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9화
“····”
라온은 입구로 들어오는 카룬을 살피며 눈매를 얇게 좁혔다·
‘중무전 검사들이 없군·’
카룬도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었는지 중무전 검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도 홀로 탑을 오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광풍전주도 다른 이들을 놔두고 온 모양이로군·”
카룬은 자신의 뒤에 있는 제이나와 마법사들을 보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었지?”
그는 지금까지의 일을 말해보라는 듯 턱을 까딱였다· 버렌이 보이지 않으니, 그간의 상황이 궁금한 것 같았다·
“몬티로의 상황을 그대로 그려냈던 층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카룬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맡겼다라····”
카룬이 자신의 눈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달싹였다·
“비슷하군· 우리도 각 방에 들어가서 마물을 잡아내야 하는 층이 있었다· 그곳을 수하들에게 맡기고 홀로 올라왔지·”
그도 수하들에게 뒤를 맡기고 올라왔다며 무겁게 턱을 내렸다·
“모렐 님은 어떻게 되셨나요?”
제이나가 모렐 카잔의 이름을 말하며 두 손을 모았다·
“그는 그 다음 층을 맡아주었소· 보이는 것 이상으로 믿을 만한 남자였지·”
카룬은 모렐 덕분에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며 검에 손을 얹었다·
“모두를 이끌고 이곳까지 올라와 줄 사람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요·”
그는 모렐 카잔을 신뢰하는 듯 제이나에게 턱을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제이나는 카룬의 확신에 마음이 놓은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헌데 여기는····”
카룬이 두 개의 입구와 중앙에 있는 대련장, 그리고 반대편 벽에 붙어 있는 출구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음, 광풍전주가 왜 성격이 더럽다고 했는지 알겠군·”
그 역시 그 층의 존재 이유를 알아차린 듯 눈썹을 내렸다·
“네· 두 입구에서 나온 사람 중 한쪽만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라온은 추잡한 곳이라며 혀를 찼다·
“역시 그렇군·”
카룬이 짜증 어린 시선으로 대련장을 보고 있을 때 쇠를 긁는 듯한 기괴한 음성이 들려왔다·
[출구와 이어진 입구는 오직 한 곳뿐이다·]
이 층을 지배하는 층주가 보낸 메시지 같았다· 예상했던 대로 놈은 모두를 위로 올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벽과 문을 부숴보았나?”
카룬은 층주의 메시지에는 관심이 없는 듯 바로 라온에게 질문을 던졌다·
“예· 전력으로 쳐봤지만, 깨지지 않았습니다·”
라온이 짧은 한숨을 내쉬고서 고개를 저었다·
“흑탑의 외벽처럼 응축된 마기와 아티팩트를 이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자신의 무력은 지금까지 중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무리 마기를 응축시켰다고 해도 아예 흔적을 낼 수 없는 것을 보면, 특별한 아티팩트를 이용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그런가·”
카룬이 느릿하게 검을 들어 올려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출구를 내리쳤다·
쿠와아아아아아!
초월의 영역을 끌어 올린 듯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폭발했지만, 문과 벽에는 자그마한 흠집도 생기지 않았다·
“그 말대로군·”
카룬은 예상을 하고 있었다는 듯 담담하게 손을 내렸다·
“층주는 처음부터 없었나?”
그는 이제 층주를 찾으려는 듯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예·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라온이 아예 기척이 잡히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마기가 제멋대로 휘몰아치고 있어서 본왕도 찾기가 힘드니라·
라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공간이라며 눈매를 찌푸렸다·
-다만 너희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확실하느니라·
녀석은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며 눈동자를 돌렸다·
‘그렇겠지·’
지금까지 만났던 마인들은 시간을 끌려는 목적을 지녔음에도 자신을 죽일 기회를 잡기 위해서 끊임없이 짙은 시선을 보내왔다·
“층주들은 본인이 지닌 고유 영역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우리의 길을 막으려고 하더군· 흑탑주가 준비하는 게 역전의 무기인 모양이다·”
카룬은 최대한 빨리 올라가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
라온이 고요한 기파를 두른 카룬을 훑어내리며 입맛을 다셨다·
‘이 사람이 정말 카룬 지그하르트일까?’
카룬이 처음 이 층에 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가졌던 의문이다· 저 사람이 진짜 카룬일 수도 있지만, 마인이 모습을 바꿨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중무전주님·”
라온이 카룬을 바라보며 검병에 손을 얹었다·
“하나만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나를 의심하는 건가?”
카룬은 자신의 생각을 읽었음에도 표정의 변화 없이 시선을 돌렸다·
“나쁜 판단은 아니로군· 좋다·”
그는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좋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당황할 만한· 그리고 대답을 하기 어렵지만 내가 답을 알 수 있는 질문이 좋겠지·’
라온은 카룬을 당황하게 만들 질문을 떠올린 후 천천히 입술을 뗐다·
“카룬 님은 버렌을 사랑하십니까?”
더 자극을 강하게 주기 위해서 중무전주가 아니라, 카룬이라고 부르며 버렌에 대한 애정을 물었다· 예전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질문이지만, 오늘 본 카룬의 모습을 통해 확신이 생겼다·
“음····”
카룬은 버렌에 관한 질문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답을 해주십시오·”
라온은 답을 하지 않으면 바로 베겠다는 듯 제천검을 뽑았다·
“그 질문은 시기에 따라 다르게 답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지금 묻는다면····”
카룬은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다시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사랑한다· 지그하르트와 맞먹을 정도로·”
그는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지그하르트와 버렌을 비슷하게 사랑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억!
라스가 카룬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저, 저놈 가짜이니라! 눈깔이 아빠가 저럴 리가 없느니라!
‘아니, 진짜야·’
라온이 짧게 입맛을 다셨다·
‘스스로 말했듯이 저 사람은 많이 변했으니까·’
카룬은 질투와 욕심에 눈이 멀었던 과거를 진심으로 반성한 덕분에 초월에 올랐다·
지금은 버렌의 수련에 밤새도록 어울려주고, 조금 전에는 모두가 있는 곳에서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것을 축하해주기도 했다· 현재의 카룬이라면 저런 애정 어린 답을 하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나도 질문을 하나 해도 되겠나?”
카룬은 냉랭한 시선으로 턱을 까딱였다·
“말씀하시시오·”
머뭇거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룬 역시 자신을 의심하고 있을 테니, 질문을 받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네가 지그하르트의 가주가 된다면 무엇을 할 생각이지?”
“지그하르트의 가주····”
라온이 눈매를 깊게 찌푸렸다· 가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기에 머리가 하얘졌다·
다만 이전에 글렌이나 리메르와 했던 대화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는 떠올려 두었다·
“저는 지그하르트를 가장 높은 곳에 올리기보다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오황오마 중 최강이 되는 것보다 가문의 사람들이 편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고 말하며 시선을 들어 올렸다·
“너다운 대답이로군·”
카룬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냉랭한 눈빛을 지우고 작은 미소를 그리는 것을 보니, 답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럼 시작할까?”
그는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며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예· 전력으로 가겠습니다·”
라온은 전력이라는 말을 강조하고서 카룬의 목을 향해 제천검을 세웠다·
“저, 정말 싸우려고····”
제이나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떨었다·
“그것밖에 없으니까·”
“떨어져 계십시오·”
라온과 카룬은 서로에게 검을 겨눈 채 제이나에게 물러나라고 말했다·
“아····”
제이나가 초월자들의 강맹한 기파에 질려 대련장에서 내려온 순간 카룬과 라온이 동시에 땅을 박찼다·
치아아아아앙!
두 사람은 똑 닮아 있는 적안과 달리 붉고 푸른 오러를 뿜어내며 서로의 목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쩌어어어어어엉!
전력을 담아낸 초월자들의 검격이 격돌하며 대련장이 깎여나가고, 흑탑 전체가 뒤흔들리는 듯한 진동이 일어났다·
찌지지지직!
라온은 만화공의 오러를 잘라내며 밀고 들어오는 카룬을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진심이시군·’
카룬은 정말 자신을 죽일 듯 살기 짙은 검격을 내리치고 쏟아내고 있었다· 조금만 방심했다면 첫 일격에 목이 뜯겨나갔을 것이다·
‘그래· 지금은 그게 최선이지·’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만화공의 불길을 강화했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불길로 카룬의 오러를 불태워버렸다·
“흥!”
카룬은 그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푸른 오러를 응집시켜 불길조차 베어내는 칼날을 만들어냈다· 만화공의 오러가 잘려나가는 모습을 보자, 등골 사이로 오싹하게 소름이 돋아올랐다·
‘심장·’
라온은 심장을 노리고 쏘아진 카룬의 검을 쳐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정확하면서도 강대한 힘이 실려 있군· 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건 저 유려한 검술이야·’
카룬은 정검과 쾌검, 패검을 극한으로 다듬은 후 우아함이라는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본래 우아함은 실전보다는 검무에서나 인정받는 가치지만, 그게 초월에 닿으며 어떤 검술과도 다른 새로운 힘이 만들어졌다·
쩌저저저정!
카룬은 자신에게 밀리는 육체와 오러를 유려한 검격으로 이겨내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니고 있던 불필요한 가치가 초월에 오르며 주인에게 특별한 힘을 주다니, 역시나 무학의 세계는 오묘했다·
‘그래도 여기서 밀릴 수는 없지·’
라온은 철벽처럼 모든 검격을 막아내는 카룬을 향해 적섬삼십육결을 펼쳐냈다·
“그 검술이로군·”
카룬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푸른 빛이 일렁이는 검으로 반원을 그려서 서른여섯 방위를 동시에 찌르는 검격을 막기 위한 검로를 그렸다·
쩌저저저저정!
적청의 검광이 수없이 부딪치며 대련장 위로 수백 줄기의 스파크가 동시에 폭발했다·
치이이이잉!
라온은 이번에 끝을 내겠다는 듯 붉은 하늘이 깃든 듯한 장대한 검격이 펼쳐냈고, 카룬의 검날에 패왕의 기파를 담아내 눈앞에 존재하는 것들을 지워버리려고 했다·
쿠와아아아앙!
힘과 힘의 격돌· 어마어마한 오러의 파동에 제이나와 발카르의 마법사들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채 제대로 눈을 뜨지도 못했다·
투우웅!
라온과 카룬은 연달아 스파크가 터지는 공간으로 들어가서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피이이익!
라온의 검격에 카룬의 어깨가 갈라지고, 붉은 피가 뿜어졌다·
퍼어어어억!
이번에는 카룬의 검이 라온의 허리를 가르고 피와 살을 뜯어냈다·
두 사람은 동료가 아니라, 생사대적을 만난 것처럼 점점 더 짙은 살기를 뿜어내며 서로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캬아아아앙!
* * *
라온과 카룬이 격렬한 전투를 치르며 서로의 호흡을 가르고 있을 때였다· 두 사람의 머리 위로 투명한 눈동자 하나가 떠올랐다·
상층· 그것도 고위 층을 지배하는 최상의 층주 트레이브의 탐지 마법이었다·
‘생각 이상으로 진지하게 싸우는군·’
트레이브는 서로의 급소만을 노리는 라온과 카룬을 보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소모되는 힘도 크고, 부상도 심해지고 있어·’
본래 초월자들은 대기 중의 마나를 끌어올 수 있기에 하루종일 싸울 수도 있지만, 이곳은 마나보다 마기가 더 짙은 흑탑의 상층이기에 저들이 소모한 힘은 짧은 순간에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 많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출혈 때문에 라온과 카룬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를 생각해본다면 지금 저 둘의 무력은 반감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회로군·’
본래 이 층은 자신만의 고유 영역이었지만, 흑탑주가 선사한 아티팩트의 힘으로 지금 같은 공간으로 바뀌었다· 실제로는 둘 중 하나가 살아남아도 소용없이 자신의 허가를 받거나, 자신이 죽어야만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처음에는 살아남은 한 놈을 올려보낸 후 뒤에서 기습하려고 했는데, 지금 보니 자신이 저 둘을 모두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 초월자 둘을 죽인다면····’
내가 부탑주들을 넘어서게 될지도 몰라·
현재 흑탑의 상태는 특별하다· 끝없이 마기가 휘몰아치는 이 공간에서 초월자 둘을 동시에 죽인다면 자신은 확정적으로 초월에 오르게 될 것이다· 그것도 현재의 부탑주들을 넘어서는 높은 위치에·
‘아니, 아니야!’
트레이브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내가 뚫리면 위험해·’
이 위는 부탑주들이 있는 공간이고, 바로 그 위가 흑탑주가 있는 최상층이다· 만약 자신의 욕심으로 이곳이 뚫린다면 죽어서도 고통을 받을 테니, 참아야 했다·
‘하지만 이런 기회는 또 오기 힘들 텐데····’
짙은 마기 때문에 계속해서 욕심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그럼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저 둘이 연기가 아니라, 정말 서로를 죽이려고 할 때만 노리겠다고 다짐하며 미세하게 마기를 끌어 올렸다·
퍼어어어어억!
싸움이 극에 달한 듯 라온의 쇄골 부근에서 핏물이 터지고, 카룬의 입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검계현신·”
“검계현신!”
라온과 카룬은 정말 끝을 보려는 듯 검계현신을 읊으며 검을 세웠다· 두 사람의 격이 마기를 밀어낼 정도로 급격하게 강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트레이브가 응집시킨 마기를 불태우며 어둠 속에 숨겼던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도 좋은 기회였기에 흑탑주의 명령 따위는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지금밖에 없어!’
서로를 바라보며 검계현신을 사용하는 순간이라면 등 뒤의 공격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 지금처럼 격이 높아진 순간 저 둘을 죽인다면 자신이 얻을 이득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우우우우우웅!
트레이브는 라온과 카룬의 검이 빛나는 순간 두 사람의 등 뒤에서 응집한 마기를 폭발시켰다· 아무리 초월자라고 해도 이 순간을 견뎌내는 건 불가능한 일·
자신이 초월에 올랐다고 생각하며 입을 찢을 때 갑자기 두 사람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돌아갔다· 예상과는 달리 너무도 담담한 눈빛이었다·
‘어···?’
라온과 카룬의 눈을 본 순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폭발하려던 마기는 조각난 채 흩어지고 있었고, 자신이 보고 있던 세계 역시 반으로 찢어져 있었다·
“뭐, 뭐가····”
트레이브는 손에 힘이 빠지고, 생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끄아아아아악!”
그 뒤를 찾아오는 지독한 고통· 시선을 내려보니, 자신의 팔과 다리가 모두 잘려 있었다·
“어, 어떻게····”
“욕심이 너무 과했어·”
라온이 입에서 흐르는 핏물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초월자 둘을 잡을 기회를 놓칠 머저리는 어디에도 없겠지만·”
그는 모든 것을 읽고 있었던 것처럼 이지적인 눈빛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내, 내가 나올 줄 알고 있었다고?”
트레이브가 턱을 파르르 떨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봐온 게 있으니까· 너희는 숨어서 계속 시간을 끌고자 했지만, 마인으로서 강해진다는 욕망을 버리지는 못하더군·”
라온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욕심이 네 패착이다·”
카룬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빌어먹을!”
트레이브가 욕을 내뱉으며 바닥으로 가라앉으려고 할 때 그의 목에서 핏물이 치솟으며 그대로 머리가 떨어졌다·
“아아····”
초월자라는 꿈을 지녔던 마인은 그 욕심에 파묻혀 숨이 끊어지자,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문이 열렸다·
“괜찮으십니까?”
라온이 카룬에게 다가가 치료약과 성수를 건네주었다· 깊은 상처도 있기는 했지만, 급소는 아니라서 금방 회복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이 잘 통했군·”
카룬은 같은 생각을 했다며 눈매를 좁혔다·
“전력이라는 힌트가 있었으니까요·”
라온이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조금 과하게 들어오셨어요·”
가슴의 상처를 가리키며 입맛을 다셨다·
“···너라면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카룬은 자신을 믿었다는 듯 손을 내렸다·
“···그런가요·”
라온이 은은한 웃음을 흘리고서 다음 층으로 올라가자고 손짓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다다음 층이면 아마 최상층일 겁니다·”
그는 이제 함께 싸우자고 말하며 계단을 밟았다·
“그래· 올라가지·”
카룬은 복부와 허리의 상처에 성수를 부은 후 계단을 오르는 라온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고요하게 굽어졌다·
‘언젠가는 진심으로 싸울 날도 있겠지· 헌데····’
카룬은 본인의 손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정말 왜 과하게 나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