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화 : 1장 피의 강으로도 풀리지 않는 갈증이 있다 (1)
문득 뒤를 돌아봤을 때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가 있는가?
강호에서 살아가는 자·
스스로 인간이라 자부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풍운의 꿈을 안고 들어선 강호·
하지만 지금의 내 모습은 인간의 형태를 한 괴물일 뿐이다·
사냥꾼은 무서운 속도로 내달렸다· 진무원과 황철이 그 뒤를 쫓았다· 개천과 그의 거리는 불과 이십여 장 정도였다· 숨 두어 번 쉴 정도면 닿을 수 있을 만큼 짧은 거리였다·
사냥꾼이 품에 손을 넣는 모습이 진무원의 시야에 들어왔다· 예의 검은 광물이 들려 있었다· 예의 광물 독이 분명했다·
진무원이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순간 그의 몸이 섬전이 되어 쏘아져 나갔다· 전력을 다해 경공을 펼치던 황철이 순식간에 뒤로 처졌다·
화악!
갑작스럽게 등 뒤에서 느껴지는 풍압에 사냥꾼이 뒤를 돌아봤다· 그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치떠졌다· 진무원의 모습이 망막 가득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냥꾼은 필사적으로 손에 들고 있던 광물 독을 개울에 던지려고 했다·
후웅!
그 순간 한 줄기 차가운 바람이 그를 훑고 지나갔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사냥꾼은 그 직후 광물 독을 던지려고 한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단 사실을 깨달았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잘린 단면에서 뜨거운 피분수가 치솟아 올랐다· 날카로운 검풍이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 그의 팔을 자른 것이다·
“크아악!”
뒤늦게 고통을 인지한 사냥꾼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사이 진무원이 사냥꾼에게 쇄도해 들어왔다·
사냥꾼은 고통스러운 와중에서도 검을 꺼내 진무원을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검을 채 반도 뽑기 전에 진무원이 쇄병지를 펼쳤다·
쩌어엉!
손가락에 닿은 검이 산산이 부서져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사냥꾼이 그 충격으로 비틀거리는 순간 진무원이 그의 마혈을 짚었다·
순식간에 제압당한 사냥꾼이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두 눈만 뒤루룩 굴렸다· 창졸지간에 일어난 일이라 상황 파악이 영 안 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지독한 악몽을 꾸는 것처럼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잘린 팔을 보는 순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크으으!”
입술을 비집고 고통스러운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진무원이 사냥꾼의 턱을 잡아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사냥꾼의 눈은 기묘했다· 검은자와 흰자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눈동자 전체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정상적인 인간의 눈동자는 아니었다· 무언가 특별한 무공을 익혔거나 대법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당신은 누굽니까?”
“흐흐!”
고통이 지독할 텐데도 사냥꾼이 웃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진무원이 다시 한 번 물었다·
“이 광물 독 어디서 났습니까?”
“흐흐! 내가 말할 듯싶으냐?”
“말하지 않으면 고통만 심해질 겁니다·”
“고통? 크크!”
사냥꾼이 가소롭다는 듯이 기괴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검붉은 피를 토했다·
“우웨엑!”
그의 가슴 섶과 바닥이 금세 검붉게 물들었다· 순간 진무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냥꾼이 토한 피에서 지독한 비린내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독?’
그 순간 사냥꾼이 고개를 들어 진무원을 바라봤다· 그런 그의 눈동자에서는 이미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나를 찾아낸 것은 대단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모두를 막을 수는 없다·”
“모두?”
한두 명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냥꾼과 같은 존재가 최소 몇 명 이상이 있다는 말에 진무원이 사냥꾼의 멱살을 잡았다·
“누굽니까 당신들은?”
“흐흐! 인간의 힘으로 재앙을 막을 수는 없다· 사천성의 재앙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순간 사냥꾼이 다시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그가 토해낸 핏속에는 반쯤 녹은 내장 조각이 섞여 있었다·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그의 손을 자르고 마혈을 제압한 것뿐이었다· 일련의 과정 어디에도 독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 말은 곧 사냥꾼의 몸 안에 독이 내재되어 있었단 뜻이다·
“독인(毒人)인가?”
독인에도 두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당문의 무인들처럼 외부의 독을 사용하는 이들이었다· 번거롭게 독을 챙겨 다녀야 하고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하독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인성이 파괴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두 번째는 장기적으로 독을 복용하면서 독기를 몸 안에 축적하는 이들이었다·
몸 안에 독기를 축적하기 때문에 따로 독을 휴대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은 있지만 대성을 이루기 전에는 초벌구이를 하지 않은 도자기처럼 불완전하기 그지없었다·
그 때문에 몸 안의 균형이 깨지거나 독기의 제어가 미숙할 경우 오히려 독이 스스로를 공격할 수 있었다·
아무래 사냥꾼은 후자의 경우 같았다· 팔이 잘리고 마혈이 제압당하면서 내부의 조화가 깨져 독기가 그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릇된 방법으로 쌓은 힘은 결국은 주인마저 해하게 되는 법· 사냥꾼 역시 그와 같은 수순을 밟고 있었다·
사냥꾼이 진무원을 보며 웃었다·
“흐흐! 나는 이대로 가지만 당신도 지옥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크하하하!”
광기 어린 웃음을 마지막으로 사냥꾼이 절명했다·
진무원은 미간을 찌푸린 채 사냥꾼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절명하자마자 악취가 더욱 지독해졌다· 너무나 지독한 독향에 머리가 다 지끈지끈해질 정도였다· 내공이 고강한 진무원이 그렇게 느낄 정도였으니 다른 이들이라면 독향에 중독되어 사경을 헤맬 것이 분명했다·
“이 무슨?”
황철이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 역시 강호 경험이 적잖았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독인이 죽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놀란 것은 사냥꾼이 말한 내용이었다·
“그는 분명 사천성이라고 지칭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라고 했습니다·”
“아직 위험이 끝나지 않았단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자들이 얼마나 더 남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역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니 역병으로 위장해 천하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으음!”
“대체 무슨 목적일까요?”
황철의 물음에 진무원은 답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들은 콕 집어 사천성의 혼란을 원한다· 왜?’
사천성이 혼란에 빠짐으로써 가장 큰 이득을 얻는 곳은 어딜까? 생각을 해보니 답은 금세 나왔다·
‘운중천 혹은 무적세가· 지금 운중천은 밀야와의 전쟁을 수행하느라 이곳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적세가뿐인가?’
진무원이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문제는 무적세가가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느냐 하는 것이다·
‘역시 본 문이 밀야와의 전쟁에 간섭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모용율천 입장에서는 배후에 북천문이라는 위협 세력을 두고 밀야와 전쟁에 모든 것을 걸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만의 생각에 불과했다·
무적세가가 배후에 있다는 증거를 찾아내는 것은 둘째다· 우선은 사냥꾼의 동료들을 찾아내야 했다· 그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 전에·
진무원이 급히 죽은 사냥꾼의 품을 뒤졌다· 그러자 잡다한 물건 몇 가지가 나왔다· 그중에는 곱게 접힌 종이가 있었다· 종이를 펴자 수많은 선들이 어지럽게 교차하고 있는 그림이 보였다·
“아무래도 사천성을 그린 지도 같습니다·”
황철이 의견을 말했다· 진무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도를 응시했다· 지도엔 수많은 붉은 점들이 찍혀 있었다· 그중에는 달주 지역으로 짐작되는 곳에 찍힌 붉은 점도 있었다·
“이곳이 놈들의 목표 같습니다·”
황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림잡아도 붉은 점의 수는 수십 개가 넘었다· 게다가 사천성 전반에 걸쳐 널려 있었다· 북천문의 전력만으로는 이 모든 곳을 다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진무원의 표정 또한 심각해졌다· 하지만 언제까지 망설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황숙 지도를 갖고 본 문으로 돌아가십시오·”
“하지만 본 문의 전력만으로는····”
“군사께서 당문과 청성파 아미파를 호출했습니다· 지금쯤이면 그들이 모여 있을 겁니다·”
“아!”
그제야 진무원의 말을 이해한 황철이 탄성을 터뜨렸다· 워낙 다급하다 보니 잠시 그 생각을 잊고 있었다· 지금 북천문에는 사천 무림을 지탱하는 세 문파에서 파견 나온 무인들이 있었다· 그들까지 동원한다면 지도에 표시된 영역을 전부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사이 저는 지도에 표시된 가까운 곳을 둘러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금방 본 문에 다녀오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황철이 급히 경공을 펼쳐 면양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진무원은 인근에 있는 수녕(遂寧)으로 향했다· 그곳 역시 지도에 표시된 곳 중의 하나였다·
달주 지역에 역병이 돌면서 성도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사람들은 외출을 삼갔고 거리 곳곳에 관병들이 배치되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역병이 생길 것을 대비하는 것이다·
거리는 한산했고 객잔에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마치 성도 전체가 생기를 잃은 것 같았다· 그것은 성도에 자리를 잡고 있는 당문도 마찬가지였다·
역병이 발생했다는 소식에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당문의 전력 중 상당수가 북천문으로 빠져나갔다· 당문에 남은 인원들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태에 대비해 최대한의 여러 가지 약초를 확보하기 위해 애를 썼다·
북천문이 있는 면양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종적을 감춰 오직 스산한 분위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멀리 북천문이 보이는 북명로의 객잔 이 층에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대춧빛 얼굴과 멋스럽게 기른 수염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는 북천문을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남자의 허리에는 보기에도 위압스러운 대도가 걸려 있었다· 도갑의 표면에는 승천하는 듯한 화룡이 양각되어 기품을 더하고 있었다·
그때 객잔의 이 층으로 호리호리한 체형의 젊은 남자가 올라왔다· 턱선은 날카롭고 눈빛은 차가웠다· 그 때문에 유독 더 냉철하게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곧장 화룡대도를 찬 남자에게 다가왔다·
“그가 움직였습니다·”
“예상대로인가?”
“이대로라면 내일 오전 중에 수녕에 도착할 겁니다·”
젊은 남자의 대답에 중년 남자가 눈을 빛냈다· 화염처럼 강렬한 그의 눈빛에 젊은 남자가 움찔했을 정도였다·
‘역시 전주님이시구나· 그동안 성취가 더 높아지신 것 같으니·’
중년 남자의 이름은 화중경이었다· 화중경은 젊은 남자가 알고 있는 가장 강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움직이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화중경이 움직였다는 사실 자체가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았다·
젊은 남자는 화중경의 수하인 임호열이었다· 임호열은 화중경이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젊은 무인 중 한 명이었다·
화중경의 부재 시 수하들을 이끄는 것도 그의 책임이었다· 그만큼 화중경은 임호열을 깊이 신뢰하고 있었다·
화중경은 잠시 생각에 잠겼고 임호열은 그의 침묵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정적이 잠시 동안 객잔을 지배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다음 마침내 화중경이 입을 열었다·
“수녕은 포기한다·”
“예?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종이 목숨을 잃겠지·”
화중경의 대답에 임호열이 입을 다물었다· 지금 수녕에 파견 나가 있는 염우종은 그와 친한 사이였다· 사적으로는 무척이나 아끼는 동생이었다· 화중경은 그런 동생의 생사를 이 자리에서 결정한 것이다·
“대어를 잡기 위해선 미끼가 필요한 법· 우종이를 희생한다·”
“알겠습니다·”
화중경의 결정이었다· 임호열은 두말하지 않고 그의 뜻을 받아들였다· 화중경의 말이 이어졌다·
“자양(資陽)으로 그를 끌어들인다· 그들에게 연락해서 준비하라고 해·”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겠습니다·”
“그사이 우리는 빈집을 방문한다·”
“알겠습니다·”
“수많은 이의 희생을 담보로 치르는 작전이다· 결코 실패해선 안 될 것이다·”
북천문을 바라보는 화중경의 눈에 불길이 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