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이프 플레이어 (961)
쏴아악! 쏴아악!
철썩철썩····
푸르르릅! 푸드드득!
쿠에에엑!
바다가 몬스터들로 들끓고 있다·
놈들은 일제히 적의를 보이며 각국 공략대가 탄 배들을 공격하려 들었다·
공략대는 곧장 응전에 나섰다·
“공중 부대 출격! 놈들을 섬멸하라!”
“배에서 너무 떨어지지 마! 항상 진형을 유지해!”
“젠장! 놈이 또 올라온다! 충격에 대비해! 크게 흔들린다!”
“부 부딪힌다! 제발 버텨라!”
“꺄아아아악!”
“다들 뭐라도 꽉 붙잡아!”
“어떻게든 배를 지켜! 침몰하면 다 끝장이야!”
“부상자들은 저한···· 커헉!”
“젠장 놈들이 갑판에 올라왔다! 어서 저놈들부터 처리해!”
공중전 수상전 수중전 그리고 선상전(船上戰)·
격전은 전장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었다·
하늘은 쉴 새 없이 번쩍였고 바다는 고요해질 기미 없이 거친 파도와 물기둥을 일으키고는 했다·
한편 곳곳에서는 굉음과 폭음 금속음 등이 끊이지 않았다·
몬스터들은 괴성을 질러 댔고 사람들은 지지 않겠다는 듯 고함을 지르며 맞서 싸웠다·
그런 가운데·
“마녀님 배는 부탁할게요·”
“네 시간을 고정해 둘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공략대에 참가한 국가 중 제일 먼저 전황을 수습한 한국 공략대는 본격적으로 승기를 잡으러 움직였다·
은하를 주축으로 한 플레이어들이 다른 국가의 공략대를 도와 군단장들을 토벌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과 전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공략대에게로 기울어 갔다·
‘회귀 전의 기억 덕분이야· 아마 이 기억이 없었더라면 군단장들의 약점을 찾느라고 꽤나 고생했겠지·’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은하는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아리엘에게 지시했다·
“리엘아 괜히 다치지 않게 너무 무리하지 말아 달라고 애들한테 전해 줘·”
“은하은하! 그건 우리가 은하은하한테 하고 싶은 말인데? 아무튼 알았어! 은하은하도 조심하고! 나는 간다!? 뿅!”
인어의 형태를 취한 아리엘이 장난스럽게 경례하고는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은하는 가볍게 피식거린 뒤 진홍의 날개를 펼쳐 자리를 떠났다·
진서나에게 텔레파시가 온 것은 그때였다·
[은하야 거기서 8시 방향에 미국 공략대가 있을 거야· 아무래도 도와야 할 것 같아·]
은하는 비행 방향을 틀었다·
다소 거리가 떨어진 거리에서 몬스터 군세에 둘러싸여 있는 선박 몇 척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 공략대였다·
‘미국은 다른 공략대들과 달리 반대편에서 던전에 입장했지· 북아메리카에 있었다 보니···· 그래서 던전에 입장한 위치도 우리 쪽이랑 떨어져 있어서 제대로 지원을 요청하지도 못하고 고립되고 만 건가·’
미국 공략대의 전력만으로 저 많은 군세를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가세해야겠다·
은하는 판단을 내린 즉시 비행 속도를 높였다·
그러던 중 몇몇이 따라붙었다·
“서나 언니한테 연락받았어요· 저도 지원할게요·”
“우리 쪽은 얼추 정리됐어· 나머지는 아라한테 맡기고 우리는 이쪽이나 정리하자고·”
“주님 저도 함께할게요·”
라라를 요정환장으로 바꿔 기계 장치를 몸에 두르고 요정의 날개를 파닥이는 손가연·
붉은 눈을 빛내는 배수빈과 그녀가 탄 빗자루 뒤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이리야·
그녀들이 힘을 보태기로 하자 은하는 든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탁할게·”
곧 미국 공략대가 가까워진다·
그들이 탄 배를 발아래에 둔 배수빈은 마법을 발동했다·
“걱정 마· 저 사람들한테 안 맞도록 주의할 테니까· 만약 운이 나쁘게 맞는다면···· 안타깝게 됐네·”
직후 화구가 포격을 퍼붓듯 몬스터들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놈들은 예기치 못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퍼퍼펑! 치이익!
끼에에에엑!
화구가 바다에 풍덩 빠져 열기가 섞인 증기를 야기하고 한순간 수면을 뜨겁게 달군다·
화구에 맞아 불길에 휩싸인 몬스터들은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음에 이르거나 급히 물속으로 숨었다·
그사이·
철컥! 위이이잉!
구름 속에 몸을 숨긴 손가연은 고위계 몬스터들을 저격했다·
그녀가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구름을 뚫고 지나간 섬광이 놈들의 숨통을 끊었다·
한편 은하는 이리야를 불렀다·
“이리야 부탁할게·”
“네 주님·”
로자리오를 쥐고 기도문을 읊던 이리야가 눈을 뜬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온 마나가 노란빛의 장막이 되어 미국 공략대를 보호한다·
이때를 기다리고 있던 은하는 홍화검과 황혼검을 휘둘렀다·
〈블래스트 크로스〉
검신에 붉은 꽃잎들이 떠오른 홍화검이 불길을 내뿜고·
〈갤배닉 크로스〉
황혼검이 전격을 내뿜는다·
십자가로 화한 불길과 전격이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들을 집어삼킨다·
그것으로 단숨에 전세가 역전된다·
미국 공략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극적인 공세에 돌입했다·
그리하여·
···오호? 예상보다 적게 죽었네요? 그만큼 수준이 높았나 보네요· 특히···· 노은하 플레이어 당신이· 이거 막 군침이 당기는데요? 당신을 흡수한다면 저희는 더욱 강대해질 테니까요· 그러니 제발 공략에 실패해서 죽어 주세요! 여러분도요!
“····”
아무튼 실력은 잘 확인했어요· 여러분이 과연 어디까지 공략할 수 있을지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럼 잠시 쉬었다가 2층으로 이동합니다!
공략대는 다음으로 나아간다·
* * *
〈심해의 던전〉 2층·
1층에서 정비를 마치고 이동한 공략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2층 역시 1층과 마찬가지로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섬 하나가 보였다·
지금부터 미션을 설명할게요! 다들 저기 있는 섬 보이죠?
“····”
광원 속에서 섬을 가리키며 시선을 유도하는 던전 가이드·
공략대는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저 섬에는 3층으로 가는 길을 알려 주는 특별한 수정구가 숨겨져 있어요· 뿔뿔이 조각난 채로요· 그러니 여러분은 조각들을 모아 수정구를 완성하고 3층으로 가는 길을 찾아 나서면 됩니다!
“조각의 개수는?”
10개요! 어때요? 1층에 비해 덜 위험한 미션이죠? 참 쉽다!
“····”
던전 가이드가 동의를 구했지만 호응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공략대는 던전 가이드를 무시하고 저희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곧 그들은 국가를 불문하고 동일한 결론에 이르렀다·
“일단 섬으로 가자·”
배들은 섬으로 향했다·
거대한 섬을 한 바퀴 돈 배들은 주위에 방해물이 없어 정박에 용이한 위치로 모여들었다·
자연히 배에서 내린 공략대는 다른 국가의 공략대를 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모이니 많기도 하네·’
백사장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은하와 한국 공략대는 새삼 〈심해의 던전〉 공략대의 규모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때 로베르토가 다가왔다·
“노은하 플레이어·”
“네· 그쪽은 피해가 어때요?”
“다행히 아직은 괜찮습니다· 그보다 알버트 플레이어가 각국 대표들을 호출했습니다· 저쪽에서 설치 중인 막사로 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로베르토가 백사장 끝에 세워진 천막을 가리켰다·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그럼 저는 다른 공략대에게도 알리러 가야 해서····”
다른 국가의 공략대 대표들과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다·
은하는 그들과 얼굴을 익히러 막사로 향하기로 했다·
이에 로베르토를 떠나보낸 그는 프리시스 메모리를 찾았다·
“마녀님·”
“네 무슨 일인가요?”
“각국 대표 회의가 있다는데 통역 좀 해 주세요·”
“그런 일이라면야 당연히 제가 해 드려야죠·”
프리시스 메모리가 흔쾌히 대답했다·
그길로 은하는 그녀를 데리고 백사장을 걸었다·
그러던 중·
“Are You 〈Overlord〉 Eunha No?”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영어로 자신의 이름이 불린 은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미국인인가?’
왼쪽 가슴에 성조기가 새겨진 경량화 갑옷을 입고 있는 백인 남성·
상대의 소속을 확인한 은하는 프리시스 메모리에게 부탁했다·
“마녀님 저한테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 주세요·”
“Yes He is Eunha No the leader of the Korean Raids· What’s going on?”
프리시스 메모리가 통역을 맡는다·
덕분에 은하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백인 남성의 용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분은 에제키엘 콜린스라고 미국 공략대의 대표라고 하네요· 다름이 아니라 노은하 플레이어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 찾아왔대요·”
“감사 인사요?”
“네 1층에서 미국 공략대에 도움을 줬었잖아요·”
“아아···· 그것 때문이었구나·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전해 주세요·”
“네 그럴게요·”
생긋 웃은 프리시스 메모리가 백인 남성 에제키엘 콜린스에게 은하의 말을 전한다·
그런데도 에제키엘은 손사래를 치고는 거듭 감사를 표했다·
당시 은하가 가세하지 않았다면 미국 공략대에 큰 피해가 미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회귀 전에는 그랬지· 고립된 상태로 미션을 수행하느라 전력 손실이 상당했었다고···· 그러다 하필 대표까지 죽어서 지휘 계통이 흔들리고····’
그런 의미에서 본의 아니게 에제키엘 콜린스를 구한 셈이다·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은하와 손을 맞잡은 에제키엘이 말했다·
프리시스 메모리가 통역을 도왔다·
“한국 공략대에 받은 도움을 절대 잊지 않을 거라네요· 미국 공략대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달래요·”
“그래요? 좋은데요? 그럼 마녀님 에제키엘 플레이어한테····”
마침 앞으로 있을 회의에서 2층의 공략 정보를 제시하고 어떻게 지지를 얻어야 할지 고민했던 참이다·
에제키엘의 도움을 받으면 되겠다·
은하는 입가를 끌어 올렸다·
“Ok Eunha· I’ll help you·”
* * *
은하는 프리시스 메모리 에제키엘과 함께 막사에 들어갔다·
막사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그들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아니 정확히는 은하에게로·
“····”
누군가는 품평하는 시선으로 누군가는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또 누군가는 호전적인 시선으로····
사람들은 각기 다양한 시선으로 은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도 은하는 개의치 않고 그들의 시선을 마주했다·
“다들 최초로 흑색던전을 공략한 노은하 플레이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네요· 자신 역시 마찬가지고요·”
에제키엘이 은하에게 귀띔하자 프리시스 메모리가 반대편에서 귀띔으로 통역을 도왔다·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자리나 잡죠·”
사람들은 시선을 보내기만 할 뿐 구태여 말을 붙이지는 않았다·
서로 눈치를 살피고 있거나 곧 회의가 시작되기 때문이리라·
어느 쪽이든 괜히 번거롭게 말을 섞지 않아도 됐다·
은하는 다행스럽게 여기고는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에제키엘은 옆자리를 차지했으며 통역으로 온 프리시스 메모리는 조용히 은하의 뒤편에 섰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공략대 대표가 모였다·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사전 협의에 따라 의장을 맡은 알버트 발렌타인이 입을 열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각국 대표들은 2층 미션을 공략하기 위해 의견을 교환했다·
결과 공략대는 국가별로 나뉘어 섬 내 정해진 구역을 탐사하고 수정구 조각을 찾기로 했다·
은하가 말을 꺼낸 것은 그러던 도중이었다·
“밤에도 대책을 세워야 해요· 몬스터들이 야음을 틈타 습격해 올 수도 있으니까요·”
“흥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스페인을 비롯한 몇몇 국가의 대표 플레이어들이 콧방귀를 뀌었다·
프리시스 메모리를 통해 들은 은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주눅 든 기색이라고는 없었다·
“단순히 몬스터들의 야습에 대비하자는 소리가 아니에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놈들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공격해 올 것도 대비하자는 거지· 이를테면····”
“····”
은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러 일부러 말을 끌었다·
그리고 마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잠을 자는 사이에 꿈속 심상 세계로 침투해 온다든가·”
“····”
“상대가 몽마(夢魔)일 경우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회귀 전에 공략대는 몽마들에게 불의의 습격을 받고 고전을 면하지 못했었다·
은하는 그 사태를 막기 위해 제안한 것이다·
“Hmm····”
“····”
의표를 찔린 사람들은 모두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 은하를 비웃던 사람들도 낯빛을 바꿨다·
그때 에제키엘이 바람을 잡았다·
“그의 말이 맞아요· 저 역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대처해 두는 게 낫기는 하겠지· 가뜩이나 이 던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만큼·”
알버트도 동조했다·
그것으로 차츰 다른 사람들도 찬동하는 반응을 보였다·
“과연 〈심연의 던전〉을 공략한 사람이란 건가· 확실히 우리랑 생각하는 게 다르군·”
“저러니 흑색던전을 공략했겠지·”
“결혼만 안 했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랑 어떻게 연을 만들 수도···· 아니지 어차피 상관없나?”
“1층에서 싸우는 걸 봤는데 상당히 강한 것 같던데···· 그 비결이 궁금하군·”
“이따 악수나 해 달라 할까? 이왕에 사인도·”
“····”
은하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에는 어느새 호의가 묻어나고 있었다·
그들이 모국어로 은하를 칭찬했다·
그것을 일일이 통역해 주며 구태여 감정까지 연기해 주는 프리시스 메모리는 연신 킥킥거렸다·
“그런 건 안 알려 줘도 돼요····”
“왜요? 욕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즐겨요 판도라 클랜 로드·”
“하····”
은하는 귓가가 화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