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화 : 1장 호랑이가 상처를 입으면 늑대들이 물어뜯는다 (3)
“헉헉!”
숨이 턱 끝에까지 차올랐다· 심장은 터질 것 같았고 호흡을 할 때마다 폐가 찢어질 듯한 고통을 호소했다· 그래도 곽문정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등 뒤에는 진무원이 업혀 있었다· 자신이 멈추면 진무원도 위험해진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었다·
홀로 남아 서문세가의 무인들을 막고 있을 청인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그가 무사히 빠져나오길 기도하는 수밖에·
곽문정은 필사적으로 달렸다· 하지만 그의 질주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길을 가로막고 있는 일단의 무인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살벌한 기세를 발산하는 일단의 무인들은 바로 강위산이 이끄는 기환대였다· 그들이 드디어 곽문정을 따라잡은 것이다·
“멈춰라 놈!”
후웅!
강위산이 곽문정을 향해 반월형의 도기를 날렸다·
“칫!”
곽문정은 이를 악물며 청련을 휘둘렀다· 그러자 구름 같은 검기가 일어났다·
쩌어엉!
도기와 검기가 부딪치며 후폭풍이 사방으로 몰아쳤다·
“크윽!”
곽문정과 강위산이 동시에 답답한 신음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강위산이 주춤하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난데 반해 곽문정은 오히려 대지를 박차고 앞으로 나갔다· 내상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상식을 초월하는 곽문정의 반응에 강위산의 표정에 당혹성이 떠올랐다· 곽문정의 기세에 밀린 것이다· 하지만 그에겐 수하들이 있었다·
“챠핫!”
“대주!”
촤앙!
기환대의 무인들이 양쪽에서 곽문정을 공격했다· 그들의 공격에 막힌 곽문정이 처음으로 주춤했다· 그러자 다른 무인들까지 합세해 파상 공세를 펼쳤다·
“큭!”
곽문정의 입술을 비집고 답답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내상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적들에게 포위된 것이 문제였다· 저들에게 발목을 잡히는 순간 지원군들이 도착할 것이고 포위망이 완성되면 빠져나갈 기회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전력을 다해 저들을 부숴야 한다·’
공력을 보존해 훗날을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어차피 기환대를 통과하지 못하면 그와 진무원에게 더 이상 미래는 없을 테니까·
굳은 결심과 함께 곽문정이 청련에 공력을 주입할 때였다·
“컥!”
“습격이다·”
갑자기 기환대 무인 뒤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 그들을 기습한 것이다·
뜻밖의 상황 전개에 곽문정이 눈을 크게 치떴다· 하지만 기환대를 기습한 무인들 중 익숙한 얼굴을 몇 명 발견했다·
“아!”
“여 꼬마야·”
그중 한 명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요 용 문주님?”
“오랜만이지? 흐흐!”
곽문정을 향해 씨익 웃는 남자는 바로 용무성이었다· 그가 철기문의 무인들을 이끌고 기환대를 공격한 것이다·
“철기문이 왜?”
“뭐 그 녀석에게는 빚이 있으니까·”
용무성이 만감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곽문정의 등에 업힌 진무원을 바라보았다·
“빚?”
“그렇게만 알고 있어라· 하지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그 녀석을 데리고 도망치는 것은 네 몫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도와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어서 가거라·”
“예!”
곽문정이 대답과 함께 몸을 날렸다·
기환대의 무인들이 그런 곽문정을 막으려 했지만 용무성과 채약란 등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기환대주 강위산이 용무성을 노려보며 얼굴을 붉혔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글쎄! 뭐 하는 짓 같아?”
용무성이 생글생글 웃었다· 그런 용무성의 태도에 강위산의 화가 폭발했다·
“이 사실을 가주께서 아시면 제아무리 이공자라도 큰 벌을 면치 못할 겁니다·”
“큭! 벌? 웃기는군·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면서도 그딴 소리를 하다니·”
용무성의 입술이 뒤틀렸다·
그런 용무성을 강위산이 노기가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지금은 철기문의 문주로 세상에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의 진실한 신분은 바로 무적세가의 이공자였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용무성은 무적세가를 박차고 세상 밖으로 나갔다·
홀로 세상을 떠돌면서 하나둘 세력을 결집시키더니 결국은 철기문을 만들었다· 비록 무적세가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한 전력이지만 그래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철기문의 문주가 바로 용무성이기 때문이다· 그는 모용이라는 성을 버리고 용이라는 성을 썼다· 그가 왜 그렇게 무적세가를 부인하는지 강위산은 알 수 없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보내줄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는 운중천과 무적세가에 큰 위협이 될 겁니다· 반드시 그를 제거해야 합니다·”
“뜻이 그렇다면 반드시 나를 넘어야 할 거야·”
“이공자!”
“난 더 이상 무적세가의 이공자도 아니고 그 늙은이의 자식도 아니야· 그러니까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용무성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두 눈에 흉흉한 살기가 떠올랐다· 그런 용무성의 모습에 강위산이 도를 겨눴다·
무적세가의 이공자라고 하지만 오래전에 버려진 존재였다· 용무성이 오래전 나간 후 모용율천은 단 한 번도 그를 찾지 않았다· 때문에 이제는 많은 이들이 용무성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다·
“이공자 비키시오· 그렇지 않으면····”
“않으면?”
“베겠소!”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제길!”
그래도 용무성이 비키지 않자 강위산이 공격해 왔다· 이제 이공자고 뭐고 간에 봐줄 단계는 지났다·
쉬가악!
그의 도에서 발산된 강력한 도기가 용무성을 향해 날아갔다· 순간 용무성이 등 뒤에 메고 있던 거대한 용린도를 뽑아 벼락처럼 내리꽂았다·
쿠와앙!
“크헉!”
순간 엄청난 크기의 도강이 강위산을 강타했다· 그가 뽑아냈던 도기 역시 거대한 도강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잠시 후 도강이 사라졌을 때 강위산은 더 이상 살아서 숨을 쉬는 존재가 아니었다·
“쯧! 별것도 아닌 것이·”
용무성이 혀를 차며 강위산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그사이 철기문의 무인들이 강위산의 수하들을 모조리 정리하고 그에게 다가왔다·
종리무환이 그들을 대신해 보고했다·
“문주 모두 처리했습니다·”
“수고했다· 뒤처리는 알아서 잘하거라· 괜히 그 늙은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그나저나 네 말대로 나서긴 했지만 괜히 그 늙은이를 자극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구나·”
“후후! 전혀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그분은 절대 알지 못할 테니까요· 어차피 모든 이목은 그가 끌어줄 텐데 문주까지 신경 쓰지는 못할 겁니다·”
“그래서 도와주라고 한 거냐?”
“예! 그가 최대한 오래 살아 있어야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니까요·”
“그래서 네놈 말대로 따르긴 했지만 영 껄끄러워· 차라리 도와주려면 화끈하게 도와주는 게 성미에 맞는데·”
“그러면 우리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 정도가 딱 좋습니다· 이제 죽고 사는 것은 오롯이 그의 능력과 운에 달렸습니다·”
아쉬움을 표하는 용무성에 비해 종리무환의 눈빛은 무섭게 가라앉아 있었다·
‘진무원 그자는 분명 폭풍의 핵이다· 벌써 적엽진인과 마령제를 잡아먹었고 어디까지 클지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기세를 발산하면 할수록 우리 철기문에는 불리한 것도 사실·’
종리무환은 진무원이 최대한 오래 버티길 빌었다· 그래서 그의 기세가 한풀 꺾이길 바랐다· 지금 당장은 그가 살아 있는 게 유리하기에 도움을 줬지만 언젠가는 그 역시 넘어서야 할 벽이었다·
그때 용무성이 종리무환의 어깨에 팔을 턱하니 걸쳤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무환·”
“문주!”
“어차피 도와주기로 마음먹은 것 아직 일어나지 않은 훗날의 일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어·”
“알겠습니다·”
“흐흐! 잘 생각했다· 간만에 무기 들고 지랄 발광을 떨었더니 배가 고프네· 모두 밥이나 먹으러 가자·”
“예!”
힘찬 대답과 함께 철기문의 무인들이 용무성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용무성이 슬쩍 뒤를 돌아봤다·
‘꼭 살아남아라·’
서걱!
“헉!”
날카로운 절삭음과 함께 무인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곽문정은 검신 옆면에 난 혈조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핏방울을 털어버리고 질주했다·
용무성이 기환대를 막아준 후 쉬지 않고 달렸지만 결국 저들의 추적을 완전히 떨쳐 내지 못했다· 적들은 쉬지 않고 달려들었고 곽문정은 그들을 베어 넘기며 전진했다·
벌써 몇 명을 죽였는지 몰랐다· 청련과 그의 전신은 적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용케도 진무원의 몸에는 상처 하나 생기지 않았다· 그가 필사적으로 지킨 덕분이다·
“형!”
곽문정이 문득 등에 업힌 진무원을 바라봤다·
그렇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무원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일부러 오감을 차단한 것 같았다·
곽문정이 자칫 실수라도 하는 순간 자신의 목숨마저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오감을 차단했다는 것은 그만큼 곽문정을 믿는다는 증거였다·
진무원이 자신에게 전폭적인 믿음을 보낸다면 자신 역시 그에 보답을 해야 했다·
곽문정은 후들거리는 걸음을 옮겼다·
조금만 더 가면 일차 목적지인 고릉으로 넘어가는 강이 나타난다· 일단 도강만 한다면 적들의 추적을 뿌리칠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질 것이다·
곽문정은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경공을 펼쳤다·
평상시 단전에 가득했던 내공은 이제 거의 바닥을 드러냈고 체력 또한 고갈되어 한 걸음을 옮기기가 힘이 들었다· 곽문정은 그래도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눈앞에 커다란 강이 나타났다· 고릉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소룡강(小龍江)이었다·
소룡강 백사장에는 사공 한 명이 조그만 배를 대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깁니다· 어서 오십시오·”
“당신은 누굽니까?”
곽문정이 청련을 겨누며 경계했다· 그러자 사공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흑월에서 곽 공자를 돕기 위해 파견 나왔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배에 타면 하겠습니다· 어서 타십시오· 추적대가 지척까지 접근해 왔습니다·”
“으음!”
곽문정의 얼굴에 갈등의 빛이 떠올랐다· 만일 사공의 말이 거짓이라면 스스로 범의 아가리에 걸어 들어가는 꼴이 됐다· 하지만 지금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곽문정이 배에 탔다· 하지만 경계를 풀지는 않았다·
사공은 배를 강에 띄우곤 노를 저었다· 그 직후 일단의 무인들이 뒤쪽에서 나타났다· 운중천의 추적대였다· 그들이 배에 탄 곽문정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놈이 배에 탔다·”
“어서 배를 수배하라·”
그들이 뒤늦게 배를 구하려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런 그들을 보며 사공이 입을 열었다·
“근처 이십여 리 이내에 있는 배는 모조리 부숴 버렸으니 최소 두 시진 정도는 번 셈입니다·”
“흑월에서 한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매월령 지부장이 명령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직 고마워하기엔 이릅니다· 단지 시간을 조금 번 것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저에겐 그 약간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곽문정은 눈을 감은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강을 건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운공을 해서 내공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사공은 그런 곽문정을 보며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곽문정의 대범함에 놀란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신분을 밝혔어도 그 말을 믿고 바로 운공을 할 줄은 몰랐다·
‘매 지부장이 주시하라고 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배가 강 건너편에 도착하기 직전 곽문정이 눈을 떴다· 운공을 마친 그의 안색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사공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내공을 어느 정도 회복했습니다·”
“아닙니다· 매 지부장께서 전하라 하셨습니다· 무조건 고릉 이남으로 도주하라고· 그곳에만 도착하면 사천성으로 은밀히 들어갈 방법을 마련해 놓겠다고·”
“고릉? 알겠습니다·”
곽문정의 얼굴이 혈색이 돌았다·
희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 무작정 도주하는 것이 아닌 확실한 목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쉬익!
“아악!”
갑자기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려 퍼지더니 사공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사공의 가슴에는 어느새 날카로운 비수가 박혀 있었다·
“젠장!”
곽문정이 욕설을 내뱉으며 청련을 빼 들어 전방을 경계했다·
십여 장밖에 남지 않은 백사장 위에 십여 명의 무인들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선두에 냉기를 풀풀 날리는 젊은 여인이 서 있었다·
은한설 이전 시대에 백야마녀로 불리던 여인 바로 소금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