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화 : 8장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災殃)이 세상을 휩쓸다 (3)
진무원과 은한설의 혼인은 몇몇 사람만이 참여한 가운데 은밀히 치러졌다· 황철과 소무상은 잠시 폐관을 깨고 나와 두 사람의 혼인을 축하했다·
“이 황철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전 문주님도 저세상에서 좋아하실 겁니다·”
특히 황철은 기쁨의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덩실덩실 춤을 출 정도였다·
“문주 축하하네·”
“두 사람의 혼인을 진심을 축하하네·”
경무생과 능군휘가 앞을 다퉈 축하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특히 경무생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북천문의 전력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배신자가 되어야 했다· 물론 진관호의 부탁을 받고 배신자가 된 것이긴 했지만 북천문의 몰락과 진관호의 죽음은 그에게 무거운 멍에로 남아 있었다·
진무원의 혼인을 보니 이제야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경무생은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황철과 술잔을 나눴다·
하진월이나 당기문도 제 일처럼 두 사람의 혼인을 기뻐했다· 유일하게 우울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당미려였다·
당기문이 그런 당미려를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당미려가 홀로 진무원을 흠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역시 될 수 있으면 그녀의 사랑이 이뤄지길 바랐지만 진무원의 선택은 은한설이었다·
진무원의 마음속에는 오직 은한설 한 명만이 존재할 뿐이어서 그의 조카가 끼어들 여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당미려도 그런 사실을 깨닫고 조금씩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당미려도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마음을 완전히 정리했는지 진무원의 혼인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혼인 직후 은한설은 진무원의 거처로 들어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정식으로 부부가 되어 같이 생활을 했다·
꿈결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진무원과 은한설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두 사람은 밖에 나오지 않고 거처에만 틀어박혀 사랑을 나눴다·
처음 만남 이후 십삼 년이 흘렀다· 그 긴 시간 동안 단 하루도 서로를 잊지 않았던 두 사람의 사랑은 그만큼 격렬했다·
그렇게 꿈결 같은 시간이 흘러갔고 두 사람이 다시 북천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혼인한 지 거의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동안 세상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담수천의 위상이었다· 그전에도 창천무제라는 별호로 천하를 위진시켰던 담수천이었다·
운중천은 담수천을 영입했음을 천하에 공표했다· 일반적인 무인이 아니라 오무존과 동등한 위치로 말이다·
운중천의 발표는 천하에 큰 충격을 던졌다· 수십 년 동안 아홉 하늘로 대변되어 온 강호의 지배층은 결코 타인의 도전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이 담수천을 자신들과 동등한 위치임을 인정하고 같은 자리에 올린 것은 그야말로 일대 사건이었다· 아울러 창천문의 위상 또한 하늘이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담수천까지 영입한 운중천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들은 밀야를 향한 총공세를 펼쳤다· 이전에는 아껴두었던 전력까지 모조리 동원해서 밀야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밀야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밀야도 숨겨두었던 전력을 총동원했고 무엇보다 야주인 등유명이 직접 나서서 전투를 지휘했다· 그 때문에 전선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별다른 변수가 없는 이상 운중천과 밀야가 가을까지 승부를 내지 못하고 희생만 키워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변수는 생각보다 빠르게 발생했다·
하늘이 인간의 전쟁을 응징이라도 하듯이 갑자기 중원 남부에 역병이 돌기 시작했다· 운남성에서 발생한 역병은 수천 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점창파를 비롯한 수많은 이가 역병의 확산을 막으려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역병은 잡힐 줄 모르고 중원 남부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운남성 지척에 있는 귀주성이 가장 먼저 그 피해자가 되었다·
귀주성에 터전을 두고 있는 관과 문파들은 역병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일단은 의원이 모자랐고 의원들 또한 역병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마을 하나가 하루아침에 몰살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운남성과 귀주성에 있는 문파들은 운중천에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밀야와의 전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운중천은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거절했다·
역병이 도는 것은 아직까지 중원 남부뿐이었다· 한참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산서성 섬서성 등과는 수천 리 떨어진 곳이었기에 직접적인 위협을 느끼지 못한 이유도 있었고 무엇보다 운중천에도 역병을 치료할 만한 의원이나 전문적인 인원이 없었다·
운중천이 있는 호북성을 비롯한 북부의 문파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했지만 운남성과 광서성 등 남부에 있는 문파들은 그야말로 초토화가 되고 있었다·
전쟁에 역병까지 더해지면서 중원은 그야말로 극심한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그야말로 인세의 지옥이 펼쳐진 듯했다·
역병의 발발 소식은 북천문에도 전해졌다· 이 때문에 북천문에서 대책을 마련하고자 회의를 소집했다· 북천문의 수뇌부가 급히 대전으로 모여들었다·
“음!”
회의에 소집된 수뇌부들의 얼굴에는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역병의 발발은 결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역병이 발발하면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십만 명의 생목숨이 사라진다·
운남성에서 벌써 수천 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수만 명이 아니라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을 것이 분명했다·
모두가 모여 회의를 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 대전의 문을 벌컥 열고 뛰어들어 왔다· 땀으로 범벅이 된 오십 대 초중반의 남자는 바로 북천문의 총관인 상대경이었다·
“크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상 총관?”
상대경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경무생이 급히 물었다·
“여 역병이····”
“그 때문에 회의를 하지 않는가?”
“그게 아니라 사천성에 역병이 발발했습니다·”
“무슨?”
상대경의 말은 대전 안에 폭풍을 불러왔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의아해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이내 하얗게 질렸다·
“그게 무슨 말인가? 사천성에 역병이 발발하다니·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달주(達州)의 한 마을에서 역병이 발생했다는 급보입니다·”
“무엇이?”
하진월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달주라면 사천성 초입 지역에 위치한 조그만 현이었다· 사천성의 관문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하루에도 수많은 이가 지나가는 곳이었다· 이곳이 역병에 잠식당하면 사천성 전체로 퍼져 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게 정말입니까?”
“예! 그쪽에 파견 나갔던 제자가 알려온 소식입니다· 벌써 수십 명이 역병에 쓰러졌다고 합니다·”
“이럴 수가!”
뜻밖의 사태에 하진월조차 잠시 말문이 막혔는지 눈만 꿈뻑거렸다· 그 순간 당기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주 내가 먼저 미려와 함께 갈 테니 활독당의 아이들을 보내주게· 역병은 초기 대처가 중요하니 내가 먼저 가서 조치를 하겠네·”
“일단 먼저 준비를 하십시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알겠네·”
진무원의 허락이 떨어지자 당기문이 급히 밖으로 달려 나갔다· 대전 안에 남은 사람들의 얼굴에도 다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달주에서 정말 역병이 발생했다면 성도는 물론이고 이곳 면양도 그렇게 안전하지 않았다·
역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그나마 내공이 고강한 무인이 쉽게 걸리지 않는다 뿐 그 외 어떤 사람도 안전하다 장담할 수 없었다·
수많은 이가 죽을 것이다· 그 어떤 지옥도가 펼쳐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진무원이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북천문은 비상 체제로 돌아갑니다· 경 장로님과 능 장로님은 활독당을 이끌고 달주로 출발하시고 군사께서는 다른 문파들에게 연락해서 역병의 확산을 막을 방법을 강구해 주십시오·”
“문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하진월이 힘차게 대답했다·
진무원의 시선이 소무상과 마도광을 향했다·
“검주와 무주께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병력을 점검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는 두 사람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히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진무원이 황철을 바라봤다·
“봉공께서는 저와 함께 당 당주님을 호위해 달주로 갑니다· 그곳에서부터 역병이 사천성에 유입된 경로를 추적합니다·”
“문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지금은 비상시국입니다· 모두 만전을 기해주십시오·”
“존명!”
대전 안에 모인 수뇌부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비장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역병의 확산을 막지 못하면 공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대전을 나온 수뇌부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진무원도 급히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무원·”
거처에 홀로 있던 은한설이 붉게 상기된 진무원의 얼굴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진무원은 은한설에게 간단히 현재의 상황을 알려줬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은한설의 표정이 진무원과 비슷하게 변했다·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그녀였지만 역병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잘 알고 있었다·
“하필 이 시기에 역병이라니·”
보통 역병은 날이 더울 때 많이 발생한다· 겨울이 지나 날이 따뜻해지긴 했지만 아직은 역병이 발발할 시기가 아니었다· 물론 사천성보다 상대적으로 따뜻한 운남성에서 시작되었으니 이상할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른 감이 없지 않았다·
“나도 같이 갈게·”
“아니 너는 북천문에 있어줘·”
“왜?”
“누군가는 남아서 북천문을 지켜줘야 하니까· 그 사람이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인 너였으면 좋겠어·”
“알았어·”
진무원의 대답에 은한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들은 부부였다· 진무원이 바깥일을 처리한다면 북천문 내의 일은 자신이 처리하는 것이 옳았다· 대신 은한설은 진무원의 짐을 꼼꼼히 쌌다·
진무원은 은한설이 챙겨준 짐을 등에 짊어지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이미 황철과 곽문정 그리고 당기문과 당미려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급히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는지 당미려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문주님·”
“출발하시죠·”
“알겠습니다·”
다섯 사람은 말에 올라타 일제히 출발했다·
평소라면 당기문 숙질의 안전을 위해서 호위할 병력을 더 대동했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최대한 빨리 달주에 들어가서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쉬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말을 달렸다·
꼬박 이틀을 말을 달린 끝에 그들은 달주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외부로 통하는 관도는 탈출을 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체념 섞인 표정으로 터벅터벅 길을 걷는 사람들· 소가 끄는 수레에 짐을 가득 실은 채 길을 걷는 사람도 있었고 직접 산더미 같은 짐을 등에 짊어지고 움직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얼굴에 하나같이 공포의 빛이 짙게 어려 있다는 것이다·
당기문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역병을 피해 터전을 버리고 달아나는구나·”
살기 위해 정든 터전을 버려야 하는 그들의 마음이 오죽할까? 당기문은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진무원 또한 안타까운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느끼는 공포가 생생하게 전해졌다· 할 수만 있다면 저들을 모두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단은 할 수 있는 것만 한다·’
진무원은 이를 악물었다·
당장 그가 저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있다면 최대한 빨리 역병을 퇴치하는 것뿐이다·
그들은 탈출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역병이 발생한 마을로 향했다· 마을의 초입에 도착한 순간 진무원과 일행은 너무나 처참한 광경에 욕지기를 할 뻔했다·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공기를 타고 후각을 자극하는 역한 냄새와 매캐한 초연·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진 채 신음을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두 눈은 초점을 잃었고 얼굴에는 혈색이 사라지고 대신 검은 반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역병의 증상임을 알 수 있었다·
당기문과 당미려가 급히 말에서 내려 환자들에게 달려갔다· 진무원과 황철 등도 말에서 내려 주위를 살폈다·
진무원이 그나마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촌장은 어디 있습니까?”
그나마 마을 사정에 가장 정통해 있는 사람이 촌장이었다· 일단 촌장을 만나 몇 명이나 역병에 전염되었는지 파악해야 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없습니다·”
“없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초 촌장과 마을 유지들은 역병이 발생하자마자 제일 먼저 마을을 떠났습니다·”
진무원의 눈빛이 깊이 가라앉았다·
마을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가장 먼저 마을을 버리고 도망갔다· 남은 이들은 힘이 없는 자들뿐·
이 마을은 버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