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화 : 8장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災殃)이 세상을 휩쓸다 (4)
마을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마을 주민의 수는 총 사백 명 그중 백여 명이 역병에 걸려 생사를 헤매고 있었다· 보통 사 인이 한 가구인 것을 감안하면 거의 전 가구에 역병에 걸린 환자가 있다는 뜻이다·
역병 발생 초기에 촌장이나 유지들이 환자를 격리시켰다면 그나마 피해가 적었을 텐데 아무런 조치 없이 방치되는 바람에 피해만 커졌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촌장이나 유지들뿐 아니라 마을을 빠져나간 사람들도 다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 중 누가 역병에 걸렸을지 알 수 없었다· 만일 역병이 걸린 자가 있다면 그야말로 재앙이 시작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진무원이 곽문정을 불렀다·
“문정아 너는 후발대가 오는 대로 이곳에서 빠져나간 마을 사람들을 추적해서 역병의 발병 여부를 파악하거라·”
“알겠어요·”
곽문정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그 역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느끼고 있었다·
차라리 전장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는 차라리 깔끔하게 죽을 수 있었으니까· 역병에 걸려 신음하는 사람들은 지독한 고통과 발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곳이 곧 지옥이었다·
그 순간에도 당기문은 환자를 잡고 진맥을 하고 있었다· 환자의 맥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미약했다·
이제 이십 대 초반에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자였다· 역병에 걸리기 전에는 쇳덩이라도 씹어 먹을 듯한 소화력과 왕성한 체력을 가졌을 남자가 다 죽어가고 있었다·
“제 제발 살려주십시오 의원님·”
남자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애원을 했다·
“조금만 참게· 내 어떻게든 반드시 살려낼 터이니·”
“의 의원님· 커헉!”
남자가 갑자기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그가 토해낸 피가 당기문의 가슴을 온통 붉게 물들였다· 남자는 당기문이 미처 어떻게 손쓸 틈도 없이 몸을 바들바들 떨다가 그대로 눈을 까뒤집고 절명했다·
“이럴 수가!”
남자의 시신을 품에 안은 채 당기문이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는 자신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마치 자신을 원망하는 것 같았다·
당기문은 떨리는 손으로 겨우 그의 눈을 감겨줬다· 평소 같으면 환자를 구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자책하련만 그에겐 그럴 만한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숙부님 이분도 위급해요·”
당미려의 다급한 음성이 당기문의 정신을 일깨웠다· 당기문은 급히 남자의 시신을 내려놓고 당미려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당미려는 젊은 여인에게 침술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인의 안색은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었다· 간신히 숨을 몰아쉬는 것이 꼭 뭍에 올라온 잉어처럼 위태해 보였다·
당미려는 어떻게든 여인을 살리고자 필사적으로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커다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조금만 힘내요· 제발····”
당기문까지 합세했지만 여인의 상태는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여인도 남자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흐윽! 흐으윽!”
결국 당미려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고운 얼굴이 망가지고 두 눈이 퉁퉁 부었지만 그녀의 울음은 끝날 줄 몰랐다· 당기문이 그런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하지만 그 역시 마음이 착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을에 들어온 지 겨우 반 시진도 안되었는데 벌써 두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뿐만 아니라 몇 명의 상태가 눈에 띄게 악화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치료법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들이 살 확률은 거의 없어 보였다· 그야말로 무서울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고 있었다·
독으로 사람을 살린다는 기치 아래 수많은 이들을 진맥해 온 당기문이었지만 난생처음 경험하는 역병 앞에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빌어먹을!”
당기문은 무기력한 자신을 저주했다·
그의 눈앞에서 순식간에 십여 명이 더 죽었다· 그사이 그가 한 일이라곤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신경을 차단해 주는 일밖에 없었다·
진무원이 다가왔다·
“어떻습니까?”
당기문은 아무런 말 없이 고개만 저었다· 극심한 무기력증에 대답할 힘도 없는 것이다· 진무원이 그런 당기문을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부쩍 지친 그의 모습에 잠시라도 쉬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이가 죽어가고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당기문은 족히 십 년은 늙어 보였다· 그만큼 심력을 많이 소모했다는 뜻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겨우 그가 입을 열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무기력해 보긴 처음이네· 사람의 생명이 이렇게 덧없다니·”
북천문의 문주인 진무원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동생 같은 진무원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만큼 짧은 시간 동안 심신이 피폐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보통의 역병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내 평생 이렇게 상태가 빨리 악화되는 역병은 처음일세· 보통의 역병은 아무리 전염성이 강해도 악화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거든· 이건 역병이라기보다는 독에 당한 것처럼····”
순간 당기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역병이라고 생각하면 말이 되지 않는 증상이었지만 독이라고 생각하면 대부분이 들어맞는다· 말이 되지 않는 것은 바로 전염성뿐이다·
당기문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환자에게 달려갔다· 그런 당기문의 모습에서 진무원은 그가 무언가 실마리를 찾았다는 것을 알았다·
당기문은 환자의 몸에 은침을 꽂았다가 뺐다· 독에 중독되었으면 은침이 검게 변색했어야 하지만 멀쩡했다· 하지만 당기문은 실망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은침을 속일 수 있는 독이 얼마든지 존재했다· 당기문 자신만 하더라도 그런 독을 수십여 가지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독이 더 있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당기문은 봇짐을 뒤져 몇 가지 약재를 꺼내 들었다· 그는 급히 약재 중 하나를 환자에게 먹였다· 하지만 환자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어만 갔다·
“제기랄!”
당기문은 환자의 상태를 조금이라도 호전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그는 상심하지 않고 다른 환자를 향해 달려갔다·
또다시 약재를 복용시키고 그의 상태를 살폈다· 하지만 이번에도 환자는 피를 토하며 죽었다· 그사이 정신을 차린 당미려가 당기문을 도왔다·
한 명이라도 살리고자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모습이 진무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없었다· 그중 하나가 아직 전염되지 않은 마을 주민들을 격리시키는 것이었다· 환자들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주민들을 애원 반 협박 반 섞어가면서 겨우 격리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염자가 또 나왔다·
“어찌 이럴 수가!”
황철은 눈앞의 참상에서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당기문을 따라다니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렇게 초조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을 때였다·
“문주!”
당기문이 다급한 목소리로 진무원을 불렀다·
진무원은 급히 당기문에게 달려갔다·
“무슨 일입니까?”
“이것 보게·”
당기문이 눈앞에 있는 환자를 가리켰다· 환자는 입에 피거품을 문 채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진무원의 눈에는 이전의 환자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기문이 자신을 부른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환자의 입가를 보게·”
“피거품 말입니까?”
“그래!”
진무원이 안력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피거품 주위에 은은하게 빛나는 미세한 가루가 보였다· 당기문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절대 알아차리지 못했을 만큼 흔적이 거의 없었다·
“이건?”
“광물 독의 흔적이네·”
“누군가 하독을 했다는 말입니까?”
“분명하네·”
당기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일반적인 의원들은 백날 들여다봐야 독의 흔적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 정도로 광물 독은 은밀했다· 이 정도라면 당문에서도 알아내기 힘들 정도였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이 독에 중독된 것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당기문도 의심을 가지고 살피고 또 살펴봤기에 겨우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었다·
진무원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단순한 역병이라면 그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제한되지만 누군가 목적을 갖고 사람들을 중독시켰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무슨 독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네· 하지만 광물 독에 의한 중독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분명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걸세·”
“음!”
“문주 광물 독은 인간이 하독해야 하는 것이라네· 분명 이 마을 어딘가에 독의 근원이 있을 거야· 그것을 찾아내 제거해야 하네·”
“알겠습니다·”
진무원은 대답과 함께 황철 곽문정과 더불어 마을을 샅샅이 수색했다· 그들이 광물 독을 찾아낸 것은 반나절이 지날 무렵이었다·
“이 우물에 이런 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황철이 우물에서 건진 검은 돌을 모두의 앞에 내놨다· 어른 주먹만 한 검은 돌은 지독한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검은 돌에서 흘러나온 독기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상상을 초월하는 독기에 황철과 곽문정은 내공을 끌어 올려 저항해야 했다·
진무원이 당기문에게 물었다·
“무슨 독물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당장은 알 수 없네· 하지만 계속해서 연구하다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반드시·”
“알겠습니다· 그럼 당주님은 독물의 정체를 파악하고 사람들을 해독하는 데 열중하십시오·”
“문주는?”
“분명 독물을 우물에 하독한 자가 있을 겁니다· 그를 잡아서 배후를 캐내야 합니다·”
“알겠네·”
진무원은 아직 발병하지 않은 마을 사람들에게 혹시 수상한 자가 마을을 방문하지 않았는지 물어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억을 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어린아이 하나가 그런 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분명 사냥꾼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활이 보이지 않아 똑똑히 기억해요· 그때도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확실하냐?”
“그때 제가 근처에서 놀고 있었는데 몇 번이나 우물가에 서성이는 것을 봤어요·”
“그의 인상착의를 기억하느냐?”
“예!”
어린아이는 사냥꾼의 인상을 자세히 묘사했다·
사냥꾼은 잠시 이곳에서 머물다가 다음 날 서쪽으로 출발했다고 했다· 진무원과 당기문 황철 등의 표정이 굳었다·
서쪽이라면 사천성 안쪽을 말함이었다· 북천문이 있는 면양 당문이 있는 성도 아미파가 있는 아미산 청성파가 있는 청성산 모두 그쪽에 있었다·
진무원이 급히 곽문정을 불렀다·
“문정이 너는 활독당이 올 때까지 이곳에 남아 당주님을 지켜라· 그리고 활독당이 도착하는 대로 북천문으로 돌아가 군사에게 이 사실을 전하거라·”
“알겠어요·”
“황숙은 저와 함께 놈을 추적합니다·”
“예 문주님!”
황철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 그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북천문에 몸을 담은 이후 가장 큰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진무원은 황철과 함께 사냥꾼 추적에 나섰다·
사냥꾼의 흔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독에 중독된 마을을 찾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두 개의 마을이 사냥꾼이 하독한 광물 독에 당했다· 사냥꾼은 이번에도 우물에 하독했다· 다행히도 진무원과 황철이 빨리 광물 독을 발견해 사상자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민심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일련의 사태를 통해 진무원은 하독하는 이가 최소 두 명 이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진 두 마을이 거의 동시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두 명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다· 누군가 조직적으로 사천성에 공포를 조성하고 있다·’
진무원은 하루 밤낮을 꼬박 달려 삼합(三合)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면양과 성도의 중간에 있는 현으로 사천성 내에서도 제법 큰 축에 속하는 도시였다· 강과 수로가 면양과 성도에 연결되어 있는 중간 거점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독물이 풀린다면 달주에 비할 수 없는 재앙이 일어난다·
‘저자?’
문득 진무원의 눈이 빛났다·
삼합 초입에 사냥꾼 복장을 한 사내가 보였다· 그의 인상은 소년이 말해준 것과 일치했다· 진무원은 본능적으로 그가 자신이 찾는 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때 사냥꾼이 고개를 돌렸다가 진무원과 시선이 마주쳤다· 잠시 흠칫하던 그가 이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놈입니다·”
진무원이 추적을 개시했다· 황철이 그 뒤를 따랐다·
사냥꾼이 향하는 곳은 삼합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개천이 있는 방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