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 전설의 표행(11) >
편복은왕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왕처럼 굴던 그였지만 지금은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반면 반전의 기회를 맞은 명부삼귀는 의기양양했다·
특히 투골음풍장에 맞아 내상을 입고 팔목까지 부러진 삼귀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러다 한순간 기혈이 뒤틀렸는지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고는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와 연소교와 호리독사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모두 힘을 합쳐 범부터 잡고 보자!”
“송곳니가 없는 범은 더이상 범이 아니지요·”
이귀가 일귀를 기합 같은 일성들을 주고받고는 동시에 신형을 쏘았다·
“가소로운지고!”
편복은왕은 내상을 입은 와중에도 쌍장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떨치며 두 사람을 상대했다·
뻥! 뻐벙! 뻥! 뻥!
장력이 충돌할 때마다 또다시 굉음과 함께 엄청난 경파가 휘몰아쳤다·
은빛 구체를 만들어 내지는 않았지만 편복은왕의 투골음풍장은 강맹함을 잃지 않았다·
장력이 폭사 될 때마다 좌중의 공기를 꽁꽁 얼려버리는 한기 또한 여전했다·
다만 나를 의식해서인지 전력을 다해 두 사람을 상대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언제 어느 방향에서 기습해 오더라도 불꽃 같은 반격을 가할 수 있도록 공력의 삼 할 정도를 남겨두는 것이다·
일귀와 이귀 역시 무작정 돌진하지는 못했다·
나를 위해 남겨둔 공력이 언제 은빛 구체에 담겨 자신들을 덮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는 가운데 치열한 공방이 오가길 한참 돌연 주먹만하게 형상화된 은빛 구체 두 개가 일귀와 이귀를 향해 기습적으로 쏘아졌다·
감히 경시할 수 없었던 일귀와 이귀 또한 검은 구체로 맞섰다·
뻐벙!
폭발적인 굉음과 함께 일귀와 이귀가 대여섯 걸음이나 튕기듯 물러났다·
이어 이귀가 나를 향해 버럭 소리 질렀다·
“뭘 하고 있는 거냐!”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만·”
“그러니까 왜 아무것도 않고 가만히 있느냐고!”
“제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지 마십시오·”
한순간 모두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귀가 무언가 더 말을 하려는 찰나 일귀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그리고 서늘한 음성으로 내게 말했다·
“함께 편복은왕을 제거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제게는 편복은왕 선배님을 상대할 대비책이 생겼지만 아직 마지막에 두 분을 상대할 대비책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편복은왕 선배님께서 그 대응책이 되어 주실 수 있을 것 같아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신의를 목숨처럼 여겨야 할 표사가 말을 너무 쉽게 바꾸는군· ”
“표물을 빼앗으러 온 강도가 표사에게 신의를 지키라고 강요하다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입니다·”
명부삼귀는 뜨악했다·
특히 제삿날의 주인이 바뀌니 어쩌니 하며 설레발을 쳤던 삼귀는 거의 사색이 되었다·
하지만 편복은왕은 산전수전 다 겪은 노강호답게 노련했다·
그는 무작정 환영하는 대신 나를 노려보며 슬그머니 떠보았다·
“그래서 날 더러 명부삼귀를 때려눕혀 달라?”
“가능하겠습니까?”
“질문은 내가 한다·”
“가능하지 않으면 질문을 하실 필요도 없어서요·”
“내가 명부삼귀를 때려 눕힐 수 있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럼 질문하십시오·”
“방금 묻지 않았느냐!”
“제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순간 편복은왕의 눈이 뻘개졌다·
그는 화를 가라앉히려는 듯 잠시 숨을 고른 다음 다시 물었다·
“죽간은?”
“연 소저에게 주어야지요·”
“귀신들은 내가 때려잡고 죽간은 너희가 챙기겠다?”
“주인에게 돌려 주려는 겁니다·”
“내 것도 내놓으라고 할 기세군·”
“그건 제가 가져가고요·”
“하!”
“이제 선배님께서 대답을 주실 차례입니다·”
“하면 내가 얻는 건 무엇이냐?”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있겠습니까? 거절하시면 저로서는 명부삼귀 선배님들의 편에 서서 편복은왕 선배님을 도모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어차피 빈손으로 돌아갈 바엔 명부삼귀와 내가 너희를 모조리 죽여 없애버린 다음 훗날을 기약하며 각자가 가진 성보들만 챙겨서 헤어지는 편이 났겠지·”
제대로 한 방 먹였다고 생각했는지 편복은왕은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그에 화답하듯 명부삼귀도 고개를 끄덕였다·
적의 적과 친구가 되었다가 다시 적이 되었다가 이번엔 적들끼리 친구가 되어 나를 압박하는 순간이었다·
“명부삼귀 선배님들은 그러지 못하실 겁니다·”
그때였다·
모닥불 가에 있던 호리독사가 불타는 장작을 슬그머니 집어 들었다·
이어 바로 지척의 바위에 앉아 나를 보고 있던 삼귀의 머리통을 냅다 갈겨갔다·
내상을 입고 팔이 부러졌어도 명부삼귀라는 이름은 어딜 가는 것이 아니었다·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짧은 거리에서도 삼귀는 다치지 않은 손을 휘둘러 장작불을 쳐냈다·
펑!
묵직한 장작이 불꽃을 터뜨리며 허공으로 끝도 없이 튕겨 날아갔다·
동시에 삼귀의 상체가 아주 잠깐 열리면서 무방비 상태로 변했다·
그 찰나의 순간 호리독사는 상여꾼들의 검상 치료를 위해 모닥불에 달구고 있던 단도를 득달처럼 뻗어갔다·
장작불은 삼귀의 앞가슴을 열기 위한 미끼였을 뿐 진짜는 바로 이 단도였다·
잡아서 찌르기 좋도록 미리 꺼내 달구어 놓은 것도 그 때문이고·
그러나 삼귀는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편복은왕에게 당한 모습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해 보일 뿐 모든 강호인들이 두려워 해 마지 않는 초절정의 고수였다·
“어딜!”
삼귀는 상체와 머리를 벼락처럼 뒤로 꺾었다·
호리독사가 뻗은 단도는 반 뼘의 차이를 두고 아슬아슬하게 허공을 찔렀다·
“건방진!”
단도를 흘려보내는 동작 그대로 삼귀가 호리독사를 향해 일각을 뻗었다·
놀란 호리독사는 몸을 옆으로 재빨리 뒤집으며 가까스로 발길질을 피했다·
이어 삼귀의 이차 공격을 두려워한 나머지 황급히 나려타곤의 수법을 펼쳤다·
그 바람에 모닥불 위까지 데굴데굴 굴러갔다·
“벌레 같은 놈!”
호리독사의 예상은 적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를 따라잡은 삼귀는 밟아 죽이려는 듯 발을 들었다가 그대로 뚝 멈추었다·
차디찬 검신이 자신의 목덜미에 철썩하고 붙었기 때문이다·
쇠꼬챙이처럼 가늘고 시퍼런 검신의 손잡이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연소교가 쥐고 있었다·
“수고했어요·”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호리독사가 옷자락에 묻은 불똥들을 탁탁 털어 내면서 일어났다·
장작불이 단도로 찌르기 위한 미끼였던 것처럼 사실은 호리독사의 공격 전체가 연소교의 기습을 위한 미끼였다·
더 멀리서 보자면 치료를 해주는 척 삼귀에게 접근한 것도 쓰러져 신음하는 상여꾼들을 치료해 준 것도 전부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이었다·
목적은 당연하게도 명부삼귀와 편복은왕이라는 닳고 닳은 노강호들의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것이었고·
물론 이 모든 건 내가 사전에 전음으로 두 사람에게 지시를 한 내용들이었다·
방심하고 있다가 새파란 연소교에게 사로잡힌 삼귀가 슬그머니 발끝을 틀었다·
순간 대범하게도 연소교가 검신을 삼귀의 목살에 쓱 밀어 넣어 버렸다·
시뻘건 피가 협봉검의 좁은 검신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조금만 더 깊었어도 경동맥이 잘려나갈 뻔했다·
“제가 백골시마의 제자라는 걸 잊지 마세요!”
삼귀의 몸이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임무를 완수한 연소교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전개에 사람들은 모두 뜨악했다·
전장을 단숨에 장악해 버린 나는 다시 편복은왕을 돌아보며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제 제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삼귀의 목숨이 우리 수중에 있는 한 명부삼귀는 절대 당신의 편에 서서 나를 공격할 수 없다· 그러니 나를 대신해 일귀와 이귀를 제압해라···· 라는 게 내 말의 요지였다·
하지만 여기에도 맹점은 있었다·
일귀와 이귀가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삼귀를 지키려 하진 않을 거라는 거다·
결국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인 타협안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들 하시죠· 양쪽 모두 죽간을 저희에게 돌려준 다음 조용히 산을 내려가시는 겁니다· 하면 서로 죽고 죽일 일도 없고 모두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명부삼귀와 편복은왕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느라 얼굴이 하나같이 노래졌다·
그 와중에도 치열하게 눈치작전을 펼쳤다·
각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가장 이득인지를 따져 보는 것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야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때쯤엔 호리독사가 모닥불 옆에 시체처럼 누워 신음하는 상여꾼들 옆으로 가서 가만히 섰다·
상여꾼들 또한 실제 신분은 사대호법이었다·
저만한 호법들을 다시 키워 내려면 아마도 뛰어난 무재를 지닌 아이들 백 명을 잡아다 이십 년은 가르쳐야 할 것이다·
삼귀에 이어 상여꾼들의 목숨까지 우리 수중에 있는 한 명부삼귀와 편복은왕은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게 내가 펼친 구천홍염장으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남궁소소의 꾐에 빠져 의뢰를 받아들이고 익힌 백포산군의 절학이 목숨을 구해줄 줄이야·
“저것들 셋의 나이를 전부 합쳐도 나보다 열 살은 어릴 터인데 꼴이 아주 우습게 되어 버렸군·”
편복은왕은 모든 걸 체념한 듯 자조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이어 품속에서 비단봉투를 꺼내 내게 휙 던졌다·
얼른 낚아채서 내용물을 확인해 보니 처음 그대로였다·
나는 일귀와 이귀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편복은왕이 백기투항을 한 이상 저들도 다른 도리가 없었다·
끝까지 저항하면 삼귀의 목숨도 위험하거니와 내가 편복은왕에게 또 무슨 제안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령 일귀와 이귀의 멱을 따버리면 저들에게 간 죽간 둘 중 하나를 양보하겠다고 할 수도 있는 노릇이고·
일귀가 삼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삼귀가 품속에서 보퉁이를 꺼내 바닥에 툭 던져 놓았다·
호리독사가 얼른 주워서 보퉁이를 푼 다음 내용물을 확인했다·
호리독사가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나는 다시 일귀를 향해 말했다·
“어차피 다시 추적해 오시겠지만 오늘 밤은 그만 뵈었으면 합니다· 선배님께서 약속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정잡배처럼 근처 풀숲에 숨어 있다가 기습을 해오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겠다고 약속을 해야 삼귀를 풀어주겠다는 뜻이고·
“너는 신의를 저버리면서 내가 약속을 지키길 바라느냐?”
“전술과 거짓말을 같은 것인 양 호도하시면 안 되지요· 설사 그렇다고 해도 저의 작은 이름과 명부삼귀의 명성을 어찌 같이 비교하겠습니까?”
“너희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잘 알고 있다· 하루 이틀은 도망쳐도 사흘 나흘을 도망치진 못할 것이다· 그때까지 사람들 눈에 띄지 말고 잘 피해 다니거라·”
“그럼 살펴 가십시오·”
나는 일귀와 이귀를 향해 정중하게 포권지례를 올렸다·
그걸 신호로 연소교가 삼귀의 목에서 천천히 검신을 떼어내고는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났다·
명부삼귀는 계곡 아래쪽으로 가려 했다·
하필 그들이 가려는 방향에 편복은왕이 버티고 서 있었다·
편복은왕이 냉랭한 음성으로 일귀에게 말했다·
“저 아이에게 한 말을 내가 그대로 너희에게도 해주지· 혈채는 꼭 받아 낼 테니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게 잘 숨어다니거라·”
삼귀가 상여꾼 한 명을 때려죽인 걸 두고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는 말이었다·
“우리가 사신으로 불렸음을 잊지 마시오·”
일귀도 지지 않고 한마디 쏘아붙였다·
정면승부라면 모를까 조용히 접근해 숨통을 끊는 일이라면 자신들이 전문이니 잠잘 때 목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그만 사라지거라·”
“다음에 또 봅시다·”
편복은왕이 옆으로 비켜나자 명부삼귀가 빗살처럼 신형을 쏘아 계곡 아래로 사라졌다·
이제 남은 사람은 편복은왕과 나와 연소교와 호리독사 그리고 상여꾼들이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상여꾼 셋은 모닥불 근처에 나란히 누운 상태였다·
둘은 나한테 당해 까무러치거나 가슴뼈가 함몰된 자이고 나머지 하나는 호리독사가 옆구리를 베어 버리는 바람에 숨을 헐떡대는 자였다·
다행히 나와 명부삼귀와 편복은왕이 개싸움을 하는 동안 연소교와 호리독사가 불에 달군 칼로 상처를 지져 출혈은 멈춘 상태였다·
그러나 그들의 목숨은 여전히 호리독사의 수중에 있었다·
편복은왕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아직 내게 볼 일이 남았더냐?”
“설응을 불러 주십시오·”
“···!”
놈이 있는 한 절대 편복은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설응을 처리하고 떠나야 한다·
“싫다면?”
“그게 대답입니까?”
“내가 먼저 물었지 않느냐!”
“일단 명년 오늘은 상여꾼들의 합동 제삿날이 될 것입니다· 선배님과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금부터 자웅을 겨루어 보아야겠지요· 물론 저 혼자서는 아니고요·”
“끈질긴 녀석이로고·”
“표사가 힘들다고 표물을 포기해서야 쓰나요·”
“설응은 어떻게 할 생각이더냐?”
“잘 데리고 있다가 표행이 끝난 후 하늘로 날려 주겠습니다· 하면 알아서 선배님을 찾아가겠지요?”
“목을 비틀어 죽이는 편이 훨씬 간단하고 여정에도 수월할 텐데·”
“그런다면 순순히 내어 주시겠습니까?”
“그럴 생각은 있고?”
“어떻게 대답해 드리길 바라십니까?”
“제발 내가 묻는 말에 먼저 대답부터 좀 하거라!”
“염려 마십시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이건 전술이 아니더냐?”
“약속 드리겠습니다·”
힘들게 대답을 끌어낸 편복은왕은 좀처럼 분노가 가시지 않는지 콧김을 뿜으면서 한참이나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다 창공을 향해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잠시 후 어느새 깜깜해진 하늘로부터 눈처럼 하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림자는 무서운 속도로 내리꽂더니 편복은왕의 어깨에 살포시 앉았다·
이제 보니 발톱에 살짝 은광이 도는 것이 아무래도 강철조(强鐵爪)를 씌운 것 같았다·
본래도 맹수인데 강철로 된 발톱까지 착용했으니 짐승들은 물론이거니와 어지간한 사람도 해칠 수 있을 것 같다·
편복은왕은 설응의 두 발을 가죽 줄로 두어 번 감아서 묶은 후 나에게 천천히 건네주었다·
뜻밖에도 설응은 별다른 저항 없이 내 어깨 위로 살짝 옮겨 왔다·
다만 평소와 달리 편안하지가 않은지 발톱에 힘을 주었다·
그 바람에 생살이 뚫려 옷섶을 붉게 물들였다·
순간적으로 화가 솟구친 나는 놈의 두 다리를 잡아 땅바닥에 냅다 패대기 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그랬다간 편복은왕과 사생결단을 내야 할 것이다·
대신 재빨리 호신강기를 끌어 올려 놈의 날카로운 발톱이 더는 상처를 헤집거나 다른 곳을 뚫지 못하도록 했다·
“데리고 다닐 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어깨에서 피가 나는데도?”
“곧 익숙해지겠지요·”
“이름은 설아(雪兒)다· 대설산에서 놈이 늑대를 사냥해 잡아먹는 걸 우연히 목격한 후 무려 한 달을 추적한 끝에 겨우 생포했지·”
“매가 늑대를 사냥해 잡아먹었다고요?”
“이제부터 네 것이다·”
“예?”
“저 아이들을 죽이지 않고 치료해 준 값이다·”
편복은왕의 시선이 모닥불가에 누워 있는 세 명의 상여꾼들에게로 잠시 향했다·
그의 말처럼 저들을 죽이려면 싸울 당시 이미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죽여 버리는 쪽이 내 입장에선 더 쉽고 안전했다·
하지만 나도 연소교도 그러지 않았다·
나는 원래가 살인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연소교는 같은 마교도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일하게 한 사람 호리독사만 죽일 생각으로 한 명의 옆구리를 가차 없이 베었다가 내 명령에 깜짝 놀라 얼른 치료를 해주었다·
“무슨 말씀이신 줄은 알겠으나 받을 수 없습니다·”
“좋아할 것 없다· 다음 번에 만나면 널 죽인 후 죽간과 함께 다시 찾아갈 테니까· 그러려면 지금 너에게 작은 빚도 지지 않아야겠지· 대신 그때까지는 네 것이라 생각하고 잘 데리고 있어라·”
“빚도 갚고 협상안으로도 쓰고 그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면 전부 빼앗고· 편리한 계산법인 것 같습니다·”
“너의 전술도 못지 않다·”
“후배의 행동에 무례한 것이 있었다면 양해해 주십시오· 아시다시피 표사에게는 표사의 길이 있는 거니까요·”
“저 아이가 성보를 들고 너를 찾아 간 것도 만박노군 사마옥이 하필 너에게 운송을 맡긴 것도· 이제는 이유를 알 것 같군·”
“제가 운이 좀 좋은 편이긴 합니다·”
“아니지· 그게 아니야·”
“예?”
“성보를 노리는 것이 과연 마교도들뿐이라고 생각하느냐? 그것만 손에 넣으면 꼭 천마교주가 되지 않더라도 천하를 오시할 수 있는데도?”
“···!”
“두 사람 모두 너라면 최소한 중간에서 성보를 가로채 달아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표행밖에 모르는 멍청한 표사 녀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