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화 : 8장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災殃)이 세상을 휩쓸다 (1)
“무슨 짓이야?”
모용진이 잡아먹을 듯한 시선으로 진무원을 노려보았다· 진무원이 그의 경천수를 막았기 때문이다·
“이곳은 북천문입니다·”
“그래서?”
“북천문 내에서 타인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진무원의 대답에 모용진의 눈 꼬리가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놈은 내 수하야· 놈을 어떻게 처리하든 네가 알 바가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북천문입니다· 예의를 지켜주십시오·”
진무원의 똑같은 대답에 모용진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무적세가의 이공자로 태어나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제지를 당한 적이 없는 모용진이었다· 누군가 그에게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은 죽여달라는 말과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동자가 홱 돌아갔다·
“오냐! 너부터 죽여주마·”
모용진의 허리에 꽂혀 있던 검이 벼락처럼 뽑혀 나왔다·
콰르릉!
검을 휘두르는데 천둥소리가 났다· 무적세가의 비전 검공 중 하나인 단혼절광검(斷魂絶光劍)을 펼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무적세가의 십대절공에 들어갈 만큼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진 검공이 바로 단혼절광검이었다·
무시무시한 기파가 폭풍처럼 진무원을 덮쳐 왔다·
문득 진무원이 흘깃 뒤를 돌아봤다· 소무상이 여전히 힘겹게 서 있었다· 한 걸음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 보였지만 그 눈빛만큼은 형형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진무원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주위에 나뒹굴던 나뭇가지 하나가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휘류류!
손에 들린 나뭇가지가 부드럽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해일처럼 덮쳐 오는 기파에 비하면 너무나 미약하게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 미약한 움직임이 소무상의 눈을 치뜨게 만들었다·
“아!”
완만한 각도로 부드럽게 휘어지는 검의 궤적이 이상하게 눈에 들어왔다·
쉬가악!
나뭇가지에서 일어난 산들바람이 폭풍을 가르고 있었다· 그의 상식으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진무원은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었다·
단순하지만 선명하고 완만하지만 섬뜩했다·
진무원이 보여준 간단한 일수는 그의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깨달음을 얻어 넓어진 의식 세계가 진무원의 한 수로 인해 더욱 확장되고 있었다·
“컥!”
모용진이 어깨를 부여잡은 채 뒤로 물러났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진무원의 평범한 검식에 어깨를 얻어맞은 것이다· 상처는 크지 않았지만 어깨의 거골혈을 강타당해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모용진의 얼굴에 불신의 빛이 떠올랐다· 진무원이 무슨 수로 자신을 공격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 이 녀석!”
“계속하시겠습니까?”
진무원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순간 모용진은 전신의 피가 싸늘히 식는 것을 느꼈다· 냉수를 확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흥분이 가라앉고 이성이 돌아왔다·
분노에 눈이 멀어 제대로 판단을 하지 않고 난동을 부렸다· 그렇다고 해도 그가 펼친 단혼절광검의 위력은 결코 약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상대는 평범한 초식으로 단박에 파훼했다·
상대는 자신보다 약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강하다·
이제야 그가 왜 북검이라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왜 조부와 형이 그토록 그를 견제하는지도·
굴욕감으로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하지만 그 이상 발작하지 않았다· 모용진으로서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는 셈이었다·
진무원은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바닥에 길게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허점투성이였다· 지금이라도 공격하면 최소 십여 군데 이상 상처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북검 그 자체로 이미 강호의 정점에 올라서 있는 완성된 무인이었다· 지금 보이는 허점도 의도적으로 내보이는 것일 터였다· 분하지만 지금 자신의 힘으로서는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짝!
모용진이 갑자기 양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때렸다· 순식간에 뺨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입가로 피가 흘러내렸다·
“오늘은 물러가겠다· 하나 다음에 올 때는 이렇게 허무하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모용진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었다·
굴욕감에 그의 어깨에 잔경련이 일어났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그는 포악하지만 미련하지는 않았다· 이 이상 객기에 난동을 부리다가는 더한 추태만 보일 수 있단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분노로 들끓던 모용진의 눈동자에 냉정함이 깃들었다· 분노는 여전하지만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무인으로 한 걸음 발전한 셈이었다·
소무상이 깨달음을 얻어 진일보한 것처럼 모용진 역시 한 사람의 무인으로 성장한 셈이다· 무적세가를 적으로 둔 북천문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모용진이 연무월에게 말했다·
“가자!”
“예 주군!”
모용진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연무월이 비틀거리며 따랐다·
진무원은 그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 하진월이 곁으로 다가왔다·
“이로서 골치 아픈 대상이 하나 더 늘었군요· 차라리 죽이지 그랬습니까? 그는 분명 커다란 위험 요소가 될 겁니다·”
“지금이라도 쫓아가 죽일까요?”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랬다가는 저쪽에 명분만 줄 겁니다· 그게 모용율천이 원하는 바일 겁니다· 잘 참으셨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냥 손해를 본 것만은 아닐 겁니다·”
진무원의 시선이 소무상을 향했다·
소무상은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 싸웠단 사실도 잊고 그는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있었다· 그런 그의 주위에서는 심상치 않은 기류가 느껴졌다·
하진월이 빙그레 웃었다·
“확실히 손해를 본 것 같지는 않군요· 아니 오히려 이득을 봤다고 해야 하나?”
황철에 이어 소무상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들의 성장이 하진월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었다·
북천문을 빠져나온 모용진이 문득 뒤를 돌아봤다· 그런 그의 눈에는 은은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북천문··· 나는 물러가지만 이것이 끝이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자신의 역할은 북천문의 시야를 잠시 가리는 것· 그리고 그는 훌륭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천독전에게 움직이라 전해·”
“존명!”
대답을 하는 연무월의 음성이 자신도 모르게 떨려 나왔다· ]
이제 자신도 짐승의 세계에 발을 디딘 셈이다· 두 번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 점이 못내 슬펐지만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 ☆
숲길을 가로지르는 마차 한 대가 있었다· 그 주위로 범상치 않아 보이는 무인 십여 명이 포진해 있었다·
마차의 지붕 위에 창천(蒼天)이란 글자가 쓰인 깃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섬서성에 사는 사람들은 그 깃발이 창천문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창천문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이 호위하는 마차에는 창천문에서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바로 담수천과 서문혜령이었다·
그들은 운중천의 부름을 받고 호북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운중천에서는 창천문의 출범을 공식적으로 허용한 대신 두 사람이 방문해 주길 원했다·
운중천에서 창천문의 출범을 정식으로 인정해 주었기에 두 사람은 안 갈 수가 없었다· 담수천은 이제 자리를 잡기 시작한 창천문을 비우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서문혜령의 생각은 달랐다·
세상엔 절차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요식행위라는 것도 있었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이었지만 그래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 운중천으로 가는 행사가 그랬다· 운중천과 창천문의 관계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가야 했다·
서문혜령은 이번 기회에 서문세가에도 들렀다 올 생각이었다· 조부인 서문화가 죽은 이후 서문세가는 아직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 서문종천이 나름 잘 이끌어가고 있었지만 서문화가 지키고 서 있었을 때에 비하면 많이 불안한 것이 사실이었다·
비록 담수천을 따르고 있었지만 그녀의 근원은 서문세가였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다·
혼자 생각에 잠긴 그녀를 보며 담수천이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눈앞에서 조부 서문화를 잃은 후 서문혜령은 많이 어두워졌다· 웃음을 잃었고 혼자만의 세계에 침잠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담수천은 그 모든 것이 자신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자신이 자리만 지키고 있었어도 서문화가 그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담수천의 시선을 느꼈는지 서문혜령이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나는 괜찮아요·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옛 모습을 찾을 거예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물론이오·”
담수천이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모습이 서문혜령을 든든하게 만들었다·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담수천은 단 한 번도 변하지 않고 든든한 모습을 보였다·
그 한결같음이 좋았다· 그가 있기에 지옥같이 힘든 시간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그나저나 운중천에서는 무엇 때문에 나와 당신을 불러들인 거지?”
“글쎄요· 그들의 생각을 제가 어찌 정확히 알 수 있을까요? 하나 몇 가지 추측은 할 수 있어요·”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군·”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진무원 때문이에요· 어쨌거나 그는 강호 최고의 신성· 이미 오무존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절대의 고수· 그 때문에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고 있죠· 반면 운중천은 고루하고 낡았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어요· 운중천에서 최근 많은 무인이 이탈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예요· 그래서 운중천은 그런 부정적인 인상을 희석하고 싶어 하죠·”
“그래서 나를 선택했다는 이야기군·”
“맞아요· 진무원의 대항마로 당신을 선택해 부각시키려는 의도예요·”
“흠!”
담수천은 놀라지 않았다· 그 역시 이미 짐작하고 있던 바이기 때문이다·
서문혜령의 말이 이어졌다·
“두 번째는 밀야와 북천문을 상대하기 위함이에요· 예전에는 밀야 한곳에만 전력을 집중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북천문이라는 복병마저 상대해야 해요· 당연히 전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어요·”
“그 역시 진무원 때문이군·”
“맞아요· 세부적인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근본을 파고들면 항상 그가 나와요·”
서문혜령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직도 진무원을 언급할 때면 피가 거꾸로 치솟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그에 대한 분노는 전혀 희석될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나의 불공지대천 원수· 반드시 그의 뼈를 갈아 마실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웃었다· 아니 웃으려 애를 썼다· 분노는 오래도록 숙성시킬수록 무서운 법이니까·
“세 번째는 창천문을 이용하기 위해서일 거예요· 그 때문에 창천문을 정식으로 인정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어떻게 이용한다는 거지?”
“아까도 말했다시피 운중천은 부정적인 인상이 강해요· 그러니까 그들이 어떤 일을 벌이든 간에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마련이에요· 창천문은 그런 인상을 희석시키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어요· 어쨌거나 최전선에서 밀야의 침공을 막아내는 것이 바로 창천문이니까요· 그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창천문이 옛 북천문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옛 북천문의 대역을 맡아달라는 뜻이군·”
“맞아요·”
“흠!”
담수천이 코끝을 찡그렸다·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된다는 기분이 썩 좋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서문혜령이 덧붙였다·
“어쨌거나 우리에게도 크게 나쁜 일은 아닐 거예요· 이를 잘만 이용하면 운중천의 많은 지원을 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하나둘씩 이쪽으로 빼앗아 오다 보면 언젠가는 운중천 전체를 당신 발아래 둘 수 있을 거예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인내와 시간뿐이에요·”
“알겠소·”
“시간은 우리의 편이에요· 그 사실만 잊지 마세요·”
담수천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정적으로는 서문혜령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납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담수천은 서문혜령을 얻은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얻었기에 더 높은 곳을 보고 노력할 수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두 사람을 태운 마차는 호북성 한천으로 접어들었다· 저 멀리 거대한 운중천이 보였다· 운중천은 변함없이 엄청난 위용으로 그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미리 연락을 받은 듯 한천에 들어서자마자 운중천에서 백여 명의 무인들이 나와 그들을 호위했다· 그야말로 극진한 대접이었다·
운중천의 정문을 지나자 수많은 무인이 도열해 있었다· 그들이 일제히 외쳤다·
“담 문주님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운중천이 외부의 무인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접이었다· 그렇게 담수천은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운중천에 입성했다·
담수천과 서문혜령이 마차에서 내렸다·
그때 누군가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담수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가 말했다·
“오랜만이구나·”
“아··· 버지·”
담수천의 얼굴에 서리가 내려앉았다· 그에게 냉기를 발산하게 만든 남자는 바로 담적심이었다·
부자는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격하고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