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화 : 6장 피아를 구별할 수 없기에 더욱 잔혹해진다 (1)
비는 새벽까지 줄기차게 내렸다· 덕분에 진무원과 마도광은 아침까지 푹 쉴 수 있었다·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오자 예의 점소이가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밤새 푹 주무셨습니까?”
“그래! 덕분에 아주 잘 잤다·”
“아침 식사를 준비해 드릴까요?”
“될 수 있으면 뜨끈한 국물이 있는 음식으로 내오거라·”
“알겠습니다·”
점소이가 주방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푹 잤기에 두 사람 모두 개운한 얼굴이었다· 어디에도 숙취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식당 안은 한산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비가 그치자마자 객잔을 떠났다· 그중에는 운중천의 외당 사조도 있었다· 그들은 비가 약해지는 기미가 보이자마자 짐을 싸서 객잔을 떠났다·
덕분에 두 사람은 한가로운 분위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객잔을 떠났다· 말들도 휴식을 충분히 취했는지 활력이 넘쳤다·
“흐흐!”
마도광이 말의 뒤쪽에 실은 봇짐을 두드리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객잔을 나오기 전 분주 몇 병을 사서 봇짐에 넣었다· 그만큼 간밤에 마셨던 분주는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게 좋습니까?”
“좋은 술은 여행의 가장 좋은 동반자지요·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으하하!”
마도광의 말에 진무원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말을 달렸다· 어제 하루를 푹 쉬었으니 이젠 다시 열심히 달려야 할 때였다·
그렇게 거의 반나절을 달렸을 때였다·
까악! 까악!
갑자기 까마귀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두 사람이 말을 멈춰 세웠다· 그러자 까마귀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바람에 실려 오는 지독한 혈향·
진무원이 미간을 찌푸린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저 멀리 까마귀 떼가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혈향은 그곳에서 풍겨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까마귀가 모여 있는 곳으로 말을 몰았다· 까마귀들이 날갯짓을 하며 그들을 경계했다·
까마귀가 있는 곳에 가까워질수록 진무원의 얼굴이 점차 딱딱하게 굳었다· 십여 구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마도광이 인상을 쓰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강력한 경풍이 일어나 까마귀들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 그제야 시신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운중천 외당 무사들입니다·”
어제 객잔에서 본 얼굴들이었다· 진무원보다 먼저 객잔을 떠난 그들이 뜻밖에 이곳에서 시신으로 변해 나뒹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말에서 내려 시신을 살펴보았다· 시신들의 상태는 매우 처참했다· 마치 생선을 난도질한 것처럼 곳곳에 상처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까마귀가 상당 부분을 뜯어 먹어서 더욱 처참해 보였다·
“칼이나 도끼에 당한 것 같습니다· 상처가 제법 깊고 뼈가 부러지다 못해 아주 으스러졌습니다· 무기에 힘을 제대로 실을 줄 아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은 굉장한 고수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군요·”
한동안 외당 무인들의 시신을 바라보던 진무원이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일하게 조장인 장우경의 시신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무원이 전방위 감각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근처 수풀 속에서 누군가의 가쁜 숨소리가 느껴졌다· 진무원은 급히 수풀 속으로 뛰어갔다·
“문주님?”
그 뒤를 마도광이 따랐다· 진무원을 따라간 수풀 속에서는 장우경이 나무 밑동에 등을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허억 허억!”
그의 몰골은 처참했다· 고문을 당한 듯 손톱 발톱이 모조리 빠져 있었고 복부가 처참하게 파헤쳐진 채 내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벌써 죽었어야 하는 상처를 입고도 그는 살아 있었다· 그만큼 뛰어난 내공과 강인한 의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한계에 달한 듯 두 눈에서 생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손을 쓰기에는 이미 늦었다· 진무원은 한쪽 무릎을 꿇고 그와 시선을 맞췄다·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휴우!”
“누 누구?”
인기척에 장우경이 겨우 고개를 들어 진무원을 바라봤다· 하지만 초점이 잡히지 않아 진무원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흉수가 누굽니까?”
“당··· 신은 누구요?”
“내가 누군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당신을 이렇게 만든 자가 누굽니까?”
“밀야 밀야가····”
장우경의 목소리가 점차 잦아들더니 고개가 덜컥 떨어졌다· 절명한 것이다·
진무원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밀야라니· 벌써 그들이 손을 쓴 것인가?”
“아직 운중천에 도착하려면 한참 남았는데 벌써 움직이다니· 아무래도 밀야가 단단히 작정을 한 것 같습니다 문주님·”
“큰 사달이 일어날 것 같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진무원이 몸을 일으켰다·
잠시 장우경의 시신을 바라보던 진무원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굉음과 함께 커다란 구덩이가 파였다·
진무원은 구덩이에 장우경과 외당 무인들의 시신을 넣고 흙을 덮었다· 아무리 적이라지만 이대로 까마귀밥이 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마도광은 그런 진무원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역시 이대로 시신을 내버려 두고 가는 것이 찜찜했기 때문이다·
어젯밤 장우경의 기개가 떠올랐다· 그의 행동에 비겁함은 존재하지 않았다· 만일 적이 아니었다면 수하로 두거나 같이 술 한잔을 할 정도의 사이는 되었을 것이다·
“쓰벌!”
장우경의 죽음에 절로 욕이 터져 나왔다· 누구에게 하는 욕인지는 자신도 몰랐다· 그냥 욕이 나올 뿐이다·
두 사람은 무덤을 뒤로하고 말에 올라탔다·
“서둘러야겠습니다·”
“옛!”
두 사람이 떠난 자리엔 먹이를 더 이상 먹지 못하는 까마귀의 아쉬운 울음소리만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그 후로도 진무원과 마도광은 몇 번이나 더 운중천 외당 무사들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들의 시신도 장우경처럼 처참하게 망가져 있었다· 상처의 흔적이 비슷한 것을 보아하니 같은 자들에게 당한 것 같았다·
“컥!”
운중천의 외당 무사 노철이 단말마의 비명을 토해냈다· 그의 가슴에는 누군가의 주먹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노철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두 눈엔 믿을 수 없다는 빛이 떠올라 있었다· 강호에 몸을 담은 이상 언젠가는 죽을 것을 알았지만 설마 그 순간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의 눈앞에 검은색 일색의 사내가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검은 남자· 육척 장신에 티끌 한 점 없이 맑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남자· 그는 바로 궁문휘였다·
궁문휘가 노철의 가슴에 박힌 손을 뽑았다· 그러자 노철이 통나무처럼 뒤로 쓰러졌다· 노철의 주위에는 외당 무사들의 시신이 널려 있었다·
“흥!”
궁문휘가 손을 크게 휘둘러 묻은 피를 털어냈다· 하지만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지 살기가 가득했다·
그의 주위로 수백 명의 무인이 몰려들었다· 그를 따르는 밀야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 운중천의 무인들이 보이는 족족 죽였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궁문휘는 가경의의 명에 의해 그를 따르는 소수의 인원과 함께 따로 남하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이곳으로 오는 도중 산서성에 남겨둔 밀야의 무인들이 전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 숙부처럼 따르던 흑익신창 우문천과 친형인 궁상화가 죽었다·
그들의 죽음은 궁문휘와 그를 따르는 밀야의 무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때부터였다· 운중천의 무인들이 보일 때마다 족족 죽이게 된 것이·
군사 가경의는 그들에게 극도로 은밀히 남하할 것을 주문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그의 당부 따윈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분노로 이성을 잃은 것은 그를 따르는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산서성에서 몰살을 당한 이들 중에는 그들의 가족도 있었다· 혈육을 잃은 그들의 눈동자에는 광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잃은 그들의 가슴엔 오직 분노만이 남아 있었다· 당장의 분노를 풀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것이 그들이 살육을 저지른 이유였다·
궁문휘가 입을 열었다·
“생존자는?”
“없습니다· 몇 번이나 확인했으니 틀림없습니다·”
“음!”
그제야 궁문휘의 살기가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다른 무인들 역시 그를 따라 조금씩 살기를 가라앉혔다·
“운중천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이제 이틀 거리입니다·”
“야주와 군사는?”
“저희보다 하루는 빠르게 도착할 것으로 보입니다·”
“육마존(六魔尊)은?”
“두 분이 먼저 도착해 소야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머지 네 분은 야주님을 따르실 겁니다·”
“그럼 서둘러야겠군· 쓸데없는 곳에 심력을 쏟느라 시간을 너무 낭비했다·”
궁문휘가 주위에 널브러진 시신을 바라보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얼굴엔 전혀 후회하는 빛이 없었다· 이렇게라도 분을 풀지 않았으면 아마 진즉에 미쳐 버렸을 것이다·
궁문휘가 이빨을 뿌득 갈았다·
“놈들이 우리에게 한 그대로 돌려준다· 운중천과 연관된 자라면 개새끼 한 마리까지 찾아내어 모조리 죽인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놈들의 뼈를 갈아 마시고 그들의 피로 목욕을 하겠다· 나 궁문휘· 하늘에 맹세하노니 절대로 그들과 같은 하늘 아래 숨 쉬지 않을 것이다·”
궁문휘의 무시무시한 맹세에 모여든 무인들이 일제히 외쳤다·
“소야주의 뜻대로 될 겁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일대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잠시 후 궁문휘가 수하들을 이끌고 자리를 떴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운중천 외당 무사들의 시신만 흉물스럽게 나뒹굴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해가 저물 무렵 진무원과 마도광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여기에도····”
“아직 피가 완전히 굳지 않은 것을 보니 떠난 지 반나절도 안 된 것 같습니다·”
마도광이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본 시신들은 모두 처참하게 망가져 있었다· 울분을 모두 시신들에게 푼 것처럼 형체조차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들도 산서성에 있는 밀야의 본진이 전멸한 것을 알아차린 것 같군요·”
“맞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학살극을 벌일 이유가 없습니다·”
진무원의 눈가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렇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악순환의 고리가 더욱 견고해지고 커졌다· 이젠 밀야에서도 죽기 살기로 나설 것이고 더 많은 사람이 그에 휩쓸려 죽어갈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나갈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더구나 운중천이 있는 한천은 무림인들뿐 아니라 수많은 백성이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자칫하다가는 대학살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무림인들끼리 싸워서 죽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일반 백성들이 그들의 싸움에 휘말려 죽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것이 이제까지 무림이란 세계를 지탱해 온 큰 불문율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운중천이 사천성 정양에서 일반 백성들까지 모조리 죽임으로써 불문율이 깨지고 말았다· 이젠 그 여파가 어디까지 퍼질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한동안 말없이 시신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옆쪽에 있는 수풀에서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신들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운중천 외당 무인들이었다·
“오조다·”
외당 무인들이 시신이 된 동료들과 마도광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무기를 꺼내 들었다· 눈에 보이는 정황이 마도광과 진무원을 의심하게 만든 것이다·
“감히 이곳에서 운중천의 무인들을 죽이다니·”
“아아 그게····”
마도광이 변명을 하려다 말고 머리를 긁적였다· 괜히 변명을 하는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 진무원이 앞으로 나섰다·
“이들을 죽인 것은 우리가 아니오·”
“닥쳐랏!”
외당의 무인 한 명이 큰 소리를 쳤다·
그의 눈이 벌게져 있었다· 동료의 죽음 앞에 그는 이성을 잃었다· 외당 오조에는 그와 친한 이들이 다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있었다·
지인과 동료의 죽음 앞에 이성은 날아가고 분노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진무원과 마도광에게 달려들었다·
“쯧!”
마도광이 혀를 찼다·
동료의 죽음 앞에 분노하는 그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진무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이지는 마십시오·”
“노력해 보겠습니다·”
마도광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엄청난 위압감이 사위를 압도했다·
외당 무인들이 자신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마도광이 폭풍처럼 그들을 덮쳐 왔다· 폭풍에 휩쓸린 그들의 몸이 이리저리 날아갔다·
진무원은 고개를 저으며 바닥에 굴러다니는 시신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중 하나가 유독 진무원의 시신을 끌었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채 쓰러져 있는 남자의 시신이·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