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화
30. 크리스마스엔 좋은 일이 2
장준혁의 사고 시각은 오후 3시 30분경.
하지만 대략적인 시간이라 3시 10분부터 사고 현장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지금 시각은 3시 27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두근두근.
막상 사람의 죽음을 막으려고 할 때마다 힘든 일이 한둘이 아니다.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3차선을 주행하던 그의 차량이 급발진 뒤 4차선을 넘어 건물 벽에 충돌했다는 것.
그 충돌을 막으려면 여차하면 내 차로 앞을 막아서는 수밖에 없었다.
빠아앙-.
“아 거 왜 차선을 막고 난리야? 차 빼요!”
“저 사람 뭐야? 미친 거 아냐?”
“야! 차 안 빼?”
4차선에서 빵빵대는 사람들의 크락션 소리를 들으며 몇 번이나 같은 길을 도는 중이다.
이제 3시 29분.
재깍재깍.
들리지도 않는 초침 소리가 마치 환청처럼 울리고 있다.
그때였다.
백미러로 장준혁의 검은색 벤츠 각진 차량이 3차선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왔구나.’
내 차와의 거리는 대략 30m.
난 곧장 폰을 들어 119에 전화부터 걸었다.
“저기. 여기 천호대로인데요.”
-압니다. 119는 위치 나온다니까요?
저번에 상담했던 그 상담사다.
“어? 저기 그때 그분이시죠?”
-예. 맞으니까 말씀하세요. 이번에도 가스입니까?
“아뇨. 여기 사고 났어요. 위치가 어디냐면요.”
-그니까 안다고요. 바로 출동할게요. 그 근처에 계시죠?
“예. 운전자가 심장마비입니다. 빨리 와 주세요!”
-잠깐만요. 영상 통화로 바꿔주시면 제가 심폐소생술 방법을······.
아직 사고도 안 났는데 영상 통화는 무슨.
난 전화를 끊고선 사고를 대비했다.
이제 곧 그의 심장이 멎은 후 그의 차량은 급발진을 시작할 테니까.
[현재 시각 : 3시 30분]
순간 3차선에서 느릿하게 움직이던 장준혁의 차량이 갑자기 급발진을 시작했다.
부우우웅.
스마트폰을 품에 넣은 난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곤 브레이크를 꽉 밟고 핸들을 잡은 채 충돌에 대비했다.
콰앙!
그의 벤츠가 내 승합차의 운전석 문을 들이박았다.
덜컥.
하마터면 충격에 차가 뒤집힐 뻔했다.
“으으윽!”
목이 삐걱이며 담이 온 거 같다.
그래도 급발진한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충격이 크진 않았다.
그런데······.
장준혁이 액셀에서 발을 떼지 않아 그의 차가 내 승합차를 밀고 있었다.
비싼 차라서 그런지 힘도 좋다.
끼이이익!
타이어가 끌리는 소리와 함께 마찰로 인해 타이어가 타는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난 사이드 브레이크까지 당긴 다음 창문을 열고 고래고래 외쳤다.
“장준혁 씨! 정신 차리세요~오!”
끼이이익!
장준혁의 타이어가 회전하며 내는 매캐한 냄새가 더욱 심해졌다.
목이 터져라 고함을 치는데도 장준혁은 핸들에 머리를 박은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씨X! 장준혁! 정신 차리라고! 시동 꺼! 시동!”
거센말로 연신 자신의 이름을 외치자 가슴을 부여잡은 장준혁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곤 숨을 컥컥 몰아쉬며 힘겹게 손을 뻗기 시작했다.
탁.
가까스로 키에 손이 닿았다.
하지만 힘이 실리지 않는지 시동을 끄지 못하고 있다.
탁탁.
한 번 두 번 연속해서 손이 엇나가고 있었다.
“끄······으윽.”
하지만 결국엔 시동을 끄는 데 성공했다.
피르르르.
덜컥.
시동이 꺼졌다.
동시에 장준혁은 모든 힘이 다한 듯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곧장 안전벨트를 풀고 오른쪽 문으로 넘어간 뒤 그의 상태를 살폈다.
* * *
“훅훅훅. 정신 차려요!”
난 멈춰 버린 그의 심장을 움직이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훅훅훅.”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
“제발 숨 좀 쉬라고!”
누를 때마다 가슴이 조금씩 들어가는 게 보이지만 장준혁은 도통 눈을 뜰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 번 두 번.
가슴 중앙 부위를 초당 1.5회에서 2회 정도 눌렀지만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진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제길. 갈비뼈······가 부서질 정도의 힘으로 누르라고 했었지?”
난 눈을 질끈 감고 가슴께를 더욱더 세게 누르기 시작했다.
뚝!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당혹감에 식은땀이 흘러내렸지만 그래도 손을 멈추지는 않았다.
나중을 생각하는 것보다 당장 눈앞의 생명을 구하는 게 우선이니까.
“훅훅훅.”
몸을 아끼지 않고 심장을 압박한 탓에 팔 전체가 시큰거리고 등은 땀으로 젖어 축축해졌다.
그때 주변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진짜. 차 운전을 어떻게 하길래 이따위야! 사고 났으면 차를 빼야······ 어? 저거 장준혁 아냐? 뭐야? 이거?”
“영화 촬영 아냐?”
“아 아냐 인마! 진짜 심장마비 같은데?”
“뭐해! 112에 연락해서 구급차 불러!”
“그건 범죄 신고고!”
사람들의 소란이 이어지더니 잠시 후 내 뒤로 차들이 막아서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량 통제해 주세요!”
“여러분! 앰뷸런스 들어오게 자리 좀 비켜주세요. 다들!”
“이봐요. 총각. 힘들면 이야기해요. 나도 도울게.”
짜증 내던 사람들이 태도를 바꾸고 있었다.
사람들을 안 믿은 지 꽤 되었지만 의외로 세상이 살 만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여전히 장준혁의 호흡이 돌아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일단 사람은 살려야지.
마우스 투 마우스.
“후욱. 후욱.”
인공호흡까지 섞어서 심폐소생술을 하기를 2분 가량.
“컥! 끄으으으······”
의식이 없던 장준혁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신음 소릴 내기 시작했다.
“됐다!”
“살았다!”
“와. 이 친구. 해냈네.”
“살아났어!”
사람들의 환호 소리와 함께 난 진이 빠져 버렸다.
온몸에 근육통이 몰려와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주저앉는 순간 저 멀리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 *
[에브리데이 V10]
[날짜 : 2019년 12월 25일]
-PM 07: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강동경희대학교 병원 장례식장 1F VIP실 장준혁. 화환 발송.)
미래 다이어리에 남아 있던 장준혁의 사건 관련 일정이 내가 보는 앞에서 사라졌다.
“선생님께서 119로 연락하신 분이십니까?”
“예. 제가 연락했습니다.”
강동 소방서의 김춘수란 명패가 있는 소방관이 날 보며 꾸벅 인사를 해 왔다.
“감사합니다. 혹시 연락처 좀 주시겠습니까?”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과태료라도 내야 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차후 환자가 회복되면 연락처를 찾을 수도 있고 포상이 있을 수도 있기에 미리 연락처를 받아두는 겁니다. 긴급상황에서 손을 쓰셨기에 어떤 피해도 없으실 겁니다.”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난 명함을 꺼내 김춘수 소방관에게 건넸다.
“여기요.”
“굴렁쇠 엔터 정윤호 씨. 이름이 좋으시네요. 그리고 저희 서를 대신해서 선행에 감사드립니다.”
김춘수가 자세를 바로 하곤 내게 경례를 했다.
“차렷! 경례.”
척!
장준혁을 들것에 든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소방관마저도 일제히 경례를 해왔다.
“어. 어. 예.”
나 역시 당황해서 그에게 경례로 답했다.
왜 이런 인사를 하나 싶었지만 그다지 싫진 않은 기분이다.
번쩍번쩍.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폰 플래쉬를 터트리며 우리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찰이 이내 도착해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도착한 보험사 직원은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일단 제가 장준혁 씨 보험사 직원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아마도 저쪽에서 전액 부담하실 거 같습니다.”
“예. 그럼 뒤처리 좀 부탁드립니다.”
난 인적 사항을 넘긴 뒤 보험사 직원이 알려주는 카센터로 향했다.
* * *
카센터에 차를 맡기고 견적을 받았다.
120만 원 정도가 나왔다는 말에 회사에 보고하기 위해 전화를 들었다.
그런데 먼저 걸려오는 전화가 있었다.
[발신자 : 구성철 실장]
“실장님이 왜 전화하셨지?”
사고가 난 직후 파손된 차 사진을 오덕구 팀장에게 까톡으로 보냈었다.
혹시나 그 때문에 잔소리를 하려는가 싶어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실장님. 그러니까 이게 말입니다······.”
-윤호야. 지금 버거퀸에서 광고 문제로 회사에 찾아왔다. 미안한데 지금 바로 올 수 있겠냐?
아 사고가 아니네.
버거퀸 쪽이랑은 일주일 뒤에나 보자고 했는데 바로 찾아왔다고?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아직 바쁜 내 하루가 끝이 나지 않았나 보다.
* * *
회사에 도착하니 머리 위로 새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진눈깨비가 손바닥에 닿자 체온에 사르르 녹아내렸다.
차갑긴 했지만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런 사소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것마저 감사했으니까.
“이크. 늦겠다.”
문을 열고 로비로 들어가자 정신없이 전화 중인 이동민 실장이 보였다.
“어이. 정 스타. 크리스마스인데 집에서 안 쉬고 왜 회사야?”
“아 구 실장님이 부르셨거든요.”
“그 사람은 왜 쉬는 애를 부르고 그래. 흠흠. 우리 가수 2실로 전속해서 오면 그럴 일이 없을 텐데 말이지.”
와 또 한 명 속이는 사람 등장이요.
아이돌 전담이 얼마나 바쁜데.
“오늘 체리블라썸 스케줄 없습니까? 한 팀장은 스케줄 가시는 거 같던데······.”
“이크. 들켰네?”
이동민 실장은 장난스레 웃더니 좋은 소식을 말하기 시작했다.
KBC 뮤직스테이지의 메인 PD인 최은혁 PD가 직접 전화를 해 왔다고 한다.
“다음 주부터 당분간 체리블라썸 애들 쭉 음방에 세운단다.”
“오 정말입니까?”
체리블라썸의 순위라면 음방에 나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갑작스레 치솟은 인지도 덕분에 계속 나갈 수 있게 되었단다.
거기다 저번에 약속한 KBC 음악나라 그거 계약서 쓰자고 난리라나?
아이돌 대전에 나가는 대가로 약속한 KBC 음악나라 출연은 구두 계약만 한 상황.
당장 계약서를 쓰자며 전화하는 통에 이동민 실장이 외려 큰소리를 치는 중이란다.
이래서 이 판이 재미있다.
인기가 있으면 하룻밤 사이에도 인생이 달라지니까.
“어쨌건. 윤호 네 덕분에 우리 체리블라썸도 숨통이 좀 트였다. 멤버들이 다들 너한테 고맙다고 전해 달라더라.”
“뭘요. 본인들이 잘해서 그런 거죠.”
“예전에도 잘했지만 일은 없었지. 네 덕 맞아.”
이동민 실장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내게 한 가지를 더 말해왔다.
“아 그리고 실은 체리블라썸한테도 CF가 하나 들어 왔다. 어제 온종일 실검 순위 10위 안에 있었더니. 그렇게 되더라고.”
3개월짜리 화장품 계약인데 천만 원이란다.
“천만 원요? 금액이 그리 크지 않은 거 보니까 화장품 회사가 신생인가 보네요?”
“어. 설립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던데. 회사 이름이 뭐라더라? 예쁘당? 예뿌당? 아 맞다. 예뜨랑이라던가?”
순간 기억 속에 있던 이름이 번뜩 스쳤다.
예뜨랑?
잠깐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잠깐. 설마 그 예뜨랑?’
10년 뒤.
화장품 회사 순위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그 회사?
‘예뜨랑’은 대기업 화장품 연구소장 안석훈이 독립해 차린 회사였다.
업계 1위인 존슨즈 제품보다 더 좋은 품질에도 가격은 오분의 일이었기에 10년간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된다.
탑 엔터테인먼트 시절 민규리를 광고 모델로 사용하던 회사였고.
회귀 전 이맘때는 광고 모델로 골든로드를 썼었는데 아이돌 대전의 여파로 미래가 바뀌어 버렸다.
“그런데 윤호야. 넌 어떻게 생각하냐? 해야 할 거 같냐? 안 해야 할 거 같냐?”
이동민 실장은 현재 내가 유진이 CF로 버거퀸과 협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내 조언을 바라고 있었다.
“실장님. 거기랑 꼭 계약하십시오!”
이동민 실장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응? 거기 잘 알아?”
“예! 예뜨랑에서 만드는 하이틴 용 화장품이 10대들에게 반응이 엄청 좋습니다.”
“세일즈 대상이 10대라면 우리 체리블라썸이랑 타겟이랑 겹치네?”
“예. 서로 상부상조하기 딱 좋은뎁니다. 일단 지금은 상대 회사가 신생이니까 연장 계약을 옵션에 넣고 제의를 받아들이면 될 거 같은데요?”
잠깐 고민하던 이동민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광고비가 낮은 대신 제품 협찬을 더 해달라고 하면 되겠네.”
“예. 실장님.”
순간 앞으로 5년 뒤쯤 예뜨랑이 주식을 상장한다는 기억이 번뜩였다.
예뜨랑의 주가는 상장 후 수십 배는 뛰었었다는 사실도.
‘그때 주식 좀 사야겠네······’
이동민 실장은 조언해 줘서 고맙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여간 우리 윤호. 앞으로 뭐든 생각나는 거 있으면 다 이야기해라. 내가 네 말은 무조건 들어줄 테니까.”
“그러시면 실장님. 체리블라썸 신곡 작업을 바로 들어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신곡?”
“예. 물은 들어오고 있는데 노가 시원찮은 거 같아서요.”
현재 체리블라썸의 2집 앨범 곡들이 별로란 이야기를 돌려 말했다.
순간 이동민 실장이 날 지긋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마치 장성한 아들을 보는 듯한 뿌듯한 표정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