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9화
“허억! 허억!”
트레빈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훔치며 북망산 정상을 향해 뛰었다·
‘바, 방금 뭐야····’
조금 전 어둠 속에서 갑자기 라온이 튀어나와 철전대 검사들과 도리안을 후려 패버렸다·
억지로 과격한 표현을 쓴 게 아니다· 라온이 검집으로 도리안의 뒤통수를 깨부숴 버렸기에 후려 팼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미쳤어·’
안 보이는 곳에서 더러운 악마 새끼라는 욕 좀 했다고 아끼는 수하의 뒤통수를 쪼개 버리다니, 라온이 미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도 위험했지·’
도리안이 먼저 얻어맞은 덕분에 간신히 방어에 성공하고 도망치기는 했지만, 라온의 검집에 담긴 힘이 너무도 강하여 아직도 손아귀가 아려왔다·
‘헌데 왜 습격을 한 거지?’
라온은 나딘빵을 먹으며 북망산에서 버티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는데, 왜 기습을 해 온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깐· 그러고 보니····’
북망산에 오를 때 광풍대 검사들은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안색을 굳혔고, 조금 전에 보았던 도리안도 정신이 나간 것처럼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상황을 종합해 보니, 라온이 미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이런 훈련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 그게 맞아·’
라온 같은 무인이 산에서 단순히 버티기만 하는 야전 훈련을 시킬 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습격을 염두에 둔 훈련이 분명했다·
끄아아아아악!
아니, 철전대 있잖아요! 우리는 이제 좀 놔두···끄어어억!
이 또라이 자식아! 검은 뽑지 마!
아래에서 강렬한 충격파와 검사들의 비명이 들려온다· 라온이 철전대, 광풍대 가리지 않고 습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차피 도망은 못 쳐·’
전력으로 달리고 있음에도 다른 이들의 비명이 점점 더 가까워진다· 라온에게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한 일 같았다·
‘잠깐만····’
야전 훈련이라고 했지·
야전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은폐와 엄폐다· 아무래도 라온은 숨어서 기척을 죽이거나, 반격하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숨자·’
트레빈은 결정을 내리자마자, 빠르게 흔적을 지운 후 수풀이 우거진 나무 아래에서 몸을 숙였다·
‘음?’
하지만 그 자리에는 이미 주인이 있었다·
“크레인?”
광풍대에서 가장 까불고 다니는 크레인이 무릎을 모아서 앉은 채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자네도 숨은 건가?”
“···숨어요?”
크레인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눈동자를 뒤틀었다·
“숨는 건 의미가 없어요· 저는 그냥 이히히히····”
그가 고개를 앞뒤로 까딱이며 기괴한 웃음을 흘렸다·
“늦게 맞는 걸 기다리는 것뿐이라구요·”
“느, 늦게 맞는다고?”
“곧 철전대주님도 알게 되실 거예요· 이건 훈련이 아니라는 걸·”
크레인은 숨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의미가 없다며 눈을 내리감았다·
“아니, 그게 무슨····”
트레빈이 다시 물어보려고 할 때였다·
끼아아아악!
이제 조장들은 좀 놔둘 때도 됐잖아! 이 미친놈아!
대, 대주님? 저 내일 도를 만들러 가야 하는···끄윽!
바로 밑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흐으으····”
크레인은 이제 다 끝났다며 손가락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
트레빈이 검병을 움켜쥔 채 자세를 낮췄다· 라온이 온다면 바로 반격을 가할 수 있도록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소용없어요·”
크레인이 자신을 보며 키득거렸다·
“저 인간· 훈련이 아니라, 그냥 애들을 조지려는····”
그가 고개를 흔들 때 수풀 사이로 라온의 검집이 튀어나왔다·
퍼어어어억!
크레인은 복부에 검집을 얻어맞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산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예상했어·’
목소리를 크게 낸 크레인을 먼저 칠 거라 예상했기에 검을 세워서 라온의 다음 공격을 방어할 준비를 했다·
“얼마든지 와···어?”
이전처럼 방어한 후 도망칠 준비를 하려는데, 라온이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고오오오!
은빛으로 번뜩이는 칼날 위로 붉게 타오르는 강환이 솟구쳤다·
“가, 강환?”
이제 막 그랜드 마스터가 된 자신과 달리 완성에 이른 강환이었고, 그 오러를 쏟아내는 검로 역시 자신의 격을 한참 뛰어넘은 상태였다·
“자, 잠깐! 라온! 나 아직 그거 못 막아!”
트레빈은 본인이 그 검격을 막을 수 없다고 외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하는 겁니다·”
라온은 섬뜩한 웃음을 그리며 검을 내리찍었다·
“으아아아악!”
트레빈은 지닌 기운을 모조리 쏟아서 방어를 하려 했지만, 검술 실력과 오러가 모두 밀렸기에 검이 순식간에 밀려났다·
[더러운 악마 새끼가····]
[저 인간· 훈련이 아니라, 그냥 애들을 조지는····]
자신의 검을 뚫고 들어오는 라온의 불꽃을 보자, 도리안과 크레인이 했던 말들이 뇌리를 울렸다·
‘두 사람의 말이 맞았어· 이놈은····’
트레빈은 자신을 죽일 듯이 검을 내리찍는 라온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냥 미친놈이야!’
결국 온 힘을 다해서 내뻗었던 검이 튕겨 나가고, 라온의 검이 자신의 머리 위로 뚝 떨어졌다·
뻐어어어어억!
트레빈은 검면으로 머리를 얻어맞고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안개가 차오른 듯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웃고 있는 라온이 보였다·
“빌어먹을····”
잘못 왔다····
* * *
‘이 정도면 인사는 됐겠지·’
라온은 해가 떠오를 때까지 광풍대와 철전대에게 집중력 강화 훈련을 해준 후 손을 털었다·
전부 기절하고 쓰러졌기에 이제 산을 내려가도 될 것 같았다·
-인사?
라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애들 다 조져놓고! 인사는 무슨 인사!
녀석은 사람을 걸레짝으로 만드는 게 왜 인사냐며 미간을 찌푸렸다·
‘나도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어·’
라온이 눈을 까뒤집은 채 기절한 검사들을 보며 짧게 혀를 찼다·
‘앞으로의 싸움은 이 이상으로 험난할 테니까·’
흑탑과의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기에 그전까지 광풍대와 철전대의 무력을 최대한 키워놓아야 했다·
지금이야 힘들 테지만, 이 훈련은 그 전쟁에 큰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음, 그건 그렇지만····
라스도 그 부분에서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눈동자를 내렸다·
‘이제 내려가자· 손맛도 즐길 만큼 즐겼으니까·’
라온이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산 아래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게 좋···어? 손맛? 네놈 방금 손맛이라고 했지! 역시지만 좋으려고 한 거였어!
라스는 그럴 줄 알았다며 세차게 손을 내리쳤다·
‘기분 탓이야·’
-기분 탓은 무슨! 그냥 스트레스를 풀려고 애들을 두들겨 팬 것이잖느냐! 이 추악한····
‘아침 뭐 먹을래?’
-어? 오!
녀석은 아침 식사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렸다· 아침에 정신이 팔려서 광풍대가 얻어터진 건 다 잊은 것 같았다·
-아침이니까 가볍게 바닷가재 요리가 끌리는구나·
‘가볍게 바닷가재····’
역시나 특이하다고 중얼거리며 산을 내려갔다· 바로 별관으로 돌아가려는데, 우측에서 익숙한 얼굴이 다가왔다·
“오랜만이로구나·”
데니어가 웃으며 오른손을 흔들었다·
“현무전주님·”
라온이 몸을 돌린 후 데니어에게 허리를 굽혔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5연무장과 현무전은 거리가 있기에 그가 여기에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복귀하는 길에 네가 사검마를 꺾었다는 소문을 들어서 축하해 주고 싶었다·”
데니어는 정말 대단한 위업을 쌓았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그랗게 말린 웃음에서 순수한 호의가 느껴졌다·
“운이 좋았습니다·”
라온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사기에 정신이 먹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래도 사검마는 사검마다· 역사를 그리고 시대를 바꾼 위업이야·”
데니어는 발데르처럼 스스로를 낮추지 말라고 말하며 턱을 내렸다·
“····”
라온은 말없이 데니어의 눈을 바라보았다·
“사흘 뒤면 너도 전주가 되는구나· 마르타보다도 어린데 전주라니, 지금도 믿어 지지가 않아·”
그는 이제 반말을 할 수 없겠다며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그런 겸손한 태도가 지금의 너를 만들었겠지· 앞으로도 같은 자세로 정진했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마르타를 잘 부탁한다·”
데니어는 북망산을 한 번 올려다본 후 손을 흔들고서 떠나갔다·
‘데니어 지그하르트·’
라온은 데니어의 등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데니어의 말과 표정 그리고 행동을 다시 생각해 보았지만, 삼촌이 조카를 격려해 주는 것 외에는 다른 의도가 없어 보였다·
저 의문투성이 남자를 견제하기 위해서 나름의 대비는 해두었지만, 그의 잔잔한 눈동자를 보니,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저놈은····
라스가 데니어의 곧은 발걸음을 보며 콧잔등을 찌푸렸다·
-볼 때마다 사람이 바뀌는 것 같구나· 도통 정체를 모르겠느니라·
녀석은 길고 긴 마왕의 삶에서도 본 적 없는 기질이라며 입맛을 다셨다·
‘어렵군·’
라온은 짧게 혀를 차고서 별관으로 향했다· 현관을 열고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시아가 자신에게 안겨들었다·
“라온! 어린 애가 밖에서 자면 못 써!”
시아는 왜 집에서 안 잤냐면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어제 너 안 들어온다고 여기다가 침낭을 풀고 잤어·”
실비아는 말릴 수가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시아랑 같이 잤다· 앞으로도 종종 부탁해·”
에드가는 시아와 본인의 침낭을 돌돌 말면서 헤헤 웃었다·
“식사 준비 다 해놨어요· 어서 씻고 오세요·”
헬렌은 아침을 든든하게 준비해놨다며 손을 흔들었다·
-크으! 군침이 도는 향기가 가득하구나!
라스는 길게 입맛을 다시며 꼬리를 살랑였다·
“알겠어·”
라온이 자신을 보며 웃는 가족과 시녀들을 마주한 채로 주먹을 말아쥐었다·
‘데니어·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이 사람들은 내가 지킬 거야·
* * *
보랏빛 사기에 말라붙은 초원의 강·
거미줄 형태로 갈라진 강바닥 위로 검은 그림자가 떠올랐다·
그림자는 찬란한 달빛을 무시하듯 검게 출렁거리더니, 로브를 걸친 청발의 여성을 뱉어냈다·
저벅·
청발의 여성은 쪼개진 강바닥 사이에 박혀 있는 얼음 조각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이곳에서 죽었나·”
그녀는 사검마의 존재를 인식하는 듯 얼음 조각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우우웅·
청발의 여성이 손가락을 내리자, 따스한 백광이 번쩍이더니 은빛 얼음 조각 안에 남아 있던 사검마의 기운이 그녀의 손아귀 위로 모여들어 보랏빛 구체를 이뤘다·
“예상보다는 적군·”
청발의 여성은 음습한 빛으로 찰랑이는 보라색 구슬을 보며 눈썹을 내렸다·
“너도 다른 이들의 원한을 이용하고자 했으니, 불만은 없겠지·”
그녀는 사검마에게 말을 걸 듯 무감정한 목소리를 흘리고서 보랏빛 구슬을 품에 넣었다·
“어디까지 올라갈지····”
청발의 여성은 달빛을 올려보며 라온의 이름을 읊다가 푸른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 남은 건 텅 빈 얼음 조각뿐이었다·
* * *
쿠구구구구!
지그하르트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가주의 연무장이 성대하게 개방되었다·
평소에는 검사들의 출입도 금지 되어 있었지만, 오늘은 일반 주민들도 장엄하게 세워진 문을 넘어 연무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단에서 대로 승급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전이야?”
“단에서 전까지 10년도 안 걸렸을걸?”
“정말? 그럼 최단기 아니야?”
“더 놀라운 건 이견을 내는 사람이 없다는 거지· 실력과 실적 모두 인정을 뜻이라고·”
“하긴 그 사검마를 꺾었으니까·”
사람들은 연무장 위편의 관객석으로 올라가며 오늘 승급할 광풍대에 관한 이야기를 떠들었다·
“어떠시오?”
간부석에 앉아 있는 발데르가 팔꿈치로 카룬을 툭툭 쳤다·
“조카가 발밑까지 쫓아왔는데 괜찮소?”
그는 카룬을 놀리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광풍대는 여러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다· 오히려 승급이 늦은 감도 있다·”
카룬은 자그마한 시기심도 드러내지 않은 채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저 녀석들이 어찌 되든 딱히 관심 없다·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는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손을 내렸다·
“엥? 그런 것치고는 임무를 끝내자마자, 부리나케 돌아온 걸로 아는데? 애들 몇은 떼어놓고 왔다면서·”
발데르는 다 알고 있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셨습니까? 어쩐지 복귀가 빠르시더니·”
데니어가 재밌다는 듯 옅은 웃음을 흘렸다·
“커험· 헛소리다·”
카룬은 발데르의 말에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며 손등을 휘저었다·
“하아아····”
실비아가 무릎 앞에 두 손을 모은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긴장 돼서 심장이 내려앉을 거 같아!”
그녀는 본인이 어쩔 줄을 모르겠다며 모은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여보· 어떻게 해····”
실비아가 에드가에게 뭐든 해달라고 말하며 고개를 돌릴 때였다·
“끄르르륵····”
에드가는 이미 긴장도가 하늘까지 차오른 듯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이 화상아!”
실비아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에드가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라온! 라온은 언제 나와?”
시아는 난간에 손을 올린 채 라온의 이름만을 불렀다·
“오늘의 주인공이라 조금 나중에 나올 거야·”
아리스가 실비아의 옆자리에 걸터앉으며 턱을 끄덕였다·
“어, 언니?”
실비아가 아리스를 보며 눈을 끔벅였다·
“벌써 수련을 끝내신 거예요?”
“아직·”
아리스가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드래곤 하트의 마나를 받아들이려면 조금 더 몸 상태를 끌어 올려야 해· 한참 멀었지· 다만····”
그녀가 연무장을 내려보며 가늘게 웃었다·
“귀여운 조카가 전주가 되는 날을 놓칠 수는 없잖아·”
아리스는 당연히 참석해야 할 일이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고마워요····”
실비아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아리스 덕분에 긴장이 풀린 듯 옅은 미소를 그렸다·
“저는 지금도 안 믿겨요· 우리 도련님이 전주가 되다니····”
“그러니까·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기도했는데·”
“우리 기도가 강했나? 너무 건강하게 자라셨어·”
헬렌과 시녀들은 라온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처음부터 남들과는 다른 분이셨으니까요·”
주디엘은 라온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어색한 미소를 그렸다·
“라온이 어땠는데? 응? 어땠어?”
시아가 시녀들에게 가서 라온에 대해 물어보려고 할 때였다·
쿠구구구구!
연무장의 좌측 정문이 열리며 강렬한 진동이 사위를 휩쓸었다·
거칠게 피어나는 연기 속에서 지그하르트의 무력대가 하나씩 들어와 연무장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신설된 현성단부터 가주 직속의 천검대까지· 임무에 나가 있거나, 가문을 수호하는 이들을 제외한 모든 검사들이 패도적인 전열을 갖춘 채 천지를 울릴 기파를 뿜어냈다·
쿠우우우웅!
무력대의 입장이 끝나자, 연무장을 지키는 문지기 검사들 크게 발을 구르며 시선을 모았다·
“지그하르트의 하늘께서 입장하십니다!”
그 외침이 들리자마자, 연무장에 선 검사들과 관객석의 주민들이 등을 돌린 채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일어나거라· 오늘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니까·”
글렌은 고요한 걸음으로 단상에 올라가며 손을 저었다·
그는 평소와 달리 마지막에 나타나지 않고, 광풍대보다 먼저 와서 옥좌에 앉았다·
쿠구구구·
검사들은 몸을 일으킨 후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 다시 전열을 갖췄고, 관객들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서 의자에 앉았다·
“시작하도록·”
글렌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단상 아래에 서 있던 비연회주 채드가 허리를 굽히고서 앞으로 나섰다·
“지금부터 승급식을 진행하겠습니다· 광풍대 입장해 주십시오·”
채드의 말이 말이 끝나자, 아직 문틀에 걸려 있던 연무장의 오른쪽 정문이 웅장한 소리와 함께 개방되었다·
쿠우우우웅!
문지기들은 글렌이 입장했을 때보다 더 크게 발을 구르며 턱을 치켜들었다·
“사악한 용을 베고, 사검을 꺾은 광풍대주와 광풍대가 입장합니다!”
문지기 검사들의 우렁찬 외침 아래로 정제된 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서른이 넘는 인원이 걸어가고 있음에도 그들의 걸음 소리는 혼연일체가 된 듯 하나의 색으로 엄숙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연무장 입구의 깊게 파인 그림자를 넘어서 광풍대가 마침내 그 위용을 드러냈다·
먹물을 적신 듯한 검은 예복 위로 백색의 검을 패용한 그들의 모습은 전쟁에 나서는 영웅들의 자태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무거운 존재감을 피워냈다·
“지그하르트의 명예를 지킨 검사들에게 경의를!”
채드의 외침을 들은 검사들이 좌우로 갈라져서 검을 뽑았다·
역수로 잡은 검으로 땅을 겨누는 검사들의 경외· 태양의 휘광이 내려앉은 지그하르트의 검례 사이로 라온과 광풍대가 입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