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화 : 7장 피눈물이 가슴 위로 흐른다 (2)
진무원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나뭇가지가 손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나뭇가지를 잡자 진무원의 기도가 변했다·
불영신승이 내공을 운용했다·
소림 내가기공의 최고봉인 무상대능력(無上大能力)이었다·
소림 무공의 시작과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역근경(易筋經)으로 외공을 완성하고 반야신공(般若神功)으로 내공을 완성해야만 비로소 발을 들일 수 있는 무상의 영역에 있는 내가기공이 바로 무상대능력이었다·
소림사의 천년 역사에서도 무상대능력을 완성한 자는 겨우 세 손가락에 뽑을 정도였다· 불영신승은 소림에서 세 번째로 무상대능력을 완성한 무인이었다·
무상대능력이 발동하자 불영신승의 등 뒤로 커다란 후광이 드리워졌다· 은은하게 빛나는 후광이 불영신승의 위엄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선공은 불영신승이 펼쳤다·
그가 대지를 박차자 가사가 펄럭이며 엄청난 경풍이 진무원을 향해 밀려왔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경풍에 맞서 진무원이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스가악!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경풍이 반으로 갈라졌다·
“아미타불!”
그 순간 불영신승이 양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그러자 엄청난 장력이 진무원을 향해 밀려왔다·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
소림 칠십이종절예 중 상위에 위치한 절세의 장법이 진무원을 노렸다·
진무원이 가볍게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 직후 그가 서 있던 곳에 대력금강장이 격돌했다·
콰콰쾅!
굉음과 함께 땅거죽이 뒤집어지고 흙먼지가 비산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위력이었다·
자갈과 모래 알갱이가 진무원의 얼굴을 때렸다· 하지만 진무원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폭우림의 초식을 펼쳤다·
검의 비가 불영신승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불영신승은 당황하지 않고 목에 건 염주를 꺼내 휘둘렀다·
염주가 허공에 긴 곡선을 그리며 폭우림과 격돌했다·
쾅!
순간 염주가 폭발을 일으키며 염주 알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철심목으로 만든 염주는 그 자체로 위험한 암기였다·
진무원은 염주 알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나뭇가지를 거둬들여 전신을 보호했다·
후리고 튕기고 비껴 보내고····
그의 나뭇가지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움직였다·
암기처럼 쏘아지던 수많은 염주 알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진무원의 전신을 보호하고 있는 듯했다·
“챠핫!”
놀랄 만도 하건만 불영신승은 망설임 없이 다음 공격으로 전환했다· 그의 양손이 잠시 부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이내 수십 수백 개로 불어났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여래천수장(如來千手掌)·
불문의 전설적인 절학이 진무원을 향해 펼쳐졌다·
인간의 손이 천 개로 늘어날 수는 없다· 두 개의 손을 제외한 나머지 손은 모두 기(氣)로 만든 허상이었다· 하지만 실제 손과 똑같은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의 폭발적인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장관이라고 경탄할 만했다· 하지만 여래천수장을 상대하는 당사자 입장에서 보자면 절망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손바닥투성이었다· 마치 손바닥으로 만든 방에 갇힌 것 같았다·
가공할 기운을 머금은 천 개의 손바닥 앞에서 진무원이 택한 초식은 섬광혈이었다·
진무원의 나뭇가지가 번쩍인다 싶은 순간 허공에 피가 점점이 흩날리며 천 개의 손바닥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으음!”
불영신승이 낭패한 표정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의 손바닥에는 깊은 자상이 생겨나 있었다· 진무원의 나뭇가지가 천 개의 손바닥 중에서 정확하게 진체를 찾아내 공격한 것이다·
슈우우!
진무원이 불영신승을 향해 나뭇가지를 찔러왔다· 예의 섬광혈을 다시 한 번 펼친 것이다·
불영신승은 본능적으로 이번 공격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순간 그는 입고 있는 가사에 공력을 집중했다· 그러자 가사가 크게 부풀어 오르며 둥근 공처럼 변했다·
터엉!
진무원의 나뭇가지가 가사의 반탄력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철포삼(鐵布衫) 가사에 내공을 주입해 적의 공격을 튕겨내는 소림 최상승의 기공이 섬광혈을 튕겨낸 것이다·
대신 불영신승의 가사도 무사하지 못했다· 길게 찢겨 나가며 두 번 다시 철포삼을 펼칠 수 없게 되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불영신승의 얼굴에도 당혹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진무원이 적엽진인 등을 죽일 정도로 대단한 무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경험하는 그의 무위는 불영진인의 상상을 초월했다·
‘어떻게 이런 나이에 이 정도의 무위를 가질 수 있는 건가? 아미타불! 그날의 일이 이런 결과를 초래할 줄이야·’
십삼 년 전 북천문의 멸망이 지금의 진무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진무원은 그의 아비보다 더한 무력으로 운중천을 위협하고 있었다·
‘운중천뿐 아니라 소림마저도····’
불영신승이 이를 악물었다·
승려답지 않게 그의 얼굴이 악귀처럼 변했다·
자신의 업보 때문에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으로 인해 소림이 피해를 입거나 명성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두고 볼 수 없었다·
‘어차피 내가 저지른 악업은 씻을 수 없는 것· 거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고 해도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심을 굳힌 불영신승이 손을 쫙 뻗었다· 그러자 진무원과 마찬가지로 바닥에 나뒹굴던 나뭇가지가 빨려 들어왔다·
소림은 살생을 금지하는 불문이었다· 때문에 소림의 무공 역시 살생을 자제하기 위해 날이 서 있는 무기를 꺼려했다· 그래서 소림의 무기술은 곤봉이나 선장 같은 뭉툭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소림에 유일하게 날붙이를 쓰는 무공이 존재한다·
달마삼검(達磨三劍)·
소림의 시조인 달마가 만들었다는 전설적인 검학 달마삼검이 바로 그것이었다·
불법으로 제도할 수 없는 대마인을 징벌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달마삼검· 불문의 무공답지 않게 살상력이 워낙 강하기에 소림의 선승들은 달마삼검을 익히기 꺼려했다·
그러나 불영신승은 달마삼검을 익혔다· 그것도 극성으로·
그가 진무원을 향해 달마삼검의 일초식인 불법만천(佛法滿天)의 초식을 펼쳤다·
쉬가악!
순간 세상 전체가 장엄한 빛에 휩싸였다· 마치 불법이 가득한 세상 같았다· 그 속에서 진무원은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진무원은 좌절하지 않고 북천벽과 유성혼을 동시에 펼쳤다·
북천벽으로 불법만천의 초식을 막고 유성혼으로 반격을 시도한 것이다·
콰콰콰콰!
검과 검의 격돌이 기의 해일을 일으켰다· 사방으로 퍼져 가는 기의 물결에 전각이 부서져 내리고 담벼락이 힘없이 무너졌다·
“아미타불!”
불법만천의 초식이 막히자 불영신승은 이초식인 관음성광(觀音聖光)을 펼쳤다·
관음보살의 성스러운 빛이 검이 되어 진무원을 덮쳐 왔다· 엄청난 힘이 담긴 일격에 일대의 대기마저 이지러지고 사물이 균열을 일으켰다·
그러나 성스러운 모습과 달리 진무원은 엄청난 압력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관음성광은 인간이 견딜 수 없는 압력을 일점으로 집중시키는 검공이었다·
진무원은 관음성광에 대항해 북천벽과 단천해 그리고 폭우림까지 세 가지 초식을 한꺼번에 펼쳤다·
슈슈!
검벽을 만들고 하늘을 가르고 검의 비를 내렸다·
쿠와아앙!
달마삼검의 이초식이 멸천마영검의 세 가지 검초를 뚫지 못하고 그대로 소멸됐다·
불영신승의 입가를 따라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깊은 내상을 입은 것이다· 내장이 진탕되고 속이 울렁거렸다· 사물이 두 개 세 개로 겹쳐 보이는 것을 보니 족히 서너 달은 정양을 해야 할 내상을 입은 것 같았다·
평소라면 즉시 운공에 들어갔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불영신승은 달마삼검의 마지막 초식인 일월관음(日月觀音)을 풀어냈다·
불영신승의 머리 위로 거대한 검을 들고 있는 관음보살의 환영이 나타났다· 높이만 무려 십여 장에 이르는 관음보살이 진무원을 향해 거대한 검을 내려쳤다·
“챠앗!”
진무원이 기합성을 내지르며 관음보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나뭇가지가 관음보살을 향해 뻗어갔다· 섬전혈과 무영계가 결합된 초식이 펼쳐졌다·
쿠우우!
세상의 빛이 지워지고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리고 관음보살의 후광이 사라졌다·
세상에서 가장 강대한 위력을 가진 검초가 격돌했지만 그 어떤 굉음도 울려 퍼지지 않았다· 대신 이제까지 두 사람이 서 있던 자리에 엄청난 크기의 균열이 생겨났다·
쿨럭!
진무원의 입가를 비집고 검붉은 선혈이 흘러나왔다· 그런 그의 안색은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그가 들고 있던 나뭇가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가 충혈된 시선으로 무너진 담장에 처박힌 불영신승을 바라보았다· 불영신승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사지는 박살이 나서 기형적으로 꺾여 있었고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뭉개져 있었다· 가슴은 움푹 함몰된 채 갈비뼈가 피부를 뚫고 나와 있었다·
“흐윽! 흐윽!”
보통 사람이었다면 즉사했었어야 할 중상을 입고서도 불영신승은 살아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내공 덕분이었다· 하지만 대라신선이 와도 그의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었다· 그저 간신히 꺼져 가는 숨을 붙잡아놨을 뿐이다·
“사백님!”
그때 무너진 담벼락을 뛰어넘어 누군가 나타났다· 사대금강의 수장인 설원이었다· 그의 전신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설원이 처참한 몰골의 불영신승을 껴안으며 진무원을 노려보았다·
“감히!”
“그··· 의 잘못이 아니다·”
그때 꺼져 가는 불영신승의 목소리가 설원의 귀에 울려 퍼졌다· 설원이 급히 불영신승을 내려다보았다·
“절대 그에게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거라· 소림을 위해서····”
“사백님!”
설원의 절규가 후원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불영신승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내 말 기억하고 있느냐?”
“기억하고 있습니다·”
설원의 어깨에 잔경련이 일어났다·
“그럼 그대로 행하거라·”
“사백님!”
“약속해 다오·”
“그러··· 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설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영신승의 시선이 진무원을 향했다·
“미안··· 하네· 부디 나 하나로 끝내주게· 소림만은 제발····”
불영신승은 애타게 진무원의 대답을 듣길 원했다· 하지만 진무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제발····”
불영신승의 입술이 달싹였다· 하지만 진무원은 결코 그가 원하는 답을 하지 않았다· 결국 불영신승은 번민과 고뇌 속에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불영신승의 숨이 끊어지자 설원이 고개를 들어 진무원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사백님의 유언이 무언 줄 아는가?”
진무원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바로 우리가 세속의 모든 은원을 끊고 소림으로 돌아가 은거를 하는 거라네·”
“····”
“나는 사백님을 원망했다네· 소림을 세상의 진흙탕 싸움에 끌어들인 것을· 그래서 차라리 사백님이 모든 은원을 끊고 소림으로 돌아오길 원했네· 그리고 이제 내 뜻대로 이뤄졌네·”
“····”
“그런데 말일세· 왜 이렇게 마음이 허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지 모르겠군·”
“그래서 어쩌실 생각입니까?”
처음으로 진무원이 물었다·
그의 음성과 안색은 너무나 차분해서 방금 전 그토록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진무원의 모습에 설원은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꼈다·
‘사백과 싸우고도 아직 여력이 남아 있단 말인가?’
전신의 피가 싸늘히 식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머지 사대금강과 힘을 합치면 진무원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비록 불영신승을 이기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진무원도 적잖은 상처를 입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무원은 너무나 멀쩡했고 지친 기색 또한 없었다· 또다시 그를 적대하기엔 너무 위험했다·
설원의 얼굴에 잠시 갈등의 빛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정했다·
“사백의 유언대로 우리는 소림으로 돌아갈 생각이라네· 당분간 소림이 외부의 일에 신경 쓰는 일은 없을 걸세·”
“믿어도 되겠습니까?”
“믿으시게· 나는 애초부터 세속에 큰 관심이 없었네· 사백님의 시신을 화장한 후 조사전에 봉헌할 생각이라네· 그 후 소림의 대외적인 활동은 없을 걸세· 최소 십 년 동안은·”
“두고 보겠습니다· 소림이 그 안에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제가 방문할 겁니다·”
“으음!”
진무원의 말에 담긴 의미를 못 알아들을 설원이 아니었다· 불영신승이 그토록 걱정했던 것처럼 진무원은 소림을 용서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 소림은 진무원의 눈치를 봐야할 처지로 전락했다·
비참했다· 소림이 짊어지고 가야할 오욕과 그 앞에 펼쳐진 가시밭길이 설원의 눈에 선했다· 소림의 명성은 진흙탕에 떨어졌다·
진무원이 뒤돌아섰다· 설원이 만감이 교차하는 눈으로 멀어지는 진무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