캐릭터였고 저
기에 적혀 있는 것들은 대부분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였다·
‘과거의 나는 왜 조금 더 부지런하 지 않았는가·’
더 세세하게 기록해 뒀으면 지금 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인 데·
‘뭐 그래도 아예 모르는 캐릭터는 아니니까·’
심지어 저 ‘죽음’이라 기록된 이유 도 대부분은 알고 있다· 어찌 보면 에이젤보다도 더 개복치라고 볼 수 있다·
에이젤이 죽는 이유는 거의 전적으
로 풀레임 한 명 때문이었는데 홍 비연은 풀레임과 에이젤 둘 모두가 원인이 되었으니까·
악녀의 숙명인지라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죽는다는 운명을 알고는 있 으니 살■릴 수만 있다면 살리고야 싶 지만 내 코가 석 자다· 나는 이 학 교에서 최약체라고 해도 무방했는데 누가 누굴 돕는단 말인가·
그녀는 에이젤 다음으로 온몸에 불 행의 아우라를 두르고 다니는 비운 의 여인이다· 미안한 일이지만 최대 한 저 여자와는 거리를 두는 수밖에 없겠다·
”그만 자리에 가서 앉도록 해라·”
이한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홍비 연은 오른쪽 구석 자리에 힐끗 시선 을 두더니 이내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내가 있는 곳으로 성큼성 큼 다가와 정확히 내 뒷자리에 착 석하였다·
그에 등에 한가득 식은땀이 흘렀 다·
‘•••뭐여·’
200명이나 앉을 수 있는 강의실이 기에 빈 좌석이 160석이나 있는데 도 내 뒤에 굳이 앉은 이유는 뭐 지?
···우연이겠지?
과대망상은 남자의 죄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자·
그렇게 애써 태연한 척을 하려고 해도 뒤에서 따갑게 느껴지는 시선 을 무시하는 건 불가능했다·
어째 시작부터 학교 생활이 단단히 꼬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