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화 : 7장 하늘의 그물은 생각보다 촘촘하다 (2)
“아미타불! 잠시 다녀오겠소·”
설공이 거처를 나섰다· 밖에서 누군가 그를 찾는단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반 시진 전에 우태천이 나가고 이번엔 설공까지·
진무원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언가 께름칙한 느낌이 들었다·
‘기우이길 바라지만····’
진무원이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왔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시는 건가요?”
조용히 말을 건네는 여인은 바로 남수련이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머릿속이 복잡하신 것 같은데요?”
“사실은 그렇습니다·”
결국 진무원은 순순히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남수련의 표정 또한 진무원만큼이나 복잡했다· 이제 그녀는 진무원이 단천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진무원은 운중천과 큰 원한을 맺고 있었다·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사이란 뜻이었다· 그가 정체를 숨기고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너무나 뻔했다·
‘결국은 복수겠지·’
진무원이 옳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진무원을 지지할 수만은 없었다·
그녀는 무산파의 제자였다· 무산파는 운중천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무엇보다 운중천은 지금 밀야와 전쟁 중이었다· 운중천이 무너지면 중원 전체가 밀야의 손에 넘어갔다· 그런 최악의 경우는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계속 이렇게 단천운으로 살아가실 건가요?”
“당분간은 그럴 생각입니다·”
“너무 위험해요· 진 소협의 마음은 알겠지만 언제까지 이곳에서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차라리 이대로 은거를 하시는 것이 어때요? 밀야를 상대하기 위해선 반드시 운중천이 필요해요·”
남수련 딴에는 진무원을 위해서 하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진무원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남 소저·”
“계속 그렇게 운중천과 대립하겠다는 뜻이군요· 휴!”
“이미 그들과 저는 너무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바닥부터 쌓인 은원이 남 소저의 말 한마디로 풀 만큼 그리 가볍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저야말로 죄송해요· 괜히 속 좁은 아녀자의 식견으로 진 소협의 심기를 어지럽힌 것이 아닌가 싶네요· 제 말은 잊어버리세요·”
남수련의 사과에 진무원이 미소를 지었다· 남수련이 자신을 배려해서 한 말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진무원이 말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연 소저가 보이지 않는군요·”
“그녀는 아침 일찍 외출했어요·”
“그런가요?”
진무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강렬한 예감이나 마찬가지였다·
“부탁 좀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무슨?”
“지부 밖 남쪽에 있는 저잣거리에 가면 공방이 모여 있을 겁니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간판이 없는 공방이 있을 겁니다·”
“공방은 왜?”
“그곳에서 청인이라는 사람을 찾아 제 말을 전해주십시오·”
“도대체····”
남수련이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진무원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휴! 알았어요· 무슨 말을 전하면 될까요?”
“그에게····”
진무원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마침내 진무원의 말이 끝나자 남수련이 확인이라도 하듯 물었다·
“그렇게만 전해주면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알았어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네요·”
“감사합니다·”
남수련의 흔쾌한 대답에 진무원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남수련이 밖으로 나간 뒤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기우였으면 좋겠는데····’
그때였다·
갑자기 문을 통해 일단의 무인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기세를 풍기는 무인들이었다· 부현 지부의 정예 무인들이었다·
그들 중 수장으로 보이는 이가 진무원을 향해 다가왔다·
“단 소협·”
“무슨 일입니까?”
“단 소협을 모셔오라는 서문 대협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서문 대협?”
“그렇습니다· 저희와 함께 가시지요·”
수장의 말은 매우 정중했다· 하지만 그가 뿜어내는 기세는 매우 강렬했다·
“내가 가지 않으면?”
“저희는 반드시 모셔오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명을 따를 뿐입니다·”
순간 무인들이 진무원을 에워쌌다· 여차하면 공격하겠다는 의지를 온몸으로 발산하고 있었다·
전방위 감각에 외부에서 움직이고 있는 일단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그들은 진무원이 머물고 있는 거처를 포위하고 있었다·
진무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진무원은 수장을 따라갔다· 그런 진무원을 향해 무인들이 감시의 눈길을 번뜩였다· 밖으로 나오자 더욱 많은 이들이 근처를 포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경직된 공기와 일대를 지배하는 정적이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무인들이 진무원을 데려간 곳은 서문화의 거처였다· 서문화의 거처 앞마당에는 서문화가 서 있었다·
“단 소협을 모시고 왔습니다·”
“흠!”
그제야 서문화가 뒤를 돌아봤다· 그의 눈빛은 무섭도록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진무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부르셨습니까?”
“미안하네· 바쁠 텐데 이리 보자고 해서· 하나 꼭 확인해야 할 것이 있어 불렀네·”
“그게 뭡니까?”
“자네의 정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했잖은가? 자네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다고· 자네는 누군가?”
“제가 단천운인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습니다만·”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지· 하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네·”
“전 서문 대협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계속 그렇게 잡아뗄 건가?”
서문화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러자 주위의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었다· 하지만 진무원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이었다·
“이게 무슨 도깨비장난인지 모르겠군요· 가만히 잘 있는 사람을 불러서 뜬금없는 소리나 하시고· 그냥 차라리 속 시원히 말씀하시지요·”
“흠! 그렇게 나온단 말인가? 좋네· 그렇다면 내 더 이상 돌려 말하지 않지·”
“원하는 바입니다·”
“현현소··· 자네가 죽였는가?”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지난 며칠 동안 나는 현현소의 시신을 살폈네· 그 때문에 잠을 전혀 자지 못했지·”
서문화가 손짓을 했다· 그러자 수하들 몇 명이 현현소의 시신이 누워 있는 수레를 밀고 들어왔다·
죽은 지 며칠이나 되었지만 현현소의 시신은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생전에 소유했던 강대한 내공이 시신의 부패를 막아주고 있는 것이다· 현현소의 시신에는 보기에도 끔찍한 상처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자네의 눈에는 이 상처가 도끼에 당한 상처로 보이는가?”
“그렇지 않단 말입니까?”
“일반적인 도끼라면 그렇겠지· 하나 만추산의 도끼는 어린아이 몸통만 한 대부라네· 그의 도끼질에 격중당했다면 결코 이 정도에서 끝날 리가 없지· 도끼만큼 날카로우면서 좀 더 가벼운 무기에 당한 것이 분명하네·”
“그럼 도나 검에 당했단 말입니까?”
“나의 추측은 그렇다네·”
“그렇다면 진정한 흉수는 따로 있다는 거군요·”
“정확하네· 자네는 확실히 똑똑하군·”
서문화의 눈매가 좁아졌다·
“그게 저라는 겁니까?”
“맞네! 나는 자네를 의심하고 있네·”
“저의 무기는 봉이지 검이나 도가 아닙니다만·”
“자네 수준의 무인이라면 그 정도야 얼마든지 위장할 수 있지· 그렇지 않은가?”
“비약이 심하시군요·”
“비약이라··· 흠!”
서문화가 현현소의 시신을 향해 다가갔다· 그가 손으로 현현소의 상처를 헤집었다· 그러자 시뻘건 근육과 뼈가 드러났다·
“자네의 말처럼 봉같이 뭉툭한 무기로는 이런 상처를 낼 수 없지· 하지만 기를 칼날처럼 얇게 응축할 수 있다면 봉으로도 전혀 불가능할 것 없지· 그렇지 않은가?”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래!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지· 특히 자네같이 무공이 뛰어난 자에게는·”
“그렇다고 범인이 저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현현소 대협이 돌아가실 때 다른 기재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 말을 할 줄 알고 저들을 불렀네·”
서문화가 손짓을 하자 반대쪽 문에서 우태천 설공 연소소 등이 들어왔다·
이번엔 진무원의 눈매가 좁아졌다· 그가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저들과 함께 있었다고 했는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자네를 못 봤다고 하는군· 자네가 마지막에 합류하기는 했지만 초반에는 자네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하는군·”
“난전이었습니다· 흑암대에 둘러싸여 있었으니 몰랐을 수도 있지요·”
“대단하군· 그렇게까지 말을 번지르르하게 하다니· 확실히 자네도 정말 보통 사람은 아니야·”
서문화가 미소를 지었다· 반대로 분위기는 더욱 싸하게 식었다·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던 우태천이 갑자기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놈이 흉수가 분명합니다· 놈이 부현에 들어온 이후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밀야의 야주를 암살하려는 계획은 극비였습니다· 하지만 미리 기다렸다는 듯이 놈들은 함정을 파고 기다렸습니다· 내통자가 기밀을 유출한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놈이 내통자라고 생각합니다·”
“자네의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나?”
“물론입니다· 조사해 보면 다 나올 겁니다·”
우문천은 당당했다· 그만큼 거리끼는 것이 없다는 뜻이었다·
서문화의 시선이 설공을 향했다·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아미타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싸움 초반 그를 보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단 소협이 배신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까도 이야기했다시피 흑암대에 포위되어 있어 주위의 상황을 파악할 여력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의심스러운 것은 사실이지?”
“그건····”
설공이 머뭇거렸다· 하지만 서문화는 그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았다· 그는 이미 진무원을 흉수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설공 등에게 물어본 것은 어디까지나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상황은 진무원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미 서문화는 진무원이 흉수라고 확신하고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진무원이 어떤 말을 하든 간에 그는 절대로 의심을 풀지 않을 것이다·
서문화가 진무원을 노려봤다· 그의 눈에서 광망이 폭사되어 나오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묻지· 자네는 누군가?”
“내 이름은 단천운입니다·”
“아니 당신은 단천운이 아니에요·”
그때 누군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묘령의 여인이 사뿐사뿐 걸어오고 있었다·
“서문··· 혜령·”
“당신은 단천운이 아니에요· 진짜 단 소협은 절대로 당신과 같은 무위를 가질 수 없어요·”
“무슨?”
“이미 공작문이 있던 곳에 사람을 보내 조사해 봤어요· 그곳 사람들이 말하는 단천운과 소협의 외모는 사뭇 달라요· 이래도 계속해서 본인이 단천운이라고 우기실 건가요?”
서문혜령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승자의 미소였다·
앞에는 서문화 뒤에는 서문혜령 그리고 수많은 무인들이 포위하고 있다· 진무원은 독 안에 든 쥐였다· 서문혜령은 그렇게 확신하는 듯했다·
그때 서문화가 앞으로 나섰다·
“내 근래 들어 한 가지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적이 있지·”
“····”
“바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무인이 적엽진인을 죽였다는 거라네· 그라면 마령제 현현소도 충분히 죽일 수 있겠지· 아닌가? 살천랑·”
서문화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