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화 : 6장 피아를 구별할 수 없기에 더욱 잔혹해진다 (2)
관대승이 미간을 찌푸렸다·
“외부로 정찰을 나갔던 외당의 무인들에게서 연락이 끊겼다 이건가?”
“그렇습니다· 귀환할 시간이 벌써 지난 조들이 몇 개 됩니다·”
“으음!”
수하의 보고에 관대승의 입에서 절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운중천에서는 정기적으로 외당의 무인들을 파견해 일대를 정찰하고 있었다·
외당의 무인들은 주기적으로 보고를 해야 했는데 어제부터 연락이 뚝 끊겼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외당과 내당에 전해 경계를 강화하라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부하가 급히 밖으로 달려 나갔다·
혼자 남은 관대승이 잠시 손가락으로 턱을 톡톡 두들겼다·
“가주님께 알려야 하나?”
잠시 머리를 굴리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도 일이 고민할 일이 무척 많은 모용율천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심무외 담적심과 회의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이 이상의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운중천에는 소림사의 불영신승이 머물고 있었다· 그 하나만으로도 일당백의 전력이라 할 수 있었다· 거기에 십대장로 중 넷이나 남아서 지키고 있는 이곳은 철옹성이라 할 수 있었다·
“어떤 놈들이지? 밀야의 잔당들인가?”
산서성에서 밀야를 성공적으로 토벌했다는 소식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운중천에서 십대장로 중 여섯을 파견했고 사사천과 불귀곡의 정예들 그리고 창천문까지 동원됐다·
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적잖은 손해를 봐야 했던 운중천이었다· 그만큼 막대한 이권을 약속했고 많은 부분을 양도했다·
그렇게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진행한 작전이었다· 비록 엄청난 희생을 치르긴 했지만 그래도 밀야의 본거지를 토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잔당이 살아남아 남하를 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추월!”
순간 백포를 입은 남자가 나타나 그의 앞에 부복을 했다·
“예! 주군·”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 오거라·”
“알겠습니다·”
추월이 대답과 함께 사라졌다·
여전히 관대승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총관부를 나서자 운중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력의 반 이상이 북방으로 빠져나간 운중천은 평상시보다 한산해 보였다·
관대승은 운중천을 돌아다니면서 경계 태세를 확인했다· 전력의 공백이 있었지만 운중천의 경계 태세는 여전히 견고했다· 그제야 관대승은 긴장을 풀었다·
“휴! 나이가 드니 의심만 느는구나·”
관대승이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한쪽 팔을 잃은 후 부쩍 의심도 많아지고 웅지도 예전 같지 않았다·
진무원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이 모든 것이 진무원 그자 때문이다· 그에게 팔을 잃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리 위축될 이유가 없었다· 내 언제고 반드시 그와 북천문을 세상에서 멸하리라·”
그가 허공을 보며 이빨을 빠득 갈았다·
☆ ☆ ☆
한천(漢川)은 호북성의 성도인 무한에서 서쪽으로 백여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한천에는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집단인 운중천이 자리하고 있었다·
커다란 호수 한가운데 자리 잡은 조그만 섬 하나· 둘레가 사십여 리가 넘는 섬 안에는 커다란 전각 수십여 채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운중천이라 불렀다·
운중천은 오직 정문으로 연결된 다리를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했는데 다리 위에는 항상 수십 명의 무사가 경계를 서고 있었다· 허락받지 않거나 신분이 증명되지 않는 자는 출입이 불가능했다·
운중천으로 통하는 다리 주위에는 자연스럽게 커다란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사람들은 이곳을 가리켜 운중현이라 불렀다·
운중현에는 운중천과 관련된 사람들 이외에도 수많은 백성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운중현에 터전을 잡고 사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운중천의 영광이 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믿었다·
운중현으로 진무원이 들어섰다· 마도광은 덩치가 너무 커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기에 운중현에서는 따로 행동하기로 했다·
진무원은 역용술로 얼굴을 살짝 변화시켰다· 코를 살짝 높이고 턱을 두툼하게 만들었다· 약간의 변화에 불과했지만 인상이 확 변해서 누구도 그가 진무원이라는 사실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삼 년 만에 오는 운중현이었다· 그동안 운중현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제일 큰 변화는 무인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단 것이다· 아마도 산서성으로 병력을 대거 파병한 여파인 듯싶었다·
예전에는 인산인해를 이루는 사람들 때문에 길을 걷기조차 힘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운중현에 남아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무공을 모르는 일반 백성들이었다·
진무원이 잠시 멈춰서 두리번거렸다· 그의 시야에 중양객잔이라는 현판이 걸린 객잔이 보였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중양객잔으로 들어갔다·
객잔 주인이 반갑게 그를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방 있습니까?”
“남는 방이야 많이 있습죠·”
“백호실도 있습니까?”
순간 주인의 눈이 반짝 빛났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그 방은 아무에게나 내주지 않는데·”
“북천에서 나왔습니다·”
“그럼?”
“문주 진무원입니다·”
“아!”
주인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으며 주위를 급히 둘러보았다·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백호실로 모시겠습니다·”
객잔 주인이 객잔에서 가장 은밀한 방으로 진무원을 안내했다· 방문이 닫히고 둘만 남은 후에야 객잔 주인이 진무원에게 포권을 취했다·
“운중천의 유성월이 북천문의 주인께 인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스스로를 유성월이라고 밝힌 객잔 주인의 눈에 감격의 빛이 떠올랐다· 설마 이렇게 북검 진무원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진무원은 연판장을 가지고 도주하던 검도각의 부각주 공아천을 구해준 적이 있었다· 운중천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연판장에 서명을 한 이들 중에는 유성월의 이름도 있었다·
하진월은 공아천을 통해 연판장을 입수한 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연판장에 서명한 이들 중 상당수는 운중천을 떠났지만 그들 중 몇 명은 운중천에 인근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유성월이었다·
운중천을 떠난 유성월은 운중현에 중양객잔을 열고 생계를 이어갔다· 운중천에 환멸을 느껴 연판장에 서명을 했지만 그렇다고 운중천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뵙게 되서 반갑습니다· 사정이 있어 미리 연락도 하지 못하고 왔습니다·”
“괜찮습니다· 이렇게 문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현재 운중천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북방으로 많은 인원이 빠져나갔기 때문에 전력에 큰 공백이 있습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만?”
“겉보기만 그럴 뿐입니다· 운중현의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을 겁니다· 무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대부분이 일반 백성들입니다· 물론 그들 중에도 운중천의 눈과 귀가 있지만 예전보다는 허술한 편입니다·”
“모용율천이 운중천에 있습니까?”
“얼마 전 무적세가로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슨 중요한 일이 있는지 심무외와 담적심이 동행했다고 하더군요·”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습니까?”
“그것까지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무적세가는 완벽하게 격리가 되어 있어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정도인가요?”
“무적세가 내부에 있는 사람들과 접촉할 방법을 찾아보고 있지만 여의치가 않습니다· 무적세가의 사람들은 절대 타인과 쉽게 접촉하지 않습니다· 충성심도 매우 강하여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가 않습니다·”
유성월이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적세가의 무인들은 절대 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그들끼리만 똘똘 뭉쳤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친 것처럼 그들은 타인과 어울리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그러면서도 운중천의 무인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니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중요한 것은 현재 운중천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이 무적세가의 무인들이라는 것이다· 모용율천은 전면에 나선 그 순간부터 운중천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그 때문에 알게 모르게 불만을 갖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현재 밀야의 무인들이 남하하고 있습니다· 혹시 운중천에서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그건 모르겠지만 반나절 전부터 운중천의 경계가 눈에 띄게 강화되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겉으로 보기엔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지만 곳곳에 감시의 눈길이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잠시 더 대화를 나눈 후 밖으로 나왔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운중천에 횃불이 하나둘씩 켜지고 운중현에도 등불이 불을 밝혔다·
유성월은 금방 식사를 내올 테니 잠시 쉬라고 했다· 진무원은 운중천이 보이는 이 층의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진무원의 전방위 감각에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거리가 유독 스산하게 느껴졌다· 간간히 들리던 풀벌레 소리가 끊겼고 간혹 짖던 개들조차 꼬리를 말고 집으로 들어갔다·
“이건?”
진무원이 전방위 감각을 더욱 끌어 올렸다· 그러자 은밀한 기척이 느껴졌다·
스스스!
마치 소도로 뼈를 사각사각 긁어내는 것처럼 소름 끼치면서 기분 나쁜 느낌이 말초신경을 자극했다·
진무원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벌떡 일으켰다·
“컥!”
나직한 비명이 허공에 울려 퍼지더니 사내의 몸이 통나무처럼 넘어갔다· 그의 등에는 검 한 자루가 꽂혀 있었다·
염소수염을 기른 남자가 사내의 등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피분수가 치솟아 올랐다·
염소수염의 남자는 궁문휘와 함께 온 밀야의 무인이었다· 쓰러진 사내는 운중현에 머물고 있던 무인이었다· 운중천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는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죽었다·
궁문휘는 밀야의 무인들에게 명했다·
운중현에 머물고 있는 모든 무인을 죽이라고· 운중천을 공격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모든 생명체를 말살하라고·
궁문휘의 분노는 무서웠다·
그는 밀야가 당한 그대로 돌려주길 원했다· 정양에서 밀야와 관련 없는 백성들까지 모조리 죽임을 당했듯 운중현에도 죽음의 공포가 지배하기를 바랐다·
그의 바람대로 밀야의 무인들은 운중현에 흩어져 학살을 하고 있었다· 무인을 우선적으로 죽이고 걸림돌이 된다면 일반 백성들도 가차 없이 죽였다·
“컥!”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무인은 물론이고 무림과 관계없는 사람들까지 죽어나갔다·
“운중현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운중천의 눈과 귀나 다름없다· 그들을 모조리 죽임으로써 정양에서 죽어간 형제들의 넋을 기리겠다·”
궁문휘의 저주 어린 음성이 운중현의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으음!”
마치 사신처럼 죽음을 내리는 궁문휘를 보며 쇄혼수라(碎魂修羅) 서곽이 나직한 신음성을 흘렸다·
서곽은 육마존의 일인으로 뒤늦게 궁문휘와 합류했다·
궁문휘의 분노는 이해했지만 설마 이렇게 닥치는 대로 학살을 명할 줄은 몰랐다· 마음 같아서는 궁문휘의 폭주를 말리고 싶었지만 감히 만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만큼 궁문휘의 분노는 무서웠다·
“휴!”
서곽이 고개를 저었다·
기호지세였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이상 중간에 내릴 수도 없었고 멈출 수도 없었다· 종착지가 어딘지 모르지만 끝까지 가야 했다· 설령 그 끝이 죽음일지라도 말이다·
그때 궁문휘의 전음이 들려왔다·
[육마존께서는 이대로 저와 함께 운중천으로 갑니다·]
[너무 서두르는 것이 아닌가?]
[잊으셨습니까? 사부는 저희보다 더 위험한 곳에 들어가셨다는 걸· 우리가 이곳에서 저들을 잡아놓지 못하면 지원군이 무적세가로 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부와 형제들의 목숨이 위험해집니다·]
[알겠네· 내 생각이 짧았네· 어서 가세·]
결국 서곽은 궁문휘의 뜻을 받아들였다·
현재 등유명이 이끄는 밀야의 정예들은 무적세가를 급습하고 있었다· 무적세가 전력의 상당수가 운중천에 파견 나온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모용율천만 죽일 수 있다면 이 전쟁도 끝이 나리라·’
서곽이 이를 악물었다·
일단 결심을 굳히자 그의 움직임엔 거침이 없었다·
“챠핫!”
그와 육마존이 궁문휘를 따라 운중천과 연결된 다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을 것 같은 운중천이 그들을 오만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