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2화
이정표(29)
[양전하와 음전하에 각자 다른 방향의 마력회전을 거는 유선(諭旋)·]
파지직!!
레녹의 눈앞에서 두 개의 번갯불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회전한다·
[뇌전을 압축해 보관하는 능력으로는 두번의 세계를 통틀어 가장 뛰어났던 축성(築城)·]
우우웅!!
거대한 벼락의 상자 위로 뇌전이 차곡차곡 압축되어 쌓여간다·
[모든 성질변화 중 가장 극단적인 역상성을 지닌 공허의 성질변화를 먹인 뇌허(雷虛)·]
후우우···!!
유리처럼 투명한 벼락이 머리 위로 떠올라 조용히 회전했다·
당장이라도 부서질것처럼 위태로우면서도 한없이 섬뜩한 한기를 흩뿌리는 유리색 벼락·
[생체전기를 의념으로 가공해서 수명을 극단적으로 잡아 늘리는 선뢰(仙雷)까지·]
파직···!!!
새하얗게 발광하는 성역의 하늘 위로 각양각색의 벼락이 유성우처럼 꼬리를 늘어뜨린다·
성역의 하늘 위로 비치는 아득한 외해의 정경·
어둠을 비추는 번갯불 하나하나가 이 세계에 누군가 남긴 깨달음이자 대답의 증거·
레녹이 말없이 그 풍경을 바라보는 사이 머리 위에서 고압적인 전성이 울려 퍼졌다·
[벼락을 잡은 순간 속세의 모든 인과에 선행하는 깨달음이 있기에 시간과 멸망을 넘어서도 이어지지·]
“····”
[사상의 지평을 넘어선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지와 속도를 깨부수는 초월적인 영감을 의미하는 것이니·]
뇌신전의 성역 중심에 비스듬히 꽃힌 채 강렬한 존재감을 흩뿌리는 거대한 뇌창(雷槍)·
장장 수십 미터 크기에 달하는 압도적인 크기를 지닌 무구가 레녹을 향해 강렬한 전성을 흩뿌렸다·
[뇌신전이란 바로 그러한 비원 자체를 상징하는 기적이다·]
“세계를 넘어 달랐어도 벼락을 익혔다면 누군가는 이곳에 도달하는 건가····”
시간에 앞서는 깨달음이 존재하기에 극에 다다른 초월자들의 지혜는 시공을 넘어서도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
뇌신전이란 그렇게 극에 도달해 선각(先覺)에 이른 마법사들의 지식과 지혜가 흘러 모인 전당·
말 그대로 세 번의 세계에서 전격마법의 기원이 다르지 않았음을 증거하는 상징 그 자체였던 것이다·
아켄드리아스 엘 토르번이 말했던 생애의 가장 앞자리에 서는 번개·
탑주가 그러했고 레녹이 그러했던 것처럼·
세번의 세계를 거쳐 같은 것을 꿈꾸었다면 이러한 장소가 존재하는 이유 역시도 납득할 수 있었으니까·
“하나같이 거대한 법칙을 품은 힘이라는 사실은 틀림없어 보이는군·”
물끄러미 저편에 도달하는 유리벼락을 바라보던 레녹이 몸을 돌렸다·
“하지만 나는 특정한 깨달음이나 술식보다는 여전히 다른 쪽에 더 관심이 간다·”
[····]
크기를 헤아릴 수 없는 이 뇌신전의 성역에서도 유달리 거대하고 독보적인 크기로 존재하는 뇌창·
장장 수십미터에 이르르는 거대한 창대와 그를 휘감고 레녹을 짓누르듯 뻗어나오는 고압적인 의념·
“의지를 지닌 벼락· 그것도 이 성역에서 홀로 자아를 유지하고 있는 존재라는 건 굉장히 흥미롭군·”
[···음·]
“자아를 보유한 보구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지만 이 정도로 정교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경우는 흔치 않다고 들었다·”
뇌창을 올려다본 레녹이 말했다·
“성역에 새겨진 뒤에도 스스로 의지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강대한 깨달음이라면 분명 그 이상의 가치가 있겠지·”
새하얀 벼락이 어우러져 발광하는 뇌신전의 성역·
전쟁마탑의 권역을 과부하시켜 강제로 문을 개방하고 입성한 깨달음의 입각·
하지만 레녹이 이 뇌신전에서 가져가려 한 것은 다른 깨달음이나 술식이 아닌 거대한 뇌창 그 자체였다·
뇌창이 성역의 존재와 힘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지만 레녹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던 것·
[내 벼락의 인과를 새긴 인간 중에서 괴상한 놈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레녹의 말을 듣고 침묵하던 뇌창이 이내 어이가 없다는 듯 대꾸했다·
[설명을 듣고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는 인간은 오랜만에 보는군· 지금까지 내 설명을 듣기는 한 거냐?]
“이 공간이 전격마법을 익혀서 깨달음을 얻은 술사들을 위한 성역이라는 사실은 이해했다·”
레녹이 고개를 끄덕이며 거대한 뇌창을 올려다보았다·
“그건 아마 사상의 지평을 넘는다는 말이 특정한 술식분야에서 ‘한계’를 깨부수는 행위를 의미하기 때문이겠지·”
이 세계의 문명발전은 상당한 수준이지만 의외로 전력(電力)을 다루는 기술 자체는 그렇게 고도화되어 있지 않다·
마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력을 사용하는 방식은 레녹이 살던 세계와 비슷한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사상의 지평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뇌전조작에 있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히는 행위와도 상통하는 바·
그리고 레녹은 어째서 자신에게 뇌신전의 출입 자격이 이미 존재하는 것인지도 인지하고 있었다·
‘사상신뢰(沙上申雷)·’
크로켄 아실러스와의 전투에서 구상해 다비의 연산능력까지 빌려 가면서 논했던 하나의 도달점·
페이샤 그리스번 6사도 아나테마와의 전투에서 완성된 성질변화의 극한에 달한 번개·
레녹이 익힌 전격계열 고유마법의 심의·
사상신뢰를 피워낸 순간 레녹이 진정으로 사상의 지평을 초월했음을·
토르번 마탑주가 레녹을 찾는 계기가 되어 그 결과로서 이 성역에 서게 되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이해하고 있다면 어째서 그것이 불가능한 일인지 역시 알고 있을 텐데·]
창대를 타고 울려 퍼지는 전성이 순간 냉엄하게 변했다·
[나는 깨달음이나 선각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식으로는 완성되지 못한 미련과도 같은 존재지·]
“····”
[너는 이 성역의 법칙 아래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 법칙에 따라 손에 쥐는 모순을 원하는 것이냐·]
“단순히 성역의 안내인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어· 처음부터 살아 있는 존재조차 아니었을지도 모르지·”
레녹이 무거운 시선으로 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네 존재가 이 성역에서도 유달리 특별한 것이라면 그것조차도 스스로 원해서 받아들여진 결과라면····”
뇌창을 향해 한 손을 펼친 레녹이 말했다·
“나는 그 모순 자체를 가지고 싶군·”
[····]
레녹에게 말을 걸어온 뇌창이 뇌신전에 정상적으로 기거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하지만 레녹은 그것을 이해했으면서도 성역에 새겨진 다른 깨달음이 아닌 뇌창을 선택하려 했다·
단순히 의지를 지닌 벼락에 대한 호기심이 아닌 그 이상의 가치와 이질성을 저 존재에게서 비춰보고 있었기 때문·
뇌창 역시 레녹의 단호한 의지를 이해한 것인지 침묵이 흘렀다·
성역의 천공을 내달리던 천둥마저 잦아들고 무거운 적막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내 말을 이해하고도 뜻을 굽히지 않다니· 뛰어난 안목에 비해 말귀는 어두운 인간이로군····]
나직하게 한숨을 내쉰 뇌창이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너는 뇌신전의 규율을 따를 생각이 없었구나·]
“····”
대답하지 않는 레녹의 앞에서 거대한 창극이 서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좋다· 네놈이 이 성역의 초월성을 거부하고 불가능한 선택을 관철하려 한다면 생각이 있지·]
스스로의 의념을 한껏 부풀려서 웅장한 굉음과 함께 성역 전체를 메우는 압도적인 힘·
새하얀 벼락을 흩뿌리는 뇌창이 레녹을 내려다보듯 말했다·
[네가 얻은 깨달음이 정녕 규칙을 뛰어넘을 특별함을 갖추었는지 내가 직접 시험하겠다·]
“시험이라·”
레녹이 천천히 어깨를 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는 뇌창을 선택한 순간부터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기는 했기 때문·
오히려 문답무용으로 레녹을 성역에서 추방하는 대신 시험하겠다는 것이 레녹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나쁘지 않군· 지금부터 그쪽의 눈에 찰 만한 무언가를 보여주면 되는건가?”
[기회는 한번· 시간은 3분으로 제한하도록 하지·]
뇌창이 고압적인 말투로 말했다·
[서로의 술식을 보여주고 교환하는 것을 기조로 하겠다·]
“···교환이라니·”
레녹이 순간 뇌창의 대답에 표정을 찌푸렸다·
아무리 보아도 지금 저 뇌창은 레녹과 술식을 교환할 수 있는 형태로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
“설마 그 창날로 직접 내 머리를 내려 찍어보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훗 걱정하지 마라· 그런 무식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파직!!!
그 순간 거대한 창대를 휘감은 뇌전이 눈부시게 타올라 뇌창 전체를 새하얗게 뒤덮었다·
새하얗게 타오르는 백광의 저편에서 전성이 아닌 또렷한 육성이 울려 퍼졌다·
“네놈을 시험해볼 방법 따위는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
새하얀 뇌창이 꽂혀 있던 자리에 화려하다 못해 호화로운 외견의 여성이 서 있었다·
레녹보다 머리 두어 개는 더 커 보이는 2m를 가뿐히 뛰어넘는 장대한 체구·
양손에는 무수한 반지를 끼고 팔뚝에는 보석으로 치장된 팔찌가 여럿 매달려 있었다·
나풀거리는 용포(龍袍) 위로는 목걸이와 염주가 겹쳐 흔들리고 매끄러운 비단이 발아래 아른거렸다·
하지만 그런 장신구보다 먼저 느껴지는 것은 여성을 중심으로 피어오르는 압도적인 위압감·
무겁고 둔중하다 못해 가히 폭력적으로 느껴질 만큼 사납고 광오한 기세·
두 눈은 벼락을 비추는 거울처럼 황금빛으로 번뜩이고 날카로운 번갯불이 그 몸을 아우라처럼 휘감는다·
타고나길 한없이 고귀하게 태어나 스스로 초월자에 이른 폭군이 있다면 이러할까·
“설마····”
뇌신전은 모든 인과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깨달음이 모여 만들어진 성역·
하지만 그것은 술사 본인이 아닌 그 깨달음만이 세계를 넘어 자리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눈앞의 뇌창이 살아 있는 인간의 형태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가 사용하는 뇌해술식(雷解術式)은 벼락을 기조로 삼아 만물을 풀어헤치는 힘·”
쩌저저저저적!!!
그 말과 함께 팔짱을 낀 여성의 등 뒤에서 새하얀 뇌전이 터져 나왔다·
가볍게 의념을 끌어올리는 것만으로 뇌신전 전역을 새하얗게 물들이면서 저릿한 광량을 흩뿌렸다·
아무런 방향이나 목적도 없이 단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무한히 흘러넘쳐 공간을 메운다·
그것만으로 백색의 벼락이 레녹을 압살할 것처럼 거칠게 찍어누르면서 머리 위에서 사납게 회전했다·
파직!!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개념을 뇌광천주의 아래 두고 지배하는 제왕의 술식이지·”
“···!!”
여성이 말했다·
“이 술식을 사용해 나는 첫 번째 세계에서 뇌제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레녹이 오래전에 10사도 암리타를 상대로 시전했던 극위마법 [뇌람(雷濫)]·
재능과 심상 오성을 비롯한 모든 것을 뇌전으로 바꾸어 흘러넘치게 만들었던 절기를 그보다도 훨씬 더 높은 성취에서 구현해 터트리는 벼락·
“네놈의 벼락이 말 그대로 사상의 지평을 넘었다면 내게 보여줄 것이 있을 터·”
상상조차 하기 힘든 압도적인 힘에 굳어버린 레녹을 보며 여성이 팔짱을 꼈다·
“자세를 잡아라 마법사·”
“····”
“네가 남길 깨달음이 그만한 억지를 부릴 자격이 있을 것인지· 이 내가 직접 시험할 터이니·”
“깨달음을 남기고 깨달음을 가져 간다····”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린 레녹이 여성의 말을 이해하고 시선을 들어 올렸다·
“뇌신전을 유지하고 존재하게 하는 과정을 그쪽은 내게 직접 인도할 생각이었군·”
뇌신전에 출입할 수 있는 필멸자는 전격계 고유마법을 극한까지 익힌 단 한 사람의 마법사뿐·
벼락의 인과를 새긴 이들 중 가장 앞자리에 서 있는 마법사만이 뇌신전에 출입가능한 이유는·
오직 그 존재만이 새로운 시간선에 새로운 깨달음을 이 성역 안에 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멸망의 인과와 시간선을 넘어서 깨달음을 전하고 더한다·
인간의 생명과 삶이 아니라 무형의 가치를 우선하고 전하기에 뇌신전은 세 번의 세계를 넘어서도 존재한다·
이 성역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전승하기 위해서는 레녹 역시 그 미답의 길 위에 새로운 마법을 더해야 하는 것·
“····”
그것을 깨달은 레녹이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양손을 그러모았다·
토르번 마탑과 싸우기 시작한 순간부터 준비했던 단 한 가지 마법·
탑의 마법사들을 상대로 끝내 터트리지 못했던 예의 마법을 아직 영창할 수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
지금이라면 저 술사를 상대로 레녹이 이곳에 남길 깨달음이 무엇인지 정할 수 있다·
이 거대한 뇌신의 성역 안에 레녹이 가져가야 할 만큼의 새로운 마법을 새길 수 있다·
우우우우웅!!!
체내에서 남은 마력을 빠른 속도로 회전시키며 압축하고 집약해서 일순간에 터트린다·
양손으로 맞잡은 손바닥 사이로 새어 나오는 마력에 여덟 종의 성질변화를 동시에 가해 압축한다·
부하와 반발 공명과 확산 압축과 조형에 회전과 융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갈라진 벼락을 모조리 잡아서 여덟 종의 변화를 거쳐 다시 한곳에 집약했다·
레녹이 지닌 극위마법 중에서도 최상급의 위력을 지닌 심의 중 하나·
뇌전과 벼락을 부풀리고 퍼올린 뒤 여러 종의 성질변화를 극한까지 더해 현실의 이면에서 조립하는 기적·
아르마스 폰 아나테마를 죽인 사상의 번개·
[사상신뢰(沙上申雷)]
빠지지지직!!!!
레녹의 손안에서 새파랗게 발광하는 정팔면체가 떠올라서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호오 그건····”
그 영창에서 심상치 않은 기세를 느낀 것인지 여성의 얼굴 역시 퍽 흥미로운 기색으로 변했다·
“성질변화를 극한까지 깎아 초월한 벼락인가·”
“····”
“아켄드리아스가 네놈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군· 하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콰지지지직!!!
뇌제의 등 뒤에서 일렁이는 새하얀 벼락이 비틀리고 꺾여서 그의 손끝에 모여든다·
본래 방향을 바꾸는 일 없이 앞으로 뻗어나가는 벼락의 방향을 강제로 틀어서 그의 의지 아래 지배하는 강압적인 방식·
하지만 그렇게 꺾이고 부러진 채로 모여든 벼락은 그 어떤 술식보다도 파괴적인 의념을 담고 마주치는 모든 것을 짓밟는다·
강압적이고 오만하기 그지없는 힘의 논리 아래 철저하게 약한 것을 죽이고 부러뜨리는 폭군의 벼락·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이 자리에서 네 대답을····”
싸늘한 표정으로 읊조린 뇌제가 턱을 들어 올렸다·
“꺾어버리겠다·”
[천제(天帝) : 전위변성(電爲變星)]
콰아아아아앙!!!!
뇌신전의 거대한 길 전역이 새하얀 벼락으로 흘러넘친다·
뇌제의 손끝에서 일그러진 벼락이 그 반발력을 고스란히 레녹에게 향하면서 가속하고·
이윽고 새하얗게 발광하는 초신성이 되어 존재하지 않는 시공간을 불태웠다·
콰과과과!!!!
순수한 깨달음의 성역마저 파괴하고 불태우는 뇌제의 술식·
하지만 레녹은 그것을 보면서도 사상신뢰를 움직이지 않았다·
이 벼락의 성역에서 서로의 깨달음을 시험하는 이 순간·
그렇기에 사상신뢰를 한번 더 넘어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지 레녹은 알 수 있었으니까·
사상의 지평을 초월한 선각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를 원하고 바라는 뇌제의 존재·
저 초월적인 마법사가 레녹을 상대로 요구한 것이 방향은 다르지만 명과 비슷했기에·
레녹은 저 자를 상대로 어떠한 마법을 보여주어야 할 지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비행을 시작한 명이 레녹에게 전해준 것들을 고작 몇 마디 말로 함축할 수 있을까·
명 자신의 결말· 레녹을 기준으로 삼았던 그의 방식·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기며 겸허히 결말을 향해 나아가던 마지막까지·
하지만 그가 레녹에게 전해준 것은 흑마법을 익힐 수 있는 분기점의 가능성 하나만이 아니었다·
명이 레녹을 대신해 중앙전선의 세력들을 학살하면서 장난치듯 건네주었던 초월의 깨달음·
토르번의 마법사들과 싸우며 전격마법의 무수한 가능성을 체득하고 받아들인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레녹의 직관과 정신이 벼락의 인과로 어느 때보다 충만하게 채워진 지금이라면·
하나의 계통의 극에 이르러 마침내 도달하게 되는 두 번째 가능성·
본신계통과는 상반되는 이능에 접하는 바로 그 순간을-
움켜쥔다·
콰직!!!
레녹의 손안에서 맹렬하게 회전하는 사상신뢰의 팔면체가 그 자리에서 금이 가 벗겨진다·
극한에 이른 속도감· 무엇보다 빠르고 기민한 벼락의 성질을 반대로 뒤집어 멈춰 세운 순간·
[탈각(脫殼)]
쩌어어어엉!!!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뇌제가 쏘아낸 전위변성이 레녹의 눈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사나운 광채를 두른 채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들썩이던 술식의 빛이 정지(停止)한다·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던 뇌제의 화려한 금안이 순간 놀란 듯이 크게 뜨여지고·
“극에 이르러 초월하는 순간 마모되어 역행한다·”
“네놈···!!”
“성질변화의 극에 달한 사상신뢰를 뒤집어 존재하는 모든 변화를 강제로 멈추는 것····”
손끝에서 조각나 흩어지는 사상신뢰를 양손으로 흩어내면서 레녹이 입을 열었다·
“시간의 흐름과 변화조차 멈춰 세우는 힘이라면 성역의 법칙마저도 손댈 수 있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