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4· [Side Story] Para bellum (3)
며칠 전 주문했던 탐진치 마력핵을 통한 특수 장비 제조가 끝났다·
대장간 쪽으로 향하자 대장간 바깥 공터에 천에 덮인 커다란 무언가가 놓여 있었고 그 앞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그중 오랜만에 다함께 모여 선 생산조합장 4인방이 보였다· 나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아 황자 전하!”
나를 알아보고 반색한 조합장들이 일제히 고개를 조아렸다· 마주 눈인사한 나는 천에 덮인 커다란 형상을 가리키며 물었다·
“완성되었다고 들었는데 이건가?”
“예! 바로 확인하시겠습니까?”
“그러지· 많이 궁금하니·”
네 명의 조합장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저쪽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천에 뒤덮인 무언가 바로 옆에 서 있던 켈리베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힘차게 천을 걷었다·
펄럭-
천이 걷히고·
그 아래에 가려져 있던 커다란 형상의 정체가 드러났다·
“오오오!”
“이 이것은!”
자리에 있던 모든 생산조합 사람들 그리고 몰려든 구경꾼들이 일제히 감탄을 토해냈다·
흰 천 아래에 가리어 있다가 드러난 것은 바로··· 거대한 골렘 셋이었다·
탐진치에게서 추출해 낸 마력핵 세 개로 만든 특수 수성 장비- 이른바 ‘자율방어인형’이라 불리는 아티팩트다·
‘목수 석공 대장간 연금술 네 가지 생산조합이 모두 기술연구 및 숙련도 레벨 MAX를 찍어야 만들 수 있는 수성 아티팩트 테크트리의 최종 단계!’
목재 및 석재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강철 갑옷을 입히고 이 거대한 몸이 움직일 수 있도록 연금술로 마법 회로를 연결한다·
필요한 기술력도 기술력이지만 또 적성이 알맞은 마력핵이 있어야만 제작과 운용이 가능한 특수 아티팩트이기에· 게임에서도 적절한 운이 따라야만 만들 수 있었다·
‘나도 전혀 생각 못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탐진치를 쓰러뜨릴 수 있었지·’
탐진치는 조각상으로 이뤄진 골렘형 괴수였던 만큼 놈들의 마력핵은 골렘 제작 적성에 알맞았다·
타이밍이 좋았고 덕분에 놈들의 마력핵으로 이렇게 골렘을 급조해 내는 데에 성공했다·
“기동 테스트 시작!”
켈리베이가 소리치자 저쪽에서 계기판 앞에 앉아 있던 릴리가 무언가를 조작했다·
그 직후
지이잉!
번쩍! 번쩍!
세 골렘의 머리 부위에서 하나뿐인 눈에 일제히 푸른빛이 번뜩였다·
쿵! 쿵! 쿵!
뒤이어 세 골렘이 느릿하게 몸을 움직여 주위로 산개했다·
육중하게 그리고 흔들림 없이 걸어 다니는 세 골렘을 보며 조합장 4인이 일제히 눈물을 줄줄 흘려댔다·
“골렘은··· 로망이다····”
“크흡! 예전 골렘 군단 데이터를 남김없이 기록해 두길 잘했지· 과거의 나 칭찬해····”
“골렘 기술은 옛적에 유실된 줄 알았는데 우리 손으로 이렇게 만들 수 있다니·”
“이제 정말 못 만들 아티팩트가 없을 거 같구만· 흐흐흐····”
지난 3년간 내가 쉴 새 없이 굴리고 수련시키고 혹사시킨 끝에 크로스로드 생산조합의 기술력은 그야말로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
무엇보다 여러 생산직 사람들이 항상 서로 협력하고 함께 고민하게 해서 서로 간의 시너지를 극한으로 끌어올렸으니·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포즈를 취하는 거대한 골렘은 그 자체로 이들 생산조합의 기술력 증명이기도 했다·
‘움직이며 변형하는 성벽도 만들고 비공함도 수리하고 만들고 이제는 이족보행 로봇··· 아 아니 골렘까지 만들게 됐구나·’
문득 3년 전 처음 생산조합 사람들과 수성을 준비하던 때가 떠올랐다·
킬존을 위해 나무 울타리를 만들고 엉망인 성벽을 보수하고 급히 장비를 제작하고 창고에 쌓인 먼지투성이 아티팩트를 수리하던··· 그 당시 어설펐던 우리의 모습이·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전선에 직접 서는 전사들만큼이나 전선을 돕고 보조하는 이들 또한 단련되었고 성장했다·
“다들 고맙다·”
각 잡힌 움직임으로 셋이서 동시에 같은 포즈를 취하는 골렘을 보다가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대단한 일을 해줬어·”
내 말에 담긴 진심을 느낀 것인지·
조합장들 조합원들 그 외에도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사람들이 모두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그때 내 옆에서 눈을 반짝이며 골렘들을 올려다보던 소년- 켈리베이의 조수 한니발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 그럼 이 골렘! 탐진치 그놈들처럼!”
이어진 말에 구경하러 온 모든 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나를 보았다·
“합체도 할 수 있나요?!”
“···!”
자리의 모두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격렬하게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았다·
“합체?”
“합체····”
“합체!”
“그게 정말인가요 황자님?!”
열렬한 시선 앞에서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건 무리지·”
즉시 김이 빠진 사람들이 일제히 입술을 비죽 내밀거나 탄식을 뱉어냈다·
한니발이 안타깝다는 듯 손을 물어뜯으며 골렘들을 올려다 보았다·
“크으윽 합체야말로 골렘 로망의 정점인데에····”
“····”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으음·
사실 전선에 변형 기믹을 갖춘 이동 성벽도 있고 마력핵 원본이 되는 탐진치도 2페이즈에서 서로 합체를 하는 만큼 이 골렘들에게 합체 기능을 주는 것도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진 않았지만····
결국 모든 일은 예산과 인력과 시간의 문제다·
이번엔 인력과 시간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서· 합체 기능까지 넣으려고 했다간 몇 달은 더 걸렸을 거다· 실전성이 있을지도 의문이고·
“이족보행 골렘 삼형제 정도로 만족하자· 솔직히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멋지잖아?”
내가 한니발을 달래는 동안 저쪽에서 깡총거리며 다가온 켈리베이가 잔뜩 신이 난 얼굴로 콧김을 내뿜었다·
“그래서 애쉬! 이 친구들 이름은 뭘로 해?”
“이름이요? 흐음····”
원본이 되는 마력핵의 주인은 탐 진 치·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었지·
그러면 그것과 반대되는 의미로····
“각각 절제 자비 지혜라고 할까요?”
“에엥? 뭐야 그게· 영 멋이 없잖아·”
켈리베이가 이번엔 콧방귀를 뀌었다· 이런 젠장!
“그러면··· 각자 들고 있는 무기에서 이름을 따와서· 언월 사모 쌍극?”
내 두 번째 제안에 이번에는 백병부대를 데리고 구경을 온 에반젤린이 태클을 걸었다·
“진짜 재미없다· 좀 더 쉽고 직관적으로 짓는 건 어때요?”
“예를 들어 보아라·”
“뭐 구이 찜 튀김· 이런 식으로?”
“왜 단숨에 골렘들을 먹는 거로 바꿔버리는 건데···?”
그러자 공터에 모인 사람들이 골렘들의 이름에 대해 제각각 의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치즈 초코 보리·”
뭔 강아지 이름이냐?
“믿음 소망 사랑····”
사제님들 좋은 말이긴 합니다만 골렘들한테 붙이기는 조금·
“아침 점심 저녁이요!”
배고프면 얼른 뭐 먹으러 가라 에반젤린·
“황자! 전하! 만세-!”
루카스? 야 너 루카스지?
그 외에도 순 자기들 좋은 대로 지어낸 해괴한 이름들이 줄줄 나왔다·
격렬한 토론이 오간 끝에 결국 다 묵살한 내가 정한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철권 1호 2호 3호로 결정· 끝!”
우우우우-!
좌중으로부터 즉각 격렬한 야유가 터져 나왔지만 시끄러워 이 자식들아! 옛날부터 이 전선에서는 공모전을 열면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온 적이 없어요!
“오오 단풍권 맙소사 철권 1 2 3호라니!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멋진 이름이!”
무투가인 쿠일란 혼자 감동으로 눈물을 쏟아냈고·
“철권··· 음 철권이라· 나쁘진 않네·”
다행히도 골렘 제작 총감독을 맡은 켈리베이가 납득해주었다· 휴우·
이 뜻밖의 작명 공모전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세 골렘이 각자의 무기를 쥐고 멋지게 휘둘러 보이는 것을 마지막으로 철권 3형제의 시연도 끝났다·
몰려든 군중이 철권 3형제의 멋들어진 포즈를 보며 일제히 환호했다·
“와아아아!”
“골렘! 골렘! 골렘!”
“다음에는 꼭 합체해 줘!”
어쨌든 다들 좋아해 주니 다행이다·
역시 로봇은 로망이야····
***
최후의 전투를 앞두고 수성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검은 호수로부터 크로스로드에 도달하기까지의 긴 길에 길목마다 바리케이드와 장애물이 설치되었고· 각종 지뢰와 함정이 그득 깔렸다·
지난 3년의 노하우를 담아 효율적으로 괴수를 쓰러뜨릴 수 있도록· 요충지와 포인트마다 적절한 수성도구가 분배되었다·
무엇보다 크로스로드 본성의 수성 준비가 엄밀하게 이루어졌다·
대포와 사선을 점검하고 병사들의 배치를 최적화하고 쉬지 않고 아티팩트가 작동할 수 있도록 훈련을 진행하고····
또한 스테이지 50에서는 검은 호수로부터 모든 종류의 괴수들이 쏟아져 나온다·
말인즉슨 괴수들이 지상 병력과 공중 병력 모두 튀어나온다는 뜻이다·
자연히 우리 방어선도 지상 방어 병력과 공중 방어 병력을 나누어 배치해야 했다·
외곽에 설치된 흑룡성벽 [나이트브링어]와 그 안쪽에 긴급보수를 끝내고 버티고 선 크로스로드 본래의 남쪽 성벽·
이중으로 자리한 성벽 위에 빽빽하게 병력과 물자 수성장비와 아티팩트가 깔렸다·
“무한한 괴수라····”
그 설치 과정을 지켜보던 이번 최종전의 현장지휘관- 루카스가 나를 보았다·
“주군의 명이시라면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라도 막아 보이겠습니다·”
이 듬직한 허세 앞에서 나는 쓰게 웃었다·
하지만 단순히 내게 용기를 주려는 빈말이 아니었던 것일까·
루카스가 말하자 성벽 위에 서서 배치를 점검하던 다른 영웅들과 병사들이 일제히 씩 웃으며 나를 보았다·
모두가 진심으로 최종전에서 쏟아져 나올 끝없는 괴수들과 싸워 이겨낼 각오가 있는 것이다·
“····”
이 멋진 사람들 최고의 용사들을 둘러보다가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쥔 뒤·
간단하게 내뱉었다·
“부탁한다· 믿고 맡기마·”
다음 순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리의 모두가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팍을 쳐 보였다·
쿵-!
각자의 갑옷 위에 부딪힌 손들이 함께 울리며 깊은 울림소리를 냈다·
나 또한 천천히 손을 들어 쥐어진 주먹으로 내 가슴팍을 두들겼다·
마지막 스테이지·
이곳 크로스로드에서 전선의 모두가 끝없는 괴수를 막아내는 동안·
나는 홀로 떠난다·
진엔딩을 향한 단 하나뿐인 공략으로·
***
스테이지 50이 시작될 2월 말일까지 일주일 남은 시점·
비전투인원은 슬슬 북쪽으로 피난을 보내기 시작해야 하는 이때·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회의가 열렸다·
세계수호전선에 참전 중인 모든 왕들이 호텔 크로스로드의 연회장에 모였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분께서 이미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간단한 인사 후 자리에 모여 앉은 왕들을 둘러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앞으로 일주일 뒤면 세계의 명운을 결정할 최후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모두가 나를 향해 집중하고 있다·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입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면 인류는 생존할 것이고· 이 전투에서 패배하면 세상은 완전히 멸망할 겁니다·”
문득 악몽 속에서 보았던 멸망한 세계가 떠올랐다·
얼어붙은 대지 휘몰아치는 불의 폭풍 검게 가리워진 하늘 쏟아지는 잿가루의 비····
그 지옥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들·
“····”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약속했다·
후회하지 않기로·
내가 선택한 어려운 길로 망설임 없이 나아가기로·
그러니까·
“미리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폭군이 된다·
“세계수호전선의 사령관으로서 인류의 종족신으로서 저는 인세 모든 사람의 의지를 대변하여····”
좌중을 둘러보며 나는 흔들림 없이 선언했다·
내가 선택한 단 하나의 길을 위해서·
“우리의 세상을 완전히 무너뜨리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