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화· 램버스타 케이지 (2)
램버스타 케이지·
일단 뭐 하는 곳인지를 떠나 저 이름을 듣고서 뭐가 떠오르는가?
아마 십중팔구 좋은 장소일 거란 생각은 안 들것이다·
대체로 인간 노예를 단체로 가뒀을 것 같은 새장을 떠올리겠지·
허나 놀랍게도 이곳은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고급 숙박시설이다·
금화 50닢이라는 거금을 주고 들어온 VIP룸·
시설 자체는 로열관에 버금갈 정도로 굉장히 사치스러웠다·
칙칙하기 그지없던 바깥과는 참으로 상반될 정도·
이곳을 이용하는 주 고객층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을지 대충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이곳에서 편히 호캉스나 즐기자고 온 건 아니다·
창밖을 슥 하고 둘러보니 조금 전 거리를 싸돌던 무뢰한들을 비롯해 꽤 고급스런 차림의 부호들까지 하나둘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다만 입구로 들어오진 않고 어딘가로 돌아가는 모양새였다·
이에 나 또한 고개를 돌리고선 곧장 방 밖으로 나왔다·
-끼익
“····”
문을 염과 동시에 적지 않은 시선이 몰려들었다·
복도 위에는 고급스럽게 다려진 붉은 카펫이 펼쳐져 있고 그 양 사이에 각각 3개씩 총 6개의 방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내 방을 제외한 나머지 세 곳엔 각각 가드들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죄다 나를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차림새나 느낌으로 볼 때 이 건물 소속은 아닌 듯싶었다·
아마도 각 방의 주인들이 데려온 호위병일 테지·
일단은 신경 쓰지 않으며 천천히 복도를 거닐었다·
-스스스
향수를 비롯한 익숙한 화장품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진하다 못해 머리를 울리게 할 정도의 강한 냄새·
나로선 꽤나 익숙한 냄새였다·
전생에 내 손으로 죽였던 상당수 귀족들의 몸에서 이 냄새가 풍겨왔었으니·
냄새에 취해 계단을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1층에 도달해 있었다·
총 5층·
내려갈수록 점차 공간이 넓어지는 피라미드 구조의 건물이다·
그 말은 즉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 1층이 제일 넓은 구역이란 소리겠지만 이게 또 그렇지가 않다·
반질반질한 나무 바닥으로 펼쳐진 1층 복도 아래에
족히 두 배 이상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지하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선은 건물 입구와 가까운 로비로 향했다·
로비 옆으론 일반 여관처럼 술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 사람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폐점한 가게마냥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당장 보이는 건 조금 전 내게 핀잔을 주었던 갈색 머리의 여종업원뿐이었다·
“램버스타 케이지의 종업원 리사 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가면을 썼다 해도 무방할 만큼 가증스러운 미소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직업 정신이 투철하다 해야 할지 실로 엄청난 뻔뻔함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케이지를 좀 이용하고 싶은데?”
“케 케이지 말씀입니까?”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흔들렸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저희가 케이지 이용에 관해선 당분간 기존 고객님들만 받고 있어 신규 고객님께서 이용하시기엔 어려움이 있습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약 팔고 있네·
돈만 주면 13살 애한테도 VIP룸을 내주는 마당에 케이지 이용은 별개로 한다고?
“그럴 거면 방부터 내주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녀의 뺨에서 한줄기의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 그게 저희가 숙박과 케이지 이용은 별개인지라···· 저라고 뭐 별수 있나요?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건데····”
내가 사전정보도 없이 온 줄 아나?
법보다 주먹이 앞서고 주먹보다 돈이 앞서는 이 도시에서 저런 제한적인 규칙을 만들었을 리 없다·
지금 이 여자는 내게 이유 없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 말은 즉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다는 뜻이었다·
-스윽
이에 내 손이 자연스레 품으로 향했다·
“···?”
내 행동의 의미는 다른 게 아니었다·
그저 돈 몇 푼을 꺼내 그녀에게 던져주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내 손이 속주머니로 들어가던 그 순간
그녀의 양손이 움찔하고 움직이던 것을····
딱히 이상하다 싶은 행동은 아니었다·
설사 짐승보단 둔할지언정 인간도 위협에 대해선 매우 민감한 동물이기에
손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향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경계심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허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단순히 놀라 움찔한 것으로 끝나게 아닌 뭔가 후속 동작을 이어갈만한 자세를 취했다는 것·
지금도 방황하는 그녀의 손가락이 자꾸만 책상 밑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치 뭔가를 숨긴 것 마냥·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근 5초간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이 여자 처음 봤을 땐 그냥 에밀리 같은 팔푼이 종업원인 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러고 보면 또 이상하지 않은가?
이 넓은 로비를 여자 혼자 지키고 있다는 게·
보통은 다수의 가드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특히나 이 도시 같은 경우엔 더더욱 그래야겠지·
언제 어디서 난봉꾼들이 들어와 깽판을 칠지도 모르니 말이다·
허나 지금 이 주위에 가드는커녕 그녀와 나 이외의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유는 둘 중 하나겠지·
현재 어떤 문제가 발생해 가드들이 다른 곳으로 몰려들었다 거나
아님 다른 가드들이 필요가 없을 만큼 이 종업원 혼자로 충분하다 거나·
확인은 지금부터 해보면 된다·
-꽈악
본래는 생각이 없었지만 품속에 있던 케이람의 검자루를 슬며시 부여잡았다·
단순히 잡기만 한 것이 아니다·
검을 잡음으로 인해 동반되는 살기를 억누르지 않고 그대로 퍼져나가게 했다·
“···!”
내 살기를 감지했는지 그녀의 동공이 이번엔 매우 티 날 정도로 흔들렸다·
그렇게 10초 정도 흘렀을까?
품속에 있던 오른손이 마침내 빠져나온 그 순간
-팅
요란한 파열음이 울리며 고막을 자극했다·
“···!?”
얼빠진 표정의 종업원은 손에 날 서린 단검을 들고 있었다·
그녀와 다르게 내 손엔 무엇 하나 들려 있지 않았다·
빈손으로 나온 건 아니다·
그렇다고 케이람을 꺼낸 것도 아니지·
내가 품에서 꺼낸 건 노랗게 반짝거리는 한 닢의 금화였다·
한없이 무덤덤한 나와 다르게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치 일을 저질렀다가 발각된 사람마냥·
-떼구르르
내가 던진 동전은 그녀의 단검을 맞고 튕겨 나가 책상에서 팽이처럼 돌고 있었다·
잠시 후 덜그럭 소리를 내며 회전을 멈추니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었다·
“지 지금 뭘 하신···?”
“그냥 돈을 꺼내려 했을 뿐인데?”
거짓말 아니다·
앞서 말했듯 난 처음부터 돈을 꺼내려 했던 거니·
그녀는 재빨리 검을 집어넣고선 손사래를 쳤다·
“오 오해 하지 말아주세요! 이건 그냥 정당방위에요! 이 도시에 워낙 같지도 않은 난봉꾼들이 많다 보니 이건 그냥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한····”
“····”
나는 불신의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거 정식으로 컴플레인 걸어도 되는 거지? 지금 로비 종업원이 손님에게 칼을 들이민 거잖아? 나 지금 굉장히 불쾌한데?”
물론 실제로 그렇다는 건 아니다·
허나 그녀는 이미 안절부절못한 얼굴로 이를 수습해야 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호 혹시 원하시는 게····”
“케이지 입장·”
내 목적은 확고했다·
그녀는 졌다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손님이 그 따끈따끈한 소문의 주역 맞죠? 웬 못 보던 소년 한 명이 램버스타 거리에 나타나 잡배들을 밟아주고선 자기를 건드리지 말라며 경고했다던데 설마하니 저희 쪽으로 오실 줄은 몰랐어요·”
투덜투덜 대며 뭔가를 적는가 싶더니 곧 도장이 찍힌 명패를 건네주었다·
일종의 입장권처럼 보였다·
“제가 오지랖에 충고 하나 드리는데 여기 오래 계실 거 아니면 조용히 있다 가시는 걸 권해드려요· 목숨이 여러 개가 아니라면 말이죠·”
손님 안위도 걱정해주고 참으로 친절한 종업원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로비 뒤쪽에 있는 작은 문을 열어 주었다·
문 너머로 자리한 것은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깊은 계단이었다·
중간중간 조명들이 설치되어 있어 그리 어두컴컴하진 않았다·
“직원용처럼 보이는데?”
“어차피 도착지는 똑같아서 상관없어요· 길이 있는데 굳이 뒤쪽으로 돌아가시긴 귀찮잖아요?”
뭐 그렇긴 하지·
호의를 베풀어주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다·
나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안내해준 문 너머로 발을 옮겼다·
시설은 둘째 치고 저 종업원에 관해 미심쩍은 게 한둘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제쳐두기로 했다·
계단은 생각보다 길었다·
못해도 3층 정도의 깊이였으며 지하에서만 느껴지는 답답한 공기마저 느껴졌다·
[어째 걸음걸이가 익숙하다? 와본 적 있는 모양이네?]
용케 잠자코 있던 케이람이 계단 중앙에서 튀어나오며 물었다·
“와보기야 했지· 이렇게 활발한 시기에 온 건 아니었지만·”
전생에선 거의 귀신의 집이 다 되었을 때쯤 왔었지·
계단을 내려갈수록 아래에서 정체불명의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못해도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명·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계단을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낡은 문 앞에 도달해 있었다·
나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뭐야 오늘 대진 왜 이래? 내가 이딴 시시한 X밥들 싸움이나 보려고 온 줄 알아?”
문을 열자마자 들려온 것은 거센 욕설이었다·
“안 볼 거면 꺼지든가! 네놈 말고 볼 인간들 널리고 널렸다고!”
어디 가서 인상으론 안 꿀릴 것 같은 잡배들이 어울려 꽤나 과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일단 물어는 보겠는데 여기 뭐 하는 곳이니?]
“별거 없어· 그냥 돈 걸고 노는 투기장일 뿐이야·”
예로부터 제일 재밌는 구경은 싸움 구경이고 그 싸움 구경보다 재밌는 것은 돈을 걸고 하는 싸움 구경이라 했다·
이곳은 인간의 그러한 원초적 욕구를 해소시켜주기 위한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다·
싸움 좀 한다 싶은 인간들이 모여 서로 피터지게 싸우고 그걸 지켜보는 관중들은 그 잔혹성에 전율을 느끼며 열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전율의 몸을 뺐긴 이들은 새로운 경기를 보기 위해 돈을 걸게 되니 이를 위한 장소가 바로 이 도시의 명물 램버스타 케이지였다·
언뜻 들었을 땐 주 고객층들이 싸움을 좋아할 것 같은 근본 없는 무뢰한들처럼 보일 것이다·
허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없어도 그만인 소규모 층에 불과했다·
이곳 램버스타 케이지 외에도 대륙 곳곳엔 이와 비슷한 투기장 시설이 다수 존재하는데 그 시설들의 운영을 담당하는 핵심 고객층들은 전부 하나 같이 귀족들이다·
오죽하면 대륙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업 중 하나라고 불릴 정도니 말 다 했지·
내가 잡았던 VIP룸도 사실은 그런 귀족들을 위한 부가시설에 불과한 것이다·
일단은 당장 눈에 보이는 배팅장으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