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화 : 8장 때로는 개미구멍 하나에 벽이 무너지기도 한다 (2)–>
“크윽!”
진무원이 잠시 멈춰 섰다·
서문화를 죽이기 위해 목숨을 건 도박을 했다· 결과는 성공이었지만 그 대가로 그가 얻은 내상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담수천의 진신 내력이 담긴 강기였다· 그림자 내력으로 최대한 몸을 보호하긴 했지만 심맥이 흔들리고 주요 대맥들이 망가졌다·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찌르고 있는지 숨쉬기조차 힘들었고 얼굴은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이 상태로 움직이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움직여야 했다·
아직 그는 아직 부현 지부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아직도 포위망은 견고했다· 일단 포위망을 뚫고 부현 지부를 빠져나가야 했다·
진무원은 이를 악물며 걸음을 옮겼다·
“저기다·”
그를 발견한 무인들이 들개 떼처럼 달려왔다·
살기 가득한 얼굴로 달려오는 그들을 향해 진무원이 단봉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십여 명의 무인이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져 전열이 흐트러졌다·
진무원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날렸다· 하지만 저들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어느새 뒤쪽에 나타난 새로운 전력이 빈자리를 매운 것이다·
진무원은 쉽게 빠져나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서문세가의 무인들이 곳곳에 포진해 지휘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포위망이 견고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인들이 포위망을 완성한 채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개중에는 진무원이 얼굴을 알고 있는 현무대의 무인들도 다수 있었다· 현무대의 대주인 윤주천도 보였고 남중경 등의 얼굴도 보였다·
평소라면 감히 진무원에게 덤빌 엄두도 내지 못했을 터지만 진무원이 상처를 입는 모습을 보였다· 산중의 대호도 상처를 입고 움직이지 못하면 여우의 밥이 되게 마련이었다·
‘놈을 잡으면 불같은 명성을 얻게 된다·’
‘북검을 죽인 자 단숨에 강호의 기린아가 될 것이다·’
그들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욕망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놈은 부상당했다· 겁먹지 말고 공격하라·”
“와아아!”
윤주천의 명령에 기회만 노리던 무인들이 일제히 진무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정작 윤주천은 무인들의 뒤에서 호시탐탐 기회만 노렸다·
진무원이 상처를 입었지만 당장 쓰러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진무원이 더 지칠 때까지 기다려 공격할 생각이었다·
‘토끼몰이를 하듯 놈을 몰아붙이다 보면 기회가 올 것이다· 그때를 노린다·’
그렇게 윤주천이 계산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진무원을 향해 달려들던 무인들의 전열이 크게 출렁였다· 윤주천이 영문을 알지 못해 눈을 크게 치뜨는 순간이었다·
퍼엉!
갑자기 굉음과 함께 십여 명의 무인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전열이 붕괴되고 그 사이로 진무원이 모습을 보였다·
타탁!
진무원은 단 두어 번의 도약으로 윤주천의 지척으로 쇄도해 들어왔다·
“무슨?”
윤주천이 기겁을 하며 점창파의 비전 검공인 사일검법(射日劍法)을 펼치려 했다· 하지만 그가 검을 뽑는 것보다 진무원의 단봉이 더 빨랐다·
콰직!
“컥!”
단봉이 윤주천의 목을 강타했다· 목젖이 움푹 함몰되고 두 눈이 튀어나올 듯 크게 치떠졌다· 순간 진무원의 팔꿈치가 그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윤주천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그 대가로 진무원 역시 다른 무인들에게 가볍지 않은 상처를 입어야 했다· 하지만 원하던 소기의 성과를 얻었다· 윤주천을 죽이면서 지휘 체계를 붕괴시킨 것이다·
윤주천을 잃은 현무대가 일시적으로 혼란에 빠지자 전체적인 움직임이 느슨해졌다· 서문세가의 무인들이 다시 전열을 정비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진무원이 그들보다 빨리 움직였기 때문이다·
“컥!”
진무원은 명령을 내리는 서문세가의 무인들을 중점적으로 공격했다· 그러자 전열이 크게 흐트러졌다· 진무원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밖으로 몸을 놀렸다·
“놈이 일 차 저지선을 뚫었다! 어서 추격하라!”
등 뒤로 무인들의 당혹한 음성이 들려왔다·
진무원은 그들을 뒤로하고 무서운 속도로 내달렸다· 하지만 그의 질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차 저지선에서 다시 막혔다·
그곳에는 일 차 저지선보다 더 많은 무인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더구나 뒤에서는 일 차 저지선을 형성했던 무인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자칫하다가는 앞뒤로 끼여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수 있었다·
‘돌파한다·’
진무원이 이를 악물었다·
이 이상 무리하면 상처가 어디까지 악화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치면 그나마 마지막 남은 탈출할 기회를 아예 잡지 못할 수도 있었다·
“챠핫!”
진무원이 멸천마영검 제삼식 단천해를 펼쳤다·
쉬가악!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검기가 횡으로 퍼져 나갔다· 선두에서 달려들던 무인들이 이상한 느낌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간 그들의 허리에 한 줄기 혈선이 생겨났다·
“무슨?”
“어?”
하지만 의문을 풀기도 전에 그들의 몸이 허리에서부터 잘려 나가며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순식간에 수십 명의 무인이 목숨을 잃었다·
“으으!”
그 광경을 본 다른 무인들이 진저리를 쳤다·
그들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인간이 이렇게 쉽게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스윽!
진무원의 눈이 그들을 훑고 지나가는 순간 손이 덜덜 떨려오고 발이 땅에 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본능적인 공포에 몸이 언 것이다·
진무원이 다시 몸을 날렸다· 너무 큰 공포에 몸이 언 무인들은 감히 그를 막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털썩!
진무원이 사라지자 눈이 마주쳤던 무인들이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어떤 이들의 바지춤에서는 노란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하느냐? 놈을 쫓아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수뇌부들이 길길이 날뛰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사이 진무원의 신형은 이미 삼 차 저지선에 도달해 있었다·
진무원은 연이어 멸천마영검의 사초식인 풍우림을 펼쳤다· 검기가 비처럼 쏟아져 내린 자리에는 끔찍한 주검만이 가득했다·
“으으!”
진무원은 목불인견의 참상을 지나쳐 몸을 날렸다· 그렇게 그는 순식간에 삼 차 저지선까지 뚫고 부현 지부 밖으로 탈출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크윽!”
자잘한 상처를 몇 개 더 입은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무리한 내공의 운용으로 담수천에게 입은 내상이 더 악화되었다· 보통의 내상이라면 그림자 내공을 한 바퀴 돌리면 해결되겠지만 담수천에게 입은 내상은 달랐다·
지금도 그의 몸 안에서 담수천의 성광기와 그림자 내공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대로 놔두면 성광기가 그의 몸을 갉아먹을 터였다·
귀혈비에 당한 단전도 문제였다· 비록 내공을 담아두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지만 단전은 주요 요혈· 외상을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다·
‘안전한 장소와 시간이 필요해·’
하지만 부현 내에서 그런 장소를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단 무리를 해서라도 부현을 빠져나가야 했다·
진무원은 이를 악물고 걸음을 옮겼다·
“놓쳤다고요?”
“그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하지만 추적대가 쫓고 있으니 절대 부현을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서문중일이 이를 악물었다·
서문혜령의 앞에는 서문화의 시신이 누워 있었다· 아홉 하늘의 일인이자 서문세가의 태상장로인 서문화의 죽음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이는 바로 서문혜령이었다· 서문화를 항상 넘어야 할 벽으로 인식하고 도전했지만 설마 진무원에게 그를 잃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 그녀가 느끼는 상실감과 분노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녀를 지탱하던 하늘이 무너졌다· 그녀의 가슴에서 무한한 분노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상관없어요· 서문세가 운중천의 모든 힘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진무원을 죽여요· 이제 그는 우리의 불공지대천 원수입니다·”
“물론입니다· 놈은 상처를 입었으니 그리 멀리 가지 못했을 겁니다· 반드시 모든 전력을 다해 놈을 죽이겠습니다·”
“반드시 그래야 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럼····”
서문중일이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혼자 남은 서문혜령이 벌게진 눈으로 서문화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항상 당신을 넘고 싶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에요· 이렇게 허무하게 당신을 잃었지만 당신의 장례식은 그 누구보다 성대하게 치르겠어요· 진무원과 그를 추종하는 자들의 피로 만든 제단 위에····”
서문화에게 하는 맹세 자신에게 하는 절규의 맹약이었다·
그녀는 태어나서 가장 강렬한 살의를 느끼고 있었다· 이 살의는 오직 진무원을 죽여야만 풀릴 것 같았다·
꽉 쥔 조그만 주먹에 실핏줄이 튀어나왔다·
그때 문을 열고 담수천이 들어왔다· 담수천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가 잠시 서문화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나가고 난 후 일어난 참사였다· 자신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혜령·”
“위로하지 않으셔도 돼요· 무인의 삶이란 언제나 칼날 위에 서 있는 부평초 같은 존재 균형을 잃는 순간이 끝이라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비록 그 자신은 그런 위험과 거리가 멀 거라고 생각하셔서 방심하셨지만요·”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되겠소?”
“아무것도····”
“혜령!”
“안 해주셔도 되요· 당신은 이미 할 만큼 했어요· 이제부터는 나의 몫이에요·”
담수천의 얼굴이 침중하게 굳었다· 서문혜령의 목소리에서 처음 느껴지는 맹렬한 살의 때문이다· 그녀는 결코 살의를 밖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내면에서 무언가 변했다· 그 이유가 서문화의 죽음 때문이라는 것을 모를 담수천이 아니었다·
오늘 이후의 서문혜령은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어제의 그녀와 오늘의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당신을 이 진흙탕 싸움에 끼어 들이는 게 아니었어요· 당신은 저 하늘의 태양처럼 홀로 고고히 빛나야 하는 사람· 나와 함께 오물을 뒤집어쓸 필요는 없어요·”
“혜령!”
“당신이 안 도와줘도 그는 결코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거예요· 비록 불의의 기습에 목숨을 잃었지만 그분의 안배는 겨우 이 정도로 끝난 것이 아니에요·”
“알겠소· 하나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하시오· 당신의 생각과 달리 나는 오물에 발을 디딜 각오가 충분히 되어 있으니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부를게요·”
“휴우!”
담수천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렸을 때부터 힘을 가지길 열망했다· 막대한 힘을 가지고 저 하늘 높은 곳에 오르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은 이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원하던 강대한 힘을 얻게 되었고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여전히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더 많았다·
“잠시 밖에 다녀올 테니 할아버님의 시신을 지켜주세요· 그분을 혼자 있게 하고 싶지 않아요·”
“알겠소·”
담수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문화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녀의 양 뺨으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진무원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악마와 손을 잡아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