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화 : 4장 대말살지계(大抹殺之計), 짐승들의 싸움··· (2)
산서성 정양에선 밀야와 운중천의 전쟁이 한창이었다· 섬서성 부현에서 그랬듯이 양대 세력은 정양을 두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겉으로 보기엔 백중지세인 듯 보였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밀야가 한참 불리했다· 아무래도 전장이 중원이다 보니 후속 전력을 보충하기가 힘든 것도 한 이유였다·
그러나 운중천도 밀야를 완전히 압도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력에서 밀린 밀야가 교묘히 민중들 사이로 숨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점거한 지역의 민중들을 교묘하게 흘렸다·
그들에게 홀린 백성들은 밀야의 방패가 되어주거나 은신처를 제공했다· 그리고 그들이 평범한 백성으로 위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무복을 벗고 백성으로 위장한 밀야는 정면 대결 대신 암습으로 작전을 바꿨다·
길을 가던 노부부가 운중천의 무인들의 뒤통수를 향해 검을 휘둘렀고 근처에서 식사를 하던 평범한 나무꾼이 도끼로 공격을 했다·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운중천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밀야는 백성들 사이에 교묘히 퍼져 나가며 세를 불렸다· 무공을 모르는 백성들을 끌어들여 방패막이로 사용하고 재능이 뛰어난 자에게는 무공을 전수했다·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운중천과 밀야의 무인들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피해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운중천과 밀야는 또다시 격돌을 하려하고 있었다·
밀야의 진영에 홀로 우뚝 서 있는 남자가 있었다· 검은 피풍의를 걸친 채 은빛 장창을 들고 있는 남자는 바로 흑익신창 우문천이었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고요한 표정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운중천의 진영이 보였다· 수많은 막사와 휘날리는 깃발들이 보이고 그 사이로 흐르는 찐득한 살기가 느껴졌다·
“곧 시작하겠군·”
우문천이 중얼거렸다·
벌써 몇 번째 격돌인지 몰랐다· 벌써 수십 번이나 전쟁을 치렀고 그때마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밀야의 피해도 극심했지만 그렇다고 전쟁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이제 와서 순순히 물러서기엔 너무 많은 길을 왔고 너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좋든 싫든 여기에서 끝을 봐야 했다· 설령 그 끝이 밀야의 멸망일지라도·
쿠우우!
적들 한가운데 유독 고조된 살기가 느껴졌다·
마치 날개를 활짝 펼친 공작새처럼 유독 강렬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인물· 비록 얼굴 한번 본적 없었지만 우문천은 강렬한 존재감의 주인을 잘 알고 있었다·
우문천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공작신검(孔雀神劍) 모용현 듣던 대로 화려한 기운을 머금고 있구나·”
그는 적진에서 느껴지는 가공할 살기의 주인이 모용현이라고 확신했다·
무적세가가 세상에 내놓은 최고의 기재· 일검일제라 불리는 진무원 담수천 이후 최고라 평가받는 천고의 무인·
그의 검은 화려했다· 마치 공작의 날개처럼 화려한 그의 검술은 젊은 무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붙여진 별호도 공작신검이었다·
우문천은 모용현에게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모용율천이 심혈을 기울여 키워낸 괴물이라고 했지?”
궁금했다· 밀야 최고의 기재라고 불리는 궁문휘와 비교하면 누가 더 강할지· 만일 이 자리에 궁문휘가 있었으면 무척 좋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휘·’
궁문휘를 생각하자 잠깐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궁문휘는 야주 등유명의 제자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제자이기도 했다· 그의 심득 중 일부가 궁문휘에게 흘러들어 갔으니까·
우문천이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궁문휘는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형 궁상화가 보였다· 그리고 그가 이끄는 천무대도·
‘그래! 저 녀석도 있었지·’
동생인 궁문휘보다는 못하지만 궁상화 역시 천고의 기재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궁상화가 우문천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우문천이 그에게 물었다·
“준비 됐느냐?”
“물론입니다·”
“작전은?”
“늘 하던 대로 합니다· 어차피 이번 싸움은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가경의도 없는데 자신은 있느냐?”
“버티기만 해도 이기는 싸움입니다· 어려울 것 없습니다·”
궁상화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신감이 담긴 그의 미소에 우문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지·”
지금 밀야의 대군을 지휘하는 이는 가경의가 아니다·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그를 대신해 밀야를 지휘하는 자는 바로 궁상화였다·
비록 가경의에게 묻혔다고 하지만 궁상화 역시 무시 못 할 천재였다· 특히 소규모 병력을 운용하는 것은 가경의보다 낫다고 볼 수 있었다·
가경의는 천무대를 곳곳에 배치해 효율적으로 병력을 운용할 준비를 했다·
문득 궁상화가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 명심하십시오· 방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이번 싸움은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버티기 위해 하는 겁니다· 조금이라도 불리하다 싶으면 민간에 몸을 숨겨서라도 자신의 한 몸을 온전히 보존하십시오·”
“예!”
밀야의 수뇌부들이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그들의 얼굴엔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우문천의 얼굴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허! 그런데 왜 이리 가슴이 답답하단 말인가?’
그의 미간에 절로 골이 패었다·
그와 같은 고수가 아무런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할 리 없었다·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으니 그런 것일 게다· 문제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문천은 고개를 저어 쓸데없는 상념을 날려 버렸다· 이미 벌써 몇 번이나 점검했다· 문제 될 것은 전혀 없었다·
‘그냥 기분 탓이다· 눈앞의 전장에 집중하자·’
그때였다·
“와아아!”
거대한 함성 소리와 함께 운중천의 무인들이 해일처럼 이곳을 향해 밀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에 맞서 궁상화가 밀야의 무인들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기 시작했다·
“온다·”
우문천 뒤에 있던 무인 중 누군가 긴장 어린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운중천과 밀야의 무인들이 격돌했다·
콰아앙!
대지가 들썩이고 먼지가 하늘 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우와아아!”
“죽여!”
그 속에서 양측의 무인들이 전력으로 무기를 휘둘렀다· 피가 사방으로 튀고 피륙이 갈라졌다· 주인을 잃은 팔과 다리가 바닥에 나뒹굴었고 대지가 붉게 물들었다·
모두가 악귀처럼 날뛰는 그곳에서 우문천은 마치 신룡처럼 홀로 전장을 휘저었다·
공력을 주입한 검은 피풍의가 칼날처럼 일어섰다· 피풍의가 곧 갑주가 되는 공부 흑익(黑翼)이었다· 그 상태로 우문천은 운중천 무인을 헤집고 다녔다·
콰콰콰!
“크악!”
“사 살려····”
우문천은 폭풍 같았다· 누구도 그를 막을 수가 없어 보였다·
은빛 장창은 아예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백여 명에 가까운 인원이 그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살아 있는 재앙이라는 단어가 누구보다 가장 어울리는 남자가 바로 우문천이었다· 사대마장 중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그의 진신 무력은 실로 무서웠다·
당연히 그가 있는 곳에서는 비명과 죽음이 난무했다· 그는 그렇게 아낌없이 죽음을 흩뿌렸다·
그때였다·
“멈춰라 노괴·”
슈우우!
갑자기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강렬한 검기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우문천은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창을 휘둘렀다·
콰아앙!
은빛 창영이 허공에 선을 그은다 싶은 순간 폭음이 터져 나왔다·
우문천의 몸이 잠시 흔들렸다· 전쟁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그가 멈춰 선 순간이었다·
지이잉!
강렬한 충격에 아직도 창신이 떨리고 있었다· 이런 묵직한 느낌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우문천은 검기를 날린 젊은 무인을 바라보았다·
이제 겨우 이십 대 후반이나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입가에 오연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모습이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너는 모용현이구나·”
“선배의 안목이 정확하오· 내가 무적세가의 모용현이오·”
“공작신검이라 불린다지? 검술이 제법 화려한 모양이구나·”
“화려한 만큼 독하기도 하다오·”
“그래? 얼마나 독할지 궁금하구나·”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알게 될 것이오· 시간은 많이 남아 있으니까·”
모용현의 광오한 말에 우문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쉽게 경동하지 않았다· 모용현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피부가 아려왔다· 마치 수천 수만 개의 바늘로 일제히 찌르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모용현의 성취가 범상치 않다는 증거였다·
“모용율천이 제법 잘 키운 모양이구나·”
“실망하지 않으실 것이오·”
모용현이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그의 기세가 갑자기 수배나 증폭했다·
햇빛이 모용현의 검에 부딪쳐 사방으로 흩어졌다· 부서진 빛의 편린이 꼭 활짝 펼쳐진 공작의 날개를 연상케 했다·
“흥! 공작이라는 단어는 어울린다만 신검이라는 단어도 어울릴지 두고 보겠다·”
우문천이 코웃음을 치며 창을 힘주어 잡았다·
비록 모용현이 후기지수 중 발군의 실력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자신은 사대마장의 일원이자 살아 있는 재앙이라 불리는 전설 중의 전설이었다· 겨우 애송이 무인 따위에게 질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몸을 날렸다·
쩌어엉!
검과 창이 부딪쳤다· 날카로운 기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대기가 요동쳤다·
모용현의 몸 주위로 검은 기류가 휘돌았다· 무적세가 최고의 절기인 현천구류공(玄天九流功)을 펼칠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모용율천이 창안한 무극구영신공(無極九靈神功)을 완전히 익히지 못했기에 현천구류공을 펼치는 것이다·
검은 기류가 검에 맺혔다·
천빙(天氷)이라는 이름의 명검이 허공을 그을 때마다 소름 끼치는 절삭음이 울려 퍼졌다· 일반적인 무기라면 부딪치는 것만으로도 단숨에 두 동강이 날 정도로 천빙은 날카로웠다·
하지만 우문천의 창도 보통의 무기가 아니었다· 신창이라는 별호에 어울리는 명기였다· 그렇기에 두 사람 중 누구도 무기의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각자의 절기를 마음껏 펼쳤다·
슈우우!
검을 들지 않은 모용현의 손에 황금빛 수강이 맺혔다· 무적세가의 절기인 황금신수(黃金神手)였다·
황금신수가 우문천의 배를 향해 내리꽂혔다·
쾅!
하지만 모용현의 일수는 우문천의 피풍의에 막히고 말았다· 피풍의에 내공을 주입해 흑익을 펼친 것이다· 그야말로 가공할 내공이었다· 하지만 적잖은 충격을 받아야 했기에 우문천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젊은 놈이 무섭구나·’
모용현의 나이는 기껏 해봐야 이제 서른 초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론 더 먹을 수도 있었지만 그래봐야 사십은 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보이는 무위는 그 나이 대에서 보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모용현은 무적세가의 절기를 자유자재로 펼치고 있었다· 황금신수와 공령신검(空靈神劍)을 번갈아 펼치는 그의 실력은 이미 후기지수의 반열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까가가강!
창과 검이 연신 부딪치며 불꽃이 사방으로 튕겼다·
검강과 창강이 얽혔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두 사람의 전신은 금세 땀으로 흠뻑 젖어들었다·
그들의 싸움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두 사람의 실력은 거의 호각이었다· 그래서 누가 우위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었다·
싸움이 극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모용현이 입을 열었다·
“그것 아시오?”
순간 우문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은 내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린 중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입을 연다는 것은 내공에 여유가 있거나 양의심법(兩意心法)처럼 뜻을 두 개로 나눠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심법을 익혀야 가능한 일이었다·
모용현처럼 젊은 무인이 펼칠 수준의 공부가 아니었다· 하지만 모용현은 우문천의 예상과 달리 격렬하게 무공을 펼치면서도 숨소리 한번 흐트러지지 않고 담담히 말을 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살아남을 수 있는 자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오·”
“이제까지도 밀야를 어찌하지 못했으면서 오늘은 다를 거란 말이냐?”
“그렇소! 왜 그런지 아시오?”
“글쎄! 듣고 싶지 않구나·”
“그래도 들어야 하오· 왜냐하면 이곳엔 운중천뿐 아니라 불귀곡 사사천 그리고 무적세가의 전력까지 투입되었기 때문이오·”
충격적인 말에 우문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그는 애써 모용현의 말을 부인했다·
“그래도 소용없다· 너희들이 아무리 발악해도 밀야는 영원히 존속될 것이다· 왜 그런지 아느냐?”
“백성들 사이로 스며들었기 때문이오?”
우문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모용현의 말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모용현의 말은 그의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제까지 그랬겠지 백성들을 세뇌해서 방패막이로 내세우고 다시 그들을 활용해 세를 넓혀가고· 하지만 그런 악행도 오늘로 끝이오·”
모용현의 목소리가 더욱 서늘해졌다·
순간 무언가를 느낀 듯 우문천이 고개를 퍼뜩 들어 모용현을 바라보았다·
“오늘 정양에 있는 그 어떤 생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밀야는 물론이고 밀야에 협조한 자들까지 모조리 씨를 말릴 테니까·”
“너 설마?”
대말살지계(大抹殺之計)·
운중천이 이번 작전에 붙은 이름이었다·
“와아아!”
이제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던 불귀곡 사사천 무적세가의 무인들이 정양을 포위한 채 숨 막히게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