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화 : 4장 세상에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3)
쾅!
공기가 터져 나가고 후폭풍이 사방으로 몰아쳤다· 대진엔 균열이 가고 아름드리나무들은 뿌리 채 뽑혀 나가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그 중심에 현현소와 만추산이 있었다·
마령제라는 별호답게 현현소는 각종 마공에 능숙했다· 특히 그의 성명절기라 할 수 있는 암천신마공(暗天神魔功)은 천하 마공 절기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었다· 암천신마공은 강공 일변도의 마공· 자비나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찬가지로 만추산의 무공 역시 강공일변도의 부법(斧法)이었다· 도끼질 한 방이면 산을 쪼개 버린다는 별호를 괜히 얻은 것이 아니었다·
“크흐흐!”
만추산은 광기를 줄기줄기 발산하며 현현소를 향해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현현소도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손이 허공에서 현란한 변화를 일으켰다·
암천신마공 중 삼십육마령수(三十六魔靈手)라 불리는 수법이었다·
콰콰쾅!
도끼와 손이 격돌했는데 뇌성이 터져 나왔다· 그만큼 강렬한 기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두 사람의 입가로 살짝 혈흔이 내비쳤다· 그 짧은 순간 내상을 입은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공격은 강맹하기 짝이 없었다·
쾅쾅!
만추산이 마치 거대한 나무를 찍어내듯 연신 도끼를 후려쳤다· 현현소 역시 한 치도 물러섬 없이 암천신마공상의 마공을 연이어 펼쳐 냈다· 그런 현현소의 안색은 침중하게 변해 있었다·
‘사대마장 생각보다 강하구나·’
고수는 단 한 번 손속만 교환해도 상대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법이다· 직접 부딪친 만추산의 무공은 정말 강했다·
세상이 사대마장을 살아 있는 재앙이라고 부를 때도 현현소는 코웃음을 쳤다· 야주도 아닌 사대마장 따위가 자신과 비견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직접 부딪쳐 본 만추산의 무위는 실로 무시무시했다·
현현소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가공할 무력과 패기· 보통의 무인은 그의 도끼질 한 방에 잘 다져진 고깃덩이가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에겐 통하지 않는다·’
예상을 뛰어넘는 무력을 가졌다고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현현소는 이제부터 그 사실을 알려줄 생각이었다·
촤아아!
순간 현현소의 기세가 돌변하며 전신에서 마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묵빛 마기는 순식간에 방원 이십여 장을 잠식해 들어갔다·
만추산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그가 이내 코웃음을 쳤다·
“흥!”
만추산은 자신의 무력을 믿었다· 수십 년을 고련해서 쌓은 자신이 무력은 겨우 이 정도 마기에 흔들릴 수준이 아니었다·
“좋다· 그렇다면····”
촤앙!
만추산이 도끼 한 자루를 더 꺼내 들었다·
어린아이 몸통 크기만 한 두 자루의 도끼를 양손에 들고 그가 현현소를 향해 달려갔다·
쿵쿵!
그가 발을 디딜 때마다 대지에 깊은 족적이 생겨났다· 그렇게 오 장여를 달린 만추산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현현소의 검은 눈동자가 그런 만추산의 종적을 쫓았다· 정점에 도달한 만추산의 몸이 무섭게 떨어져 내렸다· 그 낙하지점에 바로 현현소가 존재했다·
“뒈져랏!”
도끼 두 자루가 풍차처럼 돌아가며 와선강기(渦旋罡氣)가 생겨났다· 와선강기가 그대로 현현소의 몸을 직격했다·
만추산은 이번 한 수로 현현소의 목숨을 빼앗지는 못하더라도 중상을 입힐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슈우우!
믿을 수 없게도 현현소는 그의 와선강기를 두 손으로 발기발기 찢어발겼다· 현현소의 두 손에는 어느새 묵빛 마기가 어려 있었다· 마기의 집약체였고 파괴의 결정체였다·
현현소가 대지를 박차고 낙하하는 만추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양손이 수십 번이나 허공을 갈랐다· 만추산은 급히 두 자루의 도끼로 자신을 보호했다·
따다다다당!
현현소의 두 손이 도끼를 강타했다·
손과 도끼가 부딪쳤는데 쇳소리가 어지럽게 울려 퍼졌고 만추산의 신형이 흔들렸다· 분명 가벼운 공격 같았는데 그 충격이 도끼 자루를 통해 내장까지 전해졌다·
만추산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역시 스스로 하늘을 자처할 만한 실력이구나· 하지만 이 만추산의 도끼질을 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챠핫!”
만추산이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했다· 그의 도끼에서 도강이 발산되며 주위를 초토화시켰다· 하지만 현현소에게는 그 어떤 타격도 입히지 못했다· 현현소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마기 때문이었다·
천중흑마기(天重黑魔氣)라 불리는 마기는 거대한 강철 벽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현현소는 천중흑마기를 믿고 만추산의 거대한 도끼를 상대로 근접전을 벌일 수 있었다·
콰콰쾅!
어느새 그들의 전장은 흑암대와 기재들이 있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흑암대와 기재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먼 곳이었다·
안내자는 살기 어린 시선으로 현현소와 만추산의 싸움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싸움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 보통 사람은 방원 삼십 장 안쪽으로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안내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이름은 공야경 태어나면서부터 밀야의 세작으로 키워졌다· 그의 조부가 무적세가에서 파견된 인물이었고 그의 아비 또한 무적세가의 세작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 부야주의 반란 때 대부분의 세작이 죽거나 제거되었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이제까지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밀야의 무인으로 살아왔고 요직에 올랐다· 아마 최후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그는 영원히 밀야의 무인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그는 영원히 그렇게 살아가길 소망했다· 하지만 하늘은 잔인하게도 그의 소망을 들어주지 않았다·
잠들어 있던 세작을 깨우는 동원령이 떨어졌다· 그 순간부터 밀야의 공야경은 존재하지 않았다· 무적세가의 세작인 공야경이 태어났다·
만추산과 현현소가 격렬히 싸우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싸움은 아직까지는 호각이었다·
그 순간 한 줄기 전음이 그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이제 끝내야겠군· 자네도 합류하게·]
현현소의 음성이었다·
스릉!
공야경이 고뇌에 찬 표정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쇠꼬챙이를 꺼내 들었다· 쇠꼬챙이의 표면을 따라 미세한 홈이 파여 있었다·
설랑검이라 불리는 그만의 독문 무기였다· 이제껏 설랑검에 당한 이치고 목숨을 부지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가공할 위력을 자랑했다·
그가 서서히 두 사람이 싸우는 곳으로 다가갔다·
엄청난 기파가 휘몰아치고 있었지만 그의 몸엔 그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세상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야경 또한 세상을 오시할 만한 고수였다·
공야경의 등장에 만추산이 반색했다·
“공 전주?”
그가 현현소에게 강기를 날린 뒤 공야경에게 다가왔다·
“자네가 여길 어떻게 온 건가? 본진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만 선배·”
“흐흐! 나를 도와주기 위해 온 것이라면 사양하지· 놈은 내 몫이다·”
“····”
아무 대답 없는 공야경의 모습에 만추산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언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것이다·
“너?”
“미안합니다 만 선배·”
공야경이 현현소의 옆에 섰다· 순간 만추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슨 뜻이냐? 설마 밀야를 배신한 것이냐?”
공야경은 밀야의 백룡전주(白龍殿主)였다· 백룡전은 밀야의 후방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은 주요한 조직이었다· 백룡전에 들기 위해서는 최소 이 대 이상의 집안 내력을 조사한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였고 더군다나 공야경은 백룡전을 책임지는 전주였다· 그런 그가 배신했다고 하니 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백룡전주가 배신이라니? 무엇 때문에 밀야를 배신한 것이냐?”
“배신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원래 이쪽 사람이었습니다· 조부님 시절부터요·”
“너?”
순간 만추산의 몸에서 강렬한 투기가 발산됐다· 그만큼 공야경의 배신에 분노를 하는 것이었다·
십여 년 전 부야주의 반란 때 간자를 모두 축출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하필 그 대상이 밀야의 주요 인물인 공야경이라는 사실에 분노했다·
현현소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만추산이 절망하고 분노하는 모습이 그를 기분 좋게 만든 것이다·
“그래! 원래 세상이 그런 것이지· 누구나 비장의 한 수는 감춰두고 있는 법이거든· 절망하는 기분이 어떤가?”
“절망? 네놈들 도대체 어디까지 우리를 농락해야 직성이 풀리느냐?”
만추산은 진심으로 분노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에게 불리했다· 현현소 하나만으로도 버거운 판국인데 공야경까지 적으로 돌아섰다·
공야경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무시 못 할 고수였다· 특히 설랑검으로 펼치는 그의 설랑십삼검은 만추산도 인정하는 극상승의 쾌검술이었다·
현현소에 공야경· 만추산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불리한 것은 알았지만 물러서고 싶은 생각 따윈 없었다· 이제껏 그는 단 한 번도 물러난 적이 없었다· 그 어떠한 불리한 순간에도 말이다·
“덤벼라!”
만추산의 노호성이 울려 퍼졌다·
“흐흐!”
현현소가 웃으며 만추산을 향해 걸어갔다· 그 뒤를 공야경이 따랐다· 그들의 몸에서는 가공할 기세가 피어올랐다·
파팟!
그들이 내뿜는 기세에 근처에 있던 돌멩이들이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챠핫!”
만추산이 먼저 공격했다·
지금은 선발제인(先發制人)의 묘가 필요할 때라고 판단한 것이다·
‘최대한 빨리 승부를 내야 한다·’
길어질수록 불리해진다· 그러니까 이 한 번의 격돌에 자신의 모든 것을 끌어내야 한다·
만추산이 양손의 도끼를 십여 번이나 휘둘렀다· 그러자 이 장여까지 치솟은 부강(斧罡)이 ‘훙훙’ 회전을 하며 현현소와 공야경을 향해 날아갔다· 그 수가 무려 십여 개나 됐다·
부월천하(斧月天下)라는 초식이었다·
위력이 강력한 만큼 공력의 소모도 극심해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초식이었다· 하지만 그 위력만큼은 여타 초식에 비할 바 없을 정도로 확실했다·
부강이 직격하기 직전 현현소와 공야경이 움직였다· 그들 역시 지닌 바 최고의 무공을 모두 풀어냈다·
쿠콰쾅!
대지가 흔들리고 땅거죽이 뒤집혔다·
강기의 편린이 사방으로 튕겨 나가고 빛 무리가 눈을 어지럽혔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자들의 싸움은 순식간에 절정으로 치달았다·
만추산의 어깨에서 피분수가 치솟아 올랐다· 공야경의 설랑검이 피륙을 가르고 지나간 것이다·
만추산의 몸이 비틀거리는 것을 놓치지 않고 현현소가 달려들었다· 그의 손에서 묵빛 강기가 쏘아져 나왔다· 만추산이 급히 거대한 도끼로 자신의 전면을 가렸다·
쩌엉!
묵빛 강기와 격돌하는 순간 거대한 도끼가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비산했다· 거듭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진 것이다·
“크윽!”
도끼가 파괴되면서 만추산의 몸이 비틀거렸다· 그의 어깨와 복부에 도끼의 파편이 박혀 있었다·
“끝이다·”
현현소의 손이 다시 묵빛 강기를 발산했고 공야경의 설랑검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콰앙!
만추산의 몸이 훌훌 뒤로 날아갔다· 그의 가슴은 움푹 함몰되어 있었고 복부는 쩍 벌어져 내장이 흘러내렸다· 만추산의 육신이 거칠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가 나뒹군 자리에 깊은 고랑이 파였다·
만추산이 몸을 일으키려 버둥거렸다· 하지만 망가진 육신은 그의 의지를 따르지 못하고 제멋대로 놀고 있었다·
“흐흐!”
현현소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승자의 웃음이었다·
만추산은 회복하기 힘든 중상을 입었다· 그의 목을 따는 것은 어린아이 손목 비트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현현소의 시선이 공야경을 향했다·
“자네가 하겠는가?”
공야경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이 만추산을 합공하긴 했지만 그의 목숨마저 자신의 손으로 빼앗고 싶지는 않은 것이 그의 진심이었다·
현현소가 피식 웃었다· 공야경의 태도가 위선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공야경을 비웃는 대신 만추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만추산이 간신히 상체를 일으켜 현현소를 노려봤다· 그런 그의 얼굴은 온통 피 칠갑이 되어 있었다·
“꼴좋구나· 비록 야주를 잡지는 못했지만 네놈의 숨통을 끊는 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니 그리 손해 보는 것은 아닐 터·”
“현현소! 비록 내가 힘이 모자라 이대로 죽지만 네놈의 최후도 결코 좋지 않으리라· 흐흐흐!”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나는 마령제니까·”
“그래 봤자 모용율천의 개에 불과하지·”
순간 현현소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감히!”
“나는 최소한 누군가의 개로 살아오진 않았다· 현현소 개처럼 꼬리를 흔들며 열심히 모용율천의 똥구녕이나 핥고 살아라· 크하하하!”
푸확!
순간 만추산의 머리통이 그대로 날아갔다· 현현소가 수강이 어린 손으로 그의 목을 친 것이다·
만추산의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현현소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만추산의 머리를 밟아서 터뜨렸다·
“휴!”
그 광경을 지켜보던 공야경이 나직이 한숨을 터뜨렸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다·
언제 나타났는지 장봉을 든 남자가 그와 현현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그는 바로 진무원이었다·
현현소가 고개를 들어 진무원을 바라봤다·
“네가 웬일이냐? 다른 이들은?”
주위를 둘러봤지만 다른 기재들은 보이지 않았다· 만추산과 싸우다 보니 너무 멀리 떨어진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밀야의 무인들과 싸우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왜 너 혼자 이곳에 왔냔 말이다?”
“당신을 죽이려구요·”
진무원이 담담히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