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5화
765. 할리우드로? 1
전수도 감독은 흥행 드라마 PD였고 전수정 감독은 흥행 드라마 작가였다.
각자의 영역에서 잘 나가던 두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함께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두 사람은 입봉작으로 시한부 삶을 사는 남자의 짧은 일생을 다룬 <버킷 리스트>라는 영화를 찍었는데 그 영화는 단번에 칸 영화제의 경쟁 부분에 초청되었다.
작품은 평단의 극찬을 받았으나 아쉽게도 번역의 미숙함으로 수상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천재 남매 감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몇 년이 지난 후.
두 남매는 죽마고우를 화재 사고로 잃어버리고 자책하던 소방관이 매일같이 불을 끄면서 남과 자신의 인생을 동시에 구하는 이야기인 <불길>을 출품했다.
<불길>은 각본상 후보와 그랑프리 후보까지 올라갔지만 역시나 아쉽게 수상을 놓치게 된다.
두 사람은 입봉과 동시에 연달아 2번이나 칸 영화제의 문턱 앞에서 멈췄기에 다들 다음번에는 전 씨 남매의 차기작이 무슨 상이든 하나는 받을 거라며 기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실제로 남매 감독의 차기작인 <화인(火人)>은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게 되고.
비록 두 사람이 나처럼 미래를 알진 못한다고 해도 칸에서 수상 가능성이 있다는 건 안다.
그런데 할리우드로 간다는 게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난 전화 중인 이영진에게 되물었다.
“영진아. 제대로 말한 거 맞아? 남매 감독들이 유진이보고 칸이 아니라 할리우드에 가자고 했다고?”
-예. 의욕 만만이던데요?
두 사람은 이번에는 자신들의 PD 시절과 작가 시절의 흥행 경험을 살려 작품에 대중성을 잔뜩 반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두 사람의 주장일 뿐이다.
회귀 전 두 사람의 수상 전적과는 달리 흥행 전적은 처참하기때문이다.
다만 LT엔터 신종기 대표에게 받은 은혜가 많았기에 준비되지 않은 미팅이라도 만나러 갈 수밖에는 없었다.
“하아~ 알았어. 지금 출발한다고 이야기해 줘.”
-예 실장님. 아 그리고 명식이는 지금 막 회사에 도착했으니까 숙소 앞에 데리고 나가 있을게요.
“그래.”
난 서둘러 이영진과의 전화를 끊은 뒤 김수명 원장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아이들의 심리 치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혹시 제가 어디 있는지 감시하는 사람을 붙여 놓으신 건 아니시죠?
김수명 원장은 회사 지하 녹음실에서 연습 중인 링링을 보러 지금 우리 회사에 와 있다고 하고 있었다.
“모르셨습니까? 하하하. 그럼 지금 애들 데리고 바로 가겠습니다.”
-예. 어서 오십시오.
* * *
회사 앞 DH 빌라.
장소연의 숙소로 빌라 앞에 이영진과 도란희 최대기 매니저가 장소연의 둘째 남동생 장명식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김수명 원장이 함께 서 있다.
차를 세우자 장소연과 장준현과 장연주가 다 함께 내리더니 교복을 입고 기다리던 둘째 장명식과 포옹한다.
“명식아~ 어흐흑.”
“명식 오빠아앙~~”
네 사람은 서로 껴안고 한참이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형. 괜찮아?”
“어. 괜찮아.”
“누나는 다친 데 없는 거지? 진짜지?”
“그렇다니까?”
“연주도?”
“응. 작은오빠. 나 한 개도 안 다쳐써!”
이복 남매들이었지만 부모의 방치 속에 그들은 친남매보다 더 끈끈한 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잠시 후.
장소연이 몸을 돌려 날 쳐다본다.
장소연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봤던 울보 시절처럼.
하지만 회귀 전 알코올 중독에 빠져 날 보며 늘 쓸쓸한 웃음을 짓는 것에 비하면 지금 이렇게 눈물을 보이는 게 백배 낫다.
지금의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니까.
“아 소연아 네 짐은 106호로 옮겨놨어. 쓰리룸이니까 제일 큰 안방은 연주랑 같이 쓰고 나머지는 각각 준현이랑 명식이 쓰면 돼. 이미 필요한 것들은 다 챙겨놨고 원래 집에 있던 짐은 검사님 허락받고 나서 옮기자.”
장소연과 아이들이 놀라서 눈을 끔뻑인다.
“오빠······.”
“형······.”
“가족이 모였으니까 좋은 곳에 살아야지.”
장소연과 장준현 장명식이 눈물을 글썽이며 일제히 고개를 숙인다.
“고마워요 오빠. 정말······ 이 말밖에는 못 하겠어요.”
“형 고마워요.”
“윤호 형. 고맙습니다.”
“유노 삼촌~ 감사합니다아~”
그런데 그때였다.
인사를 마친 장연주가 갑자기 품을 벗어나더니 힘차게 내게로 달려온다.
혹시 넘어질까 봐 두 팔을 앞으로 뻗은 순간 장연주가 내 품에 덥석 안긴다.
“응? 연주야. 왜?”
장연주가 날 올려다보고 배시시 웃는다.
“삼촌! 삼촌은 소원 엄써요?”
“소원?”
“응. 언니랑 같이 살게 해달라는 내 소원 들어줬으니까 나도 삼촌 소원 들어주께요!”
장연주의 맑은 눈에 고인 눈망울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난 장연주를 안은 채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으음~ 다 같이 앞으로 행복하게 살기?”
장연주가 햇살을 머금은 미소로 활짝 웃음을 짓는다.
“네~!!!”
순간 아이들도 환히 웃으며 일제히 답한다.
“네!!”
아이들의 얼굴에 비친 행복의 빛을 본 순간 오늘 하루의 피로가 씻겨져 나가고 있었다.
난 이어서 김수명 원장에게 아이들의 기초 상담을 부탁했다.
김수명 원장이 알겠다며 내게 귓속말한다.
-정 실장님 덕분인지 아이들의 얼굴이 밝네요. 제가 상담하고 전문의한테 또 보내겠지만 크게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렇게 말을 마친 김수명 원장은 장소연과 아이들과 다 함께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당분간 장소연과 가족들을 도맡을 도란희와 최대기 매니저가 그 뒤를 따랐다.
난 그 즉시 차에 오르며 이영진에게 말했다.
“혹시 감독들이 유진이를 할리우드로 진출시킨다는 작품 제목을 혹시 말하디?”
“아뇨. 작품 이야기는 일절 안 하던데요?”
“그래?”
회귀 전 두 사람은 할리우드에 진출한 적이 없었기에 너무도 고민스러웠다.
액셀에 발을 얹고 눈앞에 보이는 회사로 들어가려는데 이영진이 조심스레 말한다.
“제가 천호동으로 가서 유진이 데려올까요?”
유진이는 어젯밤을 꼴딱 새운 데다가 오늘 패션쇼장에서 샴페인까지 마셔서 곯아떨어진 상태.
게다가 이따가 경주 <화란전> 촬영 현장에도 가야 한다.
“아니 걘 쉬게 둬. 아무리 감독들이라도 연예인을 만나려면 약속을 잡고 와야지. 유진이가 신인도 아니고.”
아무리 두 감독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천재 감독이라고 해도 난 내 배우가 소중하다.
정해 놓은 약속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마구잡이로 들어오는 만남까지 응해 줘야 할 이유는 없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전 여기 남아서 소연이나 챙길게요. 그리고 지금 제 폰으로 소연이한테 CF랑 방송 섭외 장난 아니게 들어와서 분류해야 해요.”
“어 수고. 그리고 애들 정신 건강 쪽은 특별히 신경 쓰고.”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이 조금 전에 저보고 연예인의 가족도 우리 가족이니 관심 가지라고 하셨어요.”
역시나 굴렁쇠 엔터는 다닐만한 회사다.
“그래. 그럼 가 볼게.”
난 이영진에게 뒤를 맡긴 뒤 곧장 회사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움직였다.
칸 영화제에 단골 출품을 하는 두 사람이 할리우드에는 어떤 작품을 들고 갈지 궁금해하면서.
* * *
굴렁쇠 엔터 6층 대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쪽에는 신종기 대표와 전수도 전수정 감독이 앉아있고 반대편에는 강감찬 대표 강지영 이사 김관우 부대표가 앉아 있는 게 보인다.
일단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1시간을 기다린 사람들.
웃는 게 웃는 게 아닐 테니 일단 사과부터 했다.
비록 약속도 없이 찾아왔다지만 신종기 대표의 체면도 있고 전씨 남매 감독이라면 어디에서든 귀빈 대접을 받는 명사이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아서 좀 늦었습니다.”
신종기 대표가 반갑게 날 맞이한다.
“아냐. 갑자기 우리가 들이닥쳤으니 그럴 수도 있지. 아 그리고 이쪽은 잘 알지? 천재 남매 감독들?”
신종기 대표가 오른쪽을 가리킨다.
전수도 감독과 전수정 감독이 의자에 앉은 채 손을 들어 올린다.
“요즘 제일 잘 나간다는 매니저시구만. 난 전수도. 나 알지?”
“예. 감독님. PD 시절 때 연출하신 드라마 <달무리>는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전수도 감독의 얼굴이 펴진다.
<달무리>는 전수도 감독이 PD로서 본인의 첫 역량을 제대로 드러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허~ 방영이 끝난 지 10년이 다 된 작품인데 아직 서른도 안 된 친구가 그걸 봤어?”
“당시 드라마 중 아침 안개에 한동안 빠져서 살았습니다. 특히 조연 캐릭터들의 완성도는 역대급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회귀 전 그의 인터뷰에서 읽은 것들을 바탕으로 능글맞게 답했다.
덕분에 분위기가 조금 더 화기애애해진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인 전수정 감독이 날 쳐다본다.
“제법인데? 오빠 옛날 연출작까지 찾아보고. 그러면 혹 내 드라마 각본도 읽어 보셨어?”
“물론입니다. <강가의 사내> <우비의 아이> <거기 서요 동민 씨>······.”
난 전수정 감독이 드라마 작가 시절에 쓴 모든 작품을 하나둘 열거하기 시작했다.
말한 작품 중에서 흥행한 것은 처음 세 개뿐이지만 그녀는 자기 작품 모두에 엄청난 프라이드가 있었다.
회귀 전에 그녀를 인터뷰한 리포터가 말하다가 작품 2개를 빼먹었다고 인터뷰를 중단했을 정도로 괴팍한 성정도 있었고.
그래서 모조리 다 대면서 칭찬 폭격을 늘어놓았더니 전수정 감독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그중 제일 좋은 건 뭐였어?”
“다 좋던데요?”
“칫. 말은 아주 청산유수인데?”
그 순간 신종기 대표가 너털웃음을 짓는다.
“으하하하. 거봐 우리 정 실장은 보통이 아니라니까? 자자. 앉아서 우리 이야기를 해야지. 다음 스케줄도 있으니까.”
난 자리에 앉으며 대화를 주도했다.
두 사람의 의도대로 끌려가게 되면 불편한 상황에 놓일 테니까.
“유진이를 차기작에 쓰시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혹 어떤 작품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신종기 대표가 두 감독을 대표해서 말한다.
“그 전에 할리우드 개봉을 목표로 한 작품이라는 말은 들었나?”
신종기 대표는 LT 글로벌 픽처스의 설립 준비를 마치고선 제임스 킹 감독의 를 첫 번째 영화로 미국 전역에 뿌릴 예정이다.
그런데 두 번째 프로젝트로 전씨 남매의 신작에 유진이를 주연으로 제작할 생각인 듯했다.
“예. 들었습니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 원래 여기 전 감독들이 칸 출품용으로 준비하던 작품인데 거기에 흥행성을 더해서 할리우드용으로 시나리오를 고쳤어. 어차피 유진이도 첫 영화를 알아보고 있으니까 한번 보라고. 혹시 알아? 잘 되면 주식 상장에도 도움이 될지? 우리 정 실장이 시나리오 잘 보니까 한번 보고 확인 좀 해줘.”
이렇게까지 왔으니 일단 검토만은 해봐야겠다.
“혹시 시나리오 파일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그래. 여기.”
신종기 대표가 태블릿을 내민다.
태블릿에는 라는 제목이 되어 있다.
‘불타는 여인?’
그 순간 회귀 전 두 감독이 썼던 차기작이 떠올랐다.
<화인(火人)>.
그 작품은 이화인이란 여자가 자식을 화재로 잃고 자신은 왼팔에 화상을 입은 뒤 자식을 죽게 만든 기업과 싸우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화인(火人)>으로 전수도 감독과 전수정 감독은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화인(火人)>은 인간의 의지를 보여 주는 걸작이라는 평단의 호평과는 달리 관객 수 90만 명으로 흥행에는 대실패한다.
영상 속 주인공의 처절한 삶이 너무도 현실적이라서 보기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난 제목만 비슷하고 제발 다른 작품이길 바라며 의 시나리오를 확인했다.
그런데······.
내 생각이 맞았다.
는 회귀 전 봤던 <화인(火人)>의 리메이크판이었다.
‘아니 화인이면 Woman이 아니라 Person으로 짓든가! 그리고 똑같은 제목을 가진 영화들이 한국 이탈리아에 있는데 제목이 이러면 어쩌라고!’
거기다 칸으로 가야 할 작품을 억지로 할리우드용으로 바꿔서 그런지 시나리오가 전반적으로 더 안 좋게 바뀌어 있었다.
비록 흥행에선 실패했지만 <화인(火人)>에는 자기 딸을 죽게 한 기업 본사 앞에서 이화인이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선 라이터를 들고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명장면이 있었다.
그 씬에서 이화인은 울부짖듯 포효하며 개인의 존엄성에 대해서 무심한 사회에 깊은 경각심을 안기게 되는 명연설을 한다.
그리고 그 씬 덕분에 칸 영화제에서 극찬받으며 수상을 하게 되고.
하지만 할리우드판 의 엔딩씬에서는 횃불을 들고 들어간 다음 대기업 본사에 불을 질러 버리고 있었다.
‘아무리 사이다물이 좋다고 해도 이건 그냥 테러리스트잖아?’
칸 영화제용 작품은 거대한 권력에 맞서 잘못을 인정받게 하려는 어머니의 강인함이 인상적인 작품이지만 할리우드판은 미친 엔딩으로 끝이 나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다 읽은 난 잠시 숨을 고르고선 신종기 대표와 감독들이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게 정중하게 거절했다.
“대표님 말씀대로 시나리오는 훌륭하지만 아무래도 저희 유진이랑은 안 맞는 작품 같습니다.”
“응? 왜 그런가?”
“이 작품의 주제는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 아닙니까? 하지만 유진이는 코미디와 판타지 경험이 없어서 표현이 힘들 것 같습니다. 좀 더 자세히 봐야 알겠지만 이 작품은 경륜 있는 배우가 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충분히 정중한 대답이었지만 거절의 뜻을 받은 전수도 감독과 전수정 감독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신종기 대표도 기대가 있었는지 조금은 실망하는 모습이고.
잠시 회의실에 적막이 이어진다.
그때 전수도 감독이 적막을 깨며 내게 말한다.
“정유진 연기력이면 어떤 시나리오가 와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잖아? <신의 이름에서> 만신 월아나 <파란 하늘>에서 보여 준 변신 정도라면 이 정도 캐릭터 변신은 충분히 허용 범위일 거고. 아냐?”
그의 말투에 숨길 수 없는 짜증이 묻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난 모른 척 덤덤히 대꾸했다.
“죄송합니다. 유진이가 제게 당부했던 드라마나 로맨틱 코미디와는 작품과는 종류가 달라서요.”
“하~ 그러니까 내 작품은 못 하겠다 이거네?”
괜히 상대가 오해할까봐 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수정 감독이 미간을 좁히며 따진다.
“정 실장. 지금 뭐 하자는 거야? 혹시 우리랑 밀당해? 출연료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마. 내가 최고로 대우해 줄게.”
“그런 게 아닙니다.”
“아냐? 하~ 아니면 그건 더 문제지! 지금 이거 내 시나리오에 문제가 있다는 거 맞지? 아니 대체 뭐가 문젠지 들어나 보자!”
솔직히 말하면 전부 다 문제다.
차라리 <화인(火人)>이면 예술성이라도 인정했지만 어설픈 대중성을 노리면서 죽도 밥도 아닌 작품이 되어 버렸다.
그때 강지영 이사가 옆에서 돕는다.
“우리 매니저들이야 배우가 원하는 작품을 골라 줄 수밖에는 없는 걸 양해해 주세요. 감독님의 시나리오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순간 전수정 감독은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그 말은 정유진한테 직접 오케이 따면 된다 이거지?”
“아 그게 그런 뜻이 아니라······.”
곡해도 또 이런 곡해가 없다.
술 마시고 꿀잠 자는 유진이를 괴롭히지 말라고 말하려는 순간 전수도 감독이 벌떡 일어나 버렸다.
“내 동생 말대로 정유진을 만나서 직접 오케이 받으면 되겠네. 수정아 가자. 여기 더 있어 봐야 기분만 상하겠다.”
“어.”
두 사람은 유진이를 만나러 가겠다며 막무가내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한다.
난 그 즉시 문 앞으로 뛰어가 두 사람을 막았다.
“안 됩니다.”
전수정 감독은 어이가 없다며 내게 삿대질을 한다.
“야 정 실장. 넌 매니저면 매니저답게 굴어. 괜히 나대지 말고. 어디서 영화의 ‘영’ 자도 모르는 인간이 까불어?”
영화를 모른다고?
어이가 없네.
내가 본 영화가 몇 편이고 시나리오를 못 보는 배우를 대신해 읽은 시나리오가 몇 편인데!
그리고 무엇보다 나 회귀자야!
하지만 그리 말할 순 없으니 정중하게 설득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이제껏 듣고만 있던 강감찬 대표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감독님들. 유진이는 해외로케를 하는 작품을 원천적으로 안 받습니다. 대부분의 제작사에 통고했는데 못 들으셨나 봅니다.”
하지만 전수도 감독은 강감찬 대표를 협박하듯 말한다.
“하~ 강 대표님. 앞으로 우리와 불편해져도 괜찮으시다 이거죠?”
전수정 감독 역시도 감독들의 인맥과 서예종 라인의 인맥을 과시하며 협박을 하기 시작한다.
“솔직히 예전에 정 실장이 공학도 감독님을 건드렸을 때 우리 서예종 동문들 전부 빡쳤거든요? 그것도 참고 있으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빠지세요. 우린 유진이랑 직접 이야기할 거니까!”
그래 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고 말하려는 순간 신종기 대표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아~ 정 실장이 거절할 줄은 몰랐는데······.”
신종기 대표의 뚱한 말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신종기 대표는 더욱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꺼내 버렸다.
“어쩔 수 없지. 두 분 감독님들. 이번 영화 투자는 없던 일로 합시다.”
신종기 대표가 칸 영화제 수상 유력 감독들 대신 내 편을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