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2화
242. 찌라시
“정 팀장. 생짜 신인을 밀어도 해준다던가?”
“제가 데리고 있는 강하나만 하더라도 아직 지상파고 케이블이고 나간 적 없는 생짜 신인 아닙니까? 그래도 되냐고 물었는데 신경도 안 쓰던데요?”
방상영 실장이 씨익 웃는다.
“그러면 우리 1실에 쓸 만한 신인이 하나 있는데······.”
그 순간 이기철 이사가 나섰다.
“방 실장. 멋대로 침 바를 생각하지 말게. 다른 실장들이나 팀장들도 바라는 좋은 기회를 왜 탐을 내고 그러나?”
“이사님. 아무나 밀어준다고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밀면 뜰 가능성이 있는 아이를 올리는 데 써야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전 전인수를 추천합니다.”
2년 뒤 광고계의 블루칩 소리를 듣게 되는 배우 전인수의 이름이 나왔다.
하지만 이기철 이사가 배우 3실에 신인 여배우 조예린을 거론했다.
“인수를 밀 바엔 예린이를 밀어야지! 배우 3실의 예린이는 스타그램 팔로워가 10만 명이 넘어. 조금만 더 밀어주면 크게 뜰 수도 있는 애야!”
“그건 아니죠. 예린이는 이미 한번 기회를 받았잖습니까? 그리고 힘들게 예능에 꽂아줬더니 이상한 드립을 날리고 거하게 말아먹은 게 누군데요?”
조예린은 회사에서 힘을 써 지상파 예능에 고정으로 꽂아줬는데 병풍 노릇만 하다가 한 달도 안 되어 잘려버린 여배우였다.
“말아먹어? 야 너 말 다 했어?”
이기철 이사가 격앙된 반응을 보였지만 방상영 실장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 뒤론 팀장들마저 끼어들어 자기 배우를 어필하기 시작했다.
서로 간에 언성이 높아지며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구성철 실장이 헛기침하며 싸움을 중재했다.
“잠깐만. 우리끼리 싸우기 전에 일단 정 팀장 이야기 좀 들어봅시다. 정 팀장이 아직 할 이야기가 남은 것 같은데요?”
그 말과 동시에 실장과 팀장들의 눈이 내게로 향했다.
내가 해 달라는 건 뭐든지 해줄 분위기.
두 프로를 어차피 혼자 먹지 못할 바에는 이렇게 내 능력을 어필하고 원하는 걸 얻는 게 낫다 싶었다.
“저기······ 그리고 이참에 정 팀에 배정된 노후 차량을 교체해 주셨으면 합니다. 요새 차가 덜덜거리는 게 이러다가 사고 날 것 같아 겁납니다.”
유진이가 타던 차는 새 차로 교체되었지만 이태풍과 하루 앞으로 배정된 25만 km의 승합차 2대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동안 안전 때문에 이태풍은 자기 승합차를 하루는 내 벤츠 승용차를 사용 중이었다.
하지만 ‘조건 없는 프로’를 내놓은 덕에 30만 km는 타야 바꿔주겠다는 원칙 따위는 쏙 들어가 버렸다.
“크흠. 오래되기는······ 했지?”
“하긴 뭐. 그 정도면 바꿀 때가 되었지. 큼.”
다들 헛기침만 내뱉고 반대하지 않자 강지영 본부장이 주변을 쓱 훑어보고 말한다.
“그러면 한 대는 벤츠 스프린터로 다른 한 대는 신형 국산 밴으로 바꿔드릴게요. 그럼 될까요 정 팀장님?”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어차피 다 먹지 못할 프로 하나로 오랫동안 숙원이었던 일 하나를 처리해버렸다.
* * *
-정 팀장님. 우리 좀 뵐 수 있을까요?
최종혁과의 스캔들 사건 때 도와줬었던 최지영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최지영은 알토란에 들어온 조수영을 직접 만났다며 잘 돌봐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 말한다.
그런데 만나서 해줄 이야기가 있다며 조수영의 집에서 보자고 말한다.
전화로 하기는 조금 껄끄럽다면서 말이다.
알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고서 곧장 유진이와 함께 조수영의 집으로 향했다.
조수영의 반지하 방에는 이미 알토란 기획의 박우민 이사와 최지영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박우민 이사와 최지영과 인사를 하고 나자 조수영이 환대를 한다.
“팀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유미가 팀장님 얼마나 찾았는데요~ 좀 받아주세요.”
조수영의 품 안에 있던 유미가 활짝 웃으며 외친다.
“음빠빠빠!”
“유미야. 잘 있었어?”
“으음빠!”
난 조수영에게서 유미를 건네받았다.
유미는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더니 얼굴을 비벼대며 날 반겼다.
“그래. 그래. 삼촌도 반가워.”
“으빠!”
유미의 등을 토닥이며 진정시킨 뒤 거실 바닥에 앉았다.
“잘 지내셨어요?”
“예. 정 팀장 덕분에요. 그리고 이것 좀 먹어봐요.”
최지영이 씨익 웃으며 가지고 온 한과를 내민다.
“감사합니다.”
최지영이 가져온 한과를 한입 물었다.
부드러운 한과가 입에 스르륵 녹아내린다.
그 순간 유미는 자기 입에도 한과를 넣어달라며 내 옷깃을 흔들었다.
“음빠빠빠~아!”
동그란 한과를 작게 잘라 유미의 입에 넣어주자 유미가 빙긋이 웃는다.
“음빠!”
맛있다는 듯 유미가 두 손으로 손뼉을 쳐댄다.
“맛있어?”
“음뺘뺘!”
최지영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유미 쟨 나한테도 안 오더니 정 팀장님한테는 왜 저리 달라붙어 있나 모르겠네?”
최지영은 내가 오기 전에 유미를 안아보려다 실패를 했단다.
조수영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요. 유미 쟤 윤호 오빠만 보면 저래요.”
“그래?”
“네. 거기다 윤호 오빠가 가고 나면 땅바닥에 고개를 파묻고 통곡을 한다니까요?”
조수영이 액정 모서리가 살짝 깨진 폰으로 유미를 찍은 동영상을 보여준다.
동영상에선 유미가 바닥에 얼굴을 대고 엉덩이를 치켜든 채로 빼액 하고 울고 있었다.
내가 집에 간 이후 찍은 영상이란다.
“풉. 애가 무슨 나라를 잃은 것처럼 울어?”
유진이 역시 키득거리며 웃는다.
“원래 윤호 오빠가 애들한테 인기가 많아 수영아.”
“그래요?”
조수영이 되묻자 유진이가 미소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준다.
“우리 윤호 오빠가 애들한테는 마성의 남자라니까?”
장난스레 웃던 유진이의 시선이 조수영의 폰에 닿았다.
“그나저나 수영아. 이따가 폰 사러 가자. 내가 언니 된 기념으로 폰 하나 사줄게.”
“아 아니에요. 유진 언니. 아직 제 폰 멀쩡해요.”
“싫어. 내가 보기 싫으니까 바꿀래.”
유진이가 장난스레 폰을 뺏자 최지영이 잘 됐다며 웃었다.
“우리 수영이는 좋겠네. 새로 생긴 언니가 이런 것도 챙겨주고?”
“네······.”
조수영이 얼굴을 붉히며 좋은 티를 내었다.
조수영을 토닥인 최지영은 그제야 날 보자는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자세를 바로 한 최지영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유진이 너 찌라시에 언급되는 거 알고 있니?”
“찌라시요?”
“말하기가 좀 어렵긴 한데······.”
난 최지영에게 뭐든 괜찮다며 말해달라 부탁했다.
최지영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유진아. 너 정 팀장이랑 사귀니?”
청천벽력과도 같은 발언에 유진이가 당황해 손을 휘휘 저었다.
“아 아니에요. 선생님.”
나 역시 냉큼 대답했다.
“저희 그런 사이 아닙니다.”
여배우와 매니저의 스캔들?
유진이와 내가 늘 붙어 다니다 보니 그런 눈빛으로 보는 호사가들이 있다.
그래서 난 경계하고 또 경계했다.
그런데 수군거리는 사람이 최근에 늘어나고 있단다.
말도 안 된다고 말하자 최지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래. 지금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그런 실수를 하면 안 되지.”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게 이런 이야기였을 줄이야.
하지만 최지영이 뜬금없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그런데 최 배우님. 그 소문은 어디서 들으신 겁니까?”
“여배우들 모임에서 이야기가 나왔어요. 유진이가 훈남 매니저랑 사귄다고요.”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배우들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입에 오르면 매니저들이 아는 건 한순간.
아니 어쩌면 그 반대가 되었을 수도 있고.
뭐가 되었든 간에 기자들 귀에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다.
“이제 막 드라마가 공개될 텐데 그런 찌라시가 돌면 안 되잖아. 확인도 할 겸 경고도 할 겸 불렀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로 대책부터 세우겠습니다.”
지난번에도 유진이와 최종혁의 스캔들이 터지는 바람에 일순간 드라마의 시청률이 떨어진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 그런 일을 또 겪을 순 없었다.
급히 구성철 실장에게 까톡을 보내는 사이 최지영이 유진이의 손을 잡고 토닥였다.
“유진아. 스타가 될 때 겪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해.”
“이미 최종혁 씨랑 한번 겪어 봤잖아요.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그리고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별일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마. 그래도 말이야······.”
최지영은 노파심에 말한다며 자신이 겪은 연예계의 경험을 유진이에게 전해주기 시작했다.
선배와 후배가 대기실의 크기가 작다고 양보하라며 싸우는 건 예사고 협찬 의상을 놓고 다투는 것도 비일비재하다는 것도.
심지어 본인도 선배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싸우기도 했다는 이야기까지 한다.
남자에게 이용당한 조수영도 눈을 끔뻑이며 그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최지영이 조수영에게도 단단히 입막음을 시킨다.
“수영아. 너도 이 업계에서 입소문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지? 노파심에서 말하는데 너도 유진이 찌라시는 절대 입 밖에 내지 마라.”
조수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저 유미를 가지고도 입 한 번 안 열었어요.”
“하긴. 그동안 묵언 수행을 한 넌데 널 안 믿으면 누굴 믿겠니.”
이야기를 끝낸 최지영은 따로 준비한 선물이 있다고 말했다.
“수영아 넌 조만간 숙소부터 옮기자. 어머니랑 같이 살 수 있는 곳으로 알아봐 줄게.”
알토란 기획은 보안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신축 투룸을 숙소로 몇 개 가지고 있단다.
“저 정말이요?”
“그래. 여기서 별로 멀지도 않으니까 앞으로는 조금 더 깨끗한 환경에서 유미 키우고 일도 열심히 해. 알았지?”
“가 감사합니다.”
눈물을 훔치는 조수영을 보자 품에 안긴 유미가 손을 휘휘 젓는다.
“음마마! 아아!”
마치 엄마 울지 말라는 듯 외치는 유미의 모습에 조수영이 급히 눈물을 닦는다.
품 안에 있는 유미가 엄마에게 가고 싶다며 몸을 비틀었다.
유미를 거실 바닥에 내려놓자 유미는 기어서 엄마에게 다가갔다.
아픈 엄마를 달래주고 싶은 듯.
“유미야. 엄마랑 좋은 집으로 이사 갈까?”
고개를 갸웃하던 유미는 엄마가 웃자 따라서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꺄아아하!”
유미를 품에 안은 조수영은 힘든 삶을 정리하고 부활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 * *
KNET의 손양섭 대표는 전광석화처럼 일 처리를 하기 시작했다.
손양섭 대표는 내부 감사로 횡령의 증거를 발하자 아이스톤 엔터를 ‘애플 기획’이라는 다른 자회사로 통합해 버렸다.
그리고 나운석 대표와 양은철 실장을 탈탈 턴 다음 검찰에 넘겨버렸다.
김도진은 협박 폭행 사기 갈취 등등의 죄목으로 당분간 감옥에서 나오기는 힘들게 되었다.
아이스톤 엔터 소속으로 오디션 프로에 출연 중인 박예슬과 최소영은 애플 기획 소속이 되었고.
그리고 강하나의 구독자 수는 빠르게 증가세를 보이며 12만 명을 향해 가고 있었다.
손양섭 대표에게 2개 프로를 약속받은 나는 그중 강하나를 대상으로 ‘바닥 찍고 다시 하나!’라는 리얼 관찰 예능을 만들기로 했다.
‘바닥 찍고 다시 하나!’는 8월 20일부터 시작해 9월 11일까지 총 8화에 이르는 내용.
강하나가 음악방송에 데뷔하기 전날까지의 연습과 일상을 다룬 예능으로 기획했다.
우리가 제출한 기획은 손양섭 대표의 약속대로 수정 없이 받아들여졌고 지금은 담당 PD까지 정해졌다.
그렇게 급한 일들을 정리하고 나자 <신의 이름으로>와 <먹방의 대가> 첫 방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난 직원들을 회의실에 모으고 준비 상황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자자. 다음 주에 유진이랑 하루 첫 방송인데 준비 상황부터 체크 하자. 언론사 보도자료는 어디까지 업데이트되었어?”
홍보팀 김미혜 대리가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과거 배우 히스토리부터 드라마 스토리 요약본이랑 현장 씬 스틸컷까지 전부 업데이트했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그런데 이영진이 기분 좋은 소식을 한 가지 더 전해온다.
“팀장님. 우먼즈에서 급하게 유진씨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하죠?”
“우먼즈?”
여성 잡지 우먼즈는 현재 한국 발행 수위 1위에 빛나는 여성 잡지.
그 우먼즈의 8월호 메인 특집 기사는 <돈의 축제> VS <신의 이름으로>가 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 기사는 주연 배우들과 작가들의 인터뷰였기에 조연인 유진이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런데 유진이에게도 ‘최근 가장 핫한 신인 여배우’라는 섹션을 주겠다며 인터뷰 제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것도 메인 특집 기사 바로 다음으로.
“단독 섹션을 준다는데 무조건 해야지. 그런데 인터뷰는 언제래?”
“25일로 하자고 하던데요.”
“25일이면 이틀 뒤네?”
드라마 방영이 코 앞이라 시간이 빡빡했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내야 했다.
최영은 편집장은 앞으로도 10년간은 잡지 1위 편집장의 위치에 머무르는 사람.
미리미리 잘 보여야 한다.
“한다고 해.”
“그러면 바로 우먼즈 편집부에 연락해서 사전 질문지부터 받겠습니다.”
“그래. 질문지가 오면 나한테도 한 부 보내주고.”
“예. 팀장님.”
이어서 정상봉이 <먹방의 대가> 현장 진행 상황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하루가 현장에서 NG를 거의 안 내고 있어 촬영이 순조롭습니다.”
<신의 이름으로>는 7월 29일 그리고 <먹방의 대가>는 7월 31일에 첫 방송을 하게 된다.
이제 두 드라마의 첫 방송까지 남은 시각은 약 일주일.
오랫동안 준비한 유진이와 하루의 성공을 위해 빠짐없이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다.
그리고 2시간도 지나기 전 우먼즈로부터 사전 질문지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