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3화
753. 왕미인 작가 2
왕미인 작가가 수정한 대본에 담긴 질문은 대중들의 관심사를 예리하게 짚으면서도 연예인이 불편해하지 않는 선을 기가 막히게 지키고 있었다.
이러면 대중의 호기심도 풀어 주면서 출연하는 연예인도 부담 없이 답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답이 오가게 되고 그 특유의 분위기가 프로그램 전반에 묻어 나오게 된다.
그 결과 당연히 시청률은 올라가게 되면서 차후에도 연예인들의 캐스팅을 쉽게 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즉 인기 프로그램의 수명 그 자체가 늘어나는 것이다.
게다가 매니저로서도 이런 작가라면 믿고 출연을 쉽게 승낙하게 되는데 그건 바로 대본상의 질문이 출연자의 편에서 쓰여 있어서다.
가령 채미현에게 하는 질문은 이런 식이다.
-십 년 동안 몸이 불편한 동생을 숨기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걸로 알려졌는데 그동안 심정이 어떠셨나요?
질문 그 자체가 이미 채미현의 편을 들고 있었기에 채미현도 속에 담긴 이야기를 조금은 편히 할 수 있다.
심지어 유진이의 질문지도 마찬가지였다.
-미소에게 들어오는 수많은 작품 중에서 <실종 – 잃어버린 자들>과 <연무(煙霧)> 단 두 작품만 찍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최은세 작가는 마치 미소가 학대라도 받는 듯한 느낌의 질문지를 작성했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왕미인 작가는 똑같은 내용의 질문을 하면서도 미소가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 질문지를 작성해 놓았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토록 왕미인 작가의 대본은 일부러 아픈 곳을 후벼 파는 최은세 작가의 것과는 결이 다르게 출연자에 대한 배려가 한껏 넘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뿐이 아니었다.
가장 민감한 강은기의 과거사는 아예 빠져 있었다.
사실 강은기의 과거 조폭 시절 이야기는 방송국이 시청률을 올릴 때 쓰기 딱 좋은 소재다.
그러나 왕미인 작가는 아예 조폭 시절 이야기를 과감하게 빼버린 뒤 ‘보육원 시절’로 대체해 버리는 초강수를 썼다.
시청률은 조금 깎이겠지만 출연자의 아픈 치부를 다루지 않는 의리 쪽을 택한 것이다.
역시 의리 있고 다정한 그녀에게 손을 뻗은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
강은기 역시 수정된 대본을 보더니 만족한 듯 빙그레 웃음을 짓는다.
그러고선 노트북을 내게 넘겨주고 왕미인 작가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훨씬 낫네요. 감사합니다.”
나 역시 노트북을 고민형 PD에게 돌려준 뒤 왕미인 작가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최곤데요?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예. 정 실장님.”
고민형 PD가 깔깔 웃으며 왕미인 작가를 놀렸다.
“우리 왕 작가. 기분이 어때? 요즘 제일 유명한 매니저들이 고맙다고 하잖아. 응? 어때? 좋지?”
왕미인 작가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예 PD님. 진짜 하늘을 날아갈 거 같아요.”
솔직한 그녀의 반응에 고민형 PD가 화통하게 웃으며 외친다.
“하하하. 그래. 그러면 자~ 오늘은 우리 왕 작가님 대본으로 촬영 들어갈 테니까 입봉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잘 도웁시다!”
“예!”
“그리고 소품팀은 얼른 가서 차와 간식들 준비 꼼꼼히 해주세요. 출연진들이 좋아하는 상품 파악 잘하고 아 없으면 배달의 겨레를 이용해서라도 시켜요. 비용 청구 확실히들 하고.”
“예. PD님.”
고민형 PD가 지시를 내리는 사이 스튜디오 한쪽 문이 열린다.
메이크업을 마친 유진이가 미소의 손을 잡고 나오고 있다.
“엄마. 이따가 집에 가서 뽑기 10판 해도 돼?”
미소는 내가 화이트데이에 선물한 ‘사탕 뽑기 기계’로 뽑기를 할 생각에 볼이 발갛게 상기 되어 있다.
“대신 뽑기에서 나온 사탕은 하루에 한 개 이상 먹으면 안 돼?”
“응! 그리고 엄마. 한울이랑 석현 오빠랑도 같이 가서 뽑기 해도 돼?”
“그 사이에 석현 오빠랑도 친해졌어?”
“응! 친해졌어!”
대기실에 있는 동안 채석현은 채미현의 손을 잡고 미소에게는 좋아하는 파워터프걸 인형 그리고 한울이에게는 로봇 전사 아이빅 조립 박스를 선물했다.
미소는 선물을 받았으니 꼭 보답해야 한다며 집으로 초대하고 싶단다.
유진이가 빙그레 웃으며 뒤를 쳐다본다.
“한울아 석현아. 이따가 촬영 끝나면 우리 집에 갈래?”
덕배의 손을 잡은 한울이가 방긋 웃으며 답한다.
“네!”
하지만 채석현은 놀란 표정을 짓는다.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는 것이 처음인 듯.
“나 나도 가도 되는 것입니까?”
“그러~엄~ 우리 미소랑 사이좋게 지내줘. 석현이가 오빠잖아.”
채석현이 들뜬 표정으로 오른손을 꼭 잡고 있는 누나 채미현에게 허락을 구한다.
채미현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석현아 감사하다고 해야지?”
채석현이 세상을 다 가진 미소를 지으며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고맙습니다! 나 초대받는 것은 처음입니다!”
채석현이 기뻐하자 미소도 한울이도 덩달아 기뻐하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게스트들이 나오자 고민형 PD가 스태프들을 향해 힘차게 외친다.
“게스트들은 분위기 좋네요. 그럼 우리 스태프들만 힘 내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최 작가가 사라져서 시청률 떨어졌다는 소리 안 듣도록 최선을 다해 봅시다!”
“예! PD님!”
고민형 PD는 최은세 작가가 놓고 간 태블릿을 왕미인 작가에게 내민다.
“왕 작가는 출연진들한테 변경된 대본 보여 줘. 노트북 말고 여기 태블릿 쓰고.”
태블릿을 받아 든 왕미인 작가가 고개를 갸웃한다.
“이건 최 작가님 거 아니에요?”
“아니 우리 회사 거야. 단 조금 이따가 IT 부서에 가서 자료 백업을 한 다음에 초기화해 달라고 해. 괜한 구설수에 오르면 안 되니까.”
“예 PD님.”
왕미인 작가는 태블릿을 품에 받아들고 출연진들에게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토크쇼! 연예 세상>의 현장은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 * *
<토크쇼! 연예 세상>은 한 주의 가장 핫한 연예계 뉴스 소식과 그 당사자를 게스트로 초빙해 이야기를 듣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메인 MC는 10년 차 탑 개그맨 출신의 이재윤이 단독으로 맡고 있다.
입담 좋기로 유명한 이재윤 MC는 촬영이 시작된 순간 테이블 위에 놓인 간식들을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오늘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간식들을 준비해 봤습니다. 유진 씨는 꽃차와 약과 미소는 수정과와 인절미라고 적어 주셔서 준비해 봤습니다.
유진이가 빙그레 웃으며 찻잔을 쥔다.
-예. 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꽃차랑 약과가 제일 좋더라고요.
그에 질세라 미소가 환한 눈웃음을 지으며 답한다.
-네 전 인절미가 제~일~ 좋아요! 아 그리고 우리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이름도 인절미에요. 강아지도 한 마리 키우는데 걔는 백설기예요. 아 맞다. 걔들 엄마인 럭키랑 미미도 키워요. 전부 다 진짜 예뻐요. 이거 보실래요? 여기요!
간식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 미소가 목에 걸고 있던 파워터프걸 폰 케이스를 내민다.
폰 액정 바탕 화면에는 럭키와 미미 그리고 백설기와 인절미와 함께 유진이와 미소의 사진이 있다.
원래는 나도 함께 있는 사진이었지만 혹시 몰라서 내가 없는 사진으로 바꿔놓은 게 다행이다.
-하하하. 정말이네요. 우리 미소 양을 닮아서인지 참 예쁘네요.
-힛. 감사합니다~
보통 토크쇼 MC들은 첫 만남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끌어내기 위해 촬영 전에 꽤 많은 시간을 들인다.
하지만 왕미인 작가가 ‘간식 토크’ 코너를 맨 앞에 넣으면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왕미인 작가가 이렇게 코너 하나를 추가한 것만으로도 어색해질 수 있는 촬영장 분위기가 확 달라진 것이다.
이어서 이재윤 MC가 덕배를 보며 묻는다.
-그리고 덕배 군은 좋아하는 간식으로 아이스아메리카노에 초코 케이크라고 적어 두셨고 한울 군은 녹차와 딸기 케이크라고 적어 주셨네요?
덕배가 한울이를 잠깐 쳐다보다 MC를 향해 눈웃음을 짓는다.
카리스마 있는 눈빛을 가진 덕배지만 한울이가 곁에 있을 때만은 누구보다 다정한 눈빛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저 사실 전 단거 잘 못 먹습니다.
이재윤 MC가 고개를 갸웃한다.
-예? 그런데 왜 초코 케이크를 간식으로 적어 두셨나요?
덕배가 자기 앞에 놓인 초코케이크를 슬쩍 한울이에게 밀어 준다.
-우리 한울이가 어릴 적에 봉사활동을 하러 온 누나가 조각 케이크를 들고 쪽방촌에 온 적이 있거든요.
그때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한울이랑 제 몫으로 남겨진 것이 이 초코 케이크와 딸기 케이크였습니다.
그게 한울이가 세상에서 처음 먹은 케이크였는데 한울이가 그때 맛보고 매일매일 먹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요즘도 늘 이렇게 케이크를 살 땐 2가지를 삽니다.
덕배는 한울이에게 주기 위해 좋아하는 간식 1개를 한울이 대신 선택한 것이다.
한울이는 자기 앞에 놓인 케이크를 앙 하고 한입 베어 문 채 덕배를 바라보며 말한다.
-난 형이 챙겨 주는 거면 뭐든 다 좋아. 꼭 이 케이크가 아니라도.
덕배가 흐뭇하게 웃으며 한울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두 형제가 보여 주는 장면에 이재윤 MC가 부러운 듯한 표정을 짓는다.
-전국의 형 둔 동생들은 오늘 한마디씩 하겠네요. 그리고 저도 오늘 우리 형님에게 전화해서 뭐든 좀 사달라고 해야겠습니다. 하하하.
이재윤 MC의 흐뭇한 표정은 촬영 중인 스태프들에게도 전염되듯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왕미인 작가가 쓴 대본으로 촬영하던 현장에서 늘 보던 장면이 다시금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 * *
“컷. 오케이~ 자 여기서 잠깐 끊고 가겠습니다.”
1시간의 순조로운 촬영이 끝이 났다.
고민형 PD가 상기된 표정으로 왕미인 작가를 쳐다본다.
“왕 작가.”
“예?”
“솔직히 모험이긴 한데 이번 주 시청률이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왕 작가를 메인으로 밀어볼까 하는데 어때?”
“제가요?”
“그래. 저기 봐봐. 출연진들이나 스태프들 다들 웃고 있는 거. 분위기 좋잖아?”
촬영 현장의 분위기만 봐도 이번 주 방송이 어떻게 나갈지는 대충 감이 오는 법.
막내 작가가 메인 작가로 파격적인 승진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왕미인 작가는 들뜬 기색이 역력했으나 이내 고개를 젓는다.
“좋은 기회라 거절하기 아쉽지만 그것보다는 캐스팅이 문제예요. 제가 전화를 아무리 돌려도 스타들이 응해 줄지 자신이 없어요.”
“에이. 왕 작가. 그건 내가······.”
“아니에요. 출연진 섭외는 작가가 해야죠. 그걸 PD님이 도와주시면 제가 너무 얌체가 되잖아요. 챙겨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다른 메인 작가님을 구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대신 막내 말고 보조 작가로는 일하게 해주세요.”
왕미인 작가는 현실적인 문제를 정확히 짚었다.
하지만 그녀 위로 다른 메인 작가가 온다면 프로그램의 진행 방향이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난 한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PD님. 차라리 보조 MC를 들이시죠?”
“보조 MC요?”
“예. 입담 좋고 인맥 좋은 연예인 몇몇을 들인 다음에 그 연예인에게 돌아가며 캐스팅을 맡기는 거죠.”
대본과 질문은 왕미인 작가에게 맡기면 된다.
문제는 캐스팅인데 그건 인맥이 좋은 연예인이 고정으로 돌아가며 쉽게 해결되는 문제다.
그 순간 고민형 PD의 눈빛이 반짝인다.
“혹시 추천하실 분이 있으신지?”
연예계의 지인들을 불러오려면 경력 10년 차 이상에 급도 높아야 한다.
거기다가 스튜디오 예능이라 입담도 좋아야 하고.
쉽지 않은 조건이었지만 내게는 그에 적합한 사람들이 있다.
“알토란의 최지영 배우님 그리고 저희 굴렁쇠에서는 장준혁 배우님이 있습니다.”
좋은 매니저란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하는 법.
지금이 그 기회다.
“무슨 대답이 이렇게 술술 나오십니까? 무슨 도깨비방망이를 든 것도 아니고.”
대답 없이 흐뭇한 표정만을 짓자 고민형 PD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장난스레 묻는다.
“저기 근데······ 혹시 오늘 일 정 실장님이 설계하신 건 아니죠?”
뜨끔하긴 했지만 전체를 설계한 건 아니다.
살짝 그런 흐름이 보이길래 숟가락을 얹은 것뿐이지!
“아닙니다.”
“크흠. 농담입니다. 하하하.”
뭔 농담을 그렇게 살벌하게 하는지.
“그런데 최지영 배우님이랑 장준혁 배우님이 보조 MC를 하신답니까? 배우님들 자존심이 높아서 보조 MC는 잘 안 하실 텐데요?”
“그 문제라면 지금 바로 연락드려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난 그 즉시 최지영 배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정 실장. 무슨 일이야?
“배우님. 혹시 <토크쇼! 연예 세상> 고정 MC에 관심 있으십니까? 혼자 하는 건 아니고 집단 MC 체제입니다.”
-나야 정 실장이 추천하면 무조건 해야지. 조건 같은 건 있어?
“그런데 고정 MC가 되면 매주 친구분들이나 후배분들을 캐스팅해 오셔야 합니다. 여기 메인 작가가 실력은 있는데 경력이 부족해서 캐스팅이 힘듭니다.”
-그 프로그램이면 한 주에서 제일 핫한 애들로만 부르면 되지?
“예.”
-오케이. 그쪽 PD한테 한다고 해. 아는 동생들 다 부르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화란전>에서 2왕후로 열연을 펼치며 재기에 성공한 S급 배우가 쉽게 내 부탁을 허락하자 혹시나 하던 고민형 PD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가득하다.
“그러면 배우님. 상세 조건은 고 PD님을 통해서 알토란으로 연락드리라고 하겠습니다.”
-응. 대신 정 실장이 출연료하고 조건은 책임지고 정리해 줘~
“물론이죠.”
-그래. 알라븅~ 쪽~
최지영 배우님이 쪽 소리와 함께 전화를 끊는다.
요즘 연애를 하시더니 애정 표현이 습관이다.
난 이어서 장준혁 배우에게도 연락을 넣었다.
“장준혁 배우님. 토크쇼에 MC 자리가······.”
그런데 장준혁은 한술 더 떠 아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답한다.
-윤호야. 형이 늘 말하잖니. 네가 하자는 건 다 한다고. 그러니까 앞으로는 그냥 결정하고 통보해. 나 촬영 들어가니까 바빠서 끊는다? 수고!
달칵.
이번엔 아예 일방적인 승낙 통보를 당하자 고민형 PD의 얼굴엔 반쯤 넋이 나가 버렸다.
난 머쓱한 표정을 짓고 그를 쳐다봤다.
“이러면 MC는 해결된 거죠?”
“그 그렇네요.”
이젠 다 된 줄 알았지만 고민형 PD가 염치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저기······ 실은 두 분 모두가 이렇게 쉽게 허락할지 몰라서 말씀은 못 드렸는데 두 분을 동시에 쓰기에는 제작비가······ 부족합니다. 두 분을 번갈아 쓰는 고정이 어떨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강은기가 대신 대답한다.
“저희 천사 치킨&피자에서 제작비를 협찬해 드리겠습니다.”
강은기가 소유한 리버스 엔터는 과거 5959치킨을 인수해 현재 천사 치킨&피자로 상호를 변경했다.
리버스 캐피털이 인수한 천사 치킨&피자는 최근 가맹점 점주들에게 피자 교육을 끝낸 터라 홍보가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었고.
“아 그러고 보니 우리 강 대표님이 천사 치킨&피자도 인수하셨죠?”
“예.”
고민형 PD의 얼굴에 모든 근심이 사라져 버렸다.
“알겠습니다. 제가 국장님이랑 싸우는 한이 있어도 왕 작가를 메인 작가로 그리고 추천해 주신 배우님들은 서브 MC로 모시도록 추진하겠습니다!”
“예. PD님.”
그때 인기 프로의 메인 작가가 되게 생긴 왕미인 작가가 우릴 향해 고개를 꾸벅인다.
“감사합니다. 정 실장님.”
“저야말로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미래의 스타 예능 작가인 왕미인 작가에게 이렇게 빚을 지울 수가 있게 되었다.
‘왕 작가님. 앞으로도 우리 애들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녀와 함께 제작할 프로들의 성공에 내 배우와 아이돌이 함께할 거라 생각하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이 끝났다.
스태프들은 모두가 시청률은 잘 나올 거라며 자신 있는 표정이었다.
그때 강은기가 내게 묻는다.
“윤호야. 다음 주 월요일이 굴렁쇠 엔터 주식 공모 수요 예측이지?”
수요 예측이라는 건 국내외의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주식을 매입하려는 희망 가격과 수량들을 사전에 알아보는 제도였다.
수요 예측을 통해 얼마나 우리 회사의 주식이 ‘인기’ 있는지 알 수 있는데 그 인기에 따라서 최종 공모가가 결정된다.
현재까지는 굴렁쇠 엔터의 호재가 이어진 터라 좋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주식 상장이 끝날 때까지 이 분위기를 유지해야 했다.
“어.”
“준비는? 잘되어 가?”
“어. 우리 대표님이랑 강지영 이사 정수혁 이사님이 밤잠을 못 자고 준비 중인데 잘 되어가고 있다고 들었어.”
“다행이네.”
하지만 난 그보다 더 걱정되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최만식 대표가 강은기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넌 어때? 접근하는 놈들은 없냐?”
“경호원들 때문인지 아직까지는.”
“그래도 조심해. 최만식 그 인간. 쉽게 포기할 인간이 아니야. 너 하나만 제치면 그 큰돈이 자기 게 되는데 이대로 넘어갈 리가 없잖아?”
“안 그래도 신경 쓰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그리고 너 회장님 호칭은 아직 그대로냐?”
“그렇지 뭐. 그 어른과 내가 본 게 얼마나 됐다고.”
에브리데이에 따르면 최은태 회장의 남은 수명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굴렁쇠 엔터 상장을 앞두고 벌이는 위험한 게임을 생각하면 최은태 회장의 여명이 더 짧아질 수도 있다.
더군다나 최만식 역시 강은기를 노리고 있었고.
이런 상황들 속에서 둘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평생의 상처가 생길지도 몰랐다.
아무래도 말을 해줘야겠다.
난 그렇게 생각을 한 뒤 강은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은기 너 내가 어느 정도 영빨이 있는 거 알지?”
무당 엄마를 가진 강은기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야 내가 제일 잘 알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실은······.”
최은태 회장의 수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그때였다.
지잉~
폰이 울린다.
[발신자 : 최은태 회장]
“잠깐만.”
난 말을 끊고 이유 없이 전화하지 않는 최은태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정 실장 명동인데 지금 좀 빨리 와 줄 수 있나?
웬일인지 몰라도 최은태 회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날 찾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