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화 : 4장 대말살지계(大抹殺之計), 짐승들의 싸움··· (1)
“주군·”
상념을 깨우는 목소리에 진무원이 고개를 들어 옆을 바라봤다· 족히 칠 척은 될 듯한 장대한 체구에 떡 벌어진 어깨 그리고 호랑이처럼 투지가 가득한 눈동자를 한 장한이 그를 보고 있었다·
혈안광호(血眼狂虎) 마도광· 비황대(飛荒隊)의 대주로 북방을 주름잡던 전설적인 남자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마적이 아닌 북천문의 무주이자 진무원의 수하였다·
“예?”
“배가 도착했습니다 주군·”
“아? 예!”
그제야 진무원은 눈앞에 배가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그들이 있는 곳은 섬서성 한중(漢中) 인근의 포구였다· 제법 큰 포구에는 커다란 여객선이 정박하고 있었다· 포구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서둘러 배에 올라타고 있었다·
진무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다른 생각을 하느라 배가 오는지도 몰랐군요· 어서 타죠·”
“예! 주군·”
마도광은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북천문에 합류한 지 꽤 되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진무원과 함께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때문에 이번에 진무원의 밀행에 따라 나온 것을 매우 기뻐했다·
마도광은 진무원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는 강호에서 진무원의 명성을 믿지 않았다· 때문에 직접 진무원과 겨뤄보길 희망했다· 진무원은 그런 마도광의 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서부 고원에서 비무를 했다· 마도광은 진무원을 이기지 못해도 쉽게 지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나타난 결과는 정반대였다· 겨우 이십여 초 만에 진무원에게 제압당하고 만 것이다·
그 후 그는 진무원에게 진심으로 감복해서 수하를 자청했다· 그리고 그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길 바랐다· 하지만 진무원은 강호행이 있을 때마다 다른 사람과 동행을 했기에 그에게까지 순서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무척이나 아쉬워하던 차에 하진월의 밀명이 떨어졌다·
‘이번에 문주님이 강호에 은밀히 나갈 것이니 무주께서 호위해 주십시오·’
마도광은 하진월의 명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때문에 그는 이번 강호행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들떠 있는 마도광과 달리 진무원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번 진무원의 밀행은 하진월이 계획한 것이었다·
‘모용율천이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본 문을 겨냥한 독공을 펼친 것은 그만큼 우리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겁니다· 즉 우리가 그들의 일에 관심을 갖지 않길 바랐을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역으로 그들의 행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진월은 사천무림대회를 계획했다· 모용율천이 북천문에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무적세가와 운중천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서였다·
현재 세간의 모든 시선은 사천무림대회에 쏠려 있었다· 사람들은 북천문이 세를 과시하기 위해 사천무림대회를 연다고 짐작했지만 하진월이나 진무원 모두 자신이 가진 패를 내놓고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성동격서(聲東擊西)··· 아니 이번에는 성서격동(聲西擊東)이라고 해야 하나?’
진무원은 하진월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진월이 이성적으로 현재의 상황을 판단했다면 진무원은 감으로 작금의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게 흘러간다는 것을 느꼈다·
‘분명 내가 모르는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
진무원은 자리에 앉아 갑판을 바라봤다·
배에 탄 사람들 대부분은 상인들과 그들을 호위하는 보표들이었다· 일반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보표가 없으면 먼 길을 떠나지도 못할 만큼 어지러운 시대였다·
그들의 얼굴에 어린 불안감이 보였다· 물건을 파는 상인이든 그들을 지키는 보표들이든 불안한 표정은 비슷했다· 그들 역시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지 몰랐다·
“분위기가 정말 칙칙하군요·”
마도광이 혀를 찼다·
북천문에 합류한 이후 사천성을 벗어난 적이 없는 마도광이었다· 때문에 사천성 밖의 분위기가 이렇게 우울하고 침잠되었을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아마 중원 어디를 가도 비슷한 분위기일 겁니다· 특히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섬서성과 산서성 지역의 분위기는 더욱 어둡습니다·”
“제길! 그러니까 예전의 북천문을 왜 멸문시켜 가지고· 북천문이 북쪽에서 건재했다면 이런 일은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마도광이 이를 벅벅 갈았다·
그는 매우 단순했다· 천 명이 넘는 비황대를 이끌면서도 복잡하게 생각한 적 없고 언젠가는 반드시 북천문의 이름 아래로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 현재 천하가 돌아가고 있는 상황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험악한 마도광이 인상을 구기자 인근에 있던 승객들이 움찔하며 물러났다· 그제야 마도광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더 흉악해 보였다·
진무원이 미소를 지었다· 얼굴은 험악하지만 꽤나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가진 사람이 마도광이었다· 하지만 그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공포스럽게 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본질을 몰랐다·
“아무래도 무주께서는 죽립을 하나 사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이대로는 너무 많은 시선을 끌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네요· 떠그럴!”
“답답해도 조금만 참으세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군· 이 마도광 얼마든지 참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콧바람을 쐬는 데 그깟 죽립이 대수겠습니까?”
마도광이 자신의 가슴을 쾅쾅 두들겼다· 그 모습마저 공포스러워 사람들이 더욱 멀어졌다· 그 덕에 진무원과 마도광은 좁은 배 안에서 나름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우웩!”
마도광이 갑자기 갑판 밖으로 토악질을 했다· 뱃멀미를 하는 것이다· 비적으로 반평생을 말 위에서 보낸 마도광이었다· 그런 그가 배에 적응하지 못하고 멀미를 하는 모습은 어찌 보면 우습기까지 했다·
“우웨엑!”
그러나 당사자인 마도광은 죽을 지경이었다· 이젠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내어 노란 위액이 넘어왔다· 목 안은 헐어서 피가 나 있었고 두 눈은 온통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피부는 뒤집어져서 울긋불긋한 모습이 이러다가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내공을 이용해서 속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도광은 계속해서 헛구역질을 했다·
“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무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더 이상 배를 타고 가기는 무리일 것 같았다·
“다음 포구에 도착하면 내리죠·”
“저 저는 괜찮습니다· 주군·”
마도광이 침을 질질 흘리며 말했지만 진무원은 고개를 저었다·
“하나도 괜찮지 않아 보입니다· 다음에서 내려 걸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명령입니다·”
“감사합니다 주군·”
결국 마도광은 진무원의 명을 받아들였다·
그가 고개를 푹 숙였다·
‘크윽! 이런 망신이·’
말을 타고 북방을 질타했던 자신이 겨우 뱃멀미 때문에 이 지경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마도광은 두 번 다시 배를 타지 않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다·
결국 그들은 다음 포구에서 배를 내렸다· 두 다리가 땅에 닫자마자 마도광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내 두 번 다시 배를 타면 마도광이 아니라 개새끼다·”
진무원은 그런 마도광을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설마 혈안광호라는 별호로 천여 명의 비적을 이끌던 그가 배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너질 줄은 정말 몰랐다·
잠시 후 심신을 수습한 마도광이 몸을 일으켰다·
“주군 이제 가시지요· 저 때문에 시간이 늦어져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배로 가는 여정이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었습니다·”
진무원의 말에 마도광이 감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주군· 이제부턴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나저나 말부터 구해야겠군요·”
“석천(石泉)까지만 가면 마시장이 있을 겁니다· 그곳에서 두 마리 사도록 하죠·”
말을 산다고 하니 마도광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그의 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진무원은 마도광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걸음을 옮겼다· 그 덕에 다음 날 아침 전에 석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석천에 도착하자마자 진무원은 얼굴을 살짝 바꿨고 마도광은 죽립을 사서 얼굴을 가렸다· 그런 후에야 그들은 인근의 마시장을 찾았다·
전쟁의 여파 때문인지 마시장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덕분에 진무원과 마도광은 한가하게 말을 고를 수 있었다·
“이놈은 허리가 길고 가느니 지구력이 약하겠구나·”
“잘생겼구나· 목이 높고 어깨가 좁으니 속도는 늦을지언정 쉽게 지치지는 않겠구나·”
“요놈은····”
마도광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마시장을 헤집고 다녔다· 언제 뱃멀미를 했냐는 듯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그를 보며 진무원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천여 명의 비적을 이끌고 천하를 자유롭게 질타하던 그가 지난 삼 년 동안 북천문에 틀어박혀 있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꾹 참고 북천문을 위해 헌신한 그에게 새삼 고마워졌다·
마도광은 마시장을 뒤져서 마음에 드는 말 두 마리를 찾아냈다·
“요놈들이 좋겠습니다 주군·”
그가 고른 말들은 뜻밖에도 볼품이 없었다· 한 놈은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했는지 털이 여기저기 엉겨 붙고 엉덩이에도 똥이 묻어 있었다·
다른 놈은 덩치는 크지만 눈이 흐리멍텅하고 발목도 얇아 먼 길을 가기에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도광은 흐뭇한 눈길로 말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무원은 마도광을 믿기로 했다· 말에 대해서라면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아는 마도광이었다· 그가 이런 선택을 했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그 놈들로 사죠·”
“흐흐!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마도광이 만족스러운 듯 연신 미소를 지었다·
그때 근처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 어떻게 저런 볼품없는 말을 고른단 말인가?”
“그러게 말입니다· 저리 말을 보는 눈이 없어서야·”
마도광의 고개가 팩 돌아갔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 십여 명의 도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마도광이 고른 말을 보며 비웃고 있었다·
“저런 개····”
마도광이 발작하려는 순간 진무원이 그의 손을 잡았다·
“종남파의 도사들입니다· 굳이 문제를 만들 필요 없습니다·”
진무원은 단숨에 그들이 종남파의 도사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부현에 나가 있을 때 본 얼굴이 그들 사이에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겠습니다·”
여전히 불만 섞인 표정이었지만 마도광은 애써 참았다·
‘저런 씨부럴 놈들· 나중에 두고 보자·’
마시장이 있는 석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종남파가 있는 종남산이 있었다· 종남파는 대부분의 물건을 인근에 있는 서안에서 구했지 이곳 석천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마도광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고! 종남파의 도사님들이 여기엔 어쩐 일이십니까?”
종남파의 도사들이 나타나자마자 마시장의 주인이 맨발로 뛰어나왔다·
“인원수대로 말이 필요하네· 먼 길을 가야 하니 좋은 놈으로 골라주게·”
“물론입지요· 이곳에서 제일 좋은 놈들로 골라 드리겠습니다요·”
주인이 종남파의 도사들에게 굽실거렸다·
평소에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던 종남파의 도사들이 왜 나타났는지 모르지만 주인에겐 돈을 벌 절호의 기회였다·
주인은 마시장에서 특별히 관리하는 말들을 끌고 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명마라는 소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관리가 잘되고 체형이 좋은 말들이었다·
“이놈들이 이 마시장에서 최고로 좋은 녀석들입니다· 도사님들이 타기에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흠! 좋군·”
잡털 하나 섞이지 않고 윤기가 흐르는 말들의 모습에 도사들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눈에는 그 어떤 명마보다도 눈앞의 말들이 더 훌륭해 보였다·
“가격이 얼마인가?”
“원래는 두당 은자 칠십 냥 이상은 받아야 하는데 종남파의 도사님들이니 오십 냥씩만 받겠습니다·”
“알겠네·”
종남파의 도사들은 흥정도 하지 않고 은자 오백 냥을 계산했다· 그에 마시장의 주인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흠!”
종남파의 도사들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에 올라탔다· 그들이 탄 말이 진무원과 마도광을 지나쳤다·
피식!
말위에 올라탄 종남파의 도사들이 마도광이 고삐를 잡고 있는 두 마리의 말을 보며 웃었다· 그에 마도광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그들이 진무원과 마도광을 지나치며 대화를 나눴다·
“호북성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하네·”
“말이 좋으니 금방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서둘러 가세·”
그들은 마시장을 벗어나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도광이 혀를 찼다·
“저런 몰상식한 도사들 같으니라구·”
“왜 그럽니까?”
“무공을 펼치기 전에도 호흡을 가다듬고 근육을 이완시킬 시간이 필요하듯 말도 달리기 전에 준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초반부터 저리 무식하게 달리니 얼마 가지 않아 말이 지칠 겁니다·”
“그렇습니까?”
“예! 더구나 저들이 탄 말들은 죄다 단거리에 특화된 것들입니다· 빠른 속도로 치고 달리기엔 좋지만 원행에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지요· 그런 말들을 저렇게 전속력으로 모니 얼마 가지 못해 지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군요·”
마도광의 설명에 진무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은 주인에게 셈을 치르고 마시장을 빠져나왔다· 근처에서 간단한 건량을 산 후 두 사람은 석천을 출발했다·
석천에서 이백여 리를 갔을까? 그들은 이름 없는 야산에서 혀를 내밀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십여 마리의 말들과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도사들을 볼 수 있었다·
그에 반해 그들이 타고 있는 말은 너무 쌩쌩했다·
“이보시오· 우리는 종····”
도사들이 무어라 불렀지만 마도광의 콧노래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배에서 체면을 구긴 마도광이 산에서 체면을 찾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