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화 : 6장 일진일퇴(一進一退), 전진하기 위해 물러선다 (1)
당기문이 어깨까지 처진 마도광의 옷을 끌어 올려주며 말했다·
“다 됐네·”
“고맙습니다·”
“일단 치료는 대충 했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지 절대 무리해서는 안 되네·”
당기문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마도광을 바라봤다· 마도광의 한쪽 어깨가 허전했다·
이곳에 들어왔을 때 마도광은 한 팔을 잃고 빈사 상태였다· 놀란 당기문과 활독당의 의원들이 모조리 달려들지 않았다면 벌써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결국 당기문은 마도광을 살려냈다· 비록 안색이 창백하긴 했지만 그래도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한 것이다·
“움직이는 데 지장은 없지만 그래도 한 팔이 없으니 균형을 잡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게야· 그러니 각별히 조심하게·”
“감사합니다· 이렇게 목숨을 살려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마도광이 당기문을 보며 웃었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한쪽 팔을 잃었다는 상실감은 보이지 않았다·
담수천과 겨루면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에 비하면 한쪽 팔을 잃은 것은 별거 아닌 희생이었다· 살아 있어야 복수도 꿈꿀 수 있는 법이니까·
마도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봐야겠습니다·”
“벌써 움직이려는가? 자칫하다가는 상처가 덧날 수도 있네·”
“흐흐! 상처가 덧나는 것이 앉아서 기다리다가 죽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하기는····”
당기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두 사람이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자욱한 운무에 휩싸인 백마호가 보였다·
“와아아!”
운무 속에서 사람들의 함성과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북천문의 무인들과 창천문의 무인들이 격돌하는 소리였다· 오늘 아침 창천문이 예고도 없이 습격해 온 것이다·
서문혜령은 단 하루 만에 하진월이 펼친 진법의 파훼법을 찾아냈다· 그녀는 선두에서 병력을 진두지휘하며 하진월의 진법을 파괴했다· 그 뒤를 창천문의 무인이 따랐다·
창천문의 무인들이 난입하자 북천문의 무인들이 막기 위해 나섰다·
“놈들에게 진을 복구할 시간을 주면 안 된다·”
“어서 놈들을 막아라· 군사께서 진을 완성시키도록 시간을 벌어야 한다·”
하진월이 펼친 진법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만일 완성이 되었다면 서문혜령이 그토록 수월하게 진을 파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뚫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서문혜령 생각보다 빨리 진의 허실을 파악했군·”
하진월의 눈빛이 깊이 침잠됐다·
그가 주축으로 삼은 만상천환진과 현현미로진은 결코 쉽게 파훼할 수 있는 평범한 진법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서문혜령은 단 하루 만에 진의 파훼법을 찾아내어 공략해 오고 있었다·
무공이 약한 자들은 뗏목을 만들어서 건너오고 무공이 강한 자들은 수상비를 펼쳤다· 백마호 자체가 그리 깊지 않은 호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섬으로 건너온 창천문의 무인들은 한참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그 선두에 서문혜령이 있었다·
“이 정도의 진법으로는 나를 막을 수 없어요 삼뇌수사·”
그녀는 이미 만상천환진을 대부분 파훼했다· 남은 것은 현현미로진 하나뿐이었다· 그마저도 상당 부분 진척을 보여서 그 끝이 보이고 있었다·
서문혜령의 두뇌는 실로 비상했다· 보통 사람은 상상도 못 할 속도로 계산을 하고 원리를 파악해 진법을 분쇄해 나갔다·
“저년이 서문혜령이다· 서문혜령부터 죽여야 한다·”
북천문의 무인들이 서문혜령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하지만 그들은 서문혜령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어육처럼 짓이겨져 사방으로 날아갔다·
담수천과 모용현이 그들을 공격한 것이다·
절대고수의 반열에 오른 두 사람이었다· 북천문의 일반 문도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일격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나를 넘기 전에는 절대로 그녀의 곁에 갈 수 없다·”
담수천이 오연한 목소리로 말하자 모용현이 코웃음을 쳤다·
“흥! 제법이군·”
모용율천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투지가 가득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자리에서 담수천과 승부를 내고 싶은 것이 그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을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 오만함이 무너지고 나의 발아래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담수천·’
기회는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모용현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몸 안에 가득 쌓인 내공이 분출구를 찾아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죽어랏!”
그는 북천문의 무인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했다·
그의 가공할 공격에 북천문의 무인들이 속절없이 죽어나갔다· 광기 어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담수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경험이 많지 않군·”
모용현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담수천은 그를 경쟁자로 여기지 않았다·
모용현은 온실 속에서 곱게 자란 화초였다· 자신처럼 거친 황야에서 홀로 자란 야생화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나의 상대는 오직 한 명 진무원뿐이다· 그 외에는 부질없다·”
담수천은 모용현에게서 시선을 돌려 서문혜령을 바라봤다·
“감방(坎方)에서 천문을 열고 다시 지기(地氣)를 건방(乾方)으로 돌리면····”
츠츠츠!“
순간 섬에 가득 찼던 운무가 일렁이며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서문혜령이 웃었다·
“두 개의 진법이 모두 파훼되는 거죠·”
“진법이 파훼되었으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군·”
“당신의 앞길을 막을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전진해요 수천·”
“잘됐군·”
담수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섬을 둘러싸고 있던 운무가 옅어지자 모용율천은 진법이 파훼된 것을 알고 무적세가와 운중천의 무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 진격한다·”
“존명!”
무적세가와 운중천의 고수들이 호수를 건너서 섬으로 올라왔다· 수많은 병력이 섬에 올라온 그 순간 사방으로 흩어지던 운무가 갑자기 크게 요동쳤다·
순식간에 섬 전체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운무에 휩싸였다·
“무슨?”
“진법이 파훼된 것이 아니었나?”
무적세가와 운중천의 무인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모용율천 역시 곤란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함··· 정인가?”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진을 파훼한 당사자인 서문혜령이었다·
“이게 무슨?”
우우웅!
마치 수만 마리의 벌들이 날갯짓을 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주변의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급작스러운 변화에 담수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서문혜령은 분명 진법을 모조리 파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현상은 진법이 본격적으로 발동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오? 진법은 모조리 파훼했다고 하지 않았소?”
“분명 파훼했는데··· 설마 내가 파훼한 진법이 오히려 새로운 진법이 발동하는 도화선이 된 것인가?”
서문혜령이 이빨을 뿌득 갈았다·
그제야 그녀는 하진월의 의도를 깨달았다·
만상천환진과 현현미로진은 제삼의 진법을 숨기기 위한 눈가림에 지나지 않았다· 두 개의 진법을 파훼하면 제삼의 진법이 발동한다· 결국 서문혜령 자신이 세 번째 진법을 발동시킨 것이다·
“삼뇌수사·”
서문혜령이 이빨을 으득 갈았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단순한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지·”
하진월이 미소를 지었다·
서문혜령의 예상대로 그는 이 섬에 세 개의 진법을 펼쳤다· 만상천환진과 현현미로진은 세 번째 진법인 천벽만로진(千壁萬路陳)을 펼치기 위한 미끼에 지나지 않았다·
천벽만로진은 하진월이 직접 창안한 진법이었다· 자욱한 운무가 벽이 되어 천개의 벽이 되고 만개의 길을 나눈다·
일단 천벽만로진에 갇히게 되면 사람들은 방향감각을 잃게 되어 헤매게 된다·
북천문의 무인들을 전부 합쳐도 겨우 오천 명 반면에 창천문과 운중천 무적세가의 무인들을 전부 합치고 불귀곡과 사사천의 무인들까지 더하면 만 명이 훌쩍 넘어간다·
제아무리 북천문의 전력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정면으로 격돌하면 전멸할 가능성이 높았다· 적의 전력을 잘게 쪼개야 했다· 뭉치지 못하게 분산시키고 각개격파를 노려야 했다·
그래서 만들어낸 천벽만로진이었다· 천벽만로진에 갇힌 적들은 운무의 벽 때문에 수십 수백 단위로 쪼개져 격리될 것이다·
일만이 넘는 적을 상대하는 것은 어렵지만 수백 단위로 갇힌 적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자!”
이제까지 진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북천문의 무인들이 일제히 달려 나갔다· 그들의 선두에 경무생과 황철이 있었다·
그들은 천벽만로진에 갇힌 적들을 향해 이제까지 억누르고 있던 화를 폭발시켰다·
“우리의 터전을 짓밟으려 하는 자들을 모조리 쓰러뜨리자·”
“와아아!”
운무에 휩싸여 우왕좌왕하는 적들과 달리 그들은 천벽만로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대기하는 동안 하진월에게 철저히 교육받은 덕분이었다·
그들은 천벽만로진에 의해 뿔뿔이 찢어지고 흩어진 적들을 하나씩 소탕해 갔다· 압도적으로 불리하기만 하던 전황이 팽팽하게 변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발군의 활약을 보이는 이는 바로 활독당의 독인들이었다· 그들은 본신의 무력뿐 아니라 독을 활용해서 운중천의 무인들을 곤란한 지경에 몰아넣었다·
“저들에게 생각할 여유를 줘서는 안 된다· 쉴 새 없이 몰아붙여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천벽만로진의 묘미는 천변만화하는 것 변화가 멈추는 순간 진은 생명력을 잃을 것이다·
백마호 곳곳에 천벽만로진을 구동하기 위한 탑과 구조물들을 세웠지만 결국 운용하는 핵심은 사람이었다· 진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진의 위력이 달라졌다·
이날을 위해 하진월은 군사부의 책사들에게 진을 운용하는 법을 숙지시키고 무인들을 움직이는 법을 훈련시켰다·
하진월이 큰 틀에서 진을 운용한다면 세부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책사들의 몫이었다· 하진월은 그들에게 자율권을 주었다· 그만큼 자신이 단련시킨 이들을 믿는 것이다·
“아무리 약한 이들이라도 뭉치면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인간· 반대로 아무리 강대한 조직이라도 산산이 흩어놓으면 별반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지· 뿔뿔이 흩어진 채 극한으로 몰린 인간은 감정적으로 취약하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그가 만든 천벽만로진은 단순한 미로진이 아니었다· 무리에서 떨어진 인간들이라면 필연코 가지게 되는 불안감을 기저에서 자극해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였다·
천벽만로진이 발동한 이상 분란의 불씨는 던져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문혜령 이것이 내가 내놓은 문제다· 과연 너는 어떤 대답을 하겠느냐?’
하진월은 망루를 걸어 내려왔다·
천벽만로진이 발동된 이상 그가 이곳에서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진의 운용은 다른 책사들에게 맡기고 그가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가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