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화· 힘의 조건 (8)
“저희는 원래 램버스타를 떠돌던 부랑아였어요· 집도 없고 부모도 없는 그냥 아무것도 갖지 못한 아이들· 그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거라곤 도둑질뿐이었죠·”
사실 이런 정상적이지 않은 도시에 정상적인 가정과 정상적인 아이들이 태어난다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대체로 타지역에서 넘어왔거나 혹은 유흥가에서 버려진 일부는 노예시장에서 도망친 아이들 등 집은커녕 부모가 있을 리도 만무하지·
그게 이 매니저라고 다르진 않겠지·
“손님이 죽이셨던 군터 있죠? 걔도 원래부터 그렇게 망나니는 아니었어요· 할 줄 아는 거라곤 주먹질밖에 없다 보니 약탈과 강도질을 서슴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저를 비롯한 많은 아이들이 그나마 때 죽이라도 먹고 살았으니까····”
“···남매였었나?”
“그럴 리가 있겠어요? 닮은 점이 하나도 없는데! 그냥 친구였어요! 친구! 그것도 다 옛날 일이지만····”
생각지도 못한 발끈이었다·
“아무튼 언제 잡혀도 이상하지 않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게 바로 저희였어요· 당시만 해도 전 그저 오늘 같은 내일이 계속되기만을 미련하게 바라고 있었죠· 하지만 군터는 아니었어요· 그는 이 지긋지긋한 부랑아 생활을 청산하고 싶었고 이를 위해 선택한 수단이 바로 램버스타 케이지를 약탈하는 거였어요·”
“넌 거기에 동참한 거고?”
“군터 혼자 보낼 순 없었으니까요· 결국 케이지를 약탈하기 위한 일종의 도적단이 만들어졌죠· 어떻게 됐을 것 같아요?”
답이 정해진 질문이었다·
“실패했겠지·”
“맞아요· 실패했어요·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입구에서 죄다 걸렸으니까· 그럼 그 뒤엔 어떻게 됐을 것 같아요?”
빠르게 대답했던 이전과 달리 이번엔 쉽사리 답을 내지 못했다·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다·
케이지를 약탈 하러 온 10대 소년들
케이지로선 손님으로서의 가치도 없는 그냥 꼴 보기 싫은 도둑고양이들에 불과했다·
그런 그들을 좋게 타일러서 보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두 번 다신 얼씬도 못하도록 두들겨 팼거나
아님 가차 없이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거나·
“죽었어요 전부····”
정답은 후자였다·
“정확힌 저와 군터 말고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까지 모두 죽었어요· 도둑고양이들은 씨를 말려야 한다면서요·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가족 같던 친구들을 한순간에 모두 잃어버린 거죠·”
이미 예상했던 일인 만큼 별로 놀라진 않았다·
“그거 아세요? 저 사실 그때 굉장히 후련했다는 거?”
“후련했다고?”
“네· 더 이상 삶을 미련하게 이어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왠지 모르게 후련해졌어요· 어차피 더 살아봐야 좋을 것도 없는 인생 지금이라도 빨리 죽는 게 차라리 낫다고 봤죠·”
그녀의 입가로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저를 살려 주신 게 바로 린제님이었어요· 죽음을 피하기 위해 삶을 지속하는 것이 사람인데 전 마치 죽지 못해 어쩔 수 없는 사는 사람처럼 보였대요· 그러면서 이번엔 자기를 위해 살아보겠냐고 손을 내밀어 주셨죠·”
그 손을 잡았기에 아마 지금의 그녀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겠지·
“살아난 건 저뿐만이 아니었어요· 끝까지 욕설을 퍼부으며 발악했던 군터도 어찌어찌 살아남았죠· 그때부턴 그냥 케이지의 직원으로 일하게 됐어요· 원래부터 주먹질 좀 했던 군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선수로 차출되었고 전 숙박시설 안에서 허드렛일을 하게 됐죠·”
시체를 향해있던 그녀의 눈이 대뜸 손에 쥐어진 단검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건 겸업에 불과했어요· 린제님 손에 거두어진 그 순간 전 그분을 위한 검이 돼야 했으니까· 그때부터 매일매일 검을 익혔죠·”
검이란 건 무릇 손에 쥐어졌다 해서 자연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린제는 이 여자로부터 검술 더 나아가 암살 술의 재능이 있다고 판단한 거겠지·
실제로 그녀가 보여준 움직임은 단기간의 노력으론 절대 이루어낼 수 없는 재능적 요소가 돋보였었다·
“처음엔 마냥 좋았어요· 내가 내 몸을 굴려 정당하게 먹고 사는 일이었으니까· 근데 군터는 아니었나 봐요· 투기장을 제패하고 머지않아 그는 케이지를 떠났어요· 린제님도 딱히 말리진 않았죠· 쓸 만큼 썼으니 그만 보낸다는 느낌으로요····”
“넌 왜 남아있었던 거지?”
그녀는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떠나기 전에 군터가 말했어요· 너도 그만 떠나자고 자기가 지켜줄 테니 이런 지긋지긋한 곳을 빨리 벗어나자 했죠· 하지만 전 그러질 못했어요· 그때의 군터는 더 이상 제가 알던 군터가 아니었으니까· 쓸모없는 것은 모조리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어느 잔혹한 살인범일 뿐이었죠····”
그 군터란 놈과 어느 정도 연분이 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돈독한 사이였던 것 같다·
당사자는 정작 자기가 변했다는 걸 모르지만 그걸 지켜보는 주변인들은 너무나도 잘 알기 마련이다·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겠지·
피와 싸움으로 점차 타락해가는 자신의 옛 소꿉친구를 본다는 건·
뭐 그녀의 눈을 보니 지금은 그런 감정들이 일체 없는 것 같지만·
“너무 서글프게 보실 거 없어요· 이미 틀어진지 오래니까·”
“날 원망하진····”
“원망할게 뭐 있겠어요! 오히려 잘 죽이신 거죠! 더 살아 있어봤자 세상에 아무 도움도 안 될 놈이라고요!”
그녀는 진심으로 공감하는 듯 보였다·
“이야기가 잠시 딴 데로 샜네요? 손님에게 왜 떠나라는 말을 했냐고 물으셨죠? 그냥 처음 손님을 봤을 때 바로 저희가 떠올랐어요· 아직 케이지에 다다르기 전 그래도 같이 있어서 행복했다고 생각하는 저희가···· 처음 린제님께서 손님을 죽이겠다고 하실 때 전 곧바로 먼저 간 제 친구들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손님께 떠나라는 말을 드렸던 거예요· 더 이상 그런 죽음을 보는 건 싫었으니까·”
“날 투기장에 안 보내려 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나?”
“네 맞아요·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네요· 설마하니 미스트의 암살자가 왔을 줄은 몰랐으니까····”
나는 말 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시선은 다시 린제의 시체로 향했다·
“어째 오너가 죽었는데 슬퍼하는 기미가 안 보이는군?”
“그러게요· 나름 그분으로부터 살고 새로운 인생을 받았는데 허탈함은 있을지언정 슬프다는 감정은 별로 안 드네요·”
그만큼 감정이 무뎌졌다는 거겠지·
뭐 나쁘다는 건 아니다·
가령 암살자뿐만이 아닌 검을 잡는 모든 이들에게 있어 감정이란 건 불필요한 요소에 지나지 않으니·
작업이 끝난 이상 더 남아있을 이유는 없다·
나는 그녀로부터 그만 몸을 돌렸다·
“가시는 건가요?”
“일이 끝났으니까·”
“저도 하나만 여쭤봐도 돼요?”
돌아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온이란 그 이름 본명 아니시죠?”
“····”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말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손님의 이름···?”
이제 와 그건 왜 궁금할까 싶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별 이유는 없어요! 케이지에 오는 손님들 대부분이 자신의 본명이 아닌 가명으로 시설을 등록하시거든요· 말씀하기 어려우시면 안 해주셔도 돼요! 그냥 손님의 진짜 이름만큼은 머릿속에 기록하고 싶다는 제 욕심이니까요·”
난 전 현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정화 작업 이름을 남기고 온 적이 없다·
딱히 일부러 안 말한 건 아니다·
다만 작업이 끝나고 나면 말해봤자 들어줄 사람이 안 남았을 뿐·
사실 말해봐야 나한테 좋을 건 없기에 굳이 말해 줄 필요가 없긴 하다만
“시안· 시안 베르트····”
딱히 나쁠 것도 없겠지·
왠지 그녀와의 관계가 이번으로 끝나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그 길로 램버스타를 떠났다·
* * *
“얼굴이 많이 변했구나?”
다소 뜬금없는 말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상처라도 났습니까?”
“꼭 외형적인 변화가 있어야지 변했다곤 할 수 없는 법이란다· 사람이란 무릇 깨달음을 얻었을 때 낯빛이 달라지는 법이거든·”
어련하시겠습니까?
속 편한 재회 소감 따위를 나누러 온건 아니기에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방학 숙제치곤 너무 과한 걸 내셨더군요····”
“그로 인해 네가 얻은 게 있다면 된 거 아니겠니?”
그녀는 뭐가 문제냐는 듯 생긋 웃어 보였다·
나는 콧방귀를 내며 조용히 물건 하나를 꺼내 보였다·
“린제 니할로프··· 그녀는 당주님을 상당히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물건을 확인한 당주의 얼굴이 다소 묘하게 변하고 있었다·
“설마 그녀가 갖고 있었던 거니?”
내가 내민 것은 한 자루의 단검이었다·
검의 주인이 누구냐 인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이 검이 어떤 검인지에 좀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칠흑의 밤하늘을 머금은 흑색의 도신·
이런 기이한 검은 시중에 있지도 않을뿐더러 오더메이드로 제작되지도 않는다·
오직 미스트의 간부급 대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전용 단검·
아마 당주도 똑같은 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린제는 노예시장에서 도망친 어느 몰락 귀족의 후손이었단다· 니할로프라는 성은 아마 가명일 거야·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이 미스트에 들어왔었지·”
당주는 옛 생각이 떠오르기라도 한 듯 턱을 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미스트가 추구하고자 하는 앞날에 누구보다 열망이 강했어· 거의 그걸 위해 태어났다 싶을 정도로 말이지·”
“그 열망을 말릴 생각은 없으셨던 겁니까?”
“물론 말렸지· 기다리다 보면 네가 원하는 때가 올 거라며 마음을 갖고 기다리자 했어· 하지만 소용없었지· 그녀의 열망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꺼질 기미가 안 보였단다·”
당주는 그녀의 검을 흥미로운 눈으로 살펴보았다·
“하지만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조직을 떠나버렸지· 설마하니 미스트의 검을 아직도 갖고 있었을 줄은 몰랐구나·”
당주의 시선이 다시금 나에게 향했다·
“내 입으로 직접 말해보렴· 네가 죽인 인간은 정말 그녀 혼자뿐이었니?”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넌 내가 가르칠 게 없을 정도로 정말 완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깨달아야 할 거야· 지금 네 힘으로 뭘 할 수 있고 뭘 할 수 없는지· 그래야만 네 힘을 후회 없이 쓸 수 있을 거야·”
힘을 후회 없이 쓴다라····
뭐 맞는 말이지·
후회 없이 살겠다고 다짐한 이번 인생이다·
당연히 후회 없이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다 써야겠지·
“뭐 특별히 어려운 작업도 아니었잖니? 비록 미스트 출신의 암살자이긴 해도 너를 위협할만한 힘이 있는 건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말고! 달리 다른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잖니?”
역시 모르고 계셨군·
마음이 바뀌었다·
원래는 안 꺼내려 했는데 아무래도 보여주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나는 주머니에서 꺼낸 또 하나의 물건을 탁상 위로 대차게 꺼내 보였다·
“···흡수의 반지니?”
아카데미 교관으로 위장취업 중인 그녀로선 모를 수 가 없는 아티팩트였다·
“이 안에 담긴 게 뭔 줄 아십니까?”
표정을 보아하니 이미 뭐가 있는지 깨달은 모양이다·
“····”
파도처럼 떨리는 입술과 계곡마냥 좁혀진 미간·
포커페이스라면 신도 저리 가게 할 당주의 이런 찰진 반응을 보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다·
“이 역시 타깃이 가지고 있던 물건입니다· 그녀 입으로 말하길 조직에서 나올 때 이곳에 안개의 힘을 담았다고 하더군요·”
반지에선 아에르의 힘이 느껴지는 검은 안개가 불타는 연기마냥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 이걸 대체 언제····”
“그녀 또한 미스트의 대원이었으니 아에르의 아공간을 자유롭게 드나들지 않았겠습니까?”
사실 신의 힘이란 게 주변에 떠다니는 공기처럼 흔한 게 아니라 그렇지 이런 아티팩트에 담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도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당주와 내가 자리하고 있는 이 아공간의 기운 역시 반지에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보자·
어느 손바닥만 한 모기가 자기 팔에 침을 꽂고 피를 빨아 가는데 모른 척 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
아니 설사 빨리게 놔둘 순 있을지언정 인지조차 못할 인간은 없을 것이다·
하물며 자신의 힘이 만연해 있는 이 공간에서 누군가가 빨대를 꽂고 힘을 탈취해 가는데 모를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 머저리 신은 그러도록 놔둔 것이다·
몰랐다면 문제고 알았다면 더 문제가 되지·
“아에르으니이임!!”
방금 전까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던 안개의 형상이 어느샌가 저 멀리 달아나버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