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4화
‘혹시 위치 이동 클럽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비밀 결사가 아닌 건가?’
비공식 클럽 중에서도 몇몇 클럽들은 존재 자체가 비밀이었다·
<교수 암살 클럽>(들어본 적은 없지만 이한은 분명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이나 <에인로가드 실태 고발 클럽> 같은 클럽이 공공연히 활동할 수는 없었으니까·
이한은 당연히 위치 이동 클럽도 그런 부류의 비밀 결사라고 생각했다·
이름도 일부러 다르게 지었고 클럽 위치도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았으니···
“교수님들이 위치 이동 클럽의 존재를 알아도 됩니까?”
“뭐, 짐작은 하셨겠지·”
세비우스는 별로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이한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래도 됩니까?”
“본거지만 안 들키면 의외로 문제될 건 없어· 현장에서 안 잡히면 증거도 없고· 교칙상 위치 이동 클럽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징벌방에 가지는 않거든·”
‘가끔 선배들이 미쳤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에인로가드에 있다 보면 누구나 어느 정도의 광기를 갖게 되긴 하지만, 선배들의 광기는 조금 더 심한 편이었다·
“혹시 저도 같이 갈 수 있을까요?”
“음·”
후배의 질문에 세비우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 클럽 규칙 때문에 안 된다면···”
“아니· 다른 놈들은 다 널 데리고 가자고 했어·”
“······”
이한이 생각했던 것보다 이한은 위치 이동 클럽 선배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숙련된 도둑, 아니, 숙련된 위치 이동꾼에게 중요한 건 실력이었으니까·
후배가 2학년이건 푸른 용의 탑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후배가 털고 나온 곳이 중요했다·
“근데 이 일들이 생각보다 위험해서·”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이한은 자신감 있게 말했다·
예전이었다면 ‘얼마나 위험한데요?’라고 물어봤겠지만, 에인로가드에서 지낸 경험이 이한을 성장시켰다·
이제는 ‘위험해봤자 그렇게까지는 안 위험하겠지’라고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정당하게 얻는 외출 기회다· 놓칠 수 없지·’
“네 실력은 인정하는데 진지하게 생각해· 밖에서 붙잡히면···”
“혹시 외부 감옥에 갇힙니까?”
“아니· 교장 선생님이 찾아와서 풀어줘· 그런 다음 밖에서 들킨 죄로 징벌방에 가지 보통·”
“······”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이상했다· 이한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여하튼 가고 싶습니다·”
“알겠다· 그럼 네 이름도 신청해놓지·”
깃펜에 잉크를 묻혀 후배의 이름을 적어넣던 세비우스는 문득 의문을 느꼈다·
‘그런데 이 녀석, 클럽 꽤 많이 가입하지 않았나? 다 할 수 있나?’
* * *
“후배· 만약 다른 클럽 때문에 격구 경기에 나가지 못한다면, 다른 클럽 놈들을 모조리 암살해버리겠어·”
“······”
“물론 농담이야·”
‘농담 같지 않은데·’
다크 엘프 선배의 눈동자는 흔들림 없는 신념으로 번뜩였다·
격구 경기를 위해서라면 에인로가드에 불이라도 지를 수 있는 광인의 눈빛이었다·
“그· 호르마시 선배님·”
“어· 후배·”
“조우린 전하께서 수도로 돌아가신 건 알고 계시죠?”
“들었어·”
카르넬라는 아쉬움, 미련, 씁쓸함, 후회, 회한, 한탄 등등의 감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물론 조우린 전하를 타고 출전하자는 건 농담이었지·”
“······”
다른 건 몰라도 이 흰 호랑이 탑 3학년이 하는 농담은 절대 믿으면 안 되겠다고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후배 너한테는 그리폰과 유니콘, 바실리스크와 거인, 산맥파괴양이 있잖아?”
“이상한 게 좀 많이 들어간 것 같은데요·”
-저, 저 무리예요!
새끼 바실리스크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외쳤다·
아직 이한을 등에 태우고 덩치 큰 몬스터들과 싸울 자신은 없었던 것이다·
“이상한 거? 하긴 유니콘은 아직 부상이 완전히 회복 안 됐으려나···”
“···저 그리폰 타고 나갈 겁니다·”
“너무 섣불리 결정하는 거 아니야? 상대가 타고 나오는 걸 보고 유연하게 바꾸는 것도 격구 선수의 능력이라고·”
“그냥 그리폰 타겠습니다·”
단호한 후배의 반응에 카르넬라는 아쉬워했다·
뛰어난 격구 선수의 자질이 있는데 왜 저렇게 고지식하게 행동한단 말인가?
“하긴 이해해· 이 호르마시도 가장 많이 타고 나가는 건 우리 강아지니까·”
-저 사람 강아지 타고 나가요??
“아니· 저기서 말하는 강아지는 케르베로스야·”
-······
경악하는 새끼 바실리스크를 달래며 이한은 질문했다·
“그런데 선배님· 상대가 누구고 어디서 싸우게 됩니까?”
“위치는 그랑덴 시·”
에인로가드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이자 이한한테도 익숙한 곳이었다·
“상대는 발드로가드 격구단·”
“···아니! 괜찮습니까?!”
이한은 깜짝 놀랐다·
카르넬라는 후배가 무슨 뜻으로 질문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다시 물었다·
“뭐가?”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발드로가드 학생들만 보면 무조건 죽일듯이 공격하잖습니까·”
“그··· 그 정도는 아닌데·”
카르넬라도 저 말에는 살짝 당황했다·
물론 제국의 마법학교 학생들은 어느 정도 경쟁심리가 있긴 했지만 저 정도는···?
“격구 경기가 아니라 난투가 벌어지지 않을까요?”
“잠깐· 후배· 명예로운 격구 선수들을 뭘로 보는 거야 지금?”
카르넬라는 격구 선수들의 긍지와 명예를 얕보는 후배에게 단호히 훈계했다·
물론 이한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거인이나 조우린을 출전시키려고 했을 때부터 이미 명예고 뭐고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발드로가드 격구단은 꽤 수준이 높아·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아니?’
선배가 진지하게 말하자 이한은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발드로가드에도 수준이 높은 게 있었다니?
하지만 정말이었다·
“그 자식들은 마법 공부도, 과제도, 시험도 안 보니까 남는 시간을 멋대로 활용할 수 있지· 금화도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까 희귀 생물들도 원하는 대로 투입 가능하고· ···빌어먹을· 저번에 그 자식들 때문에 히드라를 뺏긴 걸 생각하면···”
설명하던 카르넬라는 갑자기 과거의 원한이 생각났는지 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발드로가드 학생들의 풍족함은 언제나 에인로가드 학생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히드라는 나오지 않길 빌어야겠군·’
선배의 원한은 이한에게 별로 상관이 없었고 상대가 뭘 갖고 나오는지가 더 중요했다·
발드로가드 격구단이 예전에 히드라를 샀다는 걸 듣자 이한은 친분을 쌓지 못한 걸 후회했다·
히드라를 갖고 있는 걸 알았다면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해줬을 텐데!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후배· 이 호르마시가 앞장서서 상대의 골통을 부숴줄 테니까·”
“골을 넣는다는 걸 잘못 말하신 거겠죠?”
* * *
비버-펭귄-여우:<긴급> 외출 가능한 비공식 클럽 정보 구함·
이악투스:마법사 카드 클럽·
비버-펭귄-여우:<긴급> 외출 가능한 비공식 클럽 정보 구함(마법사 카드 클럽 제외)·
이악투스:······
“!”
모르는 사이 다시 파수꾼 클럽 회원들이 대화를 나누자 이한은 아티팩트를 꺼냈다·
안 그래도 클럽 외부 활동 때문에 준비해야 할 게 많은 만큼 정보는 언제나 필요했다·
고나달테스:외출 가능한 비공식 클럽은 왜 묻지?
이악투스:밖에서 뭐라도 갖다달라는 거겠지· 공식 클럽은 조건이 안 맞는 거겠고·
공식 클럽들이 외출이 쉽다지만 그 숫자가 적고 위치와 목적이 딱 정해져 있는 만큼 조건이 맞지 않으면 무언가 부탁하기 힘들었다·
고나달테스:마법사 카드 클럽은 왜?
비버-펭귄-여우:그 머저리들은 밖에 나가면 마법사 카드 상점만 가서 하루 내내 있다가 돌아오니까· 의뢰를 맡길 수가 없어·
“······”
이한은 탄식했다·
마법사 카드 클럽 회원들의 외골수적인 면모 때문이 아니라, 가이난도가 저기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였다·
‘정말 안타깝다·’
고나달테스:혹시 의뢰 내용을 물어봐도 되나?
비버-펭귄-여우:앗· 뭐야· 사악한 이름을 가진 내 친구· 의뢰에 관심 있어?
이악투스:속지 마· 무슨 위험한 의뢰를 맡길지 알고·
비버-펭귄-여우:시끄러워· 신입생도 아니고 다들 알아서 판단할 줄 안다고·
비버펭귄여우는 이악투스의 입을 다물게 한 다음 재빨리 의뢰를 설명했다·
다행히 의뢰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자원목(紫圓木) 두 묶음과 밀폐된 크리스털 안에 보관한 스완송, 그리고 요정꿀술 세 병·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비버-펭귄-여우:절대 수상한 목적으로 쓰려는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저렇게 말하니까 오히려 더 수상하게 느껴지는군·’
이한은 비버펭귄여우가 일렌딜 선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드라이어드 혼혈인 저 선배는 에인로가드에서 가장 숲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인 만큼, 저 의뢰도 숲의 회복과 관련된 일이리라·
나무가 필요한 것도 그렇고 그렇게까지 수상한 짓을 할 사람은···
‘···맞긴 한데 이번은 아니겠지·’
비버-펭귄-여우:다섯 배· 다섯 배로 값을 쳐주겠어·
고나달테스:알겠다· 너무 기대하지는 말고·
비버-펭귄-여우:훌륭해! 네가 클럽에 가입했을 때 왜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네!
이악투스:난 알겠는데· 지금 앞에 붙은 이름만 봐도 떠오를걸· 그보다 고나달테스, 어느 클럽 소속이길래 외출이 확정됐지?
고나달테스:네가 이름을 모르는 클럽이지·
이악투스:혹시 교수 습격 클럽?
비버-펭귄-여우:그런 클럽도 있나?
이악투스:몰라· 그냥 있을 것 같아서 말해봤어·
안녕하세요·
“?”
이악투스:?
비버-펭귄-여우:??
이악투스:···뭐야?
안녕하세요· 그, 혹시 제 말이 안 보이시나요?
순간 파수꾼 클럽의 모임에 소름끼치는 침묵이 찾아왔다·
이한은 눈을 크게 떴다·
‘신규 회원!!’
파수꾼 클럽의 신규 회원은 두 가지 방식으로 충원되었다·
하나는 관리자 역할을 맡고 있는 바콴탈라나가 통신 아티팩트를 조작해 이 모임으로 연결시키는 것·
이한이 이런 식으로 초대를 받고 들어왔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미 파수꾼 클럽 모임에 연결되어 있는 아티팩트를 획득하는 것·
지금 나타난 정체불명의 이방인은 누가 봐도 후자였다·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매우 긴장했다·
만약 상대가 교수거나 해골 교장의 하수인이라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고나달테스: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정체를 밝혀라· 넌 누구냐?
가장 먼저 두려움을 떨치고 깃펜을 움직인 건 이한이었다·
상대가 해골 교장이나 그 하수인은 아닌 것 같기에 나선 것이다·
‘혹시 신입생인가?’
신입생이 에인로가드 안을 떠돌다가 우연히 아티팩트를 주웠다면 저런 느린 반응도 이해가 갔다·
에인로가드 고학년 학생이라면 지금 회원들이 보이는 침묵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차렸을 테니까·
앗· 죄송합니다· 저는 발드로가드 소속 3학년··· 잠깐, 속을 뻔했네요· 당신들이 저를 속여서 이름을 알아내려는 사악한 아티팩트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믿죠?
이악투스:······
비버-펭귄-여우:······
이악투스:바콴탈라나!!! 바콴탈라나!!!
비버-펭귄-여우:바콴탈라나 어디 갔어! 빨리 와!
이악투스:지금 다른 짓 할 때가 아니야!!! 미친놈이 클럽에 들어왔잖아!!!
파수꾼 클럽 회원들은 예상을 뛰어넘은 신입의 정체에 혼비백산해서 바콴탈라나를 불렀다·
대체 어떻게 발드로가드 놈이 이 파수꾼 클럽에 들어왔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