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8화
248. 드라마 전쟁 3
“얼마나요?”
-10.2%요!
수 목 드라마에서 첫 화에 두 자릿수의 시청률이 나온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고 한다.
“돈의 축제는요?”
-9.9%입니다. 아슬아슬했어요.
김성운 PD는 맨 마지막까지 아슬아슬하게 시청률 경쟁을 하다 ‘만신 월아’가 나오는 장면에서 겨우 이겼다고 말한다.
-아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시작부터 엎치락뒤치락하더니 끝에 똬악!
‘만신 월아’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이겼다는 사실이 고무적이었지만 다른 구간의 시청률도 궁금했다.
“혹시 미소가 나오는 부분에서 시청률은 어땠습니까? ‘돈의 축제’에 밀리지는 않던가요?”
-이야. 그게 또 피가 말리는 부분인데······.
아역이 출연하는 장면은 보통 시청률이 떨어지곤 한다.
하지만 미소가 나온 부분만큼은 <돈의 축제>의 시청률과 엎치락뒤치락할 정도로 잘 나왔단다.
그리고 주영인과 유진이의 연기가 나올 땐 시청률 차이가 1% 이상 벌어졌다고 한다.
-후반부에 좀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결국엔 이겼으니까 뭐. 다 잘됐습니다.
미소와 유진이 그리고 진유정 여사까지 모두가 1화부터 <돈의 축제>에 승리를 거뒀다.
난 그 승리의 공을 김성운 PD에게 돌렸다.
“PD님이 편집을 잘하신 덕에 저희가 이긴 것 같습니다.”
김성운 PD가 날아갈 듯한 목소리로 대꾸한다.
-으하하. 제가 뭘 한 게 있다고요. 시나리오도 좋고 배우들이 연기를 잘한 공이죠. 스태프들도 밤낮없이 고생도 많았고.
그런데 그 순간 김성운 PD의 목소리 뒤로 웅성거림이 들린다.
-국장님이 찾으셔서 그만 끊어야겠습니다. 나중에 현장에서 뵙죠.
“아 예. PD님.”
달칵.
전화가 끊기자 나도 모르게 긴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순간 곁에 있던 이영진이 날 쳐다보며 묻는다.
“팀장님. 어떻게 되었답니까?”
구성철 실장을 비롯해 팀장들까지 모두가 날 빤히 쳐다보고 있다.
난 브이 자를 그리며 외쳤다.
“10.2%!”
순간 모두의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뭐야 1화 만에 두 자리라고? 미친······.”
당황한 사람들의 소리에 이영진이 다급히 묻는다.
“그 그러면 돈의 축제는요? 우리가 이긴 건 맞죠?”
“당연하지. 거긴 9.9%!”
“와 대박~! 진짜 아슬아슬했는데요?”
구성철 실장이 흐뭇하게 웃는다.
“거 소이영도 별것 아니네!”
오덕구 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게 아니라 우리 미소랑 유진이가 너~무 잘한 거죠!”
“아 그게 그런가?”
난 곧장 유진이에게 전화를 들었다.
시청률에서 이겼다고 말하자 폰으로 환호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작은 차이였지만 확실한 승리를 거둘 수가 있었다.
* * *
[수목 드라마 1라운드. <신의 이름으로> 승리!]
[<신의 이름으로> 아역들의 놀라운 연기력!]
[충무로의 블루칩 소이영 체면을 구기다!]
[주영인과 정유진의 신들린 연기 대결!]
[<신의 이름으로> 마지막 백발의 노파. 그녀의 정체는?]
회사 숙직실에서 눈을 뜨자마자 폰으로 어제 방송에 관한 기사들을 확인했다.
“이젠 아예 못 막네. 한 대표.”
한세화 대표가 돈을 써서 기사면을 도배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비록 0.3% 차이의 승리였지만 확실히 승부가 갈린 까닭이다.
부스스한 머리를 누르며 숙직실을 나오자 출근하던 직원들이 저마다 축하를 하기 시작한다.
“어제 잘 봤어. 재미있더라. ‘신의 이름으로’.”
“정 팀장. 1화 시청률이 10.2%라면서? 이거 이러다가 나중에 30% 넘기는 거 아냐?”
연신 축하에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시작인데요 뭘.”
“뭘 또 그렇게 겸손을 떠나? 하여간 대단해. 정 팀장?”
선배들의 칭찬을 들으며 난 회사 2층의 샤워실로 향했다.
빠르게 씻고 나와 머리를 말리는데 배우 1실의 방상영 실장이 들어온다.
부스스한 머리가 집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실장님. 어제 회사에서 주무셨습니까?”
“어. 우리 조 배우 촬영 때문에 지방에 갔다가 왔거든. 너무 늦어서 그냥 사무실에서 잤어.”
“숙직실에서 주무시지 그러셨어요.”
“내 방에 야전 침대가 있잖아. 그게 더 편해.”
방상영 실장은 기지개를 펴더니 내게 축하를 건넸다.
“어제 드라마 잘 봤어. 미소랑 유진이의 연기력이 보통 아니던데?”
“시청률도 잘 나왔습니다.”
“그래. 이겼다면서?”
“예. 0.3% 차이지만요.”
“그게 어디야? 이긴 건 이긴 거지.”
그런데 옷을 벗던 방상영 실장이 내게 슬쩍 묻는다.
“그런데 말이야. 마지막에 나온 그 배우가 누구야? 정 팀장이 관리한다던데?”
“아 진유정 여사님이요? 소개를 받아서 임시로 제가 케어해 드리고 있습니다.”
“임시라······.”
잠깐 말을 삼키던 방상영 실장이 내게 말한다.
“이참에 우리 회사로 오는 게 어떻겠냐고 한번 찔러 봐. 중견 배우 풀이 넓은 것 같지만 쓸 만한 사람은 또 얼마 없어.”
방상영 실장의 눈까지 속인 걸 보니 ‘만신 월아’가 사람들을 속였다는 확신이 다시 한번 들었다.
“말은 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방상영 실장이 툭 하고 말을 꺼낸다.
“그런데 내 제안은 생각해 봤어?”
“제안이라뇨?”
“1실로 오는 게 어떻냐고 이야기했었잖아.”
방상영 실장의 눈에 실린 탐욕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왜? 배신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래?”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하다 솔직하게 답했다.
“절 여기까지 끌어준 구 실장님이나 오 팀장님과 더 오래 하고 싶습니다.”
객관적인 매니징 능력과 수완만 보면 방상영 실장은 강감찬 대표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니 실장인데도 이기철 이사나 김동수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거고.
하지만 난 그의 밑으로 갈 생각이 없었다.
그에게 배울 건 없고 어차피 난 나만의 실을 만들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대답에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온다.
“말은 똑바로 하지. 정 팀장을 끌어준 건 구 실장님과 오 팀장님이 아닌 거로 아는데?”
“예?”
“유진이 레슨 선생을 쳐낼 때부터 구 실장이랑 싸우면서 자기 의견을 관철했다면서?”
대체 누가 그 이야기를 한 건지 궁금해할 무렵 방상영 실장이 속내를 읽고 먼저 말한다.
“주 팀장이랑 한잔하다가 들었어. 그렇다고 주 팀장이 내 끄나풀이라는 건 아니니까 오해는 말고.”
말이 없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막상 단둘이 되자 생각보다 말을 많이 하고 있었다.
“구 실장님과 의견 충돌은 있었지만 그 뒤로는 계속 절 지원해 주셨습니다.”
“흠 그렇다 이거지······.”
방상영 실장이 한숨을 내쉬더니 갑작스레 표정을 바꾸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그럼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도 될까?”
“뭐든지요.”
“3실에서 성호준을 데리고 오는 데 문제가 생겼다던데 혹시 자네가 꾸민 일이 아닌가 해서 말이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대체 어떻게 안 거지?’
하지만 난 놀란 감정을 가까스로 숨기고 그의 말을 받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방상영 실장이 빙긋이 웃는다.
“시치미는. TVM 대기실에서 정 팀장과 성호준이 만났다면서? 그래도 모른다고 할 셈은 아니겠지?”
방상영 실장의 인맥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TVM의 대기실에서 있었던 일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날 대기실로 갈 때 날 마주한 건 TVM의 보조 스태프 몇 명 정도밖에 없다.
아무리 조심을 한다고 했어도 내가 대기실로 들어가는 걸 보는 사람이 있었을 수 있고.
‘설마 이걸 빌미로 협박을 하려는 건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다짐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혹여 말실수라도 해서 꼬투리를 잡힐 수는 없었으니까.
내 표정을 본 방상영 실장이 두 손을 위로 들어 올린다.
“워워~ 오해하지 마. 이걸로 정 팀장을 협박하려는 건 아냐. 이미 말했을 텐데. 난 정 팀장 편이라고?”
하지만 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거 오해를 하게 만든 것 같군. 미안해. 내가 이 정도 능력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야. 정 팀장이 1실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관심보다는 살짝 겁이 나는데요?”
방상영 실장이 눈을 흘기며 웃음을 터트렸다.
“난 내 품에 정 팀장을 안을 수만 있으면 좋겠어. 내가 바라는 건 고작 실장 정도에 그치지 않거든.”
그러고 보니 김동수 이전에 회사의 에이스로 널리 이름을 알렸던 사람이 방상영 실장이다.
나는 방상영 실장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담긴 뜻을 읽을 수가 있었다.
-내 라인으로 들어와라.
방상영 실장이 이제껏 강감찬 대표의 라인과 서예종 라인 어디에도 들지 않은 이유를 이제야 알 수가 있었다.
그는 1실이라는 테두리 하에 자신의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신경이 바짝 곤두서기 시작했다.
설마 이런 꿍꿍이를 숨기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난 경계를 사지 않기 위하여 생각을 보겠다고 말했다.
“진지하게 고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아 참 그리고 걱정하지 마. 성호준이 정 팀으로 간다고 해도 난 정 팀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거야. 김동수 그 인간이 잘 풀리는 건 싫거든.”
“그건 다행이네요.”
“그러면 난 씻고 또 외근이 있어서······. 정 팀장도 수고해.”
방상영 실장은 무거운 주제를 아무렇지 않게 던진 뒤 손을 흔들며 샤워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 * *
방상영 실장의 말이 꽤 신경이 쓰였지만 도저히 정신을 팔 겨를이 없었다.
오늘 방송되는 <신의 이름으로> 2화는 미소나 ‘만신 월아’의 도움이 아닌 오직 주영인과 유진이의 연기력으로 소이영을 맞서야 했기 때문이다.
온종일 우먼즈와 예뜨랑에 관한 일을 처리하다 보니 2화가 시작될 밤 10시가 되었다.
“팀장님. 시작합니다.”
<신의 이름으로> 2화의 시작은 만신 월아가 1화 끝에서 보여준 장면부터 시작했다.
오싹한 분위기를 연출한 ‘만신 월아’가 사실은 ‘청명’의 엄마라는 걸 알려주는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그 이후 유진이가 주연 배우들을 도와 범인을 잡는 장면이 나왔다.
좁은 골목길에서 남자 주인공 박남철과 여자 주인공 주영인은 ‘귀신들린 범인’에게 혼쭐이 나기 시작했다.
씨름판 천하장사 출신의 귀신이 들린 유도 선수라는 설정이라 두 사람은 이리저리 던져지고 있었다.
그때 여대생 무당인 청명 즉 유진이가 하늘하늘한 분홍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골목으로 뛰어온 유진이는 등 뒤로 화구통을 메고 옆으로는 샤넬 백을 메고 있었다.
『잘들 한다. 나 형사요. 나 검사요. 그렇게 잘난 척들 하시더니~? 겨우 잡귀 한 마리에게 얻어터지기나 하고 있어? 대한민국 국민들 참 불쌍해. 공권력이 이렇게 한심하니 누굴 믿고 생업에 종사하겠어?』
유진이는 한숨을 내쉬더니 태연하게 미용실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두 주연이 신나게 얻어터지는 동안에 말이다.
『끄으으윽. 야! 청명! 너 나 죽는 거 안 보여?』
잡귀에게 빙의된 범인이 휘두른 주먹에 명치를 맞은 박남철이 바닥을 기며 외치는데 유진이는 전화를 끊지 않았다.
『좀 기다려 봐. 통화 끝나면 도와줄 테니까. 네~ 선생님. 오늘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갈 거 같아요. 예약은 내일로 바꿔주세요. 예~ 그 시간 좋아요.』
순간 주영인이 외쳤다.
『미친! 야! 무당년아! 지금 미용실 예약이나 할 때야? 우리 다 죽는다니까? 꺄아아아악!』
액션 배우에게 달랑 들린 주영인이 고래고래 고함쳤다.
하지만 미용실 원장과 태연하게 통화를 마친 유진이는 샤넬 백과 화구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예약한 게 아니라 니들 때문에 예약을 변경한 거야. 내가 빙의된 인간이 범인이라고 말해 줄 땐 정신병자 취급을 하더니······. 하여튼 머리 검은 짐승들은 꼭 얻어터져야 정신을 차려요.』
유진이가 투덜대면서 화구통에서 무당 방울과 신 칼을 꺼냈다.
그리고 양손에 무구를 쥐고 맑은 목소리로 독경을 시작했다.
『청상신장 대장신~ 지하신장 대장신~』
유진이의 목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좁은 길에 퍼져 나간다.
그 순간 유도 선수 출신의 악역 배우가 휘청대기 시작했다.
『잘한다! 우리 무당!』
『청명! 계속해!』
박남철과 주영인의 응원을 받은 유진이가 신이나 방울을 흔들었다.
그 순간 귀신 들린 범인 역의 배우가 목표를 바꿨다.
유진이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배우를 보며 짜증을 버럭 내기 시작했다.
『더러운 잡귀가 어딜 감히······.』
유진이가 더욱 거세게 방울을 흔들자 범인 역의 배우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 틈을 타 경찰인 남자 주인공 박남철이 수갑을 채우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갑작스레 벌 한 마리가 유진이의 눈앞에 나타났다.
『꺄악~!』
요란한 비명과 함께 독경이 끊긴 순간 ‘귀신들린 범인’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와장창!
얼굴이 붉어진 범인은 박남철을 잡아서 담벼락으로 집어 던졌고 기어코 옷 수거통까지 뽑아 유진이에게 집어 던져 버렸다.
유진이는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피했지만 유진이가 애지중지 들고 온 분홍색 샤넬 백은 아니었다.
바닥에 내려놓았던 샤넬 백은 녹색 옷 수거통에 깔려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유진이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저게 감히 우리 분홍이를!』
샤넬 백에 이름을 붙인 유진이는 화구통에서 또 하나의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유진이가 화구통에서 꺼낸 건 양손에 끼는 철제 너클.
극 중 ‘청명’은 강신을 통해 ‘신’을 자신의 몸에 직접 받을 수 있다.
유진이는 너클을 끼고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기이한 목소리로 외쳤다.
『넌 오늘 뒈졌다고 복창해!』
그와 동시에 유진이 인생 첫 액션 연기가 펼쳐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