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화 : 8장 때로는 개미구멍 하나에 벽이 무너지기도 한다 (4)
핑그르!
진무원의 단봉이 허공에서 방향을 바꿨다· 전혀 예상치 못한 궤적으로 날아오는 단봉에 목표가 된 무인이 급히 검을 들었다·
쩌엉!
“컥!”
하지만 진무원의 단봉은 검과 그의 어깨를 송두리째 박살 냈다· 무인은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진무원은 마치 늑대 무리에 뛰어든 사자 같았다· 그가 이리 날뛰고 저리 날뛸 때마다 척마대의 무인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하지만 척마대의 누구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진무원과 자신들이 양립할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진무원이 살아 있는 땅에서는 자신들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지난 삼 년 동안 심원의를 필두로 밀야와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척마대였다· 비록 개개인의 무공은 진무원보다 약할지 모르지만 그 독기만큼은 절대 뒤지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찰거머리처럼 진무원을 붙잡고 늘어졌다· 누구 한 명 뒤로 물러서지 않았기에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척마대의 상당수가 상처를 입거나 죽었고 진무원의 전신에도 상처가 늘어났다·
진무원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지 정신이 다 아득해졌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단봉을 휘둘렀다·
“죽어랏! 네놈만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여러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죽으란 말이다·”
척마대의 무인들이 독기 어린 외침을 내뱉었다·
그들은 진무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운중천과 이렇게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그랬고 망령이나 다름없는 북천문의 기치를 지키는 것도 그랬다·
진무원의 존재 때문에 자신들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그 더러운 기분은 직접 경함하지 못하면 알 수 없다·
그들을 상대하면서 진무원은 깨달았다· 척마대에 제대로 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단 사실을·
오랜 기간 밀야와의 전쟁을 수행하면서 그들은 알게 모르게 전쟁의 광기에 침식당해 있었다· 이제까지는 잘 억누르고 있었지만 진무원과의 싸움을 계기로 마성(魔性)이 폭발하고 말았다·
지금 그들의 눈빛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직접 싸우고 있는 진무원이 가장 잘 알 수 있었다·
진무원이 단봉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돌아갈 다리는 무너져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진무원이 내공을 끌어 올렸다· 순간 그의 안색이 변했다· 무리하게 내공을 끌어 올렸더니 심맥에서 지독한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애써 고통을 참으며 멸천마영검의 제삼식인 단천해(斷天海)를 펼쳤다·
슈아앙!
부챗살 같은 무형의 검기가 전방으로 퍼져 나갔다· 몇몇 이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몸을 피했지만 많은 이가 검기에 휩쓸렸다·
“컥!”
“크악!”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무기가 두 동강이 나고 허리가 잘려 나갔다· 피와 내장 조각이 후두둑 떨어졌다·
“으아아! 살려줘·”
차라리 죽은 자는 나았다· 극심한 상처에도 죽지 않은 자의 절규가 거리를 가득 채웠다· 그야말로 목불인견의 참상이 연출되었다·
“후욱!”
거리를 지옥도로 만든 당사자인 진무원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평상시라면 무리 없이 펼쳤을 단천해였다· 하지만 지금은 단천해를 펼친 것만으로도 심맥이 찢어질 듯한 고통이 느껴지고 내공이 불순해졌다· 좋지 않은 신호였다· 하지만 쉴 수도 운공을 할 수도 없었다· 아직 심원의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놈!”
심원의가 무서운 눈으로 진무원을 노려봤다·
지난 삼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키운 척마대였다· 척마대는 단순한 조직이 아니었다· 그와 담수천 서문혜령의 꿈을 이루기 위한 소중한 발판이었다·
그런 척마대가 진무원 단 한 명에 의해 거의 전멸당했다· 이제까지 품어온 꿈이 산산조각 나는 느낌이었다·
“진무원! 도대체 네놈이 뭐라고 내 앞길을 번번이 가로막는 것이냐?”
심원의가 노성을 터뜨리며 진무원을 향해 진신 절기인 홍옥마수(紅玉魔手)를 펼쳤다· 붉은빛 수강이 노을처럼 주변을 주황색으로 물들였다·
홍월중압천(紅月重壓天) 홍옥마수 최후의 초식이다· 가히 파천황의 위력을 가졌지만 고도의 깨달음을 요하기 때문에 제대로 익힌 이가 거의 없는 초식이었다· 심원의도 삼 년을 전장에서 구르다가 최근에야 깨달았다· 실전에서 펼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쿠오오!
진무원은 노을빛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엄청난 압력을 느꼈다· 어깨를 짓누르는 가공할 압력에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왔고 두 다리의 관절이 삐걱거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래도 진무원은 물러나지 않았다· 지금은 물러날 때가 아니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였다·
진무원이 단봉을 앞으로 쭉 뻗으며 눈을 감았다·
파다다닥!
막대한 압력에 단봉이 제멋대로 떨렸다· 하지만 진무원은 단봉을 놓지 않고 전방위 감각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온통 주황빛으로 물든 세상 진무원 그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보았다· 빛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단봉을 찔러 넣었다·
쑤욱!
단봉이 두부처럼 주황빛 기운 사이로 파고들었다·
심원의가 눈을 크게 치떴다·
마치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듯 진무원의 검이 그의 기운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홍월중압천의 결(決)을 파고든 것이다·
“제기랄!”
푸욱!
그 순간 진무원의 단봉이 그의 미간으로 파고들었다· 동전만 한 구멍이 뚫리며 심원의가 뒤로 나가떨어졌다· 뚫린 구멍 사이로 피와 회백색 뇌수가 터져 나왔다·
심원의가 벽에 기댄 채 진무원을 노려봤다·
“끄으으! 너··· 진무원 너는 아 악마····”
그의 고개가 모로 떨어졌다· 그것이 심원의의 최후였다·
“대주!”
심원의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 살아남아 있던 척마대의 무인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후우!”
진무원이 억지로 내공을 끌어 올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진무원은 이를 악물고 움직이려 했다·
“이 악마 같은 놈! 도대체 얼마나 죽여야 직성이 풀리느냐?”
그들의 절규에 가까운 음성에 진무원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진무원이라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최대한 살상을 자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이의 피를 묻혔다· 아마 이 업보는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죽으면 분명 나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고 움직일 여력이 있었다· 그렇다면 움직여야 했다·
진무원이 이를 악물며 다시 멸천마영검을 펼치려 할 때였다·
쉬악!
“으아악!”
“컥!”
갑자기 척마대의 무인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그들이 쓰러진 자리에 두 명의 무인이 나타났다·
“주군!”
“형 괜찮아요?”
그들은 바로 청인과 곽문정이었다· 곽문정이 급히 달려와 진무원의 어깨를 부축했고 청인은 나머지 무인들을 상대했다·
진무원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조금 늦었구나·”
“죄송해요· 수련 누나의 전언을 듣자마자 준비를 했는데 너무 늦었네요·”
“괜찮다· 이렇게 다시 만났으니 상관없다·”
“괜찮으세요? 상처가 심한 것 같은데·”
“운공할 시간이 필요하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면 시간을 만들어 드릴게요·”
“고맙구나·”
곽문정의 확신 어린 말이 진무원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상처 입은 무인들을 모두 처리한 청인이 뒤늦게 달려와 진무원의 반대쪽 팔을 부축했다·
“고맙습니다· 달려와 줘서·”
“수하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퇴로를 준비해 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청인과 곽문정이 진무원을 부축한 채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척마대의 시신이 을씨년스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거리에 낯선 인영이 유령처럼 홀연히 나타났다·
“흐음!”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듯 눈처럼 새하얀 피부에 유난히 붉은 입술이 인상적인 남자는 바로 조운경이었다·
조운경이 사이한 기운이 넘실거리는 눈으로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바로 벽에 기댄 채 숨이 끊어진 심원의의 시신이었다·
그의 입꼬리가 뒤틀렸다·
“큭! 그렇게 잘난 척을 하더니 결국 여기서 죽었군·”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운중천에 있다 보니 삼 년 전에는 몇 번 만났었다· 그때마다 심원의가 얼마나 거들먹거리던지 아직도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심원의의 죽음에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조운경은 죽은 척마대 무인들 사이를 거닐며 시신을 뒤적거렸다· 시신에 난 상흔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서였다·
“이것 봐라· 예전보다 더 날카로워졌잖아· 상처를 입은 놈이 이 정도 무위를 보이다니·”
상처의 단면만 보아도 진무원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갑자기 전신이 욱씬거렸다· 예전의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진무원에게 고기처럼 다져졌던 그 비참한 기억을·
“크큭! 크크큭!”
그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조운경이 갑자기 입을 꾹 다물었다·
“좋아 아주 좋아· 네가 이 형을 도와주는구나· 무원아·”
진무원이 죽인 서문화는 그를 가장 잘 이용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 때문에 피곤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 조운경의 입장이었다·
이제 서문화가 죽었으니 앞으로의 행보가 한결 편해질 것이다· 조운경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떡하냐? 이 형이 줄 수 있는 것은 죽음밖에 없는데·”
담수천을 상대하고 서문화를 죽였다· 상처를 입지 않은 것이 이상한 상황이다·
그는 진무원이 척마대와 싸운 현장을 보고 더 확신했다· 평소의 진무원이었다면 겨우 척마대 정도에 이 정도로 고전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운신이 힘들 만큼 내상을 입은 것이 확실했다·
지금이 진무원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였다· 진무원을 확실히 죽여야만 가슴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두려움을 확실히 없애 버릴 수 있었다·
“크하하! 조금만 더 기다리거라 무원아· 이 형이 너의 숨통을 끊어줄 테니까·”
조운경이 앙천광소를 터뜨리다가 이내 자리를 떴다·
☆ ☆ ☆
“여기는?”
진무원이 어두컴컴한 지하 공간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지하 수로입니다· 부현에서 배출된 오물들이 모두 흘러들어 오는 곳입니다· 악취 때문에 누구도 얼씬 거리지 않는 곳이지요·”
“그런 것 같군요·”
청인의 대답에 진무원이 살짝 인상을 썼다· 그만큼 후각을 자극하는 악취는 강렬했다· 이제 겨우 초입에 발을 디뎠을 뿐인데도 악취에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주군· 이 통로를 이용하면 일단은 부현 밖으로 몸을 뺄 수 있습니다· 부현 외부에 마차를 대기시켜 두었으니 타고 가시면서 운공을 하시면 될 겁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급히 준비하느라 아직 흑월에 연락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았으면 흔적을 좀 더 쉽게 지울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좀 아쉽군요·”
“이 정도 준비한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어서 나가죠·”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청인이 앞장서 걸어갔다· 그 뒤를 곽문정이 진무원을 부축한 채 걸어갔다·
☆ ☆ ☆
같은 시각 밀야를 나서는 일단의 무인들이 있었다·
말을 타고 달리는 십여 명의 무인·
그 선두에 푸른 기가 감도는 검은 머리칼을 바람에 흩날리는 삼십 대의 여인이 있었다·
여인이 입은 새하얀 무복이 마치 나비의 날개처럼 바람에 가볍게 펄럭이고 있었다· 그녀는 인세의 사람이 아닌 것처럼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녀를 따르는 십여 명의 무인 중 누구도 감히 음심(淫心)을 품는 자는 없었다·
그녀의 이름은 소금향·
아군에게는 백야선자(白夜仙子)라고 불리지만 적에게는 백야마녀(白夜魔女)라고 불리는 절대의 무인이었다·
밀야의 살아 있는 재앙 중 남은 이는 두 명· 그중의 한 명이 진무원의 추적에 나섰다· 그녀의 몸에서는 서릿발 같은 냉기가 발산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