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3화
발락을 본 킬로바니안이 웃음을 터뜨렸다·
“키젠이 네놈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발락의 머리 곳곳에 괴상한 파츠들이 부착되어 있었고 몸에는 영속 마법진들이 보였다· 두 팔은 금속으로 강하게 결속되어 있었으며 두 다리만 멀쩡히 움직이고 있었다·
또한 각 파츠에서 출렁이는 약물이 끊임없이 발락에게 주입되는 중이었다·
“정의의 편이라고 온갖 위선을 떨던 키젠에 붙더니 그쪽에서도 실험체 취급이구나· 실험체 BC1!”
킬로바니안이 두 팔을 벌리며 입을 우악스럽게 찢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 어디 있겠나· 네놈들은 평생···!”
킬로바니안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발락의 신형이 굉음을 일으키며 쏘아져 나간 것이다·
[복수·]
쩌저저저저정!
발락의 우악스러운 발길질이 망치처럼 휘둘러졌다· 배리어를 펼쳐 막은 킬로바니안이 그 위력에 표정을 굳혔다·
[네놈들을 세상에서 지워 버리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겠다·]
“실험체 따위가!”
후우욱!
발락이 쓴 마스크로부터 황색 연기가 증기기관처럼 쏟아져 나왔다· 인간의 몸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방대한 양· 그것이 단번에 킬로바니안의 몸을 덮었다·
“이건····”
파슥!
연기 속에 갇힌 킬로바니안의 몸에 일순 스파크 같은 게 튀며 옷이 찢어지고 피가 흘러나왔다·
파슥!
파스스슥!
연기에 닿았을 뿐인데 계속해서 타격을 입고 있었다· 킬로바니안이 인상을 찡그렸다·
“연기가 마나에 반발 작용을 일으켜 그 범위에 타격을 주는 건가· 객체 없는 공격이라니 머리를 썼구나·”
킬로바니안이 팔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아주 내 전용 사냥개를 만들었군·”
푸콰아아아아악!
그가 팔을 허공에 휘두르자 광풍이 일어나며 연기를 몰아냈다· 그러나 단순한 기체가 아닌 듯 여전히 상당한 양이 주위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부우우우웅!
다시 한번 뒤에서 나타난 발락이 우악스러운 위력의 발차기를 날렸다·
이번엔 예상하고 있던 킬로바니안이 고개를 꺾어 피하고는 반대쪽 손바닥을 그의 복부에 내질렀다·
꾸드득!
그런데 공중에 멈춰 있는 발락의 상반신이 불가능한 방향으로 꼬이며 그 공격을 피해냈다·
“?!”
그대로 발락의 반대쪽 다리가 킬로바니안의 팔뚝을 후려쳤다·
강력한 힘에 날아간 킬로바니안이 거칠게 바닥을 뒹굴며 멀어져 갔다· 이어서 발락이 귀신과도 같은 안광을 흩뿌리며 단숨에 달려가 그를 따라잡았다·
거리가 무의미하다· 목숨이라는 도화선에 불을 붙인 듯 발락은 가공할 만한 속도를 내고 있었다·
캬아아아아아악!
그의 금속 마스크에서 짐승과도 같은 포효가 터져 나왔다· 킬로바니안이 그와 눈을 마주하며 가소로운 듯 웃었다·
“허튼 발버둥이지·”
킬로바니안이 주먹을 내질렀고 발락이 다리를 내뻗었다· 두 사람의 육탄전이 살벌하게 이어졌다· 팔과 다리가 부딪혔을 뿐인데 아래의 지면에 텅! 텅! 하고 크고 작은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주위의 바위가 매끈하게 잘려 나가고 압축된 고화력의 칠흑이 사방으로 쏘아진다·
멀리서 주저앉아 지켜보던 엘리사와 쓰러진 신디 그리고 그녀들을 챙기러 온 제이미는 동공을 흔들고 있었다·
“저게 사람의··· 싸움이야?”
꽈드드드득!
약물로 인해 우악스럽게 발달한 발락의 다리가 망치처럼 킬로바니안의 안면에 꽂혔다· 그러나 타격은 다른 곳에서 발현되었다·
쩍!
역으로 발락의 안면에 쓴 금속 마스크가 박살 나며 그의 얼굴이 피범벅이 된 것이다·
“귀찮다· 죽어라·”
킬로바니안이 손끝을 발락에게 내지르려는 순간 이번에는 화이트가 끼어들어 그 공격을 받아냈다· 방금의 힘이 화이트에게 흡수되는 동시에·
<발락 오리지널 – 데드아머 3단계>
발락이 뿜고 있던 연기들이 모여 일순 거대한 갑옷의 형상을 이루더니 그대로 두 손을 깍지 끼고 킬로바니안에게 내려쳤다·
쿠쿠쿠쿠쿠쿵-!
주위의 흙들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촤아아악!
촤아아아아악!
발락과 화이트가 숨을 헐떡이며 뒤로 물러나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안쓰럽구나·”
그런데 이미 그들의 뒤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던 킬로바니안이 그들의 머리를 붙잡았다· 발락과 화이트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희망을 품어도 귀신이 되어도 어쩔 수 없는 격의 차이가 있다·”
킬로바니안이 그대로 두 사람을 공중으로 집어 던졌다· 그들이 날아가는 공중에서 희미한 원이 일렁이며 폭발하듯 커지고 있었다·
“잘 가라·”
날아간 두 사람의 몸이 그 원에 닿으려는 순간·
휘이이이잉!
갑자기 발락과 화이트가 돌풍에 떠밀리며 던져진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늦어서 미안!”
허공에 물결치는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한 남자가 손끝을 세우고 있었다·
전체 3위이자 키젠의 유급생 신분인 에이젤 브링어였다·
킬로바니안이 표정을 확 구겼다·
“방해꾼이 하나하나···!”
“가세할게·”
<커스 템페스트>
거대한 회오리가 하늘에서 킬로바니안에게 내리꽂혀 휘몰아쳤다· 후우 하고 숨을 내뱉은 에이젤이 방금 날아간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내려왔다·
“잘했어 화이트· 대단한데·”
끄덕·
에이젤의 칭찬에 화이트가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에이젤이 그 옆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당신은··· 어 어· 설마···?”
고오오오오!
번뜩이는 안광이 에이젤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늘 그렇듯 대인기피증이 발동한 에이젤이 흠칫하며 어깨를 떨었다·
“호 호호호혹시··· 바 발락? 발락 맞지?”
[····]
“어 어쩌다 그 그 그렇게 됐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락이 다리를 세우더니 에이젤을 걷어찼다· 두 팔을 들어 간신히 막은 에이젤이 눈을 질끈 감았다·
“흑! 그렇다고 때릴 것까진···!”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런데 방금 에이젤이 서 있던 방향으로 커다란 회오리가 지나갔다· 그것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가 한참 뒤에 있는 돌산을 허물어뜨렸다·
바닥에 털썩 엉덩방아를 찧은 에이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올라·”
킬로바니안이 흰 코트를 휘날리며 저벅저벅 걸어왔다·
“왜 이렇게 사람 신경을 긁어대냐고· 어? 그냥 돌아가겠다는데 거슬리게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가 두 손가락을 붙인 손을 세워 들었다·
“구원이고 뭐고 그냥 다 죽여 버리는 수가 있다?”
“····”
에이젤이 굳은 표정으로 손바닥을 펼쳤다·
허공 곳곳에 마법진이 펼쳐지고 바람이 불어왔다· 쓰러져 있던 신디 제이미가 두둥실 떠올랐다·
“너희는 여기서 빠져나가· 최대한 먼 곳으로 보낼게·”
“무 무사하세요! 에이젤 선배님!”
그녀들이 바람에 떠밀려 빠르게 멀어졌다· 화이트와 발락은 여전히 에이젤의 옆에 남았다·
“시몬이 유령궁에 있어·”
에이젤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킬로바니안은 구원자들 중에서도 특별해· 내 생각에 킬로바니안을 잡을 수 있는 건 시몬뿐이야·”
“····”
“시몬이 나올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벌면서····”
타악·
그때 킬로바니안이 자세를 풀더니 두 팔을 들어 올렸다·
“결심했어·”
일순·
공기가 바뀌었다·
“구원에 대한 생각의 차이만큼 본래 라우라와 내 계획은 달랐어· 라우라는 너무 유령궁에 집착했지· 테네리페를 없애고 자신이 유령왕녀가 된 다음에 고스트스트림을 일으키겠다· 너무 번거롭잖아· 하지만 내 계획이 뭐였는지 알아?”
킬로바니안이 제 가슴에 손을 올렸다·
끄어어어어어어어억!
나름대로 준수한 외형이었던 킬로바니안의 얼굴이 부풀어 오르며 뒤룩뒤룩 살이 찌는 듯하더니 이내 하늘을 향해 입을 쩌어억 벌렸다·
복부가 꿀렁꿀렁 움직이며 전신이 그의 몸에서 뭔가를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
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세상이 뒤흔들렸다· 모래가 휘몰아치고 강렬한 맞바람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큭!”
에이젤은 자신이 일으킨 바람으로 주위 사람들을 최대한 보호하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킬로바니안의 몸뚱이가 어느새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내 원래 계획은 유령궁을 부수는 거야·]
쿠구구구구구구!
그의 살갗이 터진 풍선처럼 부서지기 시작하며 이내 그의 몸 안에서 새하얀 뭔가가 일어났다· 그것은 원형을 이룬 채 휘몰아치고 있었다·
[유령궁은 망령을 가두는 껍데기· 시간이 지나며 마모됐지만 왕녀들이 유령궁을 보강하고 유지했지· 하지만 그 껍데기를 부수고 천장을 훤히 드러내게 두면 거기서 쏟아진 망령들이 세상을 뒤덮을 거야·]
콰아아아아아아아!
바로 그 하얀 무언가가 두둥실 떠오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떠오르는 것만으로 그 아래의 지면이 요동치며 깊게 파여 나갔다· 그리고 둥둥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자 구원의 시간이다·]
“···!”
그 방향은 틀림없이 유령궁이 있는 방향이었다·
‘아·’
비슷한 계열의 흑마법을 사용하는 에이젤은 소름이 끼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저게 유령궁에 닿으면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막아야 해!”
에이젤이 다급히 외쳤다·
“도와줘! 발락! 화이··· 아?”
발락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화이트만 멀뚱히 있었다·
에이젤은 하는 수 없이 바람을 일으켜 자신과 화이트의 몸을 빠르게 옮겼다·
휘이이이이잉!
순식간에 그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가 움직이는 상공 위로 날아왔다· 그것이 계속 다가오고 있다·
“후읍!”
에이젤이 칠흑을 쥐어짜 수많은 회오리 마법을 만들어 그것에 부딪혔지만 깨지지 않았다· 에이젤이 급히 외쳤다·
“화이트! 이거 흡수할 수 있겠어?”
끄덕·
화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젤도 화이트에 대해서는 카쟌에게 들어 자세히 알고 있었다· 결사가 말하는 핵심 피스인 왕자 후보· 그리고 킬로바니안의 힘을 어느 정도 물려받은 게 화이트다· 에이젤은 바람을 움직여 화이트를 그 기술 가까이 보냈고 화이트가 그것에 손바닥을 대었다·
“!”
그러나·
화이트가 흡수 기술을 쓰자마자 그의 얼굴이 회까닥하며 까무러치듯 기절했다· 에이젤이 진땀을 흘렸다·
‘고 고작 그거 흡수한 걸로?’
고고고고고고고고!
킬로바니안이 만들어낸 끔찍한 힘의 집결체가 유령궁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기는 총사령관 벡터다! 현장에 도착했는데 결사의 구원자는 어디 있나?
통신 수정구에서 연락이 왔다· 에이젤이 다급히 그것을 붙잡아 말했다·
“문제가 생겼어요 벡터! 시간이 없습니다!”
* * *
그리고 같은 시각 유령궁 5층·
우우우우웅!
의자에 앉아 있는 메리다의 상태가 안정화되고 있었다·
“정말 놀라운 재능이야!”
옆에서 돕고 있는 테네리페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메리다의 안정률이 높아! 원리는 모르겠지만 마치 유령궁을 잠재우는 느낌? 이대로라면 곧 폭주한 빨간방들을 안정시킬 수 있을 거야·”
“····”
시몬도 옆에서 메리다를 지켜봐 주고 있었다·
그때 문득 고개를 휙 돌렸다·
팔에 소름 끼치는 감각이 묻어났다·
“왜 그래? 폴렌티아 후배·”
“아무래도-”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짊어졌다·
“밖에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나가봐야겠어요·”
시몬이 성큼 성큼 걸어가는 그때 테네리페의 그의 어깨를 짚었다·
“테네리페 님· 말리지····”
“나도·”
그녀가 결연한 표정으로 눈에 힘을 주었다·
“나도 갈게· 아직 궁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