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 2장 바람이 구름을 부른다 (3)
칠성 진인의 뒤를 창혜와 창궁이 따르고 있었다· 운중천을 걷고 있는 그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기 그지없었다·
한참을 걸어 그들이 도착한 전각에는 총관부(總管府)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총관부 운중천의 실질적인 살림을 관장하는 곳이다· 운중천을 운영하는 데 소요되는 막대한 자금이 총관부를 통해 집행되고 강호의 각종 이권 사업에 개입해 부(富)를 증식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운중천의 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그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총관부의 경계는 엄중하기 그지없었다· 수많은 무인이 하루 열두 시진 내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총관부를 지켰다· 개개인이 일류라 할 수 있는 무인들이 경계를 서는 총관부는 철옹성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줏빛 전포를 입고 허리에는 커다란 도를 찬 무인이 칠성 진인의 앞을 막아섰다·
“걸음을 멈추십시오· 여기는 총관부입니다· 미리 약속을 잡지 못한 분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줏빛 전포를 입은 남자의 몸에서는 엄청난 박력과 위압감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는 총관부를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는 자호대(紫虎隊)의 대주 정율곽이었다· 그 누구도 그의 허락 없이는 총관부를 드나들 수 없었다·
칠성 진인이 앞으로 나섰다·
“나는 화산파의 칠성 진인일세· 미리 약속을 잡았으니 내방객 명부를 살펴보시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곧 자호대의 무인 한 명이 명부를 갖고 정율곽에게 달려왔다· 명부를 살펴보던 정율곽이 칠성 진인에게 예를 올렸다·
“확인했습니다 칠성 진인· 죄송합니다· 요즘 들어 청탁을 위해 불쑥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결례를 범했습니다·”
“역시 척마대 때문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들어가 보십시오· 총관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그럼 수고하시게·”
칠성 진인과 창궁 창혜가 자호대를 지나쳐 총관부로 입성했다· 잠시 칠성 진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율곽이 부하들에게 말했다·
“모두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예!”
자호대 무인들을 뒤로하고 칠성 진인이 걸음을 옮겼다·
운중천의 실질적인 살림을 도맡아하는 곳답게 총관부는 실로 거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세 개의 전각과 네 개의 커다란 창고 그리고 거대한 연무장과 가산이 있는 후원이 모두 총관부의 영역이었다· 어지간한 중소 문파보다 더 거대한 규모였다·
“으음!”
그 엄청난 규모에 창궁과 창혜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렸다· 이 정도 거대한 전각은 화산파에서도 보기 힘들었다· 이것이 일개 총관부라는 것이 쉬이 믿기지 않았다·
칠성 진인은 제일 큰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하인이 그를 심처로 안내했다·
문이 열리고 방 내부의 풍경이 드러났다·
어린아이 수십이 뛰어놀아도 될 만큼 넓은 실내는 고풍스럽기 그지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평생에 한 번 보기도 힘든 진귀한 물건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널찍한 창문으로는 운중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그가 있었다·
새하얀 장삼을 입고 머리에는 유건을 쓴 문사 차림의 남자는 앞에 놓인 한지 위에 조그만 붓을 놀리고 있었다·
나이는 오십 대 후반 세월의 흔적을 숨길 수 없었는지 머리에는 흰서리가 희끗희끗 내려앉아 있고 이마에도 주름살이 선명했다· 하지만 맑고 깊은 검은 눈동자에는 한 점의 티끌도 존재하지 않아 나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가 바로 운중천의 실질적인 살림을 총괄하는 총관 관대승이었다· 운중천의 방대한 살림을 이끌어가는 실세이자 강호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관대승은 칠성 진인이 온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붓을 놀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언가 글을 쓰는 것 같았기에 칠성 진인은 잠시 조용히 있었다·
마침내 관대승이 글을 쓰는 것을 멈추고 종이를 곱게 접었다· 종이를 봉투에 집어넣은 후 밀봉까지 한 후에야 그가 칠성 진인을 바라보았다·
“오셨군요 칠성 진인· 손님을 모시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예산 집행 문제로 급하게 명령을 내릴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큰일을 하다 보면 그럴 수 있지요· 관 총관께서 얼마나 바쁜지 세상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해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관대승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관대승을 보면서 칠성 진인은 강호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운중천이라는 초거대 세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고 있었지만 관대승에게서는 그 어떤 잡음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 없이 원리원칙에 의거하기 때문에 공평무사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성격 또한 소탈하고 겸손해서 절대로 사람을 무시하는 법이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칠성 진인께서 어인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혹시 척마대를 뽑는 행사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사실은····”
칠성 진인은 운마도강선에서 있던 일련의 사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관대승의 표정이 점점 더 심각하게 변해갔다·
“그러니까 쌍면의 수라 문신을 새긴 자들이 강호에 암약하고 있다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저는 일원 말고도 그런 자들이 강호에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음! 그것이 사실이라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군요·”
“혹시 그런 단체에 대해 운중천에서 파악한 것이 있습니까?”
“칠성 진인께서도 아시다시피 현 운중천의 모든 정보력은 밀야의 준동을 파악하는 데 동원되었습니다· 때문에 오히려 중원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취약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해 화산파의 일대제자가 죽었습니다· 이에 화산파의 이름으로 정식으로 운중천에 요청하겠습니다· 쌍면의 수라를 상징으로 하는 단체에 대해 조사해 주십시오·”
칠성 진인의 비분강개한 표정에 관대승 역시 절로 침중해졌다·
“으음! 이 일은 아무래도 저 혼자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군요· 제가 아홉 하늘께 말씀드리고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겠소이다 관 총관·”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부탁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관대승의 확고한 대답에 칠성 진인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관대승이 저리 대답했다면 분명 쌍면의 수라를 상징으로 하는 단체에 대해 엄중한 조사가 이뤄질 거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창운아 조금만 기다리거라· 내 너의 억울함을 반드시 풀어줄 테니까·’
칠성 진인은 관대승에게 정중하게 포권을 취한 후 밖으로 나갔다·
관대승은 그런 칠성 진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칠성 진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싹 사라졌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기도와 분위기마저 바뀌었다· 따스한 춘풍처럼 여유롭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철갑처럼 무표정해서 도무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가 창밖으로 펼쳐진 운중천의 드넓은 대지를 바라보았다·
“흐음!”
광활한 절대자들의 대지 그가 심혈을 기울여 가꿔온 무인들의 이상향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진무원은 장원의 후원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무릎에는 설화가 곱게 놓여 있다· 장원으로 돌아온 후 진무원은 바로 명상에 들어갔다·
이곳은 적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호의를 가진 사람보다 적의를 가진 사람이 몇 배나 더 많은 곳이었다· 그들이 가진 힘은 진무원이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났다·
이곳에 있는 자 중 고수가 아닌 자가 없었고 든든한 배경을 지니지 않은 자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진무원의 잠재적인 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제 정체불명의 노인을 만난 후 진무원은 자신의 무공을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북방에서 내려온 후 그의 무공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지금의 그와 이전의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스스로의 한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들뜬 기분은 가라앉히고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지해야 했다· 그래야만 어떤 경우에도 냉철하게 판단하고 반응할 수 있었다·
‘우선 만영결부터·’
만자심공이라고도 불리는 만영결이다· 그만큼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북천문의 역대 문주들의 심득이 고스란히 담긴 만큼 익히는 것도 녹록치 않았고 무리가 완전히 정립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진무원은 개척자였다· 만영결을 익히면서 자신만의 무리를 정립해 나가야 했다·
진무원이 만영결을 운용했다· 그러자 단전의 이면에 잠자고 있던 그림자 내공이 기척도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르륵!
마치 먹물처럼 그림자 내공이 기척도 없이 전신으로 번져 나갔다· 진무원이 내공을 운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원에 있는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림자 내공이 움직이면서 전방위 감각까지 깨어났다·
감각의 영역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삼 장 오 장 십여 장까지 그의 감각이 확장되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풀벌레가 움직이는 모습이 나뭇잎 떨어지는 모습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전방위 감각이 미치는 영역이 고스란히 그의 머릿속에 구현된 것이다·
이곳은 그의 간격이었다· 그가 최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만의 공간 이곳에서 그는 능력을 십 할 발휘할 수 있었다·
‘방원 십 장 정도·’
이미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 정도가 자신의 한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겨우 그 정도인가? 내 한계가 내가 규정하고 있는 한계가····’
진무원이 이를 악물고 내공을 운용했다· 하지만 방원 십 장에서 감각의 영역은 더 이상 확장되지 않았다· 그래도 진무원은 포기하지 않았다·
‘두 배 세 배를 늘리지 않아도 좋다· 단지 일 할이라도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다면·’
그 일 할의 가능성을 위해 진무원은 혼신의 힘을 다해 운공했다· 진무원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지만 진무원은 그런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만큼 만영결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진무원이 벌떡 일어나더니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설화가 허공을 갈랐다· 새벽하늘에 검광이 번뜩였다· 멸천마영검 그 불가해의 검공을 펼치는 것이다·
진무원은 무서운 속도로 후원을 누볐다·
계류보를 펼치며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마치 흐르는 물 같았다· 어떨 때는 격류처럼 거세다가도 또 어떨 때는 부드럽게 돌아가는 모습에 한 점의 망설임도 없었다·
들리는 것은 오직 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 그리고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뿐·
진무원은 고요의 바다에서 검을 펼치고 또 펼쳤다·
그런 진무원의 모습을 눈을 부릅뜬 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이를 꽉 물고 주먹을 꽉 쥔 채 지켜보는 이는 바로 명류산이었다·
“저 저····”
그보다 월등히 강한 자가 그보다 더 늦은 시간까지 무공에 몰두하고 있다·
쉬앙!
진무원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마치 자신의 가슴이 베어져 나가는 듯한 섬뜩함이 느껴졌다· 소름 끼치도록 무서우면서도 예리한 느낌에 절로 진저리가 쳐졌다·
“저런 고수가 왜 이 시간까지····”
불과 몇 시진 전 내기를 외부로 발출할 수 있게 되어 기고만장하던 명류산이다· 자신도 고수가 될 수 있다는 기쁨에 겨워 술까지 한잔 걸치고 왔다· 그런데 진무원은 그 시간에도 무공에 몰두하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해졌다·
그 순간 누군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명류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남자는 바로 하진월이었다· 그 역시 밖으로 나왔다가 진무원이 무공에 몰두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어둠 속에서 진무원이 검을 펼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옆에서 명류산이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도대체 그는 왜 그렇게····”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일 그가 진무원과 같은 무위를 가지고 있었다면 매일 주지육림에 파묻혀 살았을 것이다·
그 순간 하진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것은 하루하루를 절박한 마음으로 살아온 자의 단단함이다· 그 십수 년의 세월이 녀석의 방벽이 되고 신념이 된 것이다· 운이 좋다고? 선택받았다고?”
“····”
“개소리 말거라· 치열하게 살아오지 않은 자가 폄하할 만큼 녀석이 걸어온 길은 가볍지 않다· 저 녀석의 모든 것은 사선을 넘나들며 쌓은 탑이다· 북검이라 불리는 자의 단단함은 그렇게 고난의 길을 걸어 다지고 짓이겨져 만들어진 것이다· 너는 어떠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느냐? 과연 네 가슴에 절박함이 존재하기는 하더냐?”
“····”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명류산의 가슴에 파문이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