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 죽은 자들의 땅(7) >
거침없는 하대와 살벌한 경고에 양쪽 진영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천마성교도들은 나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한 표정을 짓는 반면 무림맹도들은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렸다·
특히 무림맹 진영의 쟁쟁한 노강호들은 수염을 부르르 떨었다·
배분도 배분이지만 저들은 직접 실력을 겨뤄보지 않고는 좀처럼 패배를 인정하는 법이 없는 초절정의 고수들이었다·
그런 고수들에게 허락 없이 칼을 휘두르면 죽을 줄 알라고 경고했으니 모욕을 당했다는 느낌과 함께 피가 거꾸로 솟구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곳곳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방자한지고!”
“마구니가 세상 넓은 줄 모르는구나!”
“그럴만한 힘이 있는지 당장 겨뤄보자!”
반면 천하십대고수들 상당수가 포진해 있는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장문인들은 오히려 침잠한 모습으로 사태를 지켜보았다·
말이 없다고 해서 분노조차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화를 속으로 삭이고 있는 저런 노인들이 더 무섭다·
어느 쪽이든 나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천마성교도들의 손발을 묶어 두는 것만으로도 작전은 성공한 셈이었다·
무림맹도들은 체면 때문에라도 무방비 상태인 적들을 공격을 하지 못할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전투가 일단 멈출 테니까·
“마침내····”
창공이 둥둥 울리는 일성을 내지르자 무림맹 쪽 노강호들의 노성이 뚝 그쳤다·
나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다음 말을 이었다·
“성보를 모두 회수했고 숨어 지내던 교도들까지 전부 모였으니 우리는 이제 더이상 싸울 이유가 없어졌소이다· 이에 본좌는 천마성교의 대종사로서 무림맹주께 휴전을 제의하는 바이오·”
난데없는 휴전제의에 사람들은 크게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양쪽 진영은 각자의 목적에 따라 치열하게 싸우는 와중에도 한가지 만큼은 생각이 일치했다·
그건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였다·
핍박과 추살을 피해 오랜 세월 숨어 살아온 천마성교도들은 마침내 무림맹을 밀어버리고 마도천하를 건설할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반면 무림맹은 숨어 살던 마구니들이 모조리 기어 나와 한자리에 모인 지금이야말로 박멸을 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한데 내가 양쪽의 기대를 벗어난 제안을 했으니 다들 놀랄밖에·
피 묻은 장검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오연하게 서 있던 설산신검 장초풍은 모두가 들으라는 듯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말했다·
“지난날 천마성교가 끼친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는바· 오늘 화근을 제거하지 않으면 불길이 번져 머지않아 강호무림은 대낮에도 해가 뜨지 않는 하늘을 보게 될 것이오·”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는 때도 있소이다· 하늘은 함께 쓰는 것이지 어느 한쪽의 것만은 아닐 것이오·”
“낮에 뜨는 달은 있어도 밤에 뜨는 해는 없는 법· 무림맹은 천마성교와 공존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오·”
“천살마녀가 천마성교를 이끌면 어떻소이까?”
폭탄 같은 한마디에 수만 평의 대지에 태풍이 휘몰아쳤다·
정마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모두가 두 눈을 부릅뜬 채 나와 연소교를 번갈아 보았다·
내가 갑자기 자신을 지목한 데 이어 사람들의 시선까지 한몸에 받게 된 연소교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는 사람들이 계산할 틈을 주지 않고 곧장 연소교를 돌아보며 말했다·
“백골시마의 제자이자 천마성교의 교도인 천살마녀 연소교는 들으라· 본좌는 오늘부터 너를 제자로 거두고 성보의 무학들을 전수하겠노라·”
“대체 왜 이러시는 거죠?”
“너는 본좌가 본 교도들 중에 가장 어리석다· 어떤 때 보면 미친 것도 같고· 하지만 교맥을 전수해야 한다면 어리석되 누구보다 강한 심장을 가진 너에게 전수하여 교의 미래를 맡기겠다·”
사실 이 말은 칠 일 전 천마대총의 권역으로 들어갔을 때 연소교가 내게 한 말을 되돌려 준 것이었다·
그때 연소교는 정확히 이렇게 말했었다·
[당주님은 제가 본 무림인들 중에 가장 바보 같아요· 어떤 때 보면 미친 것도 같고요· 하지만 같은 편에 서서 누군가와 전쟁을 해야 한다면 전 꼭 당주님의 동료가 될래요·]
이건 세상에서 오직 그녀와 나만 알고 있는 대화였다·
연소교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내가 누군지를 알아차린 것이다·
그때였다·
“재고해 주십시오!”
갑자기 반대를 하고 나선 사람은 삼뇌의 뒤를 이어 사실상 천마성교의 두뇌 역할을 하는 혈영노조였다·
나는 말 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불만을 무조건 찍어 눌러선 곤란하다·
먼저 얘기를 듣고 논리로 상대의 논리를 무너뜨린 다음 마지막에 이르러 힘으로 확실하게 밟아 버려야 한다·
“교를 키우기 위해선 인재가 필요하오·”
“그녀는 삼뇌 군사의 수급을 베어 성보와 함께 적들에게 가져다 바친 배교자입니다· 부디 나쁜 선례를 만들지 마시옵소서·”
“이 자리에 모인 노교도들 열에 일곱은 불과 며칠 전까지 내게 칼을 겨누었소· 하지만 지금은 모두 하나가 되었지· 진통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결속할 것이오·”
죽은 줄 알았던 칠성군 야율극리가 불쑥 나타났을 때 늙은 마두들이 과연 처음부터 무릎을 꿇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최소 열에 일곱은 자웅을 겨루어 본 후에야 비로소 머리를 숙이고 들어갔을 것이다·
이는 정탐을 하러 적진영으로 침투했던 호리독사가 실제로 본 광경이기도 했다·
“교도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천마성교는 누구의 것이오?”
“대종사의 것입니다·”
“하면 본좌가 교도들의 말을 따라야 하오?”
“교도들이 대종사의 말씀을 받들어야 합니다·”
“대답이 된 줄 알겠소·”
나는 다시 연소교를 돌아보며 물었다·
“본좌의 제자가 되겠느냐?”
혈영노조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가운데 모두의 시선이 연소교를 향했다·
연소교는 정확한 내 의중을 몰라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하지만 이윽고 결심을 한 듯 들고 있던 협봉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어 앞으로 십여 걸음을 걸어 나오더니 돌연 땅바닥에 이마가 닿도록 절을 하며 말했다·
“계묘년 칠월 초칠일 산동성 교하에서 태어난 연소교는 대종사를 사부로 모시고 평생 신하와 제자의 예를 다할 것임을 마신께 맹세합니다!”
상상도 못 한 전개에 사람들은 진영을 막론하고 더욱 크게 술렁였다·
천마성교도들의 입장에선 배교자를 제자로 거두는 내 속을 알 수가 없고 무림맹도들의 입장에선 여태 자신들과 함께 싸운 연소교가 갑자기 나를 사부로 모시겠다는 게 뜨악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전초전에 불과했다
진짜 폭탄은 이제부터 터뜨릴 말 속에 있었다·
어차피 던져야 할 폭탄 나는 점점 표정이 굳어지고 있는 천마성교도들을 향해 시원하게 내질렀다·
“충성스러운 교도들은 들으라! 지금부터 본좌의 첫 번째 제자 연소교를 소교주로 임명하고 당분간 교(敎)의 운영과 통치에 관한 전권을 위임하겠다· 이에 소교주의 말을 나의 명처럼 받들도록 하라!”
소교주는 말 그대로 다음 대의 교주가 될 사람을 말한다·
많은 황자들 중에서도 황태자는 한 명인 것처럼 천마교주의 여러 제자들 중에서도 소교주라고 불릴 수 있는 제자는 딱 한 명이었다·
한데 나는 연소교를 제자로 거두자마자 소교주로 책봉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실상 교의 통치권까지 넘기겠다고 공언했다·
웅성거림이 태풍처럼 번지면서 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특히 양쪽 진영의 수뇌부와 노강호들은 내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열심히 갑론을박을 벌였다·
한편 내가 이렇게까지 파격적인 행보를 할 줄 몰랐던 연소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크게 당황해했다·
내게 무언가를 묻고 싶은 눈치였지만 거리가 무려 삼십여 장 정도나 떨어져 있어서 전음을 나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다가가선 안 된다·
내가 만든 인피면구는 어설프기 짝이 없어서 노련한 노마두들이라면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지금도 나름 모사를 한다고 하지만 목소리가 생전의 야율극리와 아주 똑같지는 않아서 갑작스러운 각성의 후유증인 것처럼 연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선천사법술을 익힌 탓에 정신을 집중하자 연소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나 역시 표정으로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놀라지 마시오·]
[지금 뭘 하시는 거예요?]
[내가 천마성교를 이끌 순 없잖소·]
[소교주의 자리는 제가 짊어지기에는 너무나 큰 짐이에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소저는 비록 코딱지만 했지만 음양쌍교의 재건을 도모하는 무리의 수장이었소· 수하들이 좀 더 많아졌고 음양쌍교가 천마성교로 바뀌었을 뿐이오·]
“노신도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무언의 대화를 불쑥 깨트리며 나선 사람은 편복은왕이었다·
“교도들은 오랜 세월 동안 새롭고 고강한 대종사의 재래를 기다려 왔습니다· 한데 어찌하여 용좌에 앉으시기도 전에 전권부터 넘기려 하시는 겁니까?”
똑같이 반론을 제기하지만 편복은왕의 어법은 혈영노조의 그것과 미묘하게 달랐다·
그는 따진다기보다는 교도들이 궁금해하는 걸 대신 질문함으로써 왠지 내게 설명할 기회를 주려는 것 같았다·
아까 ‘대종사’라 부르며 제일 먼저 무릎을 꿇은 것도 그렇고 가장 마지막까지 야율극리와 맞섰던 편복은왕이 무슨 이유에선지 지금은 오히려 누구보다 나를 돕는 느낌이었다·
“용좌를 내주겠다고 한 적은 없소이다만·”
“하오시면····”
“짐작하시겠지만 본좌는 아직 성보의 무공들을 완벽히 익히지 못했소이다· 이에 당분간 조용한 곳에서 칩거하며 수련에 매진할 생각이외다· 다만 일 년에 한 번씩 소교주를 통해 중요한 교령들을 내리도록 할 것이오·”
오직 연소교만이 내가 있는 곳을 알수 있으며 일 년에 한 번씩 그녀를 만나 천마성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겠다는 뜻이다·
이는 경고였다·
만약 누군가 허튼짓을 하면 언제라도 찾아가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
지난날 천마성교의 내분을 겪어본 노마두들이라면 내가 한 말의 의미를 금방 알아들었을 것이다·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 사실상의 폐관수련을 하겠다는데 무슨 명분으로 반대를 하겠나·
편복은왕을 비롯한 노교도들은 여전히 의문이 남은 듯한 표정이었지만 대놓고 시비를 걸어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입장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그건 불가하외다!”
갑작스럽게 일성을 터뜨리며 앞으로 걸어 나오는 사람은 반백의 머리카락을 가슴까지 늘어뜨린 노인이었다·
얼굴을 가로지른 칼자국이며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흉광이 딱 봐도 동맹의 이름으로 참전한 흑도나 사파 세력이 수장이었다·
사황련 흑수회 사자맹· 과연 어느 세력의 수장일까?
어느 쪽이든 저 노인을 따르는 병력이 지금 이 자리에서만 최소 일천 명은 될 것이다·
그때였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연소교의 입이 특정한 모양으로 반복해서 바뀌었다·
입모양으로 무언가를 말해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눈을 마주치며 그녀가 나와 소통하려는 의지를 갖는 순간 내 머릿속은 이미 감응을 하며 그녀의 생각을 읽어 버렸다·
선천사법술의 공능이었다·
‘사황련주?’
노인의 정체를 알아차린 나는 차분하게 물었다·
“사황련주께서는 무슨 말씀이 있으신 거외까?”
“애초 우리는 천마성교가 무림맹을 궤멸하고 강호무림의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고 해서 동참한 것이외다· 한데 이제 와서 행보를 멈추겠다니· 안될 말씀이오!”
야율극리는 과연 저 노인에게 무슨 약속을 했을까?
유성표국의 표사가 얘기한 것처럼 마도천하 이후 정말로 일 성(省)에 대한 패권을 주겠노라고 했을까?
이 모든 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사실 그랬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다만 야율극리라면 저들에게 원하는 걸 주어도 발목을 잡힐 짓은 절대 하지 않았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본교와 귀련이 맺은 약속은 정마대전이 끝난 후의 논공행상에 관한 것이오·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논공행상 또한 없을 것이외다· 다만!”
“···?”
“사황련이 거병을 한 것에 대해서는 충분한 보상과 대가가 있을 것이외다· 하니 너무 섭섭해하지 마시길 바라오·”
“그건 궤변이오· 사황련은 대종사의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휴전 선언에 절대 동의할 수 없소이다!”
“흑수회도 동의할 수 없소이다!”
“사자맹도 동의할 수 없소이다!”
흑도와 사파 세력 중 가장 대표적인 세 곳의 수장들이 한꺼번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구태여 입을 보태지는 않았지만 격노한 표정으로 저들과 뜻을 함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흑도와 사파인들이 어림잡아도 삼천은 될 것 같았다·
사황련주가 천마성교의 대종사를 상대로 제법 대범하게 나오더라니 다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명분이 저들에게 있었다·
때문에 천마성교도들은 저들의 도발에 눈알을 부라리면서도 대놓고 뭐라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내 입장은 다르다·
지금 저들을 확실하게 꺾지 않으면 모든 게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나는 눈동자 가득 살기를 끌어 올리며 착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휴전을 하려면 본좌가 여러분께 사전에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말씀이외까?”
“갑자기 왜 겁쟁이가 되신 거외까? 정녕 천마대총에서 성보의 무공들을 전부 손에 넣고 또 익힌 것이 맞소이까? 아니면 그 어린 표사놈과 싸우다 부상이라도 입으셨거나·”
기어이 선을 넘어버린 사황련주의 도발에 천마성교도들이 격노하며 크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는 나의 파격적인 행보에 불만을 가진 교도들조차도 이 순간만큼은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들었다·
‘제물이 필요할 것 같군!’
나는 언젠가부터 남궁소소의 곁에 서 있는 준수한 용모의 어느 사내를 손가락으로 찌를 듯이 가리켰다·
놀랍게도 그는 남궁유룡의 팔순 잔치 때 만났던 신창양가주의 아들 양조창이었다·
남궁세가와 사돈지간이 되기 위해 온갖 더러운 공작을 펼쳤던 바로 그 가문의 개자식·
사실 내가 가리킨 것은 양조창 하고도 다시 그가 들고 있는 장창이었다·
나는 양조창의 장창에서 이십여 장 정도 떨어져 있는 사황련주에게로 가상의 금을 쭉 그었다·
초고도의 집중력으로 선천오법술을 펼친 것이다·
칠 척은 족히 될 것 같은 장창이 가만히 서 있는 양조창의 손을 갑자기 떠나 사황련주에게로 섬전처럼 날아갔다·
대경실색한 사황련주는 대감도를 뽑아 일도양단의 기세로 휘둘렀다·
단순한 흑도방파도 아니고 몇 개 방파가 모인 연합세력의 수장이라면 초절정 고수의 반열에 들어도 진작에 들었을 사람이었다·
그런 만큼 그의 칼질은 어지간한 고수들에게는 눈으로도 쫓기 어려울 만큼 빨랐다·
더구나 무려 이십여 장 정도 밖에서 날아오는 장창이 아닌가·
하지만 장창은 그런 빠르기를 넘어선 다른 세상에 있었다·
퍽!
장창은 사황련주의 가슴 한가운데를 정확히 관통한 후 마치 벽에 부딪히기라도 한 것처럼 딱 중간에서 멈췄다·
사람을 통째로 꼬치처럼 꿰어 버린 것이다·
사황련주는 헛되이 허공을 가른 대감도를 움켜쥔 채 비스듬히 서 있었다·
두 눈을 부릅뜬 그는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 끝내 뒤로 털썩 넘어갔다·
하늘을 향해 대 자로 드러누운 그의 가슴 한복판에는 장창이 박힌 채 꼿꼿하게 서 있었다·
지켜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공포에 질리고 경악한 사람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특히 사황련주가 내게 맞설 적에 한입씩 보태며 나섰던 흑수회와 사자맹의 늙은 수장들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은 표정들이었다·
졸지에 자신의 장창이 사황련주를 꿰뚫어 버린 양조창과 신창양가의 무사로 보이는 이들도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런가 하면 곳곳에서 이기어검술(以氣默劍術)이 나타났다는 말이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본좌가 또 누구에게 허락을 구해야 하는가? 그런 자가 있다면 지금 나서라· 이 자리에서 목숨을 거두어 다시는 누군가를 우러러야 할 일이 없도록 하겠노라!”
천상천하 유아독존·
나는 지금 표사 이정룡이 아니라 철저하게 새로운 천마교주인 야율극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저 지독하고 끈질기고 무시무시한 노마두들과 흑도의 고수들에게 누가 지존으로서 군림하고 누가 약자로서 복종을 해야 하는 지를 확실하게 가르쳐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