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3화
173. 스타일리스트 1
회귀 전의 이미리 스타일리스트는 돈에 살고 돈에 죽는 여자였다.
뉴욕 패션계와 좋은 인맥을 유지하고 있는 자신의 힘으로 소속 스타들의 미국 진출을 도왔다.
그 실력을 인정한 회사는 그녀의 요구대로 매년 연봉을 올려줬었다.
이미리의 몸값은 첫해에는 1억으로 그리고 거의 매해 1억씩 뛰었다.
결국 내가 죽기 전까지 이미리의 연봉은 7억까지 뛰어 나와 김동수를 제외하고는 사내 최고 연봉을 받는 신분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 다른 직원들에게 ‘돈에 환장한 X’이란 비난까지 듣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 속에 콱 박힌 돈에 대한 한은 내가 감히 재단하기 힘들었다.
체납된 딸의 병원비를 벌겠다고 원양어선을 탄 남편은 6개월 만에 태평양 한가운데서 실종되고 그 보험금 지급마저 늦어져 결국 딸마저 수술도 못 받고 죽어버렸기에.
하지만 그런 사정을 모르는 도란희는 여전히 쫑알거리며 잔소리를 해왔다.
“팀장님. 스타일리스트는 샵을 돌면서 의상을 찍어와야 한단 말이에요. 현장 경험이 없는 사람은 힘들 다니까요?”
“너 나 못 믿어?”
도란희가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믿죠. 완전 충성.”
“믿을 거라면 반만 믿지 말고 100% 믿어라. 이미리 씨 일하는 거 보면 너도 깜짝 놀랄 거야.”
이미리는 험한 뉴욕 뒷골목에서도 직접 발품을 팔며 샵을 찾아다니던 파이팅 넘치는 사람이다.
스스로가 발탁한 무명의 디자이너를 일약 스타로 만든 경험도 있고.
그 일에 비하면 한국 협찬 대행사에서 옷을 받아오는 일 정도야.
거기다 오직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분이 뉴욕 패션 위크에 올라온 런웨이 의상도 받아올 수 있는 분이야.”
도란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건 탑 셀럽이나 가능하지 않아요? 아······ 우리 체리블라썸도 탑 셀럽이라 가능한가?”
얘가 설레발은.
“체리블라썸이 잘 나가긴 해도 단타야. 벌써 탑 셀럽이라고 자처하는 건 뻔뻔하지.”
“그러면 어떻게 의상을 받아 와요?”
이미리는 제2의 마크 제이콥스 제2의 베라 왕이 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뉴욕으로 몰려든 재능 있는 신인들과 절친한 사이란 걸 말했다.
“대박이다. 근데 왜 일도 못 구하고 놀고 있대요?”
“질투 때문에.”
“네?”
“한국은 한국 패션계가 따로 존재하니까. 인맥이 없는 외국계 경력자가 파고들기 쉽지 않다더라.”
“아······”
“그리고 딸이 계속 아파서 일에 집중 못한 것도 있고.”
그제야 도란희가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건 난 본부장님 만나고 내려갈게. 먼저 차 시동 좀 걸어줄래?”
“그러면 지하 녹음실 가서 거기 식구들 한 번 더 체크하고 주차장에서 기다릴게요.”
도란희는 서둘러 짐을 챙겨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난 심호흡을 하고 이미리를 처음 찾았을 때의 기록을 다이어리에서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0]
[날짜 : 2021년 2월 1일]
-PM 08:00 이미리 스타일리스트의 외동딸 채은별. 한마음병원장례식장. 화환 배송.
‘역시 그대로구나.’
당시 뉴욕 출장 중이던 김동수가 누군가로부터 이미리를 추천받았었다.
그래서 내게 이미리를 찾아보라 했었는데 하필이면 그날이 그녀의 딸인 채은별이 사망한 날이었다.
-내 이름으로 장례식 화환 하나 보내라. 니가 직접 찾아가서 조문도 하고.
당시 조문을 가서 만났던 이미리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있다.
남편과 아이를 연달아 잃고 반쯤 넋이 나갔던 그 처참한 모습이.
그렇기에 난 이번엔 이미리를 영입하면서 딸과 남편까지 모두 다 구할 생각이었다.
기껏 이미리를 영입했는데 두 사람이 사고를 당한다면 말짱 도루묵이 될 게 뻔했으니까.
그리고 그녀가 그런 끔찍한 아픔을 겪게 할 생각도 없었다.
내 팀원이 겪는 아픔은 곧 내가 겪을 아픔이었으니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일단 강지영 본부장을 만나야 했다.
내 계획에는 꽤 많은 돈이 필요했으니까 말이다.
* * *
서울 한마음병원.
초췌한 모습의 두 부부가 원무실 밖 복도에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대화하고 있었다.
“여보. 어떻게 하지? 은별이 병원비 이번 주까지 안 내면 퇴실하래.”
남자가 한숨을 푹 내쉬며 물었다.
“얼마······랬지?”
“체납액은 3천만 원이 넘는데. 일단 3백만 원이라도 내면 한 달은 더 연장해 준대.”
이미리와 채상우.
미국 패션 업계에서 잘 나가던 젊은 두 부부는 갑작스러운 딸의 소아백혈병 발병에 한국으로 들어와 악전고투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아~.”
이미리의 푸념에 채상우가 다시 긴 한숨을 내 쉬었다.
전날까지 동대문 의류센터에서 짐을 나르고 한숨도 안 자고 달려왔지만 자신의 상태보다 딸이 더 걱정되고 있었다.
“알았어. 내가 뚱이 엄마한테 일수라도 빌려볼게. 난 은별이 이렇게 포기 못 해.”
일수는 사채를 쓰지 못하는 사람이 최후에 쓰는 돈.
하지만 조만간 원양어선을 탄다는 약속을 했기에 선금 2천만 원을 받으면 해결할 자신이 있었다.
그 탓에 채상우가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 있게 말했다.
이미리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애써 참으려 노력했다.
채상우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패션지의 편집자로 살면서 평생 몸 힘든 일을 해본 적이 없던 사람이었으니까.
약한 체질에다 잘 먹지도 못하는데 밤새 시장에서 원단을 나르느라 가느다란 팔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리가 입술을 꾹 깨물며 말했다.
“여보.”
“응?”
“미안해.”
채상우가 고개를 갸웃한다.
“뭐가 미안해?”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은별이가 저렇게 된 거잖아.”
7년 전 38살에 애를 낳은 이미리는 자신이 너무 늦은 나이에 은별이를 낳았기에 딸이 아픈 거라며 자책했다.
그 말을 들은 채상우가 벌컥 화를 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당신 나이랑 은별이 아픈 게 뭐가 상관있어? 내가 그 소리 하지 말랬지? 그리고 우리 은별이 나을 수 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채상우가 말을 잇지 못했다.
돈.
돈만 있으면 딸 아이의 목숨을 구할 가능성이 있었다.
의사가 말하길 다른 소아백혈병 환자보다는 양호한 편이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골수 이식 수술을 받을 돈도 없고 그렇다고 치료를 계속 받을 돈도 없기에 채은별의 상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엄마. 밖에 아빠 왔어?”
병실 안에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티 없이 맑은 목소리였지만 힘이 없이 바르르 떨리고 있다.
채상우가 아내의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여보. 은별이 앞에서는 웃기로만 했잖아. 응? 그러니까 눈물 그쳐.”
“아 알았어.”
“나만 믿어. 다 방법이 있으니까.”
채상우는 원양어선을 탈 계획은 끝까지 숨겼다.
아내가 알면 반대할 걸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그래도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딸도 살리고 아내도 살려면 말이다.
채상우가 가슴을 치며 하는 말에 이미리는 눈물을 닦고는 남편의 거친 손을 잡았다.
“알았어요. 여보.”
이미리가 자신의 손을 잡는 순간 채상우는 손을 빼려 했다.
“안 씻어서 더러운데 왜 손을 잡고 그래.”
“더럽긴. 이 손만큼 멋있고 고운 손이 어디 있다고.”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에게 짜증을 내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자자. 우리 딸이 찾는다. 어서 보고 나 다음 일하러 가야 해.”
“응. 알았어요.”
이미리는 애써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고 남편과 함께 병실로 향했다.
드르륵.
6인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창백한 피부의 채은별이 눈을 반짝이며 앉아 있었다.
아빠가 올 때면 아픈 티를 지우고 씩씩하게 웃어주는 채은별이 아빠를 향해 두 팔을 내뻗고 있다.
“아빠~.”
“아이고~ 우리 딸. 더 예뻐졌네?”
6인실의 가족들은 일부러 인사도 받지 않기 위해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채상우는 일을 세 개씩 하느라 이 짧은 시간도 낭비할 수 없었으니까.
채상우는 아내가 건네준 물티슈로 손과 얼굴을 닦은 뒤에야 채은별을 안았다.
아빠를 안은 채은별이 해맑게 말한다.
“헤헤. 아빠. 나 이제 안 아파. 다 나은 거 같아.”
“정말?”
“응! 그러니까 이제 퇴원해도 돼! 나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 우리 엄마 김치찌개 짱 잘하잖아.”
채은별이 머리를 가린 토끼 모자를 쓰고 생글대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채상우는 딸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
아빠와 엄마가 돈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걸 아는 탓이다.
채상우는 울컥하는 심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아빠가 보기에도 우리 딸 많이 좋아진 거 같긴 해. 근데 선생님이 허락하시면······ 그때······ 그때 나가자. 응?”
채은별이 실망스러운 듯 입술을 삐죽 내민다.
“아빠는 맨날 그 소리야. 나 괜찮다니까? 이거 봐봐!”
채은별이 두 손을 위로 치켜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채은별의 안색이 빠르게 나빠졌다.
채은별은 몸을 웅크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헉헉······”
“은별아. 은별아. 괜찮아?”
“헉헉. 괘 괜찮······아. 엄마.”
쌕쌕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채은별의 등을 이미리가 받쳤다.
“은별아. 엄마 여기 있어. 응? 우리 아가. 엄마가······ 미안해.”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채은별의 숨이 가빠져 오고 있다.
아빠가 자신을 보는 동안에는 아픈 티를 안 내려고 했던 딸의 모습에 채상우는 눈물을 더는 참지 못했다.
그 순간 회진을 돌던 의사와 간호사가 6인실의 병동으로 들어왔다.
채상우가 다급히 의사에게 달려가 가운을 잡고 매달렸다.
“선생님. 제발. 돈은 곧 준비할 테니까 뭐든 좀 해주십시오. 네?”
김성태라는 이름의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보호자 분. 채은별 양에게는 더는 치료를 할 수가 없습니다.”
채상우가 발끈하며 외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내 딸이 아프다잖아! 돈 구해올게. 돈 구해올 테니까 애부터 좀 어떻게 해달라고!”
의사가 두 주먹을 꾹 쥐며 고개를 숙였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라지만 병원의 지시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달간 무려 3천만 원이나 밀린 환자였으니까.
곁에 있던 간호사가 얼굴을 찡그리며 대신 말을 더했다.
“보호자 분. 죄송하지만 채은별 환자에게는 더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항암제 부작용 때문에 그러는 거니까 조금 기다리면 진정될 겁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내가 장기를 팔든 뭘 해서라도 돈 가져다줄게. 그러니까 애한테 뭐 좀 해달라고! 제발!”
“이러신다고 변하는 거 없습니다. 원무과장님이 특별히 지시한 거니 저희에게 뭐라고 하지 마세요.”
그 말을 끝으로 간호사도 입을 꾹 다물었다.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더했지만 큰소리로 편을 들어주진 못했다.
다들 사정이 좋지 않아 자기들도 병원비 수납을 걱정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미리는 남편의 애원을 보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자신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딸의 등을 두드리며 빨리 고통이 가라앉길 바라는 것뿐이었으니까.
남편인 채상우가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어도 요지부동인 의사를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병실에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들어오며 외쳤다.
“채은별 양 병원비 지금 바로 완납하겠습니다. 그러니 당장 치료부터 해주십시오!”
한 남자의 흥분에 찬 목소리가 병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 * *
채은별의 병실에 들어가니 어이없는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이제 7살인 채은별은 가슴을 부여잡고 괴로워하고 있고 이미리는 딸을 붙잡고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고 아빠인 채상우가 아이를 살려달라고 의사에게 매달리는 데도 의사와 간호사는 눈을 꾹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고.
그놈의 돈이 뭔지.
조금 전 원무과에서 확인한 체납 병원비는 무려 3212만 원.
엄청난 비용이라는 걸 알지만 체납되었다고 의사가 치료조차 안 할 줄은 몰랐다.
“지금 제 말 못 들으셨습니까? 제가 치료비 전액 지급할 테니까 치료하시라고요!”
나는 강지영 본부장과의 협상 끝에 이미리의 연봉 이외에도 2천만 원까지 병원비 지원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리고 남편인 채상우까지 영입하면 1천만 원까지 더해서 부부 합산 총 3천만 원의 병원비 지원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은 이미리와 계약을 하지도 않은 상황.
법인카드를 썼다가는 문제가 될 수 있었기에 일단은 내 카드를 내밀었다.
“란희야. 내 카드로 긁어.”
“한도에 걸리지 않아요?”
“오기 전에 한도 늘려놓고 왔으니까 괜찮아. 일시불로 긁어.”
“아 알았어요.”
도란희가 내 카드를 받은 뒤 곧장 뛰쳐나갔다.
난 의사를 보며 외쳤다.
“이제 됐죠? 어서 애 좀 살펴보라니까요?”
그제야 의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만 확인하겠습니다.”
의사가 채은별의 등을 받치고 있던 이미리를 뒤로 비끼게 했다.
청진기를 대어보고 몇 가지를 확인하더니 산소마스크를 씌우고는 주사를 꽂아 넣었다.
잠시 후.
채은별의 얼굴이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