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5화
755. 습격 1
“이 위기가 가실 때까지 영호와 함께 다니도록 하게.”
최영호.
그는 현재 한국 1위의 저축은행인 대흥 저축은행장이면서 최은태 회장의 경호까지 도맡아 하는 심복이다.
그런데 그를 내 곁에 두는 것이 하와이에 가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조건이란다.
하지만 난 즉각 그 의견에 반대를 표했다.
“안 됩니다. 그러다 회장님의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제가 은기 얼굴을 어떻게 봅니까?”
“괜찮네. 영호가 빠진 자리는 진호와 정호 기호가 돌아가면서 채우면 되네.”
대흥 저축은행의 임원 네 명은 모두가 어렸을 때 최은태 회장이 거둔 심복들이다.
또한 주진호 부은행장 박정호 전무 장기호 상무는 명동을 꽉 쥐었던 대호파의 간부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다 합한다고 하더라도 최영호 은행장에 비해선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최영호 은행장은 최은태 회장이 오늘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위험을 막아내며 대한민국 최고의 주먹이라는 소리를 듣던 진짜배기 실력자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내 쪽으로 온다면 최은태 회장 쪽이 위험에 노출된다.
그래서 난 결국 입에 담기 싫은 말을 올렸다.
“최만식이 회장님을 노리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최은태 회장이 고개를 젓는다.
“내 걱정이라면 필요 없네. 어차피 만식이 그놈은 날 노리지 못하니까.”
“혹시 상속 결격 사유를 믿고서 그리 말씀하시는 겁니까?”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는 일에는 결격 사유가 없어야 한다.
그 결격 사유 중 하나는 바로 ‘패륜’이다.
즉 부모에게 상속을 요구하는 목적으로 상해를 입혀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하면 상속을 받을 수가 없다.
그것이 바로 이제껏 최만식 대표가 최은태 회장을 가만히 놓아둔 이유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눈이 돌아간 최만식 대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테니까.
특히 박상곤 의원과 손을 잡은 이 상황이라면 강은기의 목숨을 노렸을 때처럼 할 가능성이 있었다.
만에 하나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최은태 회장을 제거하고 최만식이 청부한 적이 없다고 하면 상속에는 아무런 결격 사유가 발생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법원에서 조사가 나온다고 해도 미래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한 박상곤 의원이 힘을 써준다면 의혹은 수면 아래로 내려갈 것이고.
그러니 최영호 은행장이 곁에서 최은태 회장을 지켜야 했다.
“회장님. 최 행장님만은 곁에 두십시오. 전 괜찮습니다.”
내게는 무엇보다 강력한 에브리데이가 있기에 재차 거절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고택의 입구 쪽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우당탕탕.
-막아!
-이 새X들이 어디에 들어오려고 하는 거야?
-비키십쇼! 영장 받아 나왔습니다!
-영장? 무슨 영장?
-중앙지검에서 나왔습니다. 비키라니까요?
바깥에서 일어나는 소란에 최은태 회장이 미간을 찌푸린다.
“박 의원이 선수를 쳤군. 허허허.”
박상곤 의원이?
그때였다.
덜컹.
문이 열리면서 최영호 은행장이 뛰어 들어온다.
최영호 은행장은 무릎을 꿇더니 숨을 헐떡거리며 말한다.
“회장님. 서울중앙지점에서 저희 대흥 저축은행 임원 모두에 대한 긴급 체포 명령을 내렸습니다.”
최은태 회장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내가 아니라······ 영호 너를?”
“예. 그래서 대흥 저축은행에도 검찰 수사관들이 압수수색 중이라고 합니다.”
최은태 회장의 안색이 흐려진다.
“이유는?”
“불법 대출과 자금 세탁 그리고 고금리 이자 등등의 이유랍니다. 하지만 그건 명분이고 박상곤 의원 쪽에서 저희의 손발을 다 묶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박상곤 이놈이 아주 막 나가려고 작정했구나.”
“그런 듯합니다. 그러니 제가 체포되면 잠시 정 실장과 함께 하와이에 나가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최은태 회장이 고개를 젓는다.
“아니다. 내 빠르게 널 빼내도록 하마.”
“회장님. 분위기가 심상찮습니다.”
“괜찮다! 내가 이 나라를 뜨면 넌 살아서는 못 나온다. 당연히 은기의 목숨도 장담하지 못하고. 그러니 두말하지 말거라.”
최영호 은행장이 부들부들 떨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늘 그렇듯 담대하게 마음먹고 버텨라.”
“예.”
그때였다.
최영호 은행장이 내 쪽을 쳐다본다.
“정 실장.”
“예.”
“상황이 이렇게 되어 미안한데 회장님을······ 부탁해도 될까?”
최영호 은행장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린다.
굴렁쇠 엔터 상장을 코앞에 두고 자기 자신도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최영호 은행장은 내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차마 간절한 그의 청을 거절할 순 없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지키겠습니다.”
“고맙네 우리 회장님을······.”
“아뇨. 회장님이라서가 아닙니다. 제겐 하나뿐인 친구의 아버님이라서입니다.”
조금은 불안해하던 최영호 은행장이 너털웃음을 짓는다.
“하하하. 그 말이 더 믿음직하군. 고마워.”
그때였다.
벌컥.
최은태 회장 고택 안방의 문이 열린다.
정장을 입은 검찰 수사관들이 영장을 들고 구둣발로 들어온다.
“서울 중앙지검에서 나왔습니다. 최영호 은행장님! 불법 대출과 자금 세탁의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저희랑 함께 가시죠.”
그 순간 최영호 은행장이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목소리를 내지른다.
“어디 감히 구둣발로 회장님의 안방을 넘는가!”
쩌렁쩌렁한 최영호 은행장의 목소리에 안방으로 들어오던 검찰 수사관들이 움찔한다.
“지 지금 반항하는 겁니까?”
“시끄럽다! 회장님께 인사드리고 내 발로 걸어 나갈 테니 개망신당하고 싶지 않으면 무례하게 굴지 말고 밖에서 기다려라!”
키 193cm인 거구의 최영호 은행장이 호랑이와 같은 기세로 눈을 부라리자 검찰 수사관들이 뒷걸음질로 안방을 나간다.
최영호 은행장은 몸을 돌리더니 최은태 회장에게 두 손 모아 절을 올린다.
“몸 건강히 계십시오.”
최은태 회장은 앉은 채로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서 마치 내일 아침에 다시 보자는 듯한 태도로 답한다.
“그래. 곧 다시 보자.”
“예. 회장님.”
최영호 은행장은 그제야 몸을 돌린다.
그러다 내 곁을 지나가며 나만이 들을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정 실장. 믿는다.
귓가를 스치는 그의 목소리에는 낮지만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이후 최영호 은행장이 덤덤한 표정을 하고 문밖으로 나선다.
그 순간 검찰 수사관들이 최영호 은행장의 두툼한 팔을 꽉 낀다.
최영호 은행장은 저항하지 않은 채로 양팔에 수사관들을 달고 천천히 사라졌다.
* * *
소란이 가시자 고택에 적막이 잦아든다.
최은태 회장은 이를 악물고 문밖을 보며 외친다.
“밖에 누구 있는가!”
여전히 대답이 없다.
난 그 틈을 타 서재일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같은 중앙지검인 서재일 검사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적들이 최 회장님을 직접 노리는 건가?’
최만식 대표의 위협에 대한 대책을 의논하려고 모였을 때 딱 맞춰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검찰 수사관들은 대흥 저축은행의 실소유주인 최은태 회장을 빼고 최영호 은행장과 임원들을 모조리 잡아갔고.
거기다가 서울 중앙지검 소속인 서재일 검사는 연락조차 받지 않고 있었다.
불안함을 느낀 난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에브리데이를 확인했다.
내가 확인하려는 것은 단 하나.
최은태 회장의 남은 수명이다.
그런데
[에브리데이 V13]
[날짜 : 2022년 11월 1일]
-PM 03: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최은태 회장. 장례식 참석)
폰을 잡은 손이 부르르 떨린다.
지금 상황에 이 일정이 지워진다는 것은 내 눈앞에 있는 최은태 회장이 이보다 일찍 죽을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 아니면 오늘 밤이 될지도.
휘이잉~
3월의 차가운 바람이 열린 안방 문을 향해 몰아닥친다.
순간 솜털이 바짝 솟아났다.
그때였다.
지잉~
에브리데이가 또 알림을 알려 온다.
[알림 : 오늘의 운세가 등록되었습니다.]
오늘의 운세?
난 즉시 오늘의 운세를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3]
[날짜 : 2021년 3월 17일]
[오늘의 운세 : 가까운 이의 부고를 받게 된다.]
최악의 운세가 떠버렸다.
현재 시각 오후 8시.
오늘의 해가 지기 전까지는 이제 4시간이 채 남은 시각.
가까운 누군가의 부고를 받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까운 이’ 중에 가장 유력한 사람은 바로 내 눈앞에 있는 ‘최은태 회장’이다.
‘젠장!’
난 그 즉시 이 사태를 막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 *
한바탕 광풍이 지나간 순간 열린 안방 문으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의 운세가 불길했기에 잔뜩 경계하며 주먹을 쥐었다.
탁탁탁.
다행히 발걸음 소리가 가볍고 느리다.
나이가 든 사람의 발걸음 소리였다.
“회장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안방 문으로 헝클어진 백발의 변호사가 고개를 들이민다.
최은태 회장을 가장 오랫동안 모셔 온 65살의 천진상 변호사다.
그래서인지 최은태 회장의 얼굴도 조금은 밝아진다.
“괜찮네. 그보다 천 변. 바깥 사정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대흥 저축은행 쪽 식구뿐 아니라 고택 경호를 서던 친구들까지 모두가 잡혀갔습니다.”
“남은 인원은?”
“고택 외곽 경호를 서던 녀석들 서넛 정도가 있습니다. 입구에 세워 두고 저 혼자만 뛰어오는 길입니다.”
“예비 경호팀은?”
“급히 전화를 돌려 호출했으니까 10분 이내로 이곳에 올 겁니다.”
“오는 즉시 팀장들은 내 방으로 오라고 해.”
“예.”
“그리고 중앙지검장에게 연락 넣어봤나?”
“해봤는데 안 받습니다.”
“그렇다면 검찰 쪽은 완전히 저쪽으로 넘어간 건가?”
“그렇다고······ 봐야 할 겁니다. 검찰총장도 연락을 안 받고 있습니다.”
“박상곤 그놈이 제대로 손을 썼군.”
“그렇게 생각됩니다.”
“내 돈을 그리 오래 받아먹고 배신하다니. 역시 권력이 무섭긴 무섭군그래.”
천진상 변호사가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최은태 회장이 고개를 젓는다.
“아닐세. 자넬 탓하는 것이 아니야. 그래도 최대한 여러 곳으로 연락을 넣어서 영호부터 빼내게.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까.”
“알겠습니다.”
“김 변이랑 오 변한테 연락은 해봤어?”
최은태 회장을 지키는 세 명의 거물급 변호사는 천진상 변호사 이외에도 올해 60살의 김택훈 변호사 55살의 오성하 변호사가 있다.
천진상 변호사가 최은태 회장의 곁에서 가장 오래되긴 했지만 서열로는 김택훈 변호사가 1위 오성하 변호사가 2위 천진상 변호사가 3위다.
“아직 미국과 일본에서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두 사람에게 연락해서 최대한 빨리 돌아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천진상 변호사는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밖으로 나선다.
이후 최은태 회장이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나와 강감찬 대표를 쳐다본다.
“강 대표 자네. 정 실장 데리고 자리를 피하는 게 좋을 것 같군. 오늘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말이야.”
최은태 회장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노기가 어려 있다.
박상곤 의원에게 맞은 한 방을 반드시 되갚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그러자 강감찬 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강감찬 대표가 대답을 마치고 일어나려 한다.
하지만 에브리데이의 운세를 본 이상 난 물러설 수가 없었다.
“회장님.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기입니다!”
“나도 알아. 나만 남기고 영호와 우리 식구들을 잡아간 건 날 치겠다는 노골적인 신호잖은가?”
“그러면 당장 대피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천 변호사가 경호원들을 불렀으니까 그때 안가로 옮기도록 하지. 밖으로 혼자 나가다가는 더 위험할 수도 있을 테니까.”
상식적으로는 최은태 회장의 말이 맞다.
어딜 가든지 경호원들이 많을수록 안전해지니까.
하지만 때론 시기가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회장님. 절 믿으십니까?”
“당연히 정 실장이야 믿지.”
“그러면 오늘은 아무 말씀 마시고 제가 하자는 대로 따라 주십시오. 사람들을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 바로 이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네를 따라가자고? 어디로?”
“목적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은 이곳을 벗어나는 게 급합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흐음······.”
최은태 회장이 고민하던 그때였다.
지이잉~
최은태 회장의 폰으로 전화가 걸려온다.
“잠깐만 기다려 보게.”
“예?”
“야당 당대표 최수호 의원의 전활세. 이건 꼭 받아야 해.”
최은태 회장이 전화를 받은 뒤 노기 어린 목소리로 묻는다.
“이보게. 최 대표.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죄송합니다. 어르신. 지금······ 찾아뵈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
-예. 소식 듣고 지금 댁으로 가는 중입니다.
“압수수색을 당한 이곳으로?”
-어차피 거긴 수색을 하고 갔으니까 당분간 조용할 겁니다. 원래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잖습니까?
“크흠.”
-여당 부대표 유태식 의원에게 연락해 보니 그쪽도 준비만 마치고 댁으로 이동하겠다고 하더군요. 같이 보시죠 “알았네.”
최은태 회장이 전화를 끊고 내게 말한다.
“최수호 의원은 내가 제일 오래 공들인 사람이야. 지금 온다고 하니 아무래도 여기서 기다려야겠네. 여당의 부대표도 이쪽으로 온다고 하고.”
야당 대표 여당 부대표 같은 거물이 여기로 온다고?
요지부동으로 있는 최은태 회장을 본 순간 불러야 할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알겠습니다. 그럼 강감찬 대표님만 가시고 전 내일까지 여기 있겠습니다.”
“정 실장. 괜찮대도.”
난 대꾸하지 않고 잠깐 전화를 하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누군가와 통화 중이던 천진상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끊는다.
“전 통화 끝났으니까 편하게 통화하십시오.”
천진상 변호사는 의외로 짧게 통화를 하고서 다시금 최은태 회장의 안방으로 향한다.
조금은 의아했지만 정신을 팔고 있을 시간은 없다.
난 즉시 강은기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어 윤호야 왜.
“은기야. 최 회장님네 댁이 공격당했다!”
-뭐?
“지금 검찰에서 나와서 싹 다 연행해 가고 고택에 남은 사람이 다섯도 안 된다. 아무래도 지금 좀 와봐야겠는데 너 지금 어디야?”
-채미현 씨 촬영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 중이야. 지금 막 종로 지나는 중인데······.
종로라면 이 근처다.
게다가 강은기의 곁에는 늘 3개 경호팀이 함께 움직이고 있으니 최은태 회장을 오늘 밤까지 보호하기에는 딱이다.
“당장 이쪽으로 좀 와!”
그때였다.
퍽.
고택의 입구 쪽에서 작지만 둔탁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다시금 조용해진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건 누군가가 다시 습격했다는 소리니까.
순간 몸을 돌려 안방으로 향하며 폰에다 속삭였다.
-은기야. 너희 아버지를 노리는 놈들이 또 온 것 같다. 서둘러!
오늘은 왠지 길고 긴 밤이 이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