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 8장 바람이 불면 구름이 움직이게 마련이다 (3)
진무원이 걸음을 멈춰 섰다·
“응?”
전방위 감각에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이곳 부현에 들어온 이후 처음 느껴보는 기운이다·
누군가 그를 주시하고 있다· 은밀하면서도 집요한 시선이 그의 전신을 훑고 있었다· 단순히 관찰하는 시선이 아니었다·
외부를 훑고 내부를 꿰뚫어 본다· 근육의 밀도를 헤집고 들어와 신경을 훑고 내공을 건드린다· 그림자 내공이 아닌 일반적인 내공이었다면 분명 상대의 눈빛에 반응했을 것이다·
‘누군가?’
진무원이 전방위 감각을 확장했다· 방원 수십 장이 그의 영역 아래 들어왔다· 수많은 사람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무인들 상인들 그리고 물건을 구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까지·
너무나 많은 정보가 전방위 감각을 통해 뇌로 유입됐다· 과다한 정보의 유입은 그의 머리를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를 관찰하는 자는 그렇게 수많은 이들의 존재감을 이용해 감쪽같이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
진무원은 방해가 되는 자들의 기척을 하나씩 지워갔다· 그렇게 수십 수백 명의 기척을 지우자 몇 남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진무원은 노점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노인을 찾아냈다·
검은 피풍의를 걸친 주름진 얼굴의 노인을 보는 순간 진무원은 그의 정체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흑익신창?’
삼 년 전 단 한 번 봤을 뿐이지만 그날의 기억과 잔향은 아직도 진무원의 가슴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밀야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남자 금단엽· 그의 시신을 거둬 간 남자가 바로 흑익신창 우문천이었다·
한 자루 창을 들면 천하에 적수가 없다는 남자·
사대마장의 일인인 그가 뜻밖에도 운중천의 진용이 자리하고 있는 부현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진무원은 그의 등장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제아무리 길목을 막고 검문검색을 철저히 한다고 하더라도 우문천과 같은 고수를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두 사람 사이에 십여 장 정도의 거리가 있었지만 그 정도의 거리는 두 사람에게 어떠한 장애도 되지 못했다·
솔직히 우문천은 놀랐다·
그의 시선은 무척이나 은밀했다·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척을 분산해 놓았기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의 존재감을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진무원은 그의 시선을 느낀 것도 모자라 극히 짧은 시간에 정확히 그를 지목해 바라보고 있었다·
‘단순한 후기지수 따위가 아니란 말인가?’
그의 심안으로도 진무원의 내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마치 안개에 가려진 듯 진무원의 모든 것이 모호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문득 그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진무원이 밀야에 위협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진무원을 방치하면 얼마나 많은 밀야의 제자들이 그의 손에 죽을지 몰랐다·
‘차라리 지금 제거하면?’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곳도 아닌 부현이다· 강호의 축소판이라고 불릴 만한 곳이다· 이곳에 얼마나 많은 고수들이 포진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개중에는 그를 긴장하게 만들 고수도 있을 것이다·
서문화가 그랬고 담수천도 그랬다· 하나같이 무시할 수 없는 고수들이다· 그들과 조우하게 되면 제아무리 우문천이라 할지라도 이곳에서 무사히 몸을 빼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때 진무원이 우문천을 향해 다가왔다· 겁도 없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진무원의 모습에 우문천이 미소를 지었다·
곁에 다가온 진무원이 거침없이 노점 의자에 앉았다·
“국수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군요· 맛은 어떻습니까?”
“제법 맛있다네· 아마 부현에 있는 그 어떤 객잔보다 맛은 훌륭할 걸세 젊은 친구·”
“저도 한 그릇 먹고 싶군요·”
진무원의 말에 우문천이 피식 웃었다· 그의 시선이 서곽에게 향했다·
“이 친구에게 한 그릇 말아주게· 계산은 내가 하지·”
“알겠습니다·”
서곽은 자연스럽게 대답한 후 면을 밀기 시작했다· 진무원은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봤고 우문천은 그런 진무원을 바라봤다·
궁금할 것이 많을 텐데도 진무원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 나이 또래의 젊은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인내심이었다·
결국 먼저 입을 연 이는 우문천이었다·
“젊은 친구가 무공이 상당한 경지에 올랐군·”
“과찬이십니다·”
“내 이름은 우문천이라고 하네· 자네는?”
“단천운이라고 합니다·”
우문천은 흑익신창이라는 사실을 숨겼고 진무원은 진명을 숨겼다· 하지만 진무원은 우문천이 흑익신창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우문천은 진무원이 경천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반갑군· 혹시 사문을 알 수 있겠나?”
“공작문이라는 문파입니다· 제가 마지막 제자이니 이미 멸문한 것이나 다름없지요·”
“내 생각에는 자네 때문에 오히려 공작문이 부흥할 것 같군·”
“그러시는 우 대협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글쎄· 특별한 사문은 없다네· 그냥 이곳저곳에서 하나씩 주워 배웠을 뿐·”
“밀야는 좋은 곳이군요· 하나씩 주워 배워도 그렇게 고수가 될 수 있다니·”
순간 우문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그만큼 진무원의 말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본래의 표정을 되찾았다· 무서울 정도의 냉철함이다·
“어떻게 알았는가?”
“그냥 감으로 알았습니다·”
“감으로? 대단하군·”
우문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진무원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자넨 단순한 후기지수가 아니군· 정체가 뭔가?”
진무원이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를 본 순간 우문천은 전신의 피가 싸늘히 식는 것을 느꼈다·
‘이 녀석!’
왠지 모를 꺼림칙함 그리고 결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느껴졌다·
“제 이름은 단천운입니다· 아직 가경의에게 제 이야기를 듣지 못한 모양이군요·”
“무슨 말인가? 가경의를 자네가 어떻게?”
우문천뿐 아니라 서곽의 안색 또한 살짝 변했다· 그만큼 진무원이 가경의를 언급한 것은 큰 충격이었다·
가경의의 존재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져 있다· 밀야 내에서도 극소수밖에 모르는 그의 존재를 진무원이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커다란 충격이었다·
우문천이 자신도 모르게 은창을 꼬나 잡았다· 진무원의 대답 여하에 따라 살수를 펼칠 수도 있음이다· 하지만 진무원은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평하게 말을 이었다·
“그와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약속? 그게 무엇인가?”
“죄송합니다만 그것까지 말해줄 수는 없군요·”
우문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당장 손을 써서라도 내막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가경의가 관계된 일이다· 사정도 모르고 함부로 손을 쓸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이곳은 운중천의 진용 득보단 실이 훨씬 많았다·
잠시 우문천이 진무원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엔 기광이 일렁이고 있었다· 보통 사람은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역도가 그의 눈빛에 실려 있다·
반대로 진무원의 표정엔 여유가 있었다· 그는 우문천이 움직이지 못할 거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한층 더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가경의가 사대마장까지 모조리 소집한 모양이구나·’
밀야의 진용엔 사대마장이 소집되었고 운중천 진용에는 아홉 하늘 중 한명인 서문화가 와 있고 또 한 명이 오고 있는 중이다· 양측 모두 엄청난 전력을 투입하고 있었다·
이젠 물러날 수도 없게 됐다· 이곳에서 패배한 쪽이 겪을 후유증 또한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진무원의 머릿속에 양측의 전력과 상황이 떠올랐다· 그들의 전력은 호각이다· 어느 쪽이 확실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지면 수많은 이가 죽을 것이다· 이 거리에 있는 이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진무원의 눈에는 지옥도로 화한 부현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한마디만 하죠·”
“경청하겠네·”
“부디 손속에 사정을 두십시오·”
“사정? 나는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음!”
그 순간 서곽이 국수를 내놓았다·
진무원은 미소를 지으며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우문천은 묘한 표정으로 진무원이 국수를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후르륵!
우문천은 진무원보다 맛있게 국수를 먹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면과 국물을 모두 먹어치웠다·
“잘 먹었습니다·”
진무원이 소매로 입가를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려는가?”
“일이 있어서 가봐야겠습니다·”
“잘 가게· 배웅하지 않겠네·”
“국수 잘 먹었습니다· 제 생애 가장 맛있는 국수였습니다·”
“맛있다니 다행이군· 부디 다음에 만났을 때는 적이 아니었으면 좋겠군· 자네와 같은 젊은 친구를 내 손으로 죽이긴 싫으니까·”
진무원은 말없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그가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며 서곽이 입을 열었다·
“이대로 그냥 보내도 괜찮겠습니까?”
“보내지 않으면?”
“그는 우리가 밀야에서 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운중천에 우리 정체를 발설한다면····”
“그는 결코 그러지 않을 걸세·”
“그걸 어찌 압니까?”
“그냥 알아·”
“어르신?”
“무엇보다 가경의와 약조를 맺었다고 하지 않나?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정말이라면 경거망동하진 않을 거야·”
“그를 믿습니까?”
“가경의를 믿지·”
“알겠습니다·”
서곽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가경의를 언급하자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우문천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멀어지는 진무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왠지 진무원의 뒷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흥미가 일었다·
“어쨌거나 이곳에 온 보람이 있군· 그냥 지나쳤으면 분명 후회했을 거야·”
그의 말은 깊은 서곽의 가슴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진무원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우문천은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있던 자리엔 다른 사람이 앉아 있고 서곽은 국수를 말고 있었다·
우문천에 비하면 약간의 손색이 있지만 서곽 역시 엄청난 고수였다· 그런 고수가 들어와 있는데도 이곳의 누구도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쩌면 밀야에도 운중천의 고수들이 넘어가 있을지 몰랐다· 아니 진무원은 반드시 그럴 거라고 확신했다· 단지 알려지지 않았을 뿐·
수면 아래에서 전쟁은 시작되었다· 얼마 후면 파문이 일 것이고 이곳 부현 전체를 집어삼킬 것이다·
“후!”
진무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형!”
그때 누군가 그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곽문정이 그를 보며 손을 흔들고 있다· 곽문정의 곁에는 아름다운 소녀가 서 있었다·
‘소령·’
그녀는 바로 함소령이었다·
곽문정이 진무원을 향해 달려왔다·
“형!”
딴에는 반갑다고 한 행동인데 그런 그의 행동에 함소령이 의구심을 가졌다·
그는 곽문정이 저렇게 타인에게 살갑게 대하는 모습을 본 적이 몇 번 없었다· 자신과 아빠에게도 처음엔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던 이가 바로 곽문정이다·
그런 곽문정이 저렇게 무방비 상태로 다른 누군가를 대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아니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설마?’
함소령의 눈빛이 변했다· 진무원은 그녀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형 소령이가····”
진무원에게 반갑게 말을 걸던 곽문정이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이 함소령의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때로는 여자의 감이 흑월의 정보보다 정확하고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곽문정은 알지 못했다·
함소령이 진무원을 올려다봤다·
“설마 무원 오빠?”